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이 싸울 때 나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내게 도망갈 곳은 유일하게 내 방과 내가 자주 보는 애니와 책 세계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잡음처럼 들려오는 싸움 소리는 늘 나에게 지친 감정을 심어주었다. 언제쯤 저 싸움이 끝날까? 그 생각만을 수십 번 했고 싸움이 끝나고 나면 빨리 집을 떠나고 싶어져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한창 예민했고 그만큼 감성적인 아이였다. 그렇기에 집이 싫고 도망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 자신은 그 일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은 싸움도 없고 평온하기만 하다. 갑자기 찾아오는 아빠도 안 계시고 늘 돈을 달라는 소리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니 참 좋고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됐고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빠가 다시 집에 온다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연락하는 게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저 지금 이대로 쭉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엄마와 이대로 오순도순 지내며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웃으면서 지낼 수 있는 그런 삶을 꿈꿨다. 그리고 지금 그 삶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 삶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그런 날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