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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리필름 Nov 20. 2019

경영자가 되어 간다는 것

실무에서 경영으로, 경영에서 인생으로

뭔가 피가 안 끓어

'경영자는 경영만 하라' 고 경영의 신이라 회자되는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전문가가 너무 전문적이면,

장인이 너무 장인 정신에 투철하면, 명품을 몇 개 만들 순 있지만 '기업'을 일굴 순 없다는 걸 

수십 년 듣고 보아 알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던 영상 제작의 현장을 뒤로하고 


하루 종일 의사 결정과 업무 지시, 그리고 공부만 반복하는 것은 뭔가 좀 지루하다.

재미는 있지만 '피는 잘 안 돈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중년 전업은 취미생활로 시작되었고, '큰 무리 안 하고 재미있게 가자'의 모드를 1년 반 이상 유지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같이 일하는 젊은이들 (20-30대)의 눈을 보고 

'중노년의 안락한 로망'을 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각성을 했고,

그들의 꿈속으로 나를 밀어 넣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내가 애초에 좋아서 시작했던 '창작 실무'는 멀어지고 '경영'이 시작된 것이다.



                            

'센치멘탈'을 넘어

창작의 동력은 감정이다.

최소한의 의지가 키를 잡고 있는 한 감정은 창조의 무한한 자원이 된다.

그런데 경영의 마인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냉정으로 일관해야 한다.

물론 그 냉정의 이유 자체가 '불합리한 직장 문화'를 뒤집어엎으려는 발칙한 감정에 기인한다고 해도 

문제는 내가 보내는 이성의 시간이 감상의 시간의 열배 이상에 달한다는 현실적 지점이다.


채플린 말마따나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너무 적게 느낀다'는 게 

나의 삶을 척박한 곳으로 묵직하게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Charles Chaplin





                                              

50대 이상의 자리

하는 말마다 너무 정곡이라 밉상인 마윈이 그랬단다 

'중년은 실무에서 떠나 청년들을 밀어 주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이 인간이 내 일을 뺏으려 하는구나'라고 느껴 대단히 불쾌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람의 머리가 나이를 먹으며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보면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기억력이나 사물에 대한 각성은 떨어져도

'나이 든 머리'는 종합력에 뛰어나다.

더 넓게 보고, 더 깊게, 더 멀리 본다.

추진력은 떨어져도 덜 실수하고 더 완성도가 높다.

그래, 일을 환상적으로 해 재끼는(?) 우리 젊은 이사들을 봐도 

뭔가 조금만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건에 관해서는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이 중늙은이의 판단력도 쓸모없진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혼자 입꼬리가 올라가기는 한다.



                                

그 경영만이 아니라, 저 경영도 라면

스마트폰으로 은행 앱 하나 까는 것도 눈이 침침해서 젊은 직원의 도움을 받을 때는,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자존심 접고 동네 청년에게 '편지 좀 읽어 달라'고 하시던 

옛 우리 노인네들이 떠올라 스스로 비참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 '경영'이란 게 책상에 앉아서 도장이나 찍어 대는 노땅 전무님 같은 경영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같은 중년이 볼 때는 사소한 것에조차 당황하고 패닉 하는, 청년들

(겉 보기엔 이 첨단의 시대의 주력들이지만 사실 인생 경험의 짧음에서 오는 개인적 혼란에 매일 노출되고 있는)에게 


조용히 인격적으로 '인생 경영'의 노하우를 전할 수 있는 '경영'이라면,

어딘가 막혀 있던 '보람의 혈액 순환'이 그 막힌 길을 뚫어 내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모든  인간이고 인생으로 귀결된다.
그런 경영이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까 생각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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