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에 만난 학교밖청소년
20대 대학생 때 야학교사 활동을 하면서 학교밖청소년이나 가정밖청년들을 처음 만났다고. 오랜시간 그렇게 생각해왔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여섯살 아이였을 때 부모님은 집에 어떤 누나를 문득 데려와 앞으로 함께 살거라고했다.
열여덟살이었던 누나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있는 동안 나와 여동생을 돌보며 8년 가까이를 함께 살았다. 누나는 활달하고 정많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이 지인의 부탁을 받고, 지금으로 치자면 가족관계가 없어진 <자립준비청년>이었던 누나를 집으로 데려와 가족으로 함께 살았다는걸.
누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다닐수 없었던 학교밖청소년이었다. 함께 살며 초등 중등 고등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맞춤법이나 기초연산이나 도형개념을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누나는 유난히 정육면체 그리기를 힘들어했다. 중졸검정고시 합격한날 고기집에서 가족회식한 기억도 난다.
누나는 질풍노도의 스무살 안팎의 청소년이었지만, 우리 남매를 무척 예뻐하고 잘 돌봐주었다.
기억나는 사건 사고도 많았다. 실질적인 보호자의 역할을 했던 우리 부모님의 말을 안듣고 검정고시 학원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놀러다니거나 연애문제로 집이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누나가 나를 너무 놀린다고 느껴서 열살짜리 아이였던 내가 누나에게 크게 상처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후에 내가 너무 못된 인간이라는 죄책감이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나가 나를 예뻐하고 보살피려고 했던것은 확실하다.
누나는 10년을 채우기전에 우리집을 떠나 독립했다. 누나가 펑펑울며 부모님과 나와 여동생과 끌어안고는 집을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완연한 청년이 된 누나로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후 가끔씩 누나의 소식을 접했고, 어느 나이 많은 아저씨와 결혼했다고 들었다. 10년에 한번 정도 연락을 주고받고 만났다. 그 사이 시골마을에서 세 자녀를 양육한 어머니가 되었고 이제 노년을 앞두었다.
지난 주말,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누나를 만났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누나는 기억이 너무 희미해져버린 40년전 이야기를 끝도없이 되풀이했다.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면서 말이다. 그만뒀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면 어떠냐는 내 말에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늦은 밤이 되니, 누나와 똑닮은 딸이 누나를 데리러 차를 끌고왔다. 똑똑하고 당차보이고 붙임성도 좋은 딸이었다. 누나는 대화에 잘. 끼지않고 말없이 먼발치서 지켜보기만 하던 나를 힘껏 끌어안아주고는 돌아갔다.
나는, 누나의 인생을 다시 그려보게 되었다.
내가 여섯살때 만났던, 어떤 학교밖청소년에 대해서.
지난 20여년간 이어진 학교밖청년청소년과의 만남들은. 사실 내가 여섯살때부터 시작되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누나를 집에 데려와 10여 년을 함께 살고, 평생을 책임지려했던 우리 부모님은 참 계산이 안서는 분들이었다.
지난밤,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