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vid Sep 07. 2022

암 환자의 코로나 경험기

 코로나 확산 초기에 코로나가 주는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환자들이 꽤 높은 비율로 사망하니,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들 모두 멘붕 상태에 빠져버렸다. 발병률이 높은 특정 도시를 봉쇄해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으니 공포에 빠져 이성이 마비되는 현상을 목격한 특이 케이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당시 나는 젊음과 건강한 육체에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주로 노약자와 기저질환자였기에 내가 코로나로 죽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코로나를 하찮게 여긴 것은 아니다. 당시는 코로나 확진자에 대해 감염 전 이동 경로와 접촉자 등을 탈탈 털어 인터넷에 공개를 해버렸고 직장에서는 그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을 기세였으니 그게 무서워서 코로나에 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코로나는 잘 피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암이라는 놈을 만나게 됐다. 암 진단을 받으니 코로나가 내 생존을 위협하는 실질적 질병으로 느껴졌고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우선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감염의 위험이 높았다. 또한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의도치 않게 사람들과 접촉해서(병원까지의 이동 과정(서울-> 구미) 및 병원 내 대기실이나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환자들 등) 아무리 마스크를 잘 끼더라도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는 나를 기적적으로 비껴갔다. 딸을 제외한 가족 모두(와이프, 장모님, 장인어른)와 직장 동료들의 90% 이상 감염이 되었는데 나는 무감염 상태를 유지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한테 항체가 이미 있는 거 아냐?', 또는 '이미 감염됐는데 그냥 지나간 거 아닐까?'라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고 회사 동료들이 하나 둘 감염되는 것을 지켜보며 '누가 최후의 1인이 될지 지켜봐야겠군' 하며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다 조카가 우리 집에 오기 시작하며 나의 거만함은 끝나버렸다. 조카는 내 딸과 3살 차이라 우리 딸과 친구처럼 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친척 중에)이었다. 그래서 조카가 우리 집에 오는 걸 반겼지만 코로나와 함께 왔을 줄이야.


 하지만 나와 내 딸이 코로나에 걸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2천만 명이 감염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보균자와 분명히 접촉했을 것이고, 지금껏 감염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야말로, 나한테 항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요. 우리 딸이 조카랑 딱 달라붙어서 놀았거든요. 항체가 없으면 이번엔 피해 가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이틀 후 나는 코로나 감염 여부를 검사했고 진단 키트에 선명하게 그어진 두 줄을 볼 수 있었다.


 회사에 감염 사실을 알리고 격리에 들어갔다. 첫 2일은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39.5도까지 체온이 오르는 딸이 걱정될 뿐이었다. 하지만 3일 차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 딸은 코로나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나 후유증이 없는데, 나는 체온이 높은 것은 물론 몸 여기저기서 통증을 느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체온이 38.8도까지 올랐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고 한 잠자고 나면 체온은 다시 정상이 됐지만 오한과 함께 온 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피부에도 작고 붉은 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일 최고 체온은(38.8도->38.2도->37.8도) 떨어졌지만 온 몸에 힘이 없었고 피부/근육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코로나 진단을 받은 병원에 전화를 하여 5일치 약을 추가 처방받았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기저질환자에게 코로나는 위험하다는 생각)처럼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증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감에 걸렸을 때만큼의 증상은 나타난 것 같다. 물론 이 정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이제는 거의 감기처럼 취급받기 시작하고 있지만 그래도 멀쩡한 사람의 목숨도 앗아갈 만큼 악명이 높은 녀석이니까. 


 아무튼 이렇게 암 환자의 코로나 피하기 작전은 종료되었고, 코로나에 걸리긴 했지만 일반인들이 겪는 범주안에서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코로나에 걸릴 경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한 결 가뿐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암 환자의 사회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