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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15. 2022

암에 완치란 없습니다.

암 환자의 주변인들에게

 암 치료를 마치고 6개월 만에 복직했다. 복직 결정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경제적 상황, 회사 생활을 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 집에 있으며 느끼는 무료함 등등...


 그렇게 1년여를 일했고, 지금은..... 후회한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며칠 전 직장 상사가 내게 물었다.

 "완치된 거 아니야? 왜 그렇게 병원을 자주 다녀?"

 

 3달에 한 번씩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가를 써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직장 상사는 내심 그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암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쏟아내었다.


  "항암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몸속의 모든 암세포가 죽은 게 아니에요. 암세포 중 일부는 여건이 안 좋아지면 증식 활동을 멈추고 숨는다고 하네요. 그러다 다시 활동할 여건이 되면 무서운 속도로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암이 재발했다'라고 하지요. 암은 언제 재발할지 몰라요. 다만 다수의 환자들이 5년 이내에 재발하다 보니, 완치 기준을 5년으로 하는 겁니다. 하지만 완치란 없어요. 그냥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전 아직 2년도 안됐어요."


 본인은 새로운 암세포가 발견되는 것이 '재발'인 줄 알았다고 한다. 내 설명을 듣고 나서 내가 병원을 자주 가는 이유가 이해되는 모양이다.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는 철저히 무관심하지 않던가? 아마 본인이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암에 대해 무관심할 것이다. 그 누구라도 말이다.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위와 같다는 것이다. 복직을 한 데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니 '이제 본부에서 힘들게 일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생과 사에 있어, 우리의 직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그깟 진급 하나를 위해 자신의 생을 갈아 넣고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물론 나 역시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들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긴. 나 역시 암 환자임을 잊는 경우가 있는데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그래도 1년 동안 암 환자로 회사를 다니며 주변 사람들이 암과 암 환자에 대해 알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적어본다. 


 1. 술은 권하지 않습니다.(정확히는 마신다고 해도 말립니다.)


  복직한 첫 주. 암 발병 1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직장 상사 및 동료들과 저녁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때 직장 상사가 날 보며(매우 애잔한 눈빛으로, 자신의 제안에 동의하기를 바라며) 'P과장 술은 마시지?'라고 물었다. 못 마신다는 내 대답에 '운전 때문에 그런 건가?'라고 말한다. 아... 술을 안 마신다고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술은 꽤 강력한 발암 물질 중 하나이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주변에서도 암 환자가 술을 안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게는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가는 것 자체가 큰 부담 요소이다. 거기에 술까지 거절해야 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 유능함을 발휘해야 할 자리는 몸이 건강하신 분들에게 배정하시면 됩니다.


   본인의 기준에 맞춰 커리어 패스를 설정하실 필요는 없다. 관심과 배려는 고맙지만 암 환자의 인생에서 직장에서의 성공(직위)은 매우 미미한 부분이니까. 그런 자리는 어차피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가? 승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돌아가도 암 환자들은 억울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런 제안이 본인의 욕심인지 정말 암 환자인 직장 동료를 위한 것인지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3.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끊임없는 관리와 치료가 필요함을 이해해 주세요.


  나는 30일간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방사선이 우리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 지는 알고 있을 테다. 방사선이야말로 암의 원인 아닌가? 그런데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치료를 위해 몸에 쏟아부었다. (일부 환자는 이로 인해 10년 이상이 지난 후 새로운 암에 걸리기도 한다.) 겉으로 티가 안 난다고 해서 암 환자의 몸 상태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인 것이 아니다. 입에서는 침이 적게 분비돼 음식물을 씹는 데 어려우며, 체력이 부족해 빨리 걷거나 무리한 야근 일정을 수행할 수 없다. 그 외에 항암 치료로 인한 부작용 역시 수없이 많다.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기에 늘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만 이해해 주자. 


 나의 글이 암 환자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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