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현 Dec 28. 2023

죄의식

지은 죄가 많다. 18년 학교밖청소년,위기청년 교육,상담,지원하는 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위태롭게 만든 기억들이 있다. 위기에서 구한다고 하다가 더 큰 위기에 빠뜨리고 길을 찾게 한다고 하다가 있던 길도 잃게 만든 일들이 있다. 나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고 몇몇은 누구를 원망해야할지 모른채 살아간다.


할 수 없는 일이면, 못한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잘 모르면 모른다고 했어야 하는데. 나 말고는 달리 도울 사람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뭐라도 해보려고 하다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주기도 했다. 선의가 좋지 못한 결과를 정당화할 수 없다. 좋지 못한 결과는 몰라도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는 변명할 수 없다. 그 빚을 갚고 떳떳해지고 싶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은 갚을 길이 없다. 평생 빚을 안고 살아야 한다.


어제는 자폐 스펙트럼 청년을 일하는학교 프로그램에서 받아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았다. 얘기해보니 이미 6개월 전에 찾아와서 상담까지 했다가 도저히 받기 어렵다고 생각해 돌려보낸 그 청년이었다.


그때도 어떻게든 수용해보려고 고민하고 노력했지만, 그러기 어렵다고 결정했었다. 몇명 안되는 선생님들이 여러 단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여러명의 청년들을 담당하고 있어 과부하인데, 전문성이 부족한 영역의 청년을 받아들이면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밀착케어를 할 사람이 있다면 받아볼 수 있겠지만, 현재를 유지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힘든일이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 다시 연락이 오니 고민스럽다. 그 몇달 동안 얼마나 많은 곳들을 알아보고 돌고 돌아 다시 이곳을 찾았을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다른 곳 찾아보라고 하겠는데,, 그런 곳이 과연 있을까.


참 많은 청년지원사업들이 생겨났고, 여러 종류의 지원센터들이 있지만. 틈과 틈 사이에서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은 오갈곳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상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