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고시생의 공부법
나는 1년 넘게 고시 공부를 했고 첫 시험에 보기 좋게 불합격했다.(20년 전 이야기다) 그런데 그 후 아주 오만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제 실력이 좀 쌓였으니, 직장 다니면서 해도 될 것 같은데?'
당시 나이 28. 지금 기준에서야 한창인 나이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 상 직장 생활을 시작할 나이였고, 전업 고시생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던 중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는 회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공기업이었고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런 걸 가릴 형편은 아니었다. 어차피 퇴근 후에는 할 것도 없으니 공부나 하면서 못 다 이룬 고시합격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입사지원을 했고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러했다.
5시 퇴근 후 11시까지 하루에 6시간을 풀로 공부하고 주말에도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 그렇게만 한다면 공부량은 충분하다고 봤다.
현실은 어땠을까? 계획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쓸리는 없을 것이다.
차이 1.
퇴근 시간이 5시라고 해서 내가 집에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5시는 아니었다.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었지만 이것저것 챙기다 집에 오면 아무리 빨라도 6시. 회식이라도 있는 날엔 10시 넘어 집에 도착했다.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부르는 곳이 많았기에 내가 6시에 집에 들어오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이 2.
음주는 내 생활과 몸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선배들이나 간부들과 저녁을 먹을 때는 의례 술이 빠지지 않았고 술을 꽤 좋아하던 나는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그렇게 만취해서 집에 돌아가면 그날은 물론이고 그다음 날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이 3.
그렇다면 위의 1과 2가 없던 날에는 공부를 잘했느냐? 그렇지 않다. 뭐든 날마다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이 중요한데 어쩌다 시간이 나고 몸 상태가 괜찮아서 책상에 앉으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공부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책을 봐도 눈꺼풀이 내려오고 몸을 침대에 던지게 되며, 개운한 상태에서 눈을 떠보면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차이 4.
주말에는 하루 10시간씩 공부하겠다는 더 야심 찬 계획이 있었으나 이것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내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일만 하고 퇴근 후에는 공부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입사했다. 하지만 다달이 나오는 월급, 회사가 내게 주는 안정적 소속감은 입사 초의 결의를 점점 옅게 했고 임원 비서였던 그녀와 데이트를 이어가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데이트는 주말이 딱 좋지 않은가?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마음 한 구석에는 이미 합격한 친구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고 싶다는 생각아 아주 조금 남아 있었지만 고시생 시절의 독기는 거의 사라졌다.
이 와중에 내 계획이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고 완벽하게 증명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1년간의 수습교육(길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잘 놀았다.)을 마치고 정식 부서 발령에서 가장 일이 많은 부서에 배치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더욱 확실히 알게 됐다. 취업과 공부 둘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그럴 듯 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지"라고 마이클 타이슨이 말했다고 했던가?
하루에 6시간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에 있다는 것을. 아니면 이를 극복하고 실행해 낼 의지나 체력이 내게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허무하게 나의 건방진 계획은 실패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결론
하루에 6시간이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 직장인이 하루에 6시간 공부하는 자체가 기적이다. 아무리 근무 환경이 좋아 보이는 회사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