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상인 vs. 아마존
중학교 때 친구들이 신는 교화는 모두 검정색이었지만 나만 흰색을 신고 다녔다.
내 발 사이즈는 305인데 교화는 가장 큰 게 275였기 때문이다.
대전에 살고 있던 나는 서울의 이태원까지 와서 300짜리 테니스화를 사서 신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내발에 맞는 신발은 흰색이 전부 였다.
교무주임 선생님이 선도부에게 잡힐 때를 대비해 내게 허가증을 손글씨로 써 주었는데
거기엔 ‘이 학생은 발이 커 맞는 신발이 없으므로 교화가 아닌 신발을 신는 것을 허락 함’ 이라고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도 발큰 사람이 많이 생길 거라 기대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난 이태원에서도 큰 신만 거래하는 ‘왕발집’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다 뭐라도 있을까 싶어서 일반 신발집을 들어 가면 주인들은 내 발을 보자마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신발집 주인들이 들어 오는 사람의 발부터 본다는 걸 난 그 때 처음 알았다)
이태원에서도 신발의 디자인은 나에겐 평생 논외 였다.
그냥 ‘큰 거 있어요?’하고 묻고, 있으면 그걸 신어야 했다.
세상의 모든 예쁜 신발은 나에겐 문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던 내가 ‘신발천국’을 처음 경험한 건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미국에 갔을 때이다.
305(12)는 그냥 중간 정도 사이드에 불과했다.
(약간 큰 편이지만 모든 디자인이 다 있다!)
기념품 대신 신발을 가방 가득 채우고 돌아 오다가 세관검사에서 보따리 장사로 오인을 받아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후 30년 동안 미국만 가면 신발을 2년치씩 사서 돌아왔다.
그러던 지난 달, 신던 신발이 구멍이 난걸 발견했다.
아뿔사! 당분간 미국 갈일이 없는데...하던 내게 옆의 직원이 무심히 말했다.
아마존이 있잖아요..
그랬다.
난 이미 아마존을 여러번 다른 물품을 사려고 이용해 보지 않았는가!
왜 그생각을 못했지...하며 아마존에서 12사이즈(305)의 스케쳐스 검은 신발을 두드렸다.
검색창에 셀 수도 없는 옵션이 뜬다. 얼른 두 켤레를 시켰다.
그 신발이 엊그제 집에 도착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왕발의 천형(?)을 평생 안고 살았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아아 발이 커서 슬픈 짐승의 서러움은 여기서 끝을 맺는구나...라고 감동하던 순간,
난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다
신발집들은 이제 아마존을 상대하게 됐구나...
그래 소상공인이 뭔가를 디자인하면 사람들은 ‘이건 왜 애플 디자인만 못하냐’고 하고,
동네 커피숍에서 서비스를 하면 ‘당신네 서비스는 왜 스타벅스만 못하냐고 하고’,
물건을 배달하면 ‘마켓컬리는 이러지 않는데..’라고 하는 시대인 줄은 이미 알고 있다.
나 부터 그러고 있었다.
‘은퇴 후 동네 장사’ 같은 건 이미 없어 졌다.
은퇴 후엔 애플과 구글을 상대 해야 하는 시대다.
하긴 100만원 들고 오셔서 사다리필름의 작품은 왜 어벤져스 처럼 안 되냐고 불평하는 고객을 나도 이미 겪고 있으니까.
50년 만에 오크계에서 인간계로 돌아온 구제받은 왕발은
‘구원의 감격’에 눈물 지으면서도 조용히 앉아 자문하고 있다.
나, 지금 떨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