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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Feb 05. 2021

용의 도시, 류블랴나를 오르다.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Ljubljana) 2 -  더 높이, 더 멀리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지난 포스트에서는

류블랴나 주요 관광지인 구시가 일대를 살펴봤다면,


이번 포스트에는

또 다른 중요한 관광지가 있는 언덕과

현지인들의 쉼터인 자연 공간으로

행동반경을 좀 더 확장해 보겠다.


아래 USE-IT 지도에서 보라색 번호가 그곳들이다.


지도 출처: https://www.use-it.travel/cities/detail/ljubljana/



10. 류블랴나"용”


류블랴나라는 도시의 문장에는

위의 이 그려져 있다.


(출처:Blason ville si Ljubljana (Slovénie).svg - Wikipedia)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Iason)

황금 양털을 훔쳐 배를 타고 도망치면서,

흑해를 지나,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을 지나

류블랴니차 강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아드리아해로 가기 위해 재정비하던 중,

류블랴니차 강 수원 근처 호수에 사는 용을 만나,

그 용과 싸워 물리친다.


그 그리스 신화에서 악당이었던 용은

이후 류블랴나 사람들의 수호신이 되었고,

지금은 이 도시의 상징이자 자랑이 되었다.


그래서 류블랴나 곳곳에서

용을 만날 수 있는데,


지난 포스트에서 살펴본

도살자 다리 동쪽에는

용다리(Dragon Bridge, Zmajski most)도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다리는

1901년 합스부르크 지배 시절에 만들어져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다리(Franz Josef I. Jubiläumsbrücke)"라는 이름이 붙었었는데,


1919년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 후

"용 다리"가 되었다.


류블랴나 최초의 콘크리트 다리로,

"류블랴나 아르누보" 대표 건축으로 꼽힌다.


그러고 보니,

가로등과 다리의 문양이 아르누보 같기도 한데,


사실 이 다리에선 다른 건 안 보이고,

"도시 전체의 가고일" 같이 사납게 포효하는

다리 양 끝의  

무시무시한 용 4마리만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1. 류블랴나 성


류블랴니차 강 남동쪽에 있는 류블랴나 성

용과 더불어

류블랴나 문장에 등장하는,

류블랴나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고,


류블랴나 시내 곳곳에서

언덕 위 성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하지만 거대하거나 아름답거나 특이하거나 한

특별한 외관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류블랴나 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성(Ljubljana Castle, Ljubljanski grad)은 “류블랴나"라는 도시와 마찬가지로

castrum Leibach(라이바흐 성)이라는 

독일식 명칭으로

12세기에 처음 역사에 언급된다.


그 첫 언급 전부터 존재했을 테니,

900년 이상 지금 그 자리에 있었던 거다.


하지만 류블랴나 성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역사는 조금 더 짧아서,


15세기 기존의 성을 거의 완전히 허물고,

두터운 벽과 망루, 성당, 대포를 갖춘

중세식 성으로 리노베이션 했는데,


유럽 남동부에서 세력을 키운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터키군의 침입을 받지 않은 성은

17-18세기엔 무기고가 되었고,


19세기 초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성을 막사와 군 병원으로 활용했다.


19세기 중후반 오스트리아 재점령기엔 감옥으로,


관광지로 개발하기 전,

20세기 초중반까진

빈민 아파트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류블랴나 성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1) 전기 버스

(2) 케이블카

(3) 도보


가 있는데,


나는 도보를 선택했고,


도보로 올라가는 루트도 5개가 있는데,


나는 구 광장(Stari trg, Old sqaure) 쪽에서

걸어 올라갔다.


'나중에 또 올라와야겠다'

생각하고,

실제로 밤에 다시 가기도 한 걸 보면,


걷기 많이 어려운 길도 아니고,

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시가에서 류블랴나 성에 오르려면,


시청 옆 시 광장구 광장 길을 걷다가

헤라클레스 분수(Hercules fountain, Herkulov vodnjak)가 보이는 데서

꺾어져 올라가면 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구시가는

분수가 다들 이렇게 좁고 길고,

장식이 절제된 것 같다.


그래서 오래전에 만들어졌음에도,

현대적인 느낌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특별한 이정표를 따라간 건 아니고,

난 그냥 모르는 사람들을 뒤따라

위쪽으로 난 길로 올라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오래된 예쁜 건물들 사이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누가 봐도 언덕에 오르는 길이 분명한

이런 통로가 나타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제 올라가기 좀 숨이 차다 싶을 쯤에

확 트인 도시 전경이 눈 앞에 나타나,

지금까지의 노고에 보상을 해준다.


그리고 이제 그 풍경을 흘끗흘끗 보며,

그보다 더 멋진 전경을 꿈꾸며,

그 희망을 동력으로 올라간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리고 얼마 후

중세식 성이 눈 앞에 나타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성은 무료입장이면서 또 유료입장이다.


즉,

위 사진에 보는 해자 위의 다리로 연결되는

성 자체의 출입구는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그 안에 있는 시설물 몇 개도 무료입장이다.


하지만 망루와 다른 몇몇 시설물에 접근하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2021년 현재

일반 10유로, 할인 7유로,

왕복 케이블카 포함 티켓은

일반 13유로, 할인 9유로다.


(류블랴나 성 티켓)


류블랴나 성의 개장 시간은 10:00-18:00다.




나는 류블랴나 도착 첫날,

성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한참 후에야

성 건물 안에 있는 매표소를 발견하고,

유료입장 시설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구석구석 열심히 둘러보고 

나름 만족하고 있던 참이라,

  봐야 하나,

 작은 성에     많으려나,

전망 좋은 망루 올라야 하나 싶어,

입장권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내 뒤에 서 있던 독일어 하는 고등학생 몇 명이

입장료 물어보더니,

너무 비싸다면서 그냥 내려가는 걸 보고,

나도 그냥 휩쓸려서 매표소를 나와 버렸다.


아마 나도 무의식적으로

입장권 안 사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것 같다.


어차피 류블랴나에서 3박 4일 있을 테니,

나중에 다시 오면,

그때 유료 시설물도 봐야겠다 했는데,


다른 갈 데가 많아서,

결국 류블랴나 성 안엔 다시 못 갔다.




아무튼 그래서 입장권 없이

내가 류블랴나 성에서 구경할 수 있었던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성의 안뜰


성의 안뜰은 작고 아늑하고 깔끔한데,

벤치가 많지 않고,

내가 간 날은 마침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나마 벤치에 앉아 있기에도 좀 추워서

아늑한 안뜰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1: 류블랴나 성 안뜰)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 감옥(Penitentiary)


19세기 오스트리아인들이 재점령했을 때

류블랴나 성은 감옥으로 사용되었었다.


아래 사진 같은 오래된 실제 감방도 들어갈 수 있고,

멀티미디어로 된 감옥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3) 성 제오르지오 예배당(Castle Chapel of St. George)


성 제오르지오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등,

동방정교에서 널리 사랑받는 성인으로

(러시아에서는 게오르기 성인으로 불린다.)

용과 싸워 물리친 걸로 유명하다.


그런 식으로 류블랴나는

그리스 신화 이아고에 이어

그리스도교에서도    “ 연관되는데,


아무래도 그 용과의 연관성 때문에

이 예배당의 이름을

가톨릭에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는

성 제오르지오로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


예배당은 류블랴나 성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15세기에 성을 

터키 공격 대비 군사시설로 집중 리노베이션 할 때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단다.


아마도 빛이 잘 들게 길고 좁게 만든 창문

그 고딕 양식의 흔적인 것 같다.


예배당 내부는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리모델링되었다는데,


그건 벽에 덧댄 짧은 기둥 그리고

화려한 색의 그림

귀족 가문의 문장을 가리키는 것 같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예배당을 나오면 이런 중세식 성벽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4) 오각탑(Pentagonal tower)


오각탑은 적군을 감시하는 망루였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천장이 매우 높은 건물이었다.


지금은 전시회 공간이고,

내가 갔을 때도 어떤 슬로베니아 작가의 작품

4-5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건물이 높지만 넓지는 않아서

전시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전시 공간이었다.


마침 전시물도 이 공간에 잘 어울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5) 바위 홀(Rock Hall)


바위 은 

1990년대 초반에 발견된 숨은 공간으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창고 및 교도관이나 관리의 거처였다고 한다.


지금은 콘서트를 하는 문화공간이다.


성 출입구 옆에 있는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홀 중간에 박쥐 날개가 있었는데,

이게 여기 왜 있나 했더니,

다들 여기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홀 다른 한쪽은

바위 홀에 대한 설명을 하는 패널들이 달려 있고,

예술품이 전시된 작은 박물관이고,


다른 쪽 끝은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만나는 부분이 이 바위 홀이다.


그 밖에 다른 유료 입장 공간과 액티비티는

류블랴나 성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류블랴나 성 바깥으로 나오니,

산책로와 벤치가 보인다.


류블랴나 성은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의 공간이기도 한 것 같다.


아마도 바로 그래서 

그들이 일상적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성의 바깥 출입구는 무료입장인가 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런 언덕과 성을 휴식공간으로 가진

류블랴나 시민들을 부러워하며,

성 밖을 둘러봤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아마 성 안의 높은 망루에서는 더 잘 보이겠지만,

그냥 이렇게 성 밖만 나와도,

류블랴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나무 때문에 사각지대가 많긴 하다.


이 날은 류블랴나가 초면이라

그냥 '빨강 지붕이 많구나' 정도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낯익은 건물들이 보인다.


여긴 지난 포스트에서 둘러본 류블랴니차 강변 쪽

대성당 플레츠닉 아케이드.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긴 다음 포스트에서 둘러볼

회의 광장(Congress square),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긴 류블랴나 성 올라오는 길이 있는

구시가 남쪽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내가 올라온 길과 다른,

좀 더 걷기 좋게 만들어 놓은 산책로도 있다.


이날 저녁에 다시 올라왔을 때는

이 길로 내려갔었는데,

류블랴나 시장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처음 성에 올랐을 땐 

왔던 길로 되돌아 걸어 내려와서,

구시가 남쪽을 좀 더 둘러봤다.


류블랴나 성에 오르기 위해 꺾어지지 않고,

헤라클레스 분수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제 구시가지는 끝이 나는데,


그 관광객과 현지인의 공간 사이 경계에

성 야고보 성당(Church of St. James, Cerkev sv. Jakoba)이 있다.


17세기에 세워진

초기 바로크 양식의 가톨릭 예수회 성당이다.


바로크 양식 성당답게

성당 내부에 아름다운 장식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밖에서만 봤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성 야고보 성당 옆에는 높은 기둥이 하나 서 있는데,


17세기에

터키의 공격을 면하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며 세운

마리야 기둥(St. Mary's Column, Marijin steber)이다.


오스트리아에도 여러 번 본 이런 기둥은 보통

"역병을 잘 견딘 것에 감사"하다는 이유였는데,

여긴 또 감사 이유가 색다르다.


그리고 내가 본 다른 기둥들보다

더 높고, 덜 장식적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성당과 기둥 뒤에는

관광지와 생활공간을 선으로 가르는 듯한

높고 긴 성벽이 서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세식 성벽인 줄 알았는데,

20세기에 옛날 스타일을 본떠 만든 거란다.


어쩐지 관광지도에 안 나와 있더라.




류블랴나 성이 류블랴나 전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임을 알고서,


야경도 보고 싶어,

첫날 저녁

다시 한번 류블랴나 성에 올라갔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슬비가 내리는 저녁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노출을 많이 한 DSLR을 고정시켜놓고,

우산을 덮고

야경을 찍는 사람들 몇 명이 있을 뿐이었다.


어둠 속 조명발로 치장하는 도시가 아닌,

"그 자체로 그냥 아름다운” 류블랴나는

야경이 멋진 곳은 아니었다.


육안으로도 그러니,

미러리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내 사진도

뭐 그냥 그렇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2. 보통의 류블랴나


USE-IT 류블랴나 지도에서,

류블랴나 현지인들은

휴일에 티볼리 공원으로 간다고 하길래,


부활절 연휴 마지막 날이자,

나의 류블랴나 체류 마지막 날,

나도 현지인처럼 아침 일찍 티볼리 공원으로 갔다.


당시 내가 머물던 곳은

류블랴나 북동쪽이고,

티볼리 공원은 서쪽에 있었는데,


어차피 공원은 산책하러 가는 거니까,

천천히 도시를 산책하며 가보기로 했다.


류블랴나 구시가 쪽은 많이 가봤으니까,

기찻길 너머 구시가 바깥 북쪽

현지인의 공간을 가로질러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갔는데,

1시간 정도 걸렸나 보다.




그런데 이 “보통의 공간”으로의 어드벤처가

별거 아니면서도

기대보다 재밌었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나름 특이한 풍경, 특별한 풍경들도 만났다.


기찻길 건너 멀리

대각선으로 잘라놓은 샌드위치 같은

알록달록한 건물이 뭔지 너무 궁금해서

이날 "서진"하면서

가까이 가봤는데,

Masarykova라고 불리는 여행자용 아파트였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렇게 가까이 가서 보니 특별한 게 아니어서 

좀 실망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타자를 위해 한껏 치장한” 관광지에만 있다가,

"자기를 위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 사는 동네에 가니까,


진짜 류블랴나를 본 것 같아서,

별 거 아닌 거에도 괜히 신났다.


큰 빌딩 말고,

좀 더 낮은 건물들이 있는 주택가도 지났고,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멀리 있는 눈 덮인 높은 산이

배경화면처럼 우뚝 서 있는

"흔한" 찻길도 지났다.


서울에서도 흔한 게 산이지만,


초봄에 만년설이 뽀얗게 덮여 있는 게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그 먼 만년설 산만 보이면

괜히 가던 길을 멈추곤 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보통의 어드벤처”에서 가장 많이 만난 건

기찻길이었다.


지도를 보니,

기찻길만 따라가면 되겠길래,

그걸 이정표 삼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위 사진의 돌 표지석에 적힌


Ne hodi čez progo
je smrtno nevarno
기찻길을 건너지 마시오.
치명적으로 위험합니다.


라고 쓰인 안내문 때문만이 아니라,


기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그 기찻길이

딱 보기에도 안전해 보이진 않아서,

건널 엄두도 못 내고,

건널목이 나올 때까지

그냥 기찻길 북쪽으로 한참을 걸었는데,


멀리 또 관광지도에는 안 나오는 특이한 게

눈에 들어왔다.


찾아보니 류블랴나 모스크(Ljubljana Mosque, Ljubljanska Džamija)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격렬한 찬반 논쟁 끝에

2013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2020년 완성된 슬로베니아 최초의 모스크라는데,


내가 갔던 2018년에는

모스크인 듯 보이는 흰 사각 건물은 

거의 완성되고,

그 옆의 관련 부대시설은 아직 공사 중인 것 같았다.


이 때는 아직 이슬람교도가 많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가보기 전이라,

아직 이슬람 사원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정육면체라는 형태만 보고,

막연히 이슬람 사원같이 안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높은 첩탑(minaret)

우 이슬람 사원 같이 생겼다.


아무튼 류블랴나는 이슬람 사원도

어딘지 모르게 류블랴나적으로 모던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3. 일요일엔 현지인처럼 티볼리 공원


그렇게 두리번두리번 “서진”하며 

류블랴나 북부를 구경하다가,

류블랴나 시민들이 사랑하는

티볼리 공원에 도착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서쪽에 위치한 티볼리 공원(Tivoli City Park, Mestni park Tivoli)

원래 귀족의 성이 한쪽에 자리 잡은

흔한 자연 공간이었는데,


19세기 초반

류블랴나가 프랑스 일리리야 주의 수도일 때,

류블랴나에 체류하던 프랑스 기술자의 아이디어로 

일반인을 위한 공원이 되었고,


20세기 초반

"류블랴나의 가우디" 플레츠닉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리모델링되었다.


이름을 왜 이탈리아식 명칭인

티볼리(Tivoli)라 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19세기 초반 티볼리 성(Tivoli Castle) 옆에

여름 놀이공원이 있었는데,


19세기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유명한 놀이공원

로마 근교 도시 이름을 딴

티볼리(Tivoli)였다고 한다.


아마 당시 제국의 수도 빈 근교의 놀이공원

‘티볼리’가

'호치키스'나 '제록스'처럼 보통명사화 되어서,


류블랴나 외곽 놀이공원도

당연히 "티볼리"라고 불렀나 보다.


이탈리아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렇게 문화적으로 돌고 돌아서,

로마의 근교가 빈의 근교가 되고,

빈의 근교가 류블랴나의 근교가 되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1: 티볼리 공원)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에서 가장 큰 공원답게,

정말 넓은 데다가,

사람도 북적이지 않아,


잔디밭 사이 산책로에 서니 

거칠 것 없는 드넓은 공간에 눈과 가슴이 확 트이고,

진짜 자유가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이 공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뭔가 정신적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2: 티볼리 공원)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초봄이라 나뭇잎이 아직 없으니,

나뭇가지 위 새의 움직임도 아주 잘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3: 티볼리 공원)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렇게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어가면,

조금씩 경사가 급해지면서

로쥬닉 언덕으로 이어지고,


나도 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로쥬닉 언덕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티볼리 공원에

이렇게 자연만 있는 건 아니다.


티볼리 공원 북쪽은 넓고 평평한 자연이지만,


티볼리 공원 남쪽에는

뭔가 구경할만한 인공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나는 티볼리 공원 북쪽에서

로쥬닉 언덕에 올랐다가,

티볼리 공원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로쥬닉 언덕에서 티볼리 공원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스위스 저택(Švicarija, the Swiss house)이라는 목조 건축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스위스나 스위스인과 특별히 관련된 건 없고,

19세기 건설된 이 건축이

그냥 "스위스 저택"처럼 생겼다고

사람들이 그런 이름으로 불렀단다.


처음엔 호텔이었는데,

지금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내가 갔을 때 내부는 비어 있었고,

바깥에는 커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현지인들 사이에선

여기 커피가 맛있는 걸로 유명하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아래에는 티볼리 성(Tivoli Castle, Grad Tivoli)이 있다.


티볼리 성은

17세기에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 저택인데,


13-15세기 이 뒤에 탑이 서 있어서,

오랫동안

"탑 아래"라는 의미의

포드투른(Podturn)이라 불렸단다.


19세기 초 이 근처 놀이동산 때문에

티볼리(Tivoli)라는 이름을 얻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계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가

이 저택을 사서,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 요제프 라데츠키(Joseph Radetzky)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후 류블랴나 시가 이 저택을 구입해서,

지금은 국제 미술 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graphic arts, Mednarodni grafični likovni center)로 사용된다.


(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mglc-lj.si/eng


난 날씨가 좋길래,

좀 더 광합성을 하려고

미술관은 들어가지 않고 공원을 좀 더 걸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티볼리 성을 뒤로하고,

길게 뻗은 산책로를 걸어 나오면,


길 건너

키릴 메토디우스 정교회 성당(Sts. Cyril and Methodius Church, Cerkev sv. Cirila in Metoda)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키릴메토디우스

슬라브어를 위한 문자를 만든 

그리스 성직자와 학자이며,


이 정교회 성당은 1930년대 건설된

세르비아 정교 성당이다.


가톨릭과 달리

동방정교는 나라마다 예배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정교회 성당도 조금씩 다르게 생겼는데,


세르비아 정교 성당은

이렇게 지붕이 좀 묵직하고,

러시아 정교 성당에서 흔히 보는 금빛 장식도 없어

수수하고 투박해 보인다.


류블랴나에서 정교회 신자는 6% 정도라는데,

아마 그중 거의 대부분이

세르비아 정교도일 것이다.


그 이국적인 정교회 성당 쪽으로 걸어가면

티볼리 공원을 벗어나

류블랴나 시내에 들어서게 되지만,


혹시 바쁘지 않다면,

티볼리 공원 서쪽 로쥬닉 언덕도 

오르기를 추천한다.




14. 로쥬닉 언덕


슬로베니아 국기에는 산봉우리가 3개 있는데,

"머리가 셋"이라는 의미의

슬로베니아 최고봉 트리글라브(Triglav) 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https://www.countryflags.com/flag-of-slovenia/


이렇게 국기에도 산봉우리가 등장하는

슬로베니아는

북부와 남동부에 산맥이 있는,

산이 많은 나라고,


산맥과 좀 떨어진 슬로베니아 중심부에 위치한

류블랴나도

대체로 평지지만,

멀리 그리고 가까이에 산등선이 보인다.


그중 하나가

산이라 하기엔 좀 낮고,

언덕이라 하기엔 좀 많이 넓은

티볼리 공원 서쪽 로쥬닉 언덕이다.




나는 비교적 자연이 두드러지는

티볼리 공원 북쪽을 걷다가,

로쥬닉 언덕에 올랐는데,


그건 의식적이거나 계획적인 선택은 아니었고,

그냥 공원의 산책로를 걷다 보니,

그 길이 로쥬닉 언덕으로 이어져서,

자연스럽게 오르게 되었다.


로쥬닉에 오르는 여정은

등산을 좋아하거나 잘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만만하게 도전할 수 있는,

쉬운 산행길이다.


이 언덕은 봉우리가 두 개인데,

시슈카 봉(Šiška Hill, Šišenski hrib)은 429 m,

찬카르 봉(Cankar Peak, Cankarjev vrh)은 394 m란다.


그렇게 언덕은 높지도 않고, 

가파르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작지는 않다.


두 산 봉우리에 오르고,

산 여기저기를 걷다 내려오는데,

2-3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걷기 좋다.




로쥬닉(Rožnik)에서 로쥬(Rož)가 장미라서,

"장미 언덕”이라는 뜻인데,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던 예전에는

같은 의미로

로젠버그(Rosenberg)라고 불렀단다.


옛날에는 나병환자들이 모여 살거나,

일반인이 전염병을 피해 은신하는,


류블랴나 시민들로부터

자의로, 타의로 격리될 수 있는,

도시 바깥의 버려진 뒷산 같은 곳이었는데,


19세기 초반 티볼리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그 옆의 로쥬닉 언덕도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티볼리 공원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기념비가 나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때는 대충

1991년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라고만 이해했는데,

지금 구글 번역해보니,


1991년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한 후,

이에 반대하는 유고슬라비아 군과

10일간 내전 할 때,

로쥬닉에 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의

전자 작전 센터를

슬로베니아 군이 차지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그 기념비가 가리키는 곳으로 올라가니,

방송 송신탑이 나온다.


아, 그래서 전쟁 중에 여길 차지하려 한 거구나.


송신탑이 있는 언덕은

로쥬닉 봉우리 두 개 중 좀 더 높은

시슈카 (Šiška Hill, Šišenski hrib)이다.


시슈카는 류블랴나 내에 있는

서북쪽 지역명이다.

그러니까 서울 같으면 “은평봉”인거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송신탑 옆에는 류블랴나 시내가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풀밭이 있다.


날씨 따뜻할 때

여기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거기에서 다시 내려와 

1991년 슬로베니아 "독립 전쟁"과 관련된 

그 기념비 왼쪽으로 가면,


또 다른 봉우리인

찬카르 봉(Cankar Peak, Cankarjev vrh)이 나타난다.


이 봉우리의 이정표는 분홍색의

성모 방문 성당(Visitation of Mary Church, cerkev Marijinega obiskanja)이다.


16세기 이전부터 여기에 가톨릭 성당이 있었는데,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새로 건설되었단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같은 양식으로 건축된

류블랴나 시청이나 대성당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이다.


외벽의 분홍색은 

프레셰렌 광장의 성모승천성당과 비슷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성당 아래에 있는

프리 마티이 여관(Pri Matiji inn)

19세기 초에 문을 연 200년 가까이 된 곳인데,


찬카르(Ivan Cankar)라는 슬로베니아 작가가

이 여관에 머물렀고,

그래서 이 봉우리가 찬카르 봉이 되었다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관을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이 있는 건 확실히 보이는데,


현지인들이 줄을 서 있길래,

궁금해서 나도 따라 줄을 서서 들어가니,

플란찻(flancat)이라는 거대한 도넛을 판다.


사진에서는 잘 안 나타나는데,

태블릿 PC만큼 크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많은 현지인이 하는 대로,

이 따뜻한 거대 도넛과

달달한 다방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먹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시골 할머니의 음식 같은

좀 단순하고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옛날 맛이었고,

탄수화물과 설탕이 가득한데도,

왠지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거대 도넛이 너무 신기해서 이걸 주문했지만,

맥주나 다른 요리도 맛있단다.


매주 일요일 로쥬닉 언덕에 오를 현지인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채운 것 보니,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렇게 두 개의 봉우리를

너무 쉽게 다 올라버렸지만,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좀 더 서쪽으로 걸어갔다.


초봄이라 나뭇가지는 아직 앙상한데도

자연 속에 있으니,

그리고 멀리 맑은 하늘과 산도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1시간-1시간 반 정도 더 걸은 것 같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뭐 따지고 보면 별 거 없지만,

티볼리 공원과 로쥬닉 언덕을 걷는 게

기대보다 좋았다.


왜 류블랴나 현지인들이

주말이면 티볼리 공원과 로쥬닉 언덕을 가는지,

말로는 제대로 설명 못하겠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그게 뭔지 충분히 느꼈다.


내가 류블랴나에 장기 체류했다면,

아마 나도 주말마다

여길 갔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 말고, 또 마음에 들었던,

그래서 류블랴나에 좀 더 머물게 싶게 만든

공간들이 좀 더 있는데,

그건 류블랴나 마지막 포스트에서 둘러보겠다.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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