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쵸 Jan 10. 2023

그날 이후 첫번째

공상과학

그렇게 달렸다. 죽음의 공포에서 난 달린 것이다. 언제 살해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속에 살아왔다. 그것도 타인이 아닌 가족, 어머니로 부터 살해 당한다는 상상은 초등학생인 내가 감당 하기엔 힘들었다.



감정


그 사건이 벌어진 후 얼마가 지났다. 쓰레기를 먹을 수 있는 튼튼한 위장과 하루 종일 걸어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다리 덕분에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더 어린 시절부터 주눅들어 왔기에 누군가에게 멸시나 비웃음을 사더라도 웃으면서 그 순간을 넘길 수 있다. 눈물도 잘 흘리지 않는다. 슬픈 일이 있어서 보다 배가 고프면 울것 같은 기분이다.

그날도 어느 식당 뒷 골목에서 잔반을 뒤지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하늘은 달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이었지만 골목 끝 가로등이 나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검정과 노란색의 대비, 지금의 내 모습은 노란색인건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고기도 있고, 따뜻한 하얀 쌀밥도 있다. 어머니가 동생의 남은 밥을 나에게 줄때 그것만 먹을 수 있었기에 난 편식이란걸 몰랐다. 오히려 지금이 나에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행복이란 무엇인걸까? 먹고 싶은 사탕 하나를 얻었을때 그것인가?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들 수 있다면 행복한것인가?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헝크러진 앞머리 사이로 눈을 돌렸다. 그 어두운 밤 보이는 유일한 흰색 나의 눈동자는 더 어둠에 빛나고 있었다. 갈색코트와 벙거지 모자 가죽장갑을 끼고 키는 180정도의 커다란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몸에선 고기 냄새가 가득하였고 약간의 술냄새가 났다.

거기서 뭐하는 거니? 그 남자는 내가 잔반을 먹고 있는 모습에 흠찟 놀란 기색이었다. 난 부끄러움이 없다. 지금 저녁 식사를 방해 받는것을 너 힘들게 느끼고 있다. 얼른 그냥 지나쳐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너 그걸 먹고 있는 거니? 어둠속에서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목소리에서 경멸과 놀라움이 있다는게 느껴졌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남자는 커다란 오른손을 내밀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 손이 따뜻했다. 첫인상과는 다른 그런 따스함이었다. 어두운 뒷골목을 비추던 가로등이 갑자기 꺼졌다. 세상은 칠흙과 같이 어두워졌다. 하늘엔 보이지 않던 달이 하나 덩그러니 우리를 비춰주었다.




히로미 야쿠


짙은 녹음으로 변하는 계절. 7월. 여름이다.

하얀 반팔 블라우스를 여학생들이 저마다 즐거운 표정으로 교문을 들어선다. 오른편엔 사감 선생님을 연상하는 금테 안경을 쓴 선생님이 서있으며, 모두에게 행복한 표정으로 인사를 해준다. 나도 그 물결에 함께 행복한 표정을 하며 인사를 한다.


야쿠!

어젯밤 잘 들어갔어? 내가 이 학교에 와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 미코리였다.

그녀는 단발 머리가 잘어울리는 작은 얼굴과 하얀 피부를 가진 친구였으며, 미코리를 모르는 이들은 그녀가 어디 병에 걸린 걸로 착각할 정도로 마르고 야윈 소녀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던 날이 그녀는 나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그녀가 가지고 있던 하리보 한봉을 내게 건네 주었다. 그건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징표였을것이다.

난 아직도 그 하리보를 내 가방안에 넣고 다닌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던 내가 그걸 이렇게 오랫동안 보관한다는건 그만큼 내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일것이다. 언젠가 준비물을 가지오지 못한 날, 난 오랫만에 그 하리보의 존재를 보았다. 그리고 미코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 아니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소중한 사람이다.


어제 후지야 너무 멋지지 않았니? 난 그애가 웃을때 너무 행복해. 그래서 내 손톱에 그를 상징하는 네일 아트를 했어. 어때.

그녀는 쉼없이 어제의 일과 감정들을 나에게 말했다. 그 또한 날 믿고 좋아 하는 친구라 생각하기에 하는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일아트 너무 예쁘다. 방긋 웃는 나의 미소. 이런 미소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이 모든게 그의 마음 덕분이다.



나와 함께 갈래? 물론 갈곳이 없는 거라면 말이야.

난 그를 따라 어느 맨션에 도달했다. 예전에 내가 살던 맨션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되어 있고 고급스러운 조명이 사방에서 황제의 연단을 비추듯 하고 있어 내가 들어가도 될지 고민스러운 분위기였다. 입구는 회전문으로 되어 있었다. 언제 텔레비젼에서 커다란 빌딩은 그런 회전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 회전문 앞에 잠시 멈추었다. 어떻게 들어가는 것인지 방법을 몰랐기에 그랬다. 그 남자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나이 오른손을 잡고 회전하고 있는 문의 한칸으로 끌고 들어갔다. 로비는 환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고 한컨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정면엔 어떤것을 그린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색으로 차있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제복을 입은 어떤 아저씨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냈다.

히로미 유지는 이제 들어 오세요.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아마도 이곳 건물을 지키는 안전 요원인것 같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 그분이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그남자에게 인사를 한다.

그남자의 이름은 유지였다. 히로미 유지.

아마도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부자인건 확실하다. 내가 텔레비젼에서만 보던 그런 분위기 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얼굴을 힐끔 올려 보았다.

어두워서 보지 못한 그의 수염이 보였다. 나이는 내가 처음 생각한것 보다는 젊어 보였다. 대략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그가 내 손을 끌때마다 그의 왼손에 차고 있는 금속 시계가 찰랑 거리를 소리를 낸다. 그소리가 왠지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엘리베이터는 열리고 그는 6이란 숫자를 눌렀다. 아마도 6층 어딘가가 그의 집인것 같았다. 청아한 벨소리와 함께 6층에서 문이 열렸다. 이곳 또한 작은 로비가 있었다. 복도는 카페트로 깔려 있어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맨션의 복도와는 많이 다른 공기다.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606호의 문이 열렸다. 그남자의 지문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센서등이 켜졌다. 따뜻한 노란색 전구등. 내 발끝을 비추는게 그동안 시려있던 나의 발을 감싸주는 그런 따뜻함이었다.

내 앞에 양털이 있는 슬리퍼 하나를 그가 내 밀었다. 이걸 신으면 따뜻할거야. 갈아 입을 옷과 타월을 욕탕 앞에 놓았으니 우선 목욕부터 하는게 어떨까?

빨간색과 초록색 스트라이프가 있는 잠옷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생각나는 색깔이다. 옆의 가지런히 놓은 타월은 이불로 써도 될만한 그런 크기였다. 타월은 눈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욕탕엔 따뜻한 물이 틀어져있었다. 정면 거울에 내 모습이 비춰졌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와 며칠을 씻지 않아 눈동자만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내 곧 거울은 김으로 가득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앞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예언처럼 말이다. 욕탕의 물속에 내 몸을 담았다. 어머니와 동생과 살때는 항상 마지막에 목욕할 수 있었다. 동생이 목욕한 물은 항상 미지근한 물이었다. 식어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내 내 몸은 욕탕속에 녹아 바닥에 내 몸이 담가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충분한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