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치 Apr 16. 2022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xx으로 사는 기분은 어때요?라는 주로 유명인들에게 하는 질문이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번도 그들이 아닌 사람으로 산 적이 없는데 xx으로 사는 기분이랄게 어딨지, 그냥 사는 거 아닌가. 


워싱턴 디시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러 가는 중이었다. 소년 대여섯 명 정도 되는 무리가 맞은편 거리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소년을 넘어뜨리더니 남은 소년들이 쓰러져있는 소년을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경찰을 불러야 할지 신호가 바뀌면 건너서 직접 말려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소년들은 구타를 멈췄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년은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그 소년 무리를 뒤따라 걸었다. 그들은 마치 짜여진 안무를 수행하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뉴욕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4시간 내내 내가 본 것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갈 곳이 언제든 자신을 넘어뜨려 패 버릴 수 있는 무리인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그는 자신을 언제든 구타할 수 있는 무리 외의 (적어도 그보다 나은) 소속감을 가져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재빨리 그들을 쫓아가는 소년의 몸짓이 일상적으로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그 무리 밖의 소속감을 처음 가졌을 때, 그는 '돌아갈 곳이 자신을 언제든 구타할 수 있는 무리뿐인' 기분을 가질 것이다. 나는 내 공감의 실례에 대해 생각했다.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캘리포니아로 인턴을 하러 갔는데 집값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저소득층 공동주거 공간에 방 한 칸에 여러 명이 생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전하던 친구는,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근데 이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실례고 특혜 (privilege)지.' 


그 이후로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라는 표현에 대해 문득 떠올렸다. 이 반응은 마치 그 상황에 처해있는 당사자가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해석한다. 대부분은 그렇게 살 수 있어서 살기보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해서 사는 상황이다. 그럴 때 그런 상황을 어떻게 '견디는지'에 대한 질문은 자체가 실례다. 


시카고에서 살 당시에 청소년 폭력 관련 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강도를 당하고 폭력을 목격한 청소년들이 막상 인터뷰를 하면 평소에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해서 연구진들이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데 애먹었다. 안전의 위협은 안전함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기분이었다. 


왜 비주류(margin)를 중심적으로 공부하세요? 그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래야 언젠가는 중심이 될 거니까요. 그는 이어서 불편함을 느낄 때, 자신이 답습하고 있는 위계질서가 재편성되는 느낌이어서 감사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내가 왜 도시계획을 공부하는지 생각해봤다. 첫 번째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최소한 누울 자리는 필요하다는 것. 두 번째로는 인간이 이동을 있다는 이유로 그들이 있는 자리가 그들의 선택인 것처럼 얘기되는 싫어서. 세번째로는 이 두가지가 실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분으로 끝날까봐. 

작가의 이전글 당장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