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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Apr 14. 2024

J의 마지막 잠수

은둔과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들

기대도, 절망도 금물



이번에는 뭔가 잘될것 같다고 기대를 가지려고 하면... 여지없이 중단과 좌절을 겪고, "잠수타고 사라지는"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왔다.

10년 이상 학교밖청소년과 위기청년들을 인턴십과 취업으로 연결하는 일을 해왔으니까, 그 이행과정에서 청년들이 경험하는 장벽과 두려움의 패턴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좌절에 대한 대응이 잠수타고 은둔하는 형태로 이어질때, 그것이 시간의 간격을 두고 몇 번씩 반복될 때. 내가 느끼는 패배감, 죄절감, 막막함. 무엇보다도 뼈아픈 자책감이 수없이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내가 너무 급했을까,

섬세하지 못했을까,

애정이 부족했을까,

너무 좋지 않은 환경으로 보낸걸까.
어떤 이는 너무 복지혜택에 익숙해지게 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애당초 안될 일을 억지로 되게하려고해봐야 소용없다고도 했다.

어떤 청(소)년은 한두번의 시행착오만을 거쳐 자기 길을 잘 찾아가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10년을 훌쩍 넘는 시간속에서도 은둔과 고립이 여러번 반복되기도 했다.

청년들의 숱한 잠수와 은둔을 겪으면서 나도 제법 무뎌지고 익숙해졌다.

여러차례의 경험을 통해, 이것이 관계의 완절한 단절은 아니라는것, 기다리면 그 다음 시간이 오리라는 것, 몇번의 시행착오를 함께 견디면 언젠가는 반드시 껍질을 깨고 나오는날이 있으리라는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잠수와 은둔을 만나는 것은 힘들다. 마음이 무겁고 급해진다. 다른 일들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1년 전쯤 J는 또다시 짧은 잠수에 들어갔다.

몇차례의 취업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였다. 잠수할까봐 무척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다고 했는데도 막지 못했다.
일을 구하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것이 몇번째인지 샐수도 없었다.

예상치 못한 잠수에,내 마음에 분노가 일었다.

를 향한 것인지 그를 향한것인지 몰랐다. 분노라기보다는 상처를 받았다는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마음을 정리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J는 한동안 짧게 연락이 되었다. "다시는 잠수타지 않을께요"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사라졌다.

일자리를 여러번 구했지만 2주를 넘기기 어려웠고, 반복되는 실패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는듯 했다.


"한달을 버티고 나면, 먼저 연락할께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J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죄송해요. 아직 못 버텼어요.


늦은 밤, 느닷없는 OO이의 전화에 잠이 깼다.

지난 1년간 내가 여러번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J였다.


다시 은둔생활로 들어간걸까.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어쩌지.

나 혼자 온갖 상상과 걱정을 했다. 집으로 찾아가 데려나오고 싶은 마음을 수없이 참고 견디면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에 무슨 사고라도 났는가,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죄송해요." 

"아직 한달을 못버텨서, 연락을 못했어요."


J는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한달을 버티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 그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여러번 도전했지만, 여전히 1주일 2주일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더 늦어지면 안될것 같아 연락을 한거라고도 한다.

내일부터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도 했다.


무척 반갑고 고마웠지만. 티는 내지 못했다.

2주 뒤에 다시 통화하자고 했다.


15년 가까이 만나온 J.

그의 자립이 이렇게 오래 걸릴줄은 몰랐다.


나보다 본인의 마음이, 훨씬더 무겁고 급하겠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J는 그럴 방법이 없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야하고, 어머니가 안계시게 되면 스스로 살아가야한다.


나는 끊임없이, J가 일할 수 있을 방법을 찾는다.

포기라는 말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살아야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청년들을 본다.


무기력할 틈도 없이, 매일매일 일해야 겨우 잠잘곳을 지키고 밥을 챙겨먹을 수 있는 청년들도 보고


재난과 범죄에 엉켜 나아갈 수도 물러설수도 없게된 청년들도 본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압도되서 슬퍼하고 절망한다.


사실. 별일들이 아니다.

돈 몇십 몇백만원이 없어서,

한두달이라도 편히 쉴 집이 없어서,

문제해결을 도와줄, 조금 힘있는 어른 하나가 없어서.

별것 아닌 문제들이 커지고, 심각해지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된다.


일을 하고,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립적인 태도를 가져야.

위험에 빠지지 않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


J는 이제 다시 잠수하지 않고, 실패와 두려움에 맞서며 나갈수 있을까?


간절히 간절히 그러길 바란다.
내 일생의 큰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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