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표현은 못했어도

by 삐약이

어릴 적 엄마는 나에게 늘 이런 말을 자주 하셨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네가 장애가 있다고 핑계 대면 안 되지!"

"하기 싫은 일이라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변명할 생각하지 말고 얼른 해!"


그 말들이 그때는 너무 싫었다. 나는 시각장애인이고 하기 힘든 일인데도 엄마는 내가 '한다'고 한 일에서만큼은 봐주는 법이 없으셨다. 비장애인 친구들과 같이 대했고 더 엄하게 대하실 때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못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해도 엄마는

"그러면 그 일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했어야지 왜 해?"

라고 하시며 더 야단을 치셨고 내가 할 때까지 묵묵히 지켜 봐주셨다.

그때는 그게 왜 그런 건지 몰랐다. 그저 엄마가 미웠고 나를 몰라주는 것 같아 울고만 싶었다. 다른 집에서는 엄마들이 친구들이나 언니, 오빠들에게 잘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왜 엄마는 안 그러지?'

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때로는 화까지 치밀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점점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서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됐다.

"엄마는 네가 장애가 있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안 되길 바랐어. 네가 하는 일이 힘들어도 끝까지 이겨내고 이뤄낼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게 하려고 엄하게 한 부분도 있었어."

그러면서 엄마는 그때의 나에게는 상처가 됐을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30대의 나에게 사과하셨다.

처음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며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그리고 그때서야 엄마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힘들어도 그 일에서만큼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르기 위한 엄마만의 방법임을. 그게 때로는 나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엄마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그러자,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던 엄마에 대한 미움과 불만이 스르르 녹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라도 내 자식에게 그렇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나는 엄마와 자주 투닥거리고 말싸움을 한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서로 감정적으로 크게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 다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화해를 하고 다정한 딸과 엄마 사이로 돌아간다.

그게 어렸을 때부터 이어 온 나와 엄마의 관계다. 때로는 미칠 듯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고 나만 보이지만, 훗날 엄마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면서 묵혀 뒀던 오해들이 풀리는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키우며 힘들었을 엄마를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곤 한다. 나 때문에 늘 지치셨던 엄마, 어릴 적 내가 위험할까 봐 따라 다니느라 검은 옷만 입으셨던 엄마, 눈이 안 보여 주변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됐던 나를 지켜주시려 노력했던 엄마…

그 일화 모두가 나에게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일화이다. 엄마는 그렇게 내 방패이자 버팀목이 돼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고 계신다.

지금은 나보다 왜소해지시고 더 약해져 지친 기색이 더 많은 엄마를 볼 때면 내가 더 잘 해야지 하다가도 나의 철 없음에 한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그러나 그 아픔으로 인해 성장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걸 엄마를 통해 배웠고, 알았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 드릴 차례다.

비록 앞은 볼 수 없지만, 엄마를 위해 한 발 나아가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를 지키고 나를 더 단단히 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엄마와 가볍게 투닥거리는 일상을 지냈다. 하지만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투닥거림 역시 없을 거라고 자신한다.

나와 엄마는 어쩌면 영원히 투닥거리고 화해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삶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강하게 키우려 애쓰셨던 엄마를 잊지 못한다.

모진 말 속에 사랑을 품었던 그 마음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이제는 엄마를 지키려 한다.

작은 힘이라도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시각장애인 딸이 되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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