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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Oct 18. 2023

비상 연락망

햇살이 따쓰한 오후, 

나른한 기분도 드는 그런 시간이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국립도서관이 하나 있다.

그곳에 소사로 일하는 분이랑 친하다. 가끔 이런 오후 시간에 인생이란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선생님은 세계여행 하고 싶으세요?


이날도 내가 뜬금없는 주제를 던졌다.


음. 저는 하고 싶어요. 경제적인 문제만 걸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티비에서 보던 곳들도 가보고 싶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배경이 되는 곳들도 가서 느껴보고 싶어요.


물론 경제적인 여건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결국엔 갈 수 없다는 가정의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컴플렉스가 공존해서인지, 세계 여행을 누가 보내준다 해도 그렇게 가고 싶지 않는 마음이었어요. 물론 저의 지금 상황에서 간다는건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살면서 생기는 고민이나 불안들은 대부분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이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것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게 정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잖아요. 여행을 하면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되어 살아가는데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들 말해요. 그래서 한번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꼭 세계 여행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경험치를 올려주는게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난 오늘도 나의 불안에 대한 근본 원인에 생각해보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세계일주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가고 싶은 곳이나 체험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시간을 조금은 적당히 잡아서 해보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저도 유럽의 시골에 가서 한달정도 이래저래 한가로운 생활을 해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다녀오면 그게 힘이 되어 몇달은 잘 살 수 있는것 같아요.


제가 아시다시피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많은 일들을 해왔잖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여행이나 그런것들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셨잖아요.


맞아요. 전 어릴때부터 범생으로 자라서인지 좀 경험치 부족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했어요. 그런것들이 저의 불안증을 좀더 키웠던것 같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학시절 공부보단 경험치를 위한 노력들을 많이 했던것 같아요. 무전여행이던가 전국일주라던가, 그런 식상한것 들을 주로 해왔죠. 그러다 학창시절 사업도 시작했었고, 좀 그시절때에 다양한 경험을 했던것 같아요. 

그럼 경험치가 밧데리를 충전해서 그동안 버텨온것 같아요. 


사람이 늙은다는건 그 밧데리의 효율성이 떨어지는것과 같은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릴땐 조금만 충전해도 효율이 좋아서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좀 힘든것 같아요. 자주 충전해주고 그래야 해요. 그런데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건들을 이유로 그런 충전에 인색해지고 하지 않다보니 자주 방전되는것 같아요. 밧데리의 효율성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충전을 자주 하는것도 좋은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이제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는 나이가 되었 잖아요.


맞아요. 자주 충전해줘야 해요....


선생님과 저는 사실 마음속의 말들을 해도 서로 부담이 없는 어찌보면 남남인 사이입니다. 혹시라도 선생님도 대화가 필요하시거나 누군가 마음을 의지 할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 있으시면 꼭 연락주세요. 낮이든 밤이든. 저랑 비상연락망을 만드는 거에요. 


허허. 연락할께요.

꼭이에요. 저도 연락하겠습니다.


둘의 대화는 점심시간의 마지막쯤에 끝났다.

비상연락망에 한명을 채워 넣었다. 앞으로 몇명을 더 채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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