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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Sep 17. 2022

암 환자의 사회생활

 청천벽력 같았던 암 선고. 그리고 이어진 2달간의 항암 치료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아무런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절망적이었다. 하루하루 치료 일정을 버텨가며 달력의 숫자에 X표를 한 개씩 추가했고 어느덧 달력은 X표로 가득 채웠고 치료는 끝났다. 


 치료 이후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내 몸을 다시 정상화시키기 위한 발악이었다. 처음 목표로 잡은 운동량은 하루만 보 걷기. 일반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내겐 힘든 목표였고,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 밖으로 나서기 위해 수많은 내적 갈등을 해야 했다.


 그러기를 8개월. 몸은 서서히 회복됐고, 난 주변의 만류에도 복직을 결심했다.


 겁도 없이 복직을 결정한 데는 두 가지 전제가 있었다.

 1.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가치관을 정립했기 때문에 승진이나 직장 내 평판을 위해 무리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트레스 레벨을 내가 조절할 자신이 있었다.


 2. 타인들의 배려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암 환자에게 다른 직원들과의 동등한 퍼포먼스를 기대할 것은 아니기에 큰 무리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나의 복직에 대한 중간 점검을 해보자.


 1. 몸 상태(체력)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한 편이다. 하루 8시간 회사에 갇혀 있고, 준비 시간 및 출퇴근 소요 시간까지 고려하면 10시간이 넘게 자유 시간을 빼앗긴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고 헬스장을 가는 데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다행히 야근을 해야 할 일은 없기에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2. 스트레스

 과연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 성격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생기는 사건이나 직원들의 행동은 나의 무의식을 예고 없이 자극하고, 예전과 같은 반응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렇다고 예전과 변화가 1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종료된 뒤 사건을 복기하며, 내 대응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트레스가 건강 악화로 이어지지 않게끔 생각을 정리한다.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그 순간으로 끝내려 노력하니 적절한 범위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 인간관계

 암에 걸린 후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줄고 자유 시간도 늘었으며 무엇보다 자아 성찰을 할 기회가 많다. 그동안 인간관계에 허비하던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 사색에 사용하니 마음은 더욱 안정되고 깊이 있는 삶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인간관계를 줄이니 음주에 대한 유혹도 사라져 건강 관리에도 득이 된다. 


 4. 회사의 배려

 회사에서는 내가 암 환자라는 이유로 배려를 해줄까?

 내가 yes 아니면 no로 명확하게 답변하는 것을 좋아하니 배려를 감정적 배려와 실질적 배려로 나눠 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감정적으로는 배려해주지만 실질적으로는 배려해주지 않는다. 쉽게 얘기해서 입으로만 위로해 줄 뿐 보직 배정이나 업무 분장 등에서 특혜를 주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같은 월급 받고 일하는 처지인데 누구는 몸이 약하다고 일을 덜하고 몸이 정상인 사람들은 일을 더 하는 건 불합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원칙에 의해 굴러가야 하고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다면 휴직이 올바른 결정이다.

 하지만 나 역시 이기적인 소시민 중 한 명이고,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기대를 했다. 같은 직급의 보직이라도 분명 더 힘들고 덜 힘든 자리가 있는데 이왕이면 좀 덜 힘든 자리를 암 환자에게 양보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야 '힘들지 않으세요.', '걱정됩니다.' 등등 따뜻한 말들을 많이 해주지만 그 누구도 내게 앞으로 부담이 적은 자리로 가야 한다거나 그렇게 될 거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연결이 되어 있을 때 아주 작은 양보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틀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현실이 그렇다고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직장 동료가 암에 걸렸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느낀 걸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별 관심이 없다.

 암은 자신에게 닥쳤을 때 생명을 뺐어갈 수 있고, 평생 관리해야 하며 극도로 조심해야만 불행을 피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지만 본인이나 가족이 걸리기 전에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도 않고 아는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암에 걸린 직원(그다지 친분 관계가 없다는 가정하에 얘기다)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2.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 다 나은 줄 안다.

 다른 글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술 마실 수 있지?'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서 본부로 복귀해라.', '주요 보직으로 옮겨라.' 등의 말도 많이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제 다 나았으니 예전처럼 행동해라.'이다.


 암은 보통 5년이 지나야 어느 정도 안정화된 단계라고 얘기한다. 난 이제 1년 6개월이 지났으니 조심, 조심 또 조심해야 할 단계이다. 엄밀히 말하면 5년간 휴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휴직을 용인해주는 직장도 없을뿐더러, 진단서 발급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수의 암 환자들이 암 진단 후 직장을 잃는 경우가 많다. 복직을 해도 일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복직에 부정적인 경우도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정상인과 똑같을 거라 생각하고 예전과 같이 업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모든 경우가 다 암환자들에게는 녹록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회사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섭섭할 때도 있지만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다. 다만 암 환자들이 건강을 유지하며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하고 배려하면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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