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에서 100m 달리기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운동장에 하얀 분필 가루로 그려진 달리기 라인의 출발선 앞에서 막 달릴 준비를 하며 선생님의 "준비, 시작!"이라는 구호와 호루라기 소리를 기다리던 순간.
선생님이 외치는 "준비."와 "시작!" 사이의 긴장감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준비와 시작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먼저 출발해 버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몸을 움찔거리다가 정작 달려 나가야 할 때를 놓쳐 늦게 출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항상 떨렸다. 나만 '시작'이라는 말을 못 들을까 봐, 다들 뛰어나갈 때 나는 그렇지 못할까 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고작 100m 달리기가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 잘하고 싶었을까. 더구나 나는 운동에는 소질도 없어서 달리기는 항상 꼴찌였고 다른 운동들도 다 못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었나 보다.
어릴 때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했다.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고, 나이가 되면 새로운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항상 축하와 응원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부터가 어려웠고 겨우 찾아내 시작한 것들에 대해서도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했다. 언제나 축하와 응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하다 보면 내가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모든 시작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어느 순간에는 점점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커졌다. 아마도 사는 것이 내 계획대로,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에게 새로운 시작은 줄어갔고 현 상황에 안주하거나, 하던 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하지만 편안하고 안전하게만 살기에는 인생은 길다. 문득 시작의 떨림이 그리워졌고 무언가를 시작해 보고 싶었다. 평생 자신 없었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학창 시절 내내 달리기 꼴찌였던 내가 운동을 시작했다. 작문 시간에 한 줄도 못 쓰고 괴로워하던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전히 시작은 나를 들뜨게 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도 조금씩 내려놓으니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새로운 것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쌓인 좋은 시작의 경험들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앞으로도 나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비록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