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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Dec 04. 2018

10 또는 20살, 세상에서 가장 젊은 나라 코소보

빌 클린턴, 마더 테레사, 이브라힘 루고바 그리고 왕좌의 여신


원래 코소보(Kosovo)엔 갈 생각이 없었다.


언어 덕후인 내가 계획한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의 가장 큰 동기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 매거진의 첫 포스트에서도 썼듯이,


내가 언젠가 읽은 논문 저자가 말하길,

예전에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불리던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몬테네그로어는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보다 더 비슷하다던데,


얼마나 비슷한지, 

크로아티아어만 배우고도, 

나머지 세 언어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다른지도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서,

크로아티아어 좀 더 잘하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크로아티아 체류 마지막 달 초에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을 계획한건데, 


코소보엔 

세르보-크로아티아어와 관련한 특이점이 없다.


코소보(Kosovo)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한 게,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알바니아계들이 

자치를 원했기 때문이어서,

코소보의 주된 언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가 아닌 알바니아어인데, 


알바니아어는 어떤 다른 유럽어와도 

연관을 맺지 않은 독립적인 언어이고,

여러 슬라브어를 비교 언어하는 난 

알바니아어엔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여행 루트를 짜기 위해 지도를 보니 

세르비아 밑에 코소보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코소보를 가볼까 싶어, 

"남다른 경험"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


그래서 세르비아에서 몬테네그로에 가는 길에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 들르기로 했다. 


크게 관심이 없는 곳이라 

당일치기나 짧은 1박 2일로 

하루만 둘러볼려고 했는데,


교통편과 숙박 때문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프리슈티나가 매우 매력적인 곳이라, 

적어도 이틀은 머물러야 한다는 

영어 화자의 평가가 보인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여행가기 열흘전쯤 만난 

일본친구 유타로가 마침 그 전주에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다른 유럽 같지 않은 풍경이 독특하고, 

물가도 싸, 음식도 맛있고,

치안도 안전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자기는 코소보가 매우 좋았다고 했다.


내가 언어 문제는 없었냐고 물었더니,

사람들 영어도 잘하고, 

크로아티아어 통용되더라고도 했다.


하지만 난 3일 이상 머물고 싶진 않아서,

첫날 아침 일찍 입성해서, 

두번째날 밤 늦게 떠나는 

긴 1박 2일로 일정을 잡았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코소보 프리슈티나로 들어가는 버스도,

그리고 프리슈티나에서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로 나가는 버스도,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 되길래,


그건 현지에 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숙소만 예약하고 출발했다.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코소보엔 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단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4000년경에 만들어진 

"왕좌의 여신(Goddess on the Throne, Boginja na tronu, Hyjnesha në fron)"이라는 

점토 조각은 

프리슈티나를 상징하는 중요한 고대 유물이다.


이 점토 조각은 코소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거리 곳곳에 "왕좌의 여신"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기원전 몇세기 전 코소보는 고대 유럽 민족인 

일리리야인다르다니인의 주거지가,

기원전 2C경엔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고, 

6C경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 즈음 6-7C경 슬라브인이 대거 유입된다.


그 이후 오랫동안 코소보는 

슬라브인들의 거주지가 된다.


"코소보"라는 단어 자체가 

슬라브어, 즉 세르비아어에서 나왔다.


어원적으로 코소보(Kosovo)는 

세르비아어 Kosovo polje에서 

polje가 빠진 형태라 하는데,


kos[코스]는 "검은 개똥지빠귀"고,

-ovo[오보]는 중성 소유형용사 어미, 

polje[폴리에]는 "들판"이라는 의미다.


즉, "검은 개똥지빠귀 들판"이라는 의미다.


중세시대 코소보의 주인은 계속해서 뒤바뀐다.


9C경엔 발칸반도의 강자 불가리아의 일부가 되고,

11C초 다시 비잔틴의 일부가 되었다가,

13C초 잠깐 다시 불가리아 땅이 되고,

그리고 13C 중반 새롭게 부상한 발칸반도의 강자 

세르비아의 영토가 된다.


13C중반이후 세르비아 네마니치(Nemanjić)왕조는

코소보프리즈렌(Prizren)수도로 삼았고,


1346년 세르비아 정교회가 

총대주교구(Patriarchate)가 될 때 

코소보의 페치(Peć)에서 

세르비아 정교회의 대주교(Archbishop)가 

총대주교(Patriarch)로 승격되었다.


동방정교에서 총대주교구가 되었다는 건 

어떤 다른 나라의 정교회에도 예속되지 않은,  

자립적 교회가 되었다는 의미로,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렇게 코소보는 

세르비아 민족 교회의 시작점이 된다.


이후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는 오스만제국에 대패하고,

결국 수십년 후인 1459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400년간 

세르비아 중남부가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래서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터키 지배 중 코소보에 살던 

알바니아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코소보 서남쪽에 알바니아가 자리잡고 있다)

세르비아인들은 터키 지배를 피해 북부로 이주하며,

코소보에 알바니아인들의 비중이 높아진다.


19세기 중반 터키로부터 독립 후 들어선 

세르비아 왕국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서남쪽의 코소보도 

병합하고 싶어하지만,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이 오스만의 지배를 원하면서,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기 시작한다.


1455년부터 1912년까지 

다른 세르비아 지역보다 길게 

오스만의 지배를 겪은 후,


코소보는 20세기 들어 1912년부터 1941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지배를 받고,

2차세계대전 중엔 이탈리아독일에 점령되었다,

1945년 공산 유고슬라비아 내 자치구가 되었다.


공산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도

코소보 내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 간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1998년 알바니아인들을 중심으로 

코소보의 독립을 선언한 후,

세르비아 정부군과 내전을 하게 된다.


이미 다른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들이 

모두 독립한 마당에, 

세르비아인과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알바니아계 입장에선 

오랜 독립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세르비아 입장에선, 

세르비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코소보가 남의 나라가 되는 걸 

손놓고 보고 있을수만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세르비아군의 

인종/민족 청소(ethnic cleansing)가 

국제적 이슈가 되면서, 

NATO군이 개입하고,

내전은 종식됐다. 


전쟁 발발 10년 후인 2008년 

코소보는 국제적으로 독립국가임을 선포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세르비아와 러시아 등의 몇몇 국가들은 

여전히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코소보는 아래 지도에서와 같이 

북동쪽으로 세르비아,

서북쪽으로 몬테네그로

서남쪽으로 알바니아,

동남쪽으로 마케도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도 출처: http://travelquaz.com/kosovo-map.html)


한국인은 코소보에 갈 때 

비자가 필요 없다.


하지만 코소보의 복잡한 현대사 때문에,

다음 여행지를 어느 나라로 정하는가에 따라, 

이후 여행이 좀 꼬일 수도 있다.


코소보에서 주변 어떤 나라로 출국해도 상관없는데,

세르비아로는 출국할 수 없다.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르비아에게

아직도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일부라서,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에 입국한 사람은 

세르비아에서 세르비아로 이동하는 셈이라,


코소보에 머무른 것 자체가

공식 허가 없이 국경을 통과해

남의 영토에 마음대로 입국한 게 되기 때문에,

범법자가 되어 세르비아 국경에서 쫒겨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지 

아님 그냥 떠도는 썰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세르비아에서 코소보로 가는 건 괜찮지만,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로 가는 건 안된다고,

인터넷에 써 있길래,


주저 없이 세르비아에서 코소보로 가는, 

시계방향의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 루트를 짰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까진 버스로 갈 수 있는데,

약 6-7시간이 소요된다.


기차로는 13시간 30분이나 걸리는데,

베오그라드에서 프리슈티나 가는 길에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피에에 들러서

빙 돌아가기 때문이다.


Wikitravel에는 "베오그라드-프리슈티나" 버스

5:45, 12:00, 13:30, 16:00, 16:30, 21:30, 22:00 

에 있다고 쓰여 있는데,


그리고 2018년 7월에도 그랬던 거 같은데,

 

지금 인터넷에 검색하면, 

하루에 2-4대 정도가 나온다.


계절에 따라 다른건지,

아님 그새 바뀐 건지 모르겠는데,

이 동네는 

인터넷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제일 좋다.


난 2018년 7월초 어느 토요일 

새벽 5시 44분 출발 버스를 탔다. 


버스 티켓은 전전날 미리 예약했는데, 

2,020 디나르(약 2만원)를 지불했다.


여긴 예약하면 좀 할인되는 게 있어서,

승차 바로 전에 사면 이보다 좀 더 비쌀 수도 있다.


버스는 마을버스보다도 작은 미니버스였는데,

버스 안에서 와이파이도 된다.

 

승객은 나 말고 어떤 중년 여자분이 있어서 

총 2명이고, 

예약한 사람이 그렇게 두 명밖에 없었는지, 

5시 45분 출발 예정인데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5시 43분 출발했다.


버스 탈 때도 이미 환했는데, 

버스 안에서 멀리 해가 뜨는 게 보였다.


(2018년 7월, Beograd-Pristina 가는 길, Serbia - Kosovo)

(동영상: Beograd-Pristina 가는 길)

(2018년 7월 새벽, Beograd-Pristina 가는 길)


버스 탄지 2시간 지나 

휴게소에서 15분 휴식했다.


크루셰바츠(Kruševac)라는 세르비아 도시 방면, 

리바르스카 바냐(Ribarska banja) 근처였다.


(2018년 7월, Beograd-Pristina 가는길, Serbia-Kosovo)
(2018년 7월, Beograd-Pristina 가는길, Serbia-Kosovo)
(2018년 7월, Beograd-Pristina 가는길, Serbia-Kosovo)


베오그라드에서 버스 탄 지 약 4시간이 지나 

10시쯤 세르비아 국경에 도착했다.


그래도 명색이 국경인데,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다.


국경에서는 버스 탄 채로 여권을 가져가 검사하고, 

버스 뒤쪽을 열어 간략하게 세관 검사도 했다.


기사 아저씨가 외국인 억양의 세르비아어로 

(아마도 이 버스회사는 코소보 회사였나보다) 

그건 술이라고 설명했고,

미니버스 뒷문이 닫히더니, 

경찰과 기사 아저씨가 뭐라고 뭐라고 얘기하고, 

잠시 후 어떤 세르비아인이 버스에 오른 후,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국경에서 검색을 엄격하게 하지 않는 대신,

그렇게 공짜로 실어다주기도 하는건지, 

아님 아는 사이라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난 이상하게도 

크로아티아에서 세르비아로 입국할 때,

국경에서 여권에 입국도장을 안 찍어줬다.


세르비아 숙소에서 

여권의 입국 도장을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물론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서 혹시나 그게 문제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무 문제 없이 세르비아 국경을 통과했다.


세르비아 국경수비대가 

생각보다 엄격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보통 두 나라 사이에는 

국경수비대가 둘이 있어, 

출국국가와 입국국가 이렇게 두번을 거치곤 하는데,

세르비아 국경을 지나고나서

코소보 국경수비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예상보다 한 시간 이른 

11시쯤 프리스티나에 도착했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 버스터미널 풍경은 이렇다.


계속 언어가 통하는 곳에만 있다가, 

모르는 언어가 써 있는 곳에 오니 

좀 어색하고, 좀 두렵기도 하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버스터미널에서 나가 숙소를 찾아봤는데,

구글지도에서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걸로 나왔던 

그 곳은 내가 예약한 숙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구글에 나온 도로명과 

길에 써 있는 실제 도로명이 다르다


나중에 보니, 

여기만 그런 게 아니다.


여행하면서 여태껏 구글지도가 이런 적이 없는데, 

코소보는 구글지도의 재편이 필요한 것 같다.


숙소명이 아니라 길 이름으로 다시 검색해보니, 

다른 위치가 나오는데,

시내 쪽으로 가야한다.


그 주소를 버스터미널 직원들에게 

영어로 물었는데 모르길래,

시내 가서 물어봐야겠다 생각하고,   

그 다음날 밤에 출발하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행 버스 시간을 물었다.


크로아티아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23시 45분에 출발해서 7-8시쯤 도착하는 

밤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버스터미널에서 물어보니, 

저녁 7시 출발해서 새벽 3시에 도착하는 

버스밖에 없단다.


새벽 3시 도착이라니, 

이렇게 애매한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23시 45분 출발 버스가 있다고 나왔는데, 

그 밤버스는 없는거냐고 다시 물었는데,


내가 아까부터 버스터미널을 왔다갔다하며 

이상한 주소도 물어보고, 

버스도 자꾸 물어보니 짜증이 났는지,

아님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아님 원래 성격이 그런지,

티켓 부스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 직원분이  

옆 information에 가서 물어보라며 화를 버럭 낸다.


어쩔 수 없이 information에 가서 물어보니,

아마 그 "버럭 아저씨"가 가장 영어를 잘 하는지,

그 "버럭 아저씨"에게 가서 물어보란다.


그 아저씨가 멀리서 뭐라고뭐라고 소리지르니,

그제서야 information에 있는 상냥한 여자분이 

대신 알아봐줬는데,

역시 

저녁 7시 출발-새벽 3시 도착 버스밖에 없단다.


그런 이유 없는 "홀대"에 잔뜩 위축된 나는,

어쩜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시내에서 출발하는 다른 버스가 있나보다 싶어,  

티켓을 예매하지 않고 시내의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꾸리꾸리하게 코소보 여행을 시작했는데,

터미널에서 걸어서 15-20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거의 2시간 동안 찾아 헤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영어를 잘 못하거나,

내가 찾는 그 주소를 모르거나, 

잘못 알려줘서 헛걸음치게 한다.


내가 길 물어본 사람들은 

영어뿐 아니라 세르비아어도 대부분 못한다.


유타로는 도대체 어떻게 여기 사람들이 

영어도 잘하고, 

크로아티아어(=세르비아어)도 잘한다고 한걸까?


내가 운이 나빴던 건지, 

아님 그가 운이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겨우겨우 힘들게 숙소를 찾아갔는데,

호텔인 줄 알았던 숙소가 

그냥 간판 없이 

3층짜리 개인주택 개조해서 만든 데였고,

그냥 작은 골목이라 

사람들이 그 도로명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동네는 이렇게 정식등록 안하고 세금 안내면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손님을 모집해 

숙박업을 하는 곳이 많다.


내가 묵게 된 숙소는 

한달 전에 문을 열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집도 깔끔하고, 

위치도 좋고, 

3층집이니 원래 부잣집이라 널찍하고,

가정집을 개조한 거라 편안하고 아늑하고,

인터넷 사이트의 평점도 높았는데, 

숙소 프런트엔 담당자가 아무도 없었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짐 그냥 놓고 메모 남기고,

시내에서 허기를 채운 후,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땐 20대 중후반의 숙소 주인이 자리에 있었는데,

체크인하고 포드고리차행 버스 물어보니, 

23시 45분 출발 밤버스는 더 이상 안 다닌단다.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검색했던 인터넷 자료가 

업데이트가 안 된 옛날 거였던거다.


그럼 그렇게 

옛날엔 다녔는데 지금은 안 다닌다고 

설명해줬음 되었을 것을

그 터미널 "버럭 아저씨"는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짜증을 냈을까?


숙소 주인이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포드고리차 가는 버스는 13유로인데,

월-금 밖에 없다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엔 못 가니,

프리스티나에 하루 더 머물러야 한단다.


가까운 옆 나라 수도를 가는 버스가 

주말엔 없다니,

아 이건 또 무슨 매번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신박하게 짜증나는 정보란 말인가?


그 길로 시내 여행사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일요일 출발 버스가 있긴 한데 

저녁 7시에 출발하는 것밖에 없고,

비용은 15유로란다.


"버럭 아저씨" 때문에 다시 터미널에 가기는 싫고, 

다른 좀 더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도 없으니,

그냥 거기서 7시 출발표를 예매하기로 했는데, 

신용카드로는 결제가 안 된다.


아, 뭔가 여기 시스템이 마음에 안든다.


인터넷 정보가 인터넷 밖 실제 상황과 다르고, 

실제에서도 가는 데마다 정보가 달라 혼란스럽고,


구글지도의 도로명과 실제도로명이 다를 뿐 아니라,

건물에 도로명 주소가 안 적혀 있는 곳도 많고,


숙소 주인은 따뜻한 사람이긴 한데, 

프런트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헛걸음하기 일쑤고,

그것에 대해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포드고리차행 버스도 그렇다. 


저녁 7시에 출발해서 새벽 3시 도착하는 밤차는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거란 말인가?


알고 보니 지도상에서는 가까운,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로 

직접 가는 교통편이 많지 않아, 


프리슈티나에선 몬테네그로의 다른 도시로 가거나, 

마케도니아 스코피에로 갔다가 

거기서 포드고리차 가는 게 훨씬 낫단다.


같은 이웃 나라고 거리는 비슷한데.

도대체 왜 마케도니아 스코피에 가는 버스는 많고,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가는 버스는 거의 없는지

그것도 통 이해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걸로 따지면,

이제 10살, 


세르비아에 독립을 선포한 걸로 따지면,

이제 20살된, 


세상에서 가장 젊은 나라 코소보의 

이 알수 없는 시스템이 


그냥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아님 

원래 타고난 "천성이" 그런건지 미스터리다.


도시 풍경부터 시스템까지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던 

"젊은" 나라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4개의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고 테레사 수녀, 

이브라힘 루고바 코소보 전 대통령,

그리고 점토 조각 "왕좌의 여신"이다. 




1.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프리슈티나 버스터미널에서 시내까지

도보로 15-20분 정도 걸리는데, 

그 거의 중간지점에 

프리슈티나 중심부의 대로 이름이

빌 클린턴 대로(Bill Clinton Boulevard, Bulevardi Bill Klinton)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프리슈티나 가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봐서 알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져 나왔다. 


아마 1998-1999년 코소보 전쟁 때 

(시작할 때는 내전(Civil war)이었으나, 

현재는 독립국가니 그냥 전쟁(War)이다)

미국 대통령이 빌 클린턴이었나보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임기가 1993-2001년이었다.


그 특별한 이름의 대로 중간엔 

젊은 시절의 클린턴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빌 클린턴 동상까지 있다.


그의 주도로 NATO가 코소보 전쟁에 개입했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2009년 프리슈티나 중심가에 

그의 동상을 세웠는데,


동상 개막식에는 빌 클린턴이 직접 참석해서

연설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남의 나라에 세워진 

자기 동상을 마주하고 서 있는 기분은 어떨까?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그 앞엔 이 동상에 대한 설명으로 보이는 

석판도 있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빌 클린턴 대로의 동쪽 끝엔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밥 돌 길(Rruga Robert Doll)도 있다.


난 못 봤는데, 

조지 부시 대로(Bulevardi Xhorxh Bush)도 있단다.


코소보는 매우 친미적인 국가이고,

그게 프리슈티나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투브에 이런 뮤직비디오도 있다.


중간에 나오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보니,

사실 코소보를 도운 건 미국만의 결정이 아니라 

NATO, 즉 미국과 유럽의 결정이었는데,

너무 미국에만 고마워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출처:유튜브)




2.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Nënë Tereza)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선 

테레사 수녀의 이름과 이미지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코소보에서

가톨릭 수녀인 그녀를 자주 만나는 게 

처음엔 좀 의아할 수도 있으나,

알고보면 또 그럴만하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마케도니아 스코피에에서,  

민족적으로는 알바니아인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모두 

테레사 수녀를 자기 나라 사람이라고 한다는데,

코소보에 가서 보니,

테레사 수녀는 코소보 사람이기도 했다.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피에가 

테레사 수녀가 태어난 해인 1910년 당시엔 

오스만제국 치하 코소보의 일부였고, 


또 테레사 수녀는 민족적으로 알바니아인인데,

코소보의 다수가 알바니아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지만,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출신마저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여러 나라에 골고루 나눠준 셈이 되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프리슈티나에는 

마더 테레사 길(Sheshi Nena Tereza)도 있고, 

그 길 위엔 동상도 있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그리고 놀랍게도,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이 도시의 구시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바로 

성 마더 테레사 가톨릭 성당(Cathedral of Saint Mother Teresa in Pristina)이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07년 코소보 정부가 이 성당의 건축을 승인했고,

테레사 수녀 탄생 백주년이 되는 2010년 다음해인

2011년 건설이 시작되어,

2017년 5월에 축성되었다.


코소보에 있는 가톨릭 신자수에 비해 

지나치게 큰 이 성당에 대해 

알바니아 이슬람교도들 사이에 논란이 많았단다.


나는 한번은 성당 문이 열려 있길래  

그냥 들어가보고,

또 한번은 일요일에 미사 보러 들어가봤는데,

성당의 크기가 안팎으로 어마어마하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이 성당의 종탑은 

1유로를 내고 올라가서, 

도시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성당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디테일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한 건, 

스테인드글라스에 마더 테레사가 등장한다는 거다.


그리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알바니아어 미사도 매우 특별했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3. 이브라힘 루고바(Ibrahim Rugova)


이브라힘 루고바(Ibrahim Rugova)의 대형 사진을

중심가에서 보고 한참 생각했다.


밑에 써 있는 글씨를 보니, 

"대통령"인 것 같고,

코소보의 "상징"인 것도 같은데, 


이 사람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일까,

아님

이런 곳에 자신의 대형 사진을 걸어둘 정도로

뻔뻔한 독재자일까?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대형 사진이 선동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대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도 않은 것이

전자인가 보다 혼자 생각했는데,

그게 맞는 것 같다.


2006년 타계한

이브라힘 루고바는 코소보 초대 대통령이다.


1998년 세르비아에 독립 선언을 하고,

비폭력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서방에 호소하여 NATO의 개입을 이끌어낸,

"코보소의 아버지", 

"발칸의 간디"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정치인일뿐 아니라 

역사학자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사랑하는 그의 이미지와 이름이 

도시 곳곳에 있는데,


코소보 박물관에는 루고바 특별전이 있어,

대통령으로서 그의 삶과, 

역사학자로서 그의 연구 내용이 

간략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마더 테레사 대로(Bulevardi Nënë Tereza)에선 

루고바 동상도 만날 수 있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4. 왕좌의 여신(Goddess on the Throne, Boginja na tronu, Hyjnesha në fron)


프리슈티나에서 매우 자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이미지는 앞에서 언급한, 

신석기 시대 빈차 문명(Vinca culture)의 유물인 

6000년 된 왕좌의 여신상이다.


프리슈티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미지지만,

원본은 코소보 박물관(Museum of Kosovo, Muzeu i Kosovës)에 전시중이다.


입장 시간은 아래와 같고,

입장은 무료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이 동네에선 흔하지 않은 

유럽풍 건물인 코소보 박물관은 

1898년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지었고,

1975년까지 유고슬라비아군이 사용했다고 한다.


전시물이 많지 않아, 

30분이면 다 보는 작은 박물관인데,

그래도 낯선 나라 코소보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배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여기서도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2018년 7월, Pristina, Kosovo)

 



코소보는 유로(Euro)를 통화로 사용한다.


그런데 물가가 정말 싸서,


햄버거 1.5유로, 

에스프레소 커피 0.5유로, 

카페오레는 1유로, 

보통 식사는 4-5유로면 배부르게 먹는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거의 안 써본 

1유로 이하짜리 동전도 여기서는 자주 썼다.


그리고 버스터미널의 그 "버럭 아저씨"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친절했다.


동양인 관광객이 많이 없어서,

좀 신기한 듯, 하지만 호의적인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고,


물론 아무 대응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

지나가면서 느끼한 눈빛으로 괜히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프리슈티나 대학 도서관 근처에선 

별로 안 좋은 느낌의 남자가 

계속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좀 불편하고 계속 거슬리긴 했지만,

환한 대낮이었던데다가, 

근처에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코소보의 공식 범죄율이 

특별히 낮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밤 늦게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이 돌아다니고,

남유럽 관광지처럼 소매치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유타로의 말처럼, 

여행자가 체감하는 치안은 

전반적으로 안전한 느낌이었다. 


이슬람 모스크가 많은 도시 풍경도

유럽적인 것에 익숙해진 관광객의 눈에는

이국적이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숙소에서 만난 어떤 프랑스 남자는 

원래 짦게 놀러왔는데, 

프리슈티나가 좋아서 

한달을 머무르게 되었다고 했다.


난 코소보가 크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떠나려는 그의 발목을 붙잡은 그 매력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실 첫날 코소보에서 길 찾고, 

포드고리차 버스 티켓 사느라,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면서,

시스템을 통 이해할 수 없는 

그 나라의 이상한 시스템에 넌덜머리가 나서,


코소보에 괜히 왔다고

나랑 코소보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코소보 대신 마케도니아를 갈 걸 그랬다고, 

그냥 당일치기로 짧게 머물 걸 그랬다고,

후회도 했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보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올해 여행한 곳 중에

가장 특별한 곳이라,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여행한 얘기할 때,

꼭 열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스템이 "똑똑하지" 않은 것만 빼면,

한번은 가볼만한, 

꽤 괜찮은 특별한 여행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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