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치 Dec 03. 2022

동생이 생겼다

동생이 생겼다. 동생은 내 강의에 들어오는 학부생이다. 몇 주전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그가 엄숙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과제의 마감일을 일주일 연장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평소 수업시간에 핸드폰만 만지던 두 손이 공손하게 모여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한 달 전부터 노숙을 하고 있는데, 학교에 있을 때만 와이파이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과제를 할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것이었다. 낼 수 있을 때 내. 그는 내 대답에 허무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이렇게 쉽게?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증명서 같은 거 필요 없냐, 그가 따지듯 물었다. 


거짓말이면 다행인 거지. 근데 더 자세히 물어봐도 돼? 밥은 먹었어? 그는 짐을 보관하는 창고에서 잠을 자고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곳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5분 뒤에 수업을 시작해야 했기에 우리의 대화는 어영부영 끝나버렸다.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나자 그는 이미 강의실에 없었다.


잠이 안 왔다. 청소년 대상으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기관들을 찾아봤다. 결론은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지원 자격요건에 해당사항을 갖춘 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 안 쓰는 아이패드 있는데, 그게 너한테 도움이 될까? 그리고 전화번호를 남겼다. 


이틀 뒤에 문자가 왔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만 빌려 쓰겠다고. 나는 학과 사무실에 놓고 갈 테니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직접 얼굴을 보고 감사 표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됐다, 나 지하철역 다 왔어,라고 문자를 하다가 그냥 전화를 걸었다. 밥 먹었어? 학과 사무실로 나와. 


학과 사무실로 도착하니 내가 맡겨놓은 아이패드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그가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다신 그러지 마. 내가 밥은 먹었냐고 묻자, 그가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교내 카페는 10번 도장을 찍으면 무료로 음료를 주는데, 그는 매번 도장을 날조해서 마신다고 했다. 똑똑한데? 내가 배고파서 그런데 나랑 같이 밥 먹어주라. 근데 중국음식이 좋아, 피자가 좋아? 그는 나의 빤한 속셈에 넘어가지 않았다. 피자가게 안에 들어와서 까지 끝끝내 메뉴를 고르지 않는 탓에 가장 인기가 많다는 메뉴 두 가지를 시켰다. 


피자가 나오고 나는 말했다. 웁스, 근데 나 비건이야. 


알면서 속아줬어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어제 이후로 첫 식사라고 했다. 와 그럼 맛이 끝내주겠는데? 내 속없는 반응에 드디어 그가 웃었다. 그는 5년 전부터 가족들과 연을 끊고 집을 나와 야간 건설노동 알바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강의가 있는 날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음 강의일에 나는 샌드위치와 간식 몇 가지를 준비했다. 강의실 책상에 차려놓은 나름의 저녁상을 보고 그가 당황했다. 그는 내가 집에 가는 길에 음식을 사서 가면서 먹는 그림을 상상했다고 한다. 내가 밥 먹자 했지, 언제 끼니 해결해준다 했냐. 그는 그저 내가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가면서 먹으면 체해. 


그가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비건 샌드위치를 씹었다. 맛없으면 맛없다 해도 돼. 그는 맛이 없기도 하지만 그보단 이만큼의 환대가 익숙지 않다고 했다. 돈이 생기고 형편이 나아지면 갚을 거다, 라는 말도 했다. 그럴 돈 있으면 월세나 모아, 라는 말을 꾹 삼키고 말했다. 네가 갚으면 이건 거래가 되잖아. 차라리 네가 잘하는 게 있으면 그걸 나한테 가르쳐주지 그래.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에게 무려, 심리학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는 나의 사회심리학 강의 학생이다.) 살면서 내본 가장 큰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당신은 책만 주구장창 봐서 이론만 바싹하지, 세상 물정은 아는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럼 그냥 내 동생 해. 가족끼리 진 빚은 안 갚아도 돼. 몇 번의 연습 끝에 그는 누나를 '뉘나'라고 발음했다. 


우리는 가는 방향이 같아서 지하철을 함께 탔다. 지하철에는 노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승객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지하철에서 내리자, 동생은 자신도 노숙인이지만 평소 노숙인들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얘기했다. 동생은 또 자신이 얼마나 모순이 많고 못된 생각을 하는지, 폭력적인 상상을 하는지 얘기했다. 이렇다 할 반응 없이 듣고 있으니 동생이 잠시 나를 쳐다봤다. 동생의 표정을 읽고 내가 말했다. 네가 하는 말에 아무 생각 없어. 그러자 동생은 자신의 생각에 아무 의견이 없냐고 했다. 여긴 근데 강의실이 아니잖아. 네 말을 굳이 정정하거나 고칠 필요 없지. 그러자 그가 말했다. 


고쳐달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거잖아. 


무성의함과 편견없음을 구분하는 그의 기민함에 놀라며 급한대로 진심을 조금 얹어 대답을 꾸렸다. 네말대로 내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지만, 네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밉지 않겠어? 


우리는 정말 가족처럼 말이 안 통했다. 


동생은 내가 원치도 않는 강의 피드백을 매번 해줬다. 으. 그는 학생들이 나를 '마스코트'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스코트? 그게 무슨 뜻이야.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뉘나는 야구경기장 같은 데나 놀이공원에서 인형탈을 쓴 사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해? 글쎄. 겨울엔 춥겠다, 여름엔 덥겠다, 피부 습진 같은 거 오면 산재되나? 근데 학생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동생은 한숨을 쉬었다. 


동생은 내가 왜 자기를 돕는지 궁금해했다. '돕는 거' 아닌데? 뉘나가 선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어서 나한테 밥 사 주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닌데. 이타적인 게 아니면 뭔데? 이타적인 건 어쨌든 네가 남이라는 전제가 들어가 있잖아. 그보다는 딱히 너와 나를 구분 짓지 않는 거야. 그게 이타적인 거 아냐? 


설명을 할수록 동생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좋은 걸 알려줄 기회가 왔구나.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냥 마르크스주의자여서 그런가 보다 해. 

작가의 이전글 관찰과 방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