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쓰고 있다는 기쁨

by 수정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감사하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퐁퐁’이라는 단어가 너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가 읽어온 대부분의 소설 끝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이나 <에필로그>에서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라든가 ‘다시는 이런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고백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퐁퐁 샘솟듯이 소설을 쓴다니 역시 천재적인 작가인 건가. 즐겁게 쓴다는 그의 고백이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면서,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거의 대부분 무슨 말로 글을 열어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한다. 운이 좋게도 시작이 술술 풀려 한참을 써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앞뒤가 꽉 막힌 공간에 들어선 것처럼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순간을 수시로 마주치는데 '샘솟듯이 퐁퐁이라니!'

그러면서 본인은 천재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며, 그저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다고 썼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작가님도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소설가로 살아올 수 있었던 비법을 알려주셨는데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책을 많이 읽을 것, 직접 써볼 것, 사람과 사물을 잘 관찰하며 소재를 모아둘 것, 체력을 기를 것, 규칙적으로 꾸준히 쓸 것 등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새겨본다.

조금 우습게도 나는 글로 먹고사는 전문 작가도 아니면서, 나름의 창의적인 막힘을 수시로 경험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억지로 글을 붙잡고 있지 않는다. 써지는 대로 대충 정리를 해두고, 다른 일을 한다. 반찬을 만들거나, 집안 청소를 하거나, 잠깐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여기저기 걷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읽다 덮은 책을 다시 펼쳐보거나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글이 내 뜻대로 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나의 창의성이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환기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보면 문득, 써야 할 글과 관련된 경험이나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막혀 있어 길이 없는 듯 느껴졌던 벽 사이로 좁은 틈이 보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전혀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자판을 꺼내 들고 나만의 자리에 앉아 쓰던 글을 이어서 쓰거나, 완전히 새롭게 다시 쓰기도 한다.

정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미완성인 채로 그냥 두기도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잠시 덮어둔다. 내가 써 놓은 글들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글이 막혔을 때의 그 시간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기쁘게 여기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잃지 않은 것이야 말로 창의적 정체나 글쓰기의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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