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oga Sep 24. 2016

와지엔키 쇼팽 콘서트

(Chopin Concerts in Royal Lazienki Park)


와지엔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은

보기에 매우 아름답고,

쉬거나 걷기에 쾌적한

자연환경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

눈과 귀와 몸 구석구석 온갖 세포들이 즐거운,

특별한 야외 클래식 콘서트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여름 바르샤바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혹은

놓쳐서는 안되는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가

와지엔키 공원 쇼팽 콘서트일 것이다.


와지엔키 공원의 남서쪽에는

엄청난 크기의 쇼팽 동상이 있는데,

1959년부터

벌써 60년 가까이

여름이 되면

매주 일요일 낮 12시와 4시에

1시간씩 쇼팽 피아노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6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6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2016년 7월 3일)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공연전 분위기)


와지엔키 공원의 쇼팽 동상 건립은

쇼팽 사후 40년인 1889년에 제안되었는데,


당시 바르샤바를 관할했던

러시아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해 추진하지 못하다가,

나라를 되찾은 후

1926년에 쇼팽 조각 콘테스트가 열렸고,

흔들리는 버드나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쇼팽의 모습을 담은,

현재의 동상이 최종 선정되어

지금 있는 자리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꼿꼿하게 직립한 자세로

어딘지 모를 먼 곳을 응시하는

엄숙하고 딱딱한 표정의

전형적인 동상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난,


이 역동적이고 시적이고 모던한 동상은

자그마치 90년 전에,

거의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했을 때

그 동상을 폭파시켰고,

전쟁이 끝난 후 그 파편을 어렵게 찾아 복원하여

1958년이 되어서야

동상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바르샤바의 중요 기념비들은

이렇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한 수모를 한번 겪은 후에

재탄생하는 "신화"를 공유한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정확하게 동일한,

완벽하고 온전한 "진품"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originality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른 모든 도시의 기념비들이 흔히 공유하지 않는

그런 흔치 않은 "바르샤바 기념비들만의"

수난과 재탄생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선명한 originality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1958년에 우여곡절 끝에

동상이 제자리로 돌아온

그 다음해인 1959년부터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일요일 낮 12시와 4시에

이 범상치 않은 쇼팽 동상 아래에서

쇼팽의 음악만이 연주되는

특별한 쇼팽 콘서트가 개최되고 있다.


쇼팽 동상 밑에,

쇼팽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하얀 천막이 설치되고

그 밑에 그랜드피아노가 놓이고,

피아니스트들이 쇼팽 음악을 연주하게 되는데,


마치 그 모습이

쇼팽이

그 연주자들을

그윽하게 대견하게 흐뭇하게 지켜보며,

진지하게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진이나 그림 속의 쇼팽은

얼굴 선과 표정이 섬세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내성적이어 보이는

샌님 같은데,


이 동상 속의 쇼팽은

얼굴의 선이 굵고

포즈와 태도가 좀 적극적이어서,

무언가

당장이라도

쇼팽을 연주하는 "후배" 피아니스트들에게

호탕한 목소리로

조언이나 칭찬을 건넬 것만 같다.


(2016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6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아마도 이 때는 일본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거나 혹은 드라마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그 쇼팽 동상 앞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듯한

반듯하게 동그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가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관객들은 거기에 빙 둘러 앉거나,

그보다 좀 뒤쪽에 마련된 벤치에 앉거나,

직사광선을 즐겨 맞으며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서,

혹은

중심에서 조금 더 비껴난 곳에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음악을 듣는다.


비가 오면 공연은 취소된다.


공연 중간에 가랑비가 한두방울 떨어진 적은

한두번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의 비가 오면 공연은 그대로 진행된다.


공연 중간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린 적은 없어서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내 기억 속에

와지엔키 쇼팽 콘서트는

항상 화창한 날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예전에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내 기억은 크게 어긋나지 않는 듯하고,


어쩌면 그래서 내가

이 쇼팽콘서트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와지엔키 공원의 쇼팽 콘서트는

무료 공연이지만,

매우 수준 높은 연주자들이

연주를 펼친다.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물론 나는 막귀라서

정교한 차이를 구별해내지는 못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음악이 매우 듣기 좋은데다가

(물론 가끔은 소위 중간에 "삑사리"가 나거나 실수가 잦거나 템포가 너무 쳐지거나 지루하고 단조로운 경우도 있긴 하다.)


이 공연은 항상 사회자의 첫인사가 끝나면

연주자의 화려한 경력과

수많은 수상이력에 대한 낭독이 시작되는데,


사회자가 매우 오랫동안

여러 가지 경력을 읽어내려가는 걸 보면,

그리고 "그 외의 다수"로 여운을 남기며

끝내는 걸 보면,

다들 꽤나 훌륭한 연주자들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에 처음 이 행사를 알았을 때는

너무 좋아서,

일요일마다

12시와 4시에 하는 공연을 모두 들었었다.


그니까

일요일 12시에 가서 1시까지 쇼팽 연주를 듣고,

와지엔키 공원 안에서

점심이나 간식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4시에 또 쇼팽동상 앞에 가서

5시까지 연주를 듣는 식이었다.


그 때 나의 일요일은 와지엔키의 날이었다.


따라서 와지엔키 쇼팽 콘서트를 감상하는 자리도 여기저기 다 앉아 봤다.


연못가의 쇼팽 동상 오른쪽, 왼쪽, 가운데,

쇼팽 동상 가까운 데, 먼 데도 다 앉아보고,


(벤치에서부터 자리가 차기 때문에)

일찍 가서

연주자 뒤에 있는 벤치에도 앉아보고,


연못 양옆의 벤치에도 앉아 보고,


그냥 풀밭 위에도 앉아 보고,


나무그늘에도 앉아 봤는데,


그리고 늦게 갔을 때는 멀찍이 서서도 들어봤는데,


아무리봐도

연못가 자리가 가장 좋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연주 감상할 때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자체가

연못가에 앉아 볼 때 가장 좋다.


그리고

벤치나 풀밭, 나무그늘과 달리,

어떤 다른 야외 공연에서도

그런 자리에 앉아서 들을 수가 없을 것 같은

매우 특별한 관람석,

연못가라는  

관람 장소 자체의 희소성도 무시할 수 없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벤치 앞 꽃밭)
(2008년 6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6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예전엔 오리도 몇 마리 연못에 떠다녔었다. 2016년엔 없었다.)
(2013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3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16년 8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에 처음 갔을 때는

마치 진짜 클래식 공연장인 것처럼

좀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Prosimy nie przechodzić w czasie trwania koncertu.
(콘서트 진행 중엔 지나다니지 마시오.)

라고 쓰인 푯말도 붙어 있었고,


정말 사람들은 공연 중에 잘 안 돌아다녔고,

특히 쇼팽 동상 뒷자리 벤치는

실내 클래식 공연장처럼 조용했었다.


(2008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2008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그런 분위기니

공연 중에 사진을 찍는 소리라도 내면,

어김없이 눈총을 받곤 했었다.


음악을 듣다가 중간에 일어서 나오거나

혹은 연주 중간에 들어가려 할 때도

역시나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진은 공연 시작 전이나 끝난 후에 찍었었고,

중간에 일어나서 나오거나

공연중에 자리를 옮기는 일도

가능하면 삼갔었다.


근데

요새는 좀 덜 진지하고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카메라로 사진도 많이 찍고,

공연중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


가끔씩은 연주 중에

굳이 연주자 바로 앞에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이 구경거리가 되고

다른 관람객의 집중력을 흩트리며

관람에 방해가 되고,

연주자에게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거나


혹은 그 모든 것보다

타인의 현재를 희생하면서까지

결국 자기가 온전하게 빠져있지 못한,

그래서

온전하게 자신의 것도 아닌 현재를 기념하여

꼭 근사하게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남기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사람들은 드믈게 등장하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무대 밖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좀 덜 긴장하며 편안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건

플러스고,


그래서

좀 더 많은 소음과 움직임 때문에

음악 감상에 방해를 받는 건

마이너스다.


2013년과 2016년에는

이제 좀 익숙해져서

그렇게까지 쇼팽 콘서트에 열광하지 않고,

12시 공연이나 4시 공연

둘 중에 하나만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름 일요일에

바르샤바에 있으면 반드시

이 공연을 보고 들으러 간다.


그리고 가능하면 다른 도시로 놀러갈 때,

일요일은 피해 날을 잡곤 했다.


그래서

난 클래식 음악을 그렇게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쇼팽 음악은 익숙하다.


이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는 건

그게 제목이 뭔지는 잘 모르더라도,

'아 이거 쇼팽이다.'라고 구별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연주가 좀 늘어진다',

'이 부분은 좀 빠르다' 하는 것도 느낀다.


비록 이미 "시즌"이 끝나긴 했지만

올해 공연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내가 좀 더 이 콘서트에 익숙해지고,

전반적으로 관객들의 공연관람 태도도

좀 더 느슨해진

2013년과 2016년에는

1분 내외의 공연 동영상도 찍어봤다.


물론

그 하늘과

구름과

연못과

잔디와

바람과

공기와

나무와

햇볕과

자연의 내음과

사람들의 표정과

작은 소음들과

뭐 그런 것을 느끼면서 들어야

진짜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보면서

그 기분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끼기 위해서,


공연 감상 중

1분 정도의 나의 현재를

(다른 사람들의 현재를 침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미래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동영상 (2013년 7월 14일)

(2013년 7월 14일,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3년 7월 21일)

(2013년 7월 21일,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2016년 7월 3일)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2016년 7월 3일)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6년 7월 10일)


이 날은 바람이 좀 불었는데, 연주 소리뿐 아니라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6년 7월 17일)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6년 7월 17일)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6년 7월 31일)


이 동영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연주는 좀 아쉽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6년 8월 7일)


이 날도 역시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린다.

(2016년 7월, Chopin Concert, Royal Lazienki Park)


동영상 (2016년 8월 22일)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샤바 왕의 루트 4: 와지엔키 공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