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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 Dec 23. 2021

두서없이 서슴 있게 대수로운

첫 인터뷰  

처음 심리검사를 받았을 때 단기 기억력과 집중력이 학습 장애의 경계선 수준으로 나왔다. 전체적 지능지수로 미루어보아 지능의 문제가 아닌 우울증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감탄이 나왔다. 그치, 현실이 우울하면 빨리 까먹고 정신이 흐릴수록 유리하겠지. 


대학생 시절 정신과 처방약으로 자주 깜빡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방학이나 휴학으로 몇 개월 만에 미국에 돌아와 학교에서 그를 마주치면 그는 내가 '친구라는 느낌'을 기억해내며 잠시 반가워 한 뒤, 우리의 우정을 '상기'시켜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그럼 나는 우리가 어떻게 언제부터 알게 된 사이 인지를 말해주었다. 


너는 언젠가 잃어버릴 것을 가져야 해. 길에서 그와 마주쳐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무슨 맥락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가 그렇게 말했다. 당시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이 평생 기억에 남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는 동안, 언뜻 그 말이 이해될 것 같은 순간이 간간히 찾아왔다. 행복은 확실할 수가 없네 마네, 해놓고 불행을 예방하는 방식에 삶의 초점을 다 맞춰버려서 인생이 재미 없어진 요즘처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를 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행복을 계획이 가능하고 담보물 취급하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행복을 '재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몇 년간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확행을 자주 많이 만들어두라는 조언을 여기저기서 보고 주워 들었다. 경험상 행복은 계획대로 출몰하지 않을뿐더러 계획된 행복은 그만큼 쉽게 좌절된다. 


소소하고 확실하게 위안을 주는 것들은 더러 있었다. 나는 새벽 달리기를 하루치의 비관을 미리 덜어내는 시간으로 쓴다. 달리기를 하러 나올 때쯤 하늘의 색은 파파스머프의 얼굴색을 닮았다. 그 시간은 건물들의 불이 대부분 꺼져있고 행인이 없고 기온이 싸늘하다. 마치 멸망한 지구의 잔재 속을 산책하는 그 분위기가 평안했다.    


비슷한 이유로 우주에 관한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우주는 다양한 방식으로 내가 미물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직선적 시간관을 갖게 된 것, 인지하고 설명할 수 있는 우주 물질이 4%에 불과하다는 것, 외계인을 조우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에게 외계인을 인식할 능력이 없거나 혹은 외계인이 탐낼 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것. 이러한 정보를 접할 때 무거운 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했다. 


"믿음이 없네. 너 그런 식으로 하면 네가 하는 공부 아무 의미 없이 공부를 위한 공부만 된다." 


인간에게도 물건에게도 물질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내 상태를 말하자 친구가 독한 말로 응원해주었다. 최근 처음으로 연구비를 따서 온전히 나의 연구를 위한 첫 인터뷰를 했다. 그전까지 연구비가 없으면 참여자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고, 연구를 진행할 때도 참여자들의 시간을 아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날부터 긴장 상태였는데 인터뷰를 시작하고 참여자의 권리에 대한 의무적인 고지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안부 인사도 안 물었네. 당신은 이 연구에서 언제든 참여를 중지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다 말고 급하게 물었다. How are you? 그가 good, good 하고 너그럽게 웃었다. 


인터뷰 질문을 끝내고 참여에 대한 보상금으로 기프트 카드를 보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자 그가 물었다. 네 사비로 쓰는 거니? 기관에서 받은 후원금으로 내는 것이라고 하자 그 돈을 단체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한동안 속눈썹이 무거웠다. 


인터뷰를 몇 번하고 나니 그동안의 학습 방식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내 활자중독이 도피의 양식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모른 척해주고 있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우물 밖이 무서웠다. 책을 읽으면 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굴리기만 해도 소음 하나 일지 않고 세계를 재건축할수 있었다. 


지구 멸망 시나리오는 대게 지구 멸망 극복 시나리오다. 새벽 달리기를 할 때면 터닝포인트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익숙한 얼굴들을 종종 마주쳤다. 정확히 같은 시간에 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날 누구를 어느 지점에서 맞이하느냐에 따라 내가 평소보다 일찍 나왔는지 늦게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쓰레기 수거 차를 운전하는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보면 손을 작게 흔들었고, 어떤 이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 소소하고 확실한 우연에 웃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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