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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Sep 20. 2022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만약을 대비하려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갑자기 부풀어 오른 혹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를 의사 선생님께서 안심시킨다. 선생님은 CT 촬영을 권유했고 촬영 후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진료실 전광판에 내 이름이 나타난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심각한 표정을 한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난감한 듯 진단 결과를 내게 말한다.    

 "비인두 암입니다. 빨리 조직 검사받으셔야 합니다. 병원 추천해 드릴게요."


 암이라는 이름의 병은 죽음의 그림자를 한 껏 드리운 채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나는 앞 뒤 잴 틈도 없이 그 전투에 대응해야 했다. 전시에는 신속함이 최우선이다. 적들이 밀고 들어오면 전투 병력을 최대한 전방에 투입해야 초기에 전세를 잡을 수 있다. 치료받을 병원, 숙소, 치료 전 준비물, 몸 관리. 치료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올 테면 와봐라. 기꺼이 상대해 주마. 


 하지만 암이라는 저승사자의 악명이 워낙 높은지라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만일 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번도 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40여 년의 삶. 하지만 내 삶의 끝은 당연히 해피 엔딩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을 뿐, 그 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침대에 누워있는 한 노인. 기력은 없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족 구성원 모두와 작별 인사를 한다. 노인은 그들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함께 했기에 행복했다고 속삭인다. 작별 인사가 끝나자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노인의 눈은 조용히 감기고 가족들은 오열한다. 노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은 그래도 호상이라며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노인을 추억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죽음의 모습이다. 하지만 죽음의 여신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이를 허용하며 이 축복에서 난 예외가 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두려움으로 변했고, 그 두려움은 공포로 변하며 나를 괴롭혔다. 전투의 시작부터 기세를 뺏겨버리고 말았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나는 암 환자의 마지막 과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알아야 대비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암에 맞서기 위해 전력을 다해 치료받아도 암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데, 치료에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하다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암에 걸린 것이 내 의지가 아니었듯, 치료 결과 역시 내 기대와 다를 수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대비하는 것은 치료 전 준비만큼이나 내게 필요했다. 


 암 관련 서적과 블로그, 방송 영상 등을 통해 접하게 된 암 환자의 마지막은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것을 옆에서 보는 가족들도 버티기 힘들 것 같은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 암 환자들만의 독특한 습성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는 임종 직전까지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에도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했다. 그로 인해 환자와 환자 가족의 고통은 길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환자 임종 후 가족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주어진다는 것. 암에 걸리면 한 가정이 뿌리째 뽑힌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이해됐다. 


 생명은 존귀하다. 그 누구도 이 명제에 대해 반기를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끝이 정해진 상황에서 고통으로 얼룩진 생명 연장이 과연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사회에 진정한 행복을 안겨줄 수 있을까? 특히 환자가 의식을 잃은 경우 무의미하게 이어지는 고가의 연명 치료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들이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며, 선택의 시기를 놓치면 내 가족은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암 치료 전에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추가됐다. 


 비인두암 치료 하루 전. 나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의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입원 날이 되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게 친절히 전화를 주셨다.

 “박 아무개 씨 되시죠? 오늘 몇 시쯤 오시나요?”

 “아. 안녕하세요. 지금 출발할 건데요. 들를 곳이 있어서요. 5시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도착 직전에 다시 전화드릴게요.”


 내가 향한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 XX지사.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치료 기간 중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가족들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하기 위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였다. 최악의 순간에도 나의 존엄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치료에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속의 불안감이 사라진다. 


 삶의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그 순간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지을 수 있는 기회. 몸이 건강할 때 준비한다면 더욱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당신의 하루하루를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하게 만들 것이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지 1년 7개월이 흘렀다. 다행히 나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나의 마지막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언제이든 난 당당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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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2022년 연명의료 결정제도 체험수기 공모전에 제출하여 장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맘에 전문을 붙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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