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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Jan 29. 2023

여름 이후

공상과학

세이지는 생각했다. 히로미와 이년 전 그날을.


햇살은 뜨겁고 습한 공기가 가득하던 어느 여름 날이었다. 밖에선 매미들의 울음 소리와 창으로 보이는 푸른 잎들이 더운 바람에 흔들리던 그런 날이었다. 더위를 빼고는 모든게 정말 평온하던 그날.

세이지는 히로미와 사귄지 이제 거의 일년이 되어간다. 히로미는 긴머리에 상커플이 없는 눈과 갸름한 턱선을 가져 외모로만 본다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눈을 보면 더 그러했다. 항상 촉촉히 젖여 있는 듯한 눈가는 세이지로 하여금 애잔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떤 연유로 히로미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것 또한 왜 그런것인지 그렇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냥 함께 있다보면 자신이 조금이나마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것 같은 그런 느낌에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히로미에게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긴걸 알았다. 세이지는 자신이 없었다. 당연히 그도 그럴것이 아무래도 상대가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사람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더욱이 상대가 히로미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자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란걸 알았을 때, 더욱 마음의 결심이 섰다. 헤어지지만 세이지의 마음은 닫지 않기로. 그것만이 내가 히로미의 마음을 영원히 소유하고 꺼내 볼 수 있는거라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세이지는 히로미에게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으며, 가끔 걸려 오는 히로미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 발신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이상의 전화는 없었다. 전화를 받으면 수화기로 이별 통보가 들려 올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이지는 그렇게 둘의 관계를 어떤 결정이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방치 하는 방법을 선택한것이다. 그럼으로써 히로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헤어진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세이지는 둘만의 관계가 지속되는 느낌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세이지는 밤이 되면 편지를 쓰곤했다.


사랑하는 히로미에게

여름밤 창문에 흔들리는 커텐처럼 나의 마음이 설레고 있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연락한것이 벌써 이년전 여름입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어요. 비록 당신이 먼곳에 있지만 전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느끼면서 살고 있답니다. 그동안 저의 책들도 많이 출간이 되었답니다. 혹시 서점에서 본적이 있나요? 당신은 눈치를 챌거라 생각했었는데... 진이란 이름으로 출간했어요. 항상 당신은 날 진이라 불렀죠. 그게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였지만 전 잘 알아요. 당신의 전 남친의 이름이 진이였다는 걸. 

제 책을 당신 꼭 보았으면 했어요. 아마 보았을거에요. 그 책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당신 히로미입니다.

그리고 그의 남친으로 나오는 진이 바로 저에요. 책에서 우리는 언제나 서로 의지하고 사랑합니다. 현실에서 전 당신의 존재가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저 또한 사라지는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당신은 저의 가슴속에서 살아 있을거에요.


보내지 않는 편지를 또 쓰고 또 쓰고 작은 상자에 수많은 편지를 담아두고 담아 두었다. 그리고 닿지 못하는 그 편지들을 언젠가 또 다른 책으로 히로미와 세상에게 우리의 사랑을 알릴것이다. 그리고 그가 꼭 나의 마음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이 모든 감정을 완성 할 수 있을것 같았다.

얼마전 상자 옆에 이달의 작가상을 받은 상패가 세워져있다. 세이지는 그 상패를 보면서 다시 한번 히로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없다면 이 상도 받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세이지의 감정에 대한 어떤 가치를 보상 받은 전리품과 같은 것이다.

 

창문 사이로 더운 여름날 조금은 식은 듯한 바람이 커텐을 간지럽히고 있다. 그리고 세이지는 일어서서 책상위에 스탠드를 껐다. 그리고 둘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었다. 그리곤 잠이 들었다.


이 밤공기속에 둘의 사랑이 어둠을 타고 계속 세월을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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