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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Mar 15. 2019

나고야의 농부

다른 시선의 역사

조선이라는 나라   


 쓰시마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바닷길은 더없이 평온했다.   

 우려했던 풍랑도 조선수군과의 충돌도 없었다.   

 병사들이 큰 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곧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는 틈에서 ‘다케조’는 사다리와 공성병기, 수레 따위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배가 조선해안에 닿기까지는 이제 반나절도 남지 않았다.   


 다케조는 재주 많은 일꾼이었다. 농부였지만 고향 나고야에서는 알아주는 목공이기도 했다. 그는 조선정벌군이 머무를 군영을 짓고 도로를 정비할 비전투원으로 차출되었다. 조선이라는 낯선 곳에 가야 하는 일이니 당연히 피하고 싶었지만 마을 안에 그보다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없었기에 딱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몇 배 많은 품삯을 약속받았고 전쟁이 끝나면 별도의 포상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걱정을 누그려뜨렸다. 직접 창칼을 들고 전장에 나서는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전쟁은 1년을 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집을 떠나며 다케조는 아내와 가족들이 자신을 멀리 배웅하지 못하도록 했다.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떠나보내는 듯이 요란을 떠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다케조는 나고야에 조선정벌군의 본영을 축성하는 과정에서 가토 기요마사 장군에게 발탁되어 그가 이끄는 제2선봉대에 배치되었다. 비전투원이라고는 하지만 선봉대에 배치되는 것은 위험하게 느껴졌다. 다케조는 대충 해치우고 넘어가도 좋았을 축성공사에서 평소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꼼꼼하게 성실하게 일한 자신을 책망했다.  멀리 조선해안에 눈에 들어오자 배안은 더욱 분주해졌다.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집결시키고 조선은 몽고와 함께 일본을 침략했던 고려의 후예라며 이제 그 복수를 할 기회가 왔다고 소리쳤다. 다케조는 병사들 옆에서 함께 주먹을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일본군의 배가 온 바다를 덮고 있었다. 30만 명의 대군이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칠 것이라고 했다. 두려움과 불안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허약한 조선     


 조선군은 허약했다.   아무리 비전투병이라고 하지만 다케조는 전투를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다. 선봉대가 공격하면 조선의 성들은 단번에 무너졌고 몇 번의 작은 전투 이후에는 아예 저항이랄 것도 없었다.  지휘관과 병사들은 전투다운 전투가 없다며 오히려 투덜거렸다.   며칠 전 조선 최고의 장수라는 신립이 이끄는 군대를 손쉽게 전멸시킨 후로는 더욱 여유가 넘쳐흘렀다. 조선의 왕이 있다는 한성이 코앞이라고 했다. 그곳만 점령하면 이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다케조의 임무는 병사들이 완전히 평정한 땅에 군막을 치고 후속부대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일이었다. 성안에 머물 때는 불타고 부서진 집들을 수리해서 장군들의 숙소와 회의장도 만들었다. 조선인 포로가 많아지면서 따로 포로들을 가두어놓을 장소도 만들어야 했다.  그다지 힘들다고 할 일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낯선 땅에서의 하루하루가 설레기만 했다.사실 다케조에게 전장이 전혀 낯선 곳은 아니었다.   

  철없던 시절에는 동네 건달패들과 함께 칼을 들고 설치며 무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아소와 사가라 두 가문사이의 전투에 참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케조는 그 전투 이후로 무사의 꿈을 접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용감한 척했지만 사실 죽는 것도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사람을 죽이고 목을 잘라 몇 개씩 허리에 달고 다닐 수가 없었다.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을까봐 고향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핑계를 대고 그는 전쟁터를 빠져나왔다.     



 왕이 없는 한성    


 한성은 텅 비어있었다. 비어있을 뿐만 아니라 궁궐이 모조리 불에 타 폐허가 되어있었다.   기대했던 조선왕은 이미 오래 전에 북쪽 멀리 도망쳤다고 했다. 조선의 수도라고 해서 기대가 컸던 한성은 거대한 잿더미였다. 약탈을 할 것도 남아있지 않은 한성을 지키고 있는 것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몇몇 거지들 뿐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다케조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한성만 점령하면 전쟁은 끝이라던 지휘관들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다케조는 친분이 있던 지휘관들을 찾아가 한성을 점령했으니 이제 돌아가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알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의 사사키 부장은 한성을 점령하는 데에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 서둘러 북진하면 조선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라며 불안해하는 다케조를 안심시켰다.   

  후속부대들이 속속 도착해 한성은 일본군으로 가득찼다. 높은 장수들은 매일같이 회의를 거듭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했지만 어디로 어떻게 진격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듯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병사들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휴식을 즐겼지만 다케조는 까닭없이 늦춰지는 일정들이 영 마뜩치 않았다.      



  조선의 반격       


  며칠 동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길이 온통 진흙탕이 되어 딛는 걸음마다 푹푹 빠져들었다. 사람보다도 수레가 문제여서 진창에 빠진 바퀴를 끌어내느라 여기저기 난리였다. 다케조는 본대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수레가 지날 수 있도록 도로를 정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15명 남짓한 목수, 인부들과 함께 본대를 앞질러갔다. 10명의 병사들이 앞장서 다케조 일행을 호위했다. 호위라고는 하지만 조선에 와서 두 달이 넘도록 제대로 된 조선군을 구경해본 적이 없었던 다케조에게는 불필요하게 여겨졌다. 다케조가 본 것이라고는 이미 죽은 자들과 포로가 되어 잡혀온 병사들뿐이었다. 왕도 장수도 도망치기 바쁜 나라, 허약하고 겁많은 병사들뿐인 나라. 전쟁은 이미 끝나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케조 일행은 진창이 깊은 곳들을 찾아 널빤지를 깔아 길을 만들기로 했다. 길 가까운 산기슭에 늘어선 나무들을 베어 쓰기로 했지만 다케조는 도통 쓸 만한 나무들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는 조금씩 산속으로 들어갔다. 며칠씩 비를 맞으며 행군해오느라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어서 다케조는 이 틈에 잠시라도 비를 피하고 싶었다.  

  ‘나고야에도 비가 내리고 있을까?’ 다케조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에 오게 되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이었다.  전쟁만 아니라면 좋았을 텐데. 별 상관없는 조선인이라도 어쨌든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잡아 가두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잡혀온 조선포로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잡혀온 아이들의 부모는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니 더 측은하게 여겨졌다.  


  산 아래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다케조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감상에 젖어 너무 오래 쉬어버렸구나.’  빈손으로 돌아가면 문책을 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뭐라 둘러대야 할지 적당한 변명거리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매질을 당하느니 비를 맞고 고생을 하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기나 할 것을. 설마 이런 일로 목을 치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언젠가 제1선봉대의 고니시 장군이 군영 내에서 싸움을 벌였던 병사 둘을 군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공개처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다케조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가며 산을 뛰어내려갔다.    

  산을 달려 내려온 다케조는 조선땅에 발을 디딘 이후 첫 번째 공포를 마주했다. 스무 명이 넘는 다케조 일행은 전멸해있었다. 화살이 이곳저곳에 무수히 박혀있고 몇몇은 칼에 베여 죽어있었다. 조선군의 것이 틀림없는 화살이었다. 기습이다. 조선군이 또 어딘가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다케조는 더 살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일어나 본대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비로소 이곳이 조선땅이라는 것이, 이곳이 전쟁터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조금만 방심하면 죽음이 다가오는 곳. 뒤늦게 연장통을 두고 온 것을 후회했지만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퇴각     


  조선의 겨울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추웠다. 조선 최북방인 함경도의 겨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고야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혹독한 추위였다. 여름과 가을 내내 이어졌던 거침없는 진격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퇴각하여 다른 부대와 합류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사실은 그조차도 분명치 않았다. 지휘관들은 역정을 내며 부정했지만 본국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보급로가 끊겼다는 소문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조선수군이 뱃길을 가로막아 올수도 갈수도 없는 지경이라고도 했다.    

  조선은 이상한 나라였다. 조선 왕이 명나라로 도망쳤다 하고 북쪽 끝 함경도까지 진격해 왕자들도 포로로 잡았는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열 명, 스무 명씩 작은 규모로 끊임없이 습격해왔다. 초병들을 잡아죽이고 식량창고에 불을 지르고는 빠져나갔다. 커다란 패전은 없었지만 병사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다케조와 함께했던 목공과 인부들도 절반 이상이 죽었다. 다케조는 밤마다 기습을 알리는 북이 울릴까 가슴이 조여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조선의 지명은 낯선 이름들이어서 여러 번 들어도 좀처럼 외워지지 않았다. 몇 달전 지나왔던 어딘가를 되돌아가고 있겠지. 조선 왕을 쫓아 평양으로 향했던 고니시 장군의 제1군도 명나라 군대에 패해 후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1년이면 끝날 전쟁이라고?’

 다케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나고야에서 농사나 짓고 있던 그를 이 전쟁통으로 끌어들인 촌장늙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늙은이는 막사나 짓고 길이나 놓는 일이라며 다케조를 꼬드겼다. 조선군의 기습이 반복되면서 병사와 비전투원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조선군은 무기를 들지 않은 목공이라고 해서 살려두지 않았다. 지휘관들은 목공 따위보다는 병사들 살리기를 우선했다. 이제 각자의 목숨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했다.  



   울산성     


  다케조는 아비규환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명나라와 조선군이 개미떼처럼 성벽을 타올랐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성문으로 총알과 화살이 빗발쳤다. 다케조는 겨냥이랄 것도 없이 목책 뒤에서 정신없이 총을 쏴댔다.   병사들이 수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적군은 결국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났다. 도망치던 조선병사 몇이 등에 총과 활을 맞고 쓰러졌다. 성안에 또 한 번 함성이 울렸다. 조명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 이번까지 네 차례였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공격해온다면 그때도 막아낼 수 있을까? 조명연합군이 수로를 끊어 성안에 물이 없어진지 오래였다. 먹을 것이 없기도 마찬가지였다. 한겨울의 추위 따위는 별 어려움도 아니었다.   다케조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망루와 성문 보수에 나섰다. 이것들을 고친다고 해서 성을 지킬 수 있을까? 차라리 항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장군 가토는 할복을 할지언정 항복 따위를 용납할 인물이 아니었다.   성을 지키던 2만이 넘던 병사들은 이제 3분의 1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나마 태반이 자신처럼 성이나 쌓던 비전투원들이었다. 아마 한 번의 공격이면 이 성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겠지. 곧 당도하리라던 지원군은 소식이 없었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살기 위해 싸운다는 느낌도 없었다. 싸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싸울 뿐이었다. 이러다 성이 무너지면 죽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1년이면 끝난다던 전쟁은 다섯 해인지 여섯 해인지 계속되었다.   조선정벌이라더니 남쪽 해안에 웅크리고서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전쟁이었다. 중간의 짧은 휴전기간에도 다케조는 돌아갈 수 없었다. 힘을 모아 다시 공격을 해야 한다며 여기저기에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1년 안에 귀환할 수 있다던 약속을 지키라고 따질 상대는 없었다. 작업명령을 거부하면 몰매를 맞거나 포로취급을 당했다. 본보기로 목을 치기도 했다. 그저 어서 패전이 분명해지고 총퇴각이 결정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나고야     


 바닷물이 다케조의 뺨을 핥았다. 다케조는 정신을 차리고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부서진 뱃조각들, 그리고 일본군과 조선군의 시신들로 백사장은 어지러웠다. 거꾸로 처박힌 일본 군함 한 척에는 아직도 불길이 남아있었다. 몇몇 병사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이내 다시 드러누웠다. 다케조의 허벅지에도 활 하나가 부러진 채 박혀있다.  간밤의 전투는 전쟁의 마지막을 결정지었다. 조선의 수군대장 이순신은 다케조가 일본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일본군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이겨볼 도리가 없다는 바다의 귀신. 듣던 대로 일본 수군의 배들은 예외없이 불타고 가라앉았다. 용맹하다는 일본군의 어떤 장수도 바다귀신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간밤의 지옥에서 몇이나 살아 일본으로 돌아갔을까.   


  1년이면 끝난다던 전쟁, 아이들에게 바다 건너 조선땅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던 다케조의 꿈은 깨어졌다. 그런 엉터리 같은 말에 속아 이곳까지 오다니. 차라리 간밤에 바다에 빠져죽었다면 편했을 것을. 다케조는 7년 동안이나 끊기지 않고 붙어있는 목숨이 반갑지 않았다.  아직 떠나지 않은 배들이 있지 않을까. 구원하러 오는 배를 기다려볼까. 다케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 이곳을 피해 살길을 찾아야지. 붙어있는 목숨이라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다케조는 생각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가, 7년 동안이나 살육을 저질러 온 조선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끝없이 솟아오르는 회의를 억누르며 다케조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일본군 몇몇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안녕 나고야. 다케조는 먼 바다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가까이에 이름 모를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비틀거리며 그의 뒤를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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