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국민학교'라는 곳에 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입학 전에 미리 학교 교실인가 어딘가에 가서 낱말 카드와 숫자를 읽어보는 간단한 테스트를 받았던 것도. 그때 학교라는 공간은 나에게는 너무나 거대하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 같았다.
입학식 날 아침, 나는 가슴 한쪽에 명찰과 손수건을 달고 엄마와 함께 운동장에 서 있다. 넓은 운동장에 함께 1학년이 된 수백 명의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니, 입학식이고 뭐고 부끄럽고 낯설어 몸이 자꾸만 배배 꼬였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나는, 나도 이제 국민학생이 되어 학교에 간다는 기쁨보다는 엄마와 헤어져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고 두려웠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닌 적이 없던 나는 엄마와 떨어져 있던 경험이 거의 전무했고, 워낙에 소극적인 데다가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 탓에 엄마 없이 나 혼자서 학교라는 곳에 다니게 된 것이 싫었다. 결국 입학식 날에도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감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나의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는데, 아침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며 매일같이 울며 학교에 갔다.
엄마는 버스로 한 정거장쯤 되는 거리를 나와 함께 걸어와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교문 앞에서 인사를 하면 나는 차마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엄마, 가지 마.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라며 30분은 울었던 것 같다. 같은 반 친구나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 같이 데리고 들어가야만 겨우 교실로 들어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했을까.
엄마는 어르고 달래기도, 매를 들기도 하면서 날마다 나를 학교에 보내느라 진땀을 빼셨다. 짠한 마음도 하루 이틀이지 나의 울음이 한 학기 동안 지속되자 엄마도 한계에 도달하셨는지 급기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아빠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알렸다. 어느 날 아빠는 무척 크고 단단한 각목을 들고 오셨다. 그날 나는 정말 혼이 났고, 그 후로 거짓말처럼 울지 않고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매 한 번에 고쳐질 버릇 때문에 한 학기 동안 속앓이했던 엄마도 어이가 없으셨을 것이다.
막상 울지 않고 학교에 다녀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름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고 친구들을 사귀는 법도 익혔다. 교실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질서’와 ‘조화’를 배웠고, 타인과 함께하는 사회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국민학교 입학은 나에게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전환점’이었다. 그때의 경험은 이후 새로운 학교, 새로운 회사,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하다 보면 서툰 것도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낯설고 두려웠던 곳도 정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엄마와 그때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우리 딸 어린이집을 보내며 알았다. 아침마다 엄마를 찾는 딸을 두고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져 문 앞에서 한참 아이 울음소리를 듣다가 나도 울며 돌아서야 했던 그때, 우리 엄마도 그랬겠구나 싶어서 몇 배 더 미안했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지만, 내가 그랬듯이 우리 딸도 그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며 또 다른 낯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내가 1학년이었을 그때처럼, 두렵지만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익숙함이 되고 성장의 경험이 되리라는 걸, 내가 아는 사실을 우리 딸도 알게 되리라는 걸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