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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Feb 06. 2021

크지 않은 나라 슬로베니아의 작지 않은 수도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Ljubljana) 3 - 과거와 현재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15.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슬로베니아는 유럽 중남부의 작은 나라로,

남한의 1/5의 면적에,

총인구 약 200만 명으로,

인구는 서울 인구의 1/5밖에 안 된다.


“피란” 포스트에서도 쓴 것처럼,


크로아티아에 있을 때,

슬로베니아 농담이라고 들은 것도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엔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가

더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를 놀리는 것 같아서

그 농담이 언짢았는데,


알고 보니,

슬로베니아 사람들도

자조적으로 하는 과장된 농담이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영어로 번역된 비슷한 유형의 농담이 있다.


- 류블랴나 도로에서 우산을 펼 때는 마리보르에 있는 누군가의 눈을 찌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Maribor는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슬로베니아 제2도시다]

- 슬로베니아인은 휴대폰이 필요 없다. 영토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크게 소리 지르면, 소통이 가능하다.

- 슬로베니아에선 다리를 일자로 뻗으면 안 된다. 다리가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

- 슬로베니아에선 왜 수영장 다이빙이 금지되었나? 이웃나라 이탈리아인들이 물 튄다고 불평할 수 있으니까.

(출처)




슬로베니아는 아래 지도처럼

남쪽으로 크로아티아,

동쪽으로 헝가리,

북쪽으로 오스트리아,

서쪽으로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https://geology.com/world/slovenia-satellite-image.shtml


근사한 알프스 산맥 풍경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와 맞닿는 쪽엔

율리안 알프스 산맥이,


발칸반도로 이어지는 서남쪽으로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이,


헝가리와 만나는 동남쪽으로는

파노니아 평야,


바다로 유명한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사이에는

43킬로미터,

마라톤 코스 정도의 짧은 해안이 있다.


그리고 이 이웃나라들과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슬로베니아(Slovenia)

슬라브인의 나라”라는 의미고,

슬라브인은

슬라브어를 쓰는 중부 및 동남유럽 사람이지만,


강대국 속에서 슬로베니아가

실질적으로 “슬라브인의 나라”를 형성한 역사는

별로 길지 않다.


이탈리아에 인접한 만큼

고대로마가 확장할 때

그 거대 로마제국의 일부였고,


이후

7세기 전후 동쪽에서 이주한 슬라브인의 왕국

사모 왕국(Samo's Kingdom)이 세워졌는데,

지배자인 사모(Samo)는 프랑크족,

게르만인이었다.


이후 7-9세기 슬라브인의 나라인

카란타니아(Carantania) 공국이 세워졌지만,


9세기 게르만족이 세운

카롤링거 제국(Carolingian Empire)의

일부가 되었다.


10세기엔 현재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일부가 되었고,


14세기부터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Habsburg)의 일부가 되는 등,

슬로베니아 지역은 오랫동안 게르만화되어,


공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독일어였다.


이후 1809-1814년 나폴레옹 프랑스
일리리야  주(Illyrian Provinces)가 되었는데,

이 이름이 남슬라브인의 민족의식을 자극했다.


일리리야 (Illyria)는

기원전 발칸반도 서쪽에 거주했던

고대 민족의 나라로,


지금의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등에 걸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일리리야인 자체

슬라브인이 동유럽쪽에서 이동해 오기 한참 전에

이곳에 살던 민족이라

슬라브인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일리리야 주”이라는 명칭으로

역사상 처음 같은 지역으로 묶였던,

언어가 매우 유사했던 이 지역의 남슬라브인들은

서로 같은 민족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나폴레옹이 후퇴하면서,

슬로베니아는 다시 오스트리아령이 되지만,


1919년 오스트리아가 1차대전 패전국이 되자,

“일리리야 지방”에 속했던 다른 슬라브국가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왕국

즉 “남쪽 슬라브인의 나라”를 세우고,


2차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는데,


이때 “슬로베니아”라는 이름을

지역명으로 처음 사용한다.


아마도 슬라브인이라는 의미로 생성되었을

오래된 민족명

슬로베니아인(Slověninъ)을 바탕으로

지역명 “슬로베니아(Slovenija)”

만들어낸 것 같다.


이후 1991년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여,

“슬로베니아”는 독립국가가 된다.




내가 여러 슬라브어를 하는 언어 덕후인 걸 알고,


슬로베니아 3박 4일 다녀온 나더러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유럽 친구들이

“가서 슬로베니아어 했냐”,

“슬로베니아어는 이해할 수 있었냐”

고 물었는데,


슬로베니아어는 예상보다 더

크로아티아어랑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원래 비슷했던 데다가,

20세기 "유고슬라비아" 때 같은 나라여서,

더 비슷해진 게 아닐까 추정된다.


내가 크로아티아어 배운 지

2개월 좀 지났을 때 갔는데,


당시 크로아티아인이 말하는 문장이

통째로 들리는 상태가 아니었으니,

슬로베니아 문장을 제대로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슬로베니아인들 말하는 단어도 꽤 많이 알아듣고,

글로 쓰여 있는 건 훨씬 많이 이해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기찻길에 이런 표지판이 붙어 있으면,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Ne hodi čez progo
je smrtno nevarno


진하게 표시한 부분은 단번에 이해가 가능하다.

"걸어가지 마라" "치명적이다"라는 의미다.


나중에 모르는 글자를 마저 찾아보면,


"철길을 가로질러 걸어가지 마라.

치명적이게 위험하다"


라는 뜻이니,


크로아티아어를 알면,

중요한 건 다 이해하는 셈이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자주 만나는

trg [트르그]는 광장,

tržnica [트르즈니차]는 시장,

zmaj [즈마이]는 용,

knjižnica [크니쥬니차]는 도서관인 것

등등도 똑같다.


"감사합니다"가 크로아티아어랑 똑같이 Hvala,

"실례합니다”가 Oprostite길래,


그 두 단어는

배운 적도 없는 슬로베니아어로 

가쁜하게 능숙하게 말하고 다녔다.


물론 다른 건 다 영어로 말했고,


류블랴나 뿐 아니라 슬로베니아가

워낙 유럽에서 "사랑 받는" 관광지다 보니,

영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슬로베니아는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

경제 수준이 가장 높다.


러시아, 체코, 폴란드 등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슬라브 국가들 중에서도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는

한국처럼 산업이 발달했고,

수출이 주된 수입원이란다.


유럽여행 중 세탁기나 냉장고에서

Gorenje [고레니에] 상표를 봤는지 모르겠는데,

그 유럽 4대 전자기기 회사가 슬로베니아 회사다.


슬로베니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25,000불이 넘는 선진국인데,


물가는

국민소득 15,000불 정도인 크로아티아보다

저렴했다.


아래 사이트에 보면,

류블랴나의 물가가

서울보다 20% 정도 저렴하다고 나오는데,

나도 비슷하게 느낀 것 같다.



외식비는 서울이랑 비슷한 거 같고,

커피 값은 매우 싸고,

마트 물가는 훨씬 싸다.


슬로베니아는 유로화를 쓰는데,

크로아티아와 달리,

신용카드로도 쉽게 결제할 수 있다.


여러모로 선진국이다.




류블랴나 치안은 매우 좋은 편이다.


한국도 대체로 치안이 좋은 편이고,

크로아티아도 그래서,

크게 경계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밤길도 혼자 걸어 다니곤 했는데,


가로등이 우리처럼 밝지 않아 밤길이 좀 어둡고

주택가는 밤에 인적이 드믈기도 하지만,

안전한 느낌이었고,


사람들 눈빛도 대체로 선했다.


그런 심증이 실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류블랴나 시의 자료에 따르면 

류블랴나는

어떤 단체에서 발표하는 “가장 안전한 도시”로

벌써 3번이나 선정된,

매우 안전한 도시고,



일반인들이 투표한 결과도 비슷하다.


물론 아무리 안전한 도시라 하더라도,

너무 밤늦게 또는 너무 외진 곳에 돌아다니는 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두 포스트에서 류블랴나 구시가 중심부와

구시가 외곽을 둘러봤다면,


류블랴나 마지막 이야기인

이번 포스트에서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류블랴나의 넓은 시간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구시가 안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겠다.


아래 USE-IT 지도에서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이다.

 

지도 출처: https://www.use-it.travel/cities/detail/ljubljana/




16. 고대 로마 유적


기원 전후 고대 로마의 일부였던

류블랴나에는 로마 유적이 남아 있고,


지금도 공사를 하려고 땅을 팔 때마다

로마 시대 유물이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관광객이

그 고대 로마 유적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공간 자체는 많지 않다.


류블랴니차 서쪽 강변에서

고풍스러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이스 대로(Zoisova cesta)를 따라

서쪽으로 세 블록 정도 걸어가면

그 길 남쪽에

고대 로마 유적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기원 후 1-5세기까지 존재했다는

에모나(Emona)의 남쪽 경계인

로마 성벽 (Rimski zid, Roman walls)

매우 크지만

그 안에 전시된 내용은 다소 소박하다.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이 피라미드 문은

"류블랴나의 가우디" 플레츠닉(Plečnik)이

20세기에 세운 것이란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하지만 무려 2000년 전 로마시대 유적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데다가,


로마시대 유적이

너무 성역화 또는 관광지화 되거나 

근엄하게 혼자 서 있지 않고, 

주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실용적인 현재의 공간이기도 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 로마까지 가지 않고서,

고대 로마 유적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7. 좀 덜 오래된 과거: 중세와 근대 류블랴나


고대 로마 유적에서 본 피라미드를 닮은

플레츠닉의 또 다른 작품

조이스 피라미드(Zoisova piramida)가 서 있는

조이스 대로 동북쪽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인

크리제브니스카 길(Križevniška ulica)이 나온다.


나뭇잎이 풍성할 때 찍은 다른 사진들을 보면

매우 따뜻하고 활기찼는데,

내가 초봄에 갔을 때는 그런 생기가 좀 부족했다.


아무튼 12세기,

즉 약 900년 전에 만들어진

류블랴나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 하나이자,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길이라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오래된 길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류블랴나 시립 박물관(Mestni muzej Ljubljana, City Museum of Ljubljana)이 나온다.


귀족의 저택으로 사용된

17세기 바로크 건축을

20세기 초부터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건물의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고대 유물이 출토되었단다.


즉, 이 박물관 자체가

류블랴나의 역사를 담은 전시물인 거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시립 박물관 서쪽 길에 보이는

중세스러운 건물은

십자군 성당(Križevniška cerkev, Church of The Crusade)와 수도원인데,


튜턴 기사 수도원과 성당은

예상대로 중세시대인 13세기에 생겼다고 한다.


그 성당 동쪽 부분은 작은 안뜰처럼 생겼고,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성당 서쪽의 좀 더 넓은 부분은

크리잔케 야외극장(Križanke Outdoor Theatre, Poletno gledališče Križanke)으로,

지금은 여러가지 이벤트를 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문틈으로 본 이 아담한 안뜰 말고,

그 뒤쪽의 더 넓은 장소가 

그 이벤트 공간인 것 같은데,


아슈케르스(Anton Aškerc)라는

슬로베니아 시인의 기념비가 있는 크리잔케 입구는

한참 공사중이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크리잔케 서쪽에는

프랑스혁명 광장(Trg francoske revolucije, French Revolution Square)이 있다.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처럼

중앙에 높이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의 일리리야 주 기념비(Monument to Napoleon’s Illyrian Provinces, Spomenik Napoleonovi Iliriji)인데,


류블랴나를 일리리야 주의 수도로 삼은

나폴레옹과 의인화된 일리리야 지방의

황금 얼굴이 양쪽에 달려 있다.


류블랴나 대표 건축가 플레츠닉의 작품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리고 그 북쪽엔

그레고르치치라는 슬로베니아 시인 동상(Spomenik Simonu Gregorčiču, Monument to Simon Gregorčič)이

고전적인 그리스로마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플레츠닉의 작품이라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고전적인 기둥 기념비 뒤 계단을 올라가면,

붉은 벽돌 건물 옆으로,

유명한 슬로베니아 학자와 작곡가들 동상이 있는

산책로가 나오는데,


그 붉은 건물이 플레츠닉의 대표작

류블랴나 국립대학 도서관(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Narodna in univerzitetna knjižnica)이다.


현지인들은 약자로 NUK라고 부르는

류블랴나 도서관

18세기 마리야 테레사 합스부르크 여제의 법령으로

여러 수도원에 있는 자료들을 모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최초로 설립했는데,


이 지역을 지배하던 공작 가문의 저택이

1895년 지진으로 무너진 자리에

20세기 초반 플레츠닉의 설계로

지금의 도서관 건물을 건설하게 되었다.


건물은 100년도 안 됐지만,

도서관 자체는 비교적 오래전 시작되어서 그런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위 사진이 도서관 서쪽인데,

아랫부분에 높게 흉상이 서 있는 게 보인다.


슬로베니아의 위인들이라 이름도 낯선 데다가,

다른 류블랴나 기념비들처럼

흉상이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서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그 흉상이 있는,

10계단 정도 올라간 높이에 있는

높은 산책로

로마시대와 중세의 벽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그 높은 산책로 남쪽 끝에 있던,

프랑스혁명 광장의 시인 동상 앞에

그리스와 로마를 연상시키는 기둥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아래 사진은 도서관 동쪽이고,

가운데 동상은 구약 성경의 “모세"다.


아마 무지의 바다를 갈라

지식의 길을 만들고 있나 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긴 도서관 정문이다.


정문 손잡이에는 페가수스의 머리가 달려 있는데,

지식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라고 한다.


손잡이의 높이를 보면 문이

사람 키의 몇 배는 되는

엄청난 높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8. 회의 광장


국립 도서관에서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회의 광장(Congress Square, Kongresni trg)이 나타난다.


이름에 congress가 들어 있어서,

처음엔 여기에 "의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congress는 "의회"가 아니라 "회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나폴레옹과의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러시아,

양시칠리아 왕국,

이렇게 프랑스를 제외한

당시 유럽 5대 강대국 관계자가


1821년 당시 오스트리아령이던 류블랴나에 모여

나폴레옹 이후 유럽에 관한 회의를 했는데,


바로 이 곳이

류블랴나 회담(Congress of Ljubljana) 또는 라이바흐 회담(Congress of Leibach)의 장소라,

회의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광장에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과

슬라브인의 새로운 왕국의 시작을 선포했고,


1988년 공산주의 체제 말기에는

1991년 독립의 기폭제가 되었던

최초의 반정부 시위를 여기에서 했고,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

독립 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등이

여기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위 사진 정면에 보이는 노란색 건물은

19세기 신-르네상스 양식의

슬로베니아 필하모니(Slovenian Philharmonic Orchestra, Simfonični orkester Slovenske filharmonije)이고,


사진 오른쪽에 있는 골목에는 류블랴나 대학(University of Ljubljana, Univerza v Ljubljani) 본관이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회의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우르술린 삼위일체 성당(Ursuline Church of the Holy Trinity, Uršulinska cerkev svete Trojice)이다.


18세기 초기 바로크 양식의 성당인데,

지붕의 곡선이 매우 현대적이고,

보통의 유럽 성당과 다른 개성있는 모습이다.


성당 앞에는 17세기 후반에 처음 세워졌다는

삼위일체 기둥(Holy Trinity Column, Steber Sv. Trojice)이 높이 서 있다.


류블랴나는 분수나 기둥이 다들 이렇게 높고,

장식이 높은 곳에 달려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9. 류블랴나 마천루


회의 광장 서쪽,

삼위일체 성당이 있는 길이

슬로베니아 대로(Slovenska cesta)인데,


20세기 초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이 길엔

당시 건설된 예쁜 건축들도 있고,

현대적인 쇼핑센터도 있어,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다.


그중에는 19세기 말에 세워진

중앙우체국(Central Post Office, Pošta Slovenije)처럼,


빈이나 부다페스트를 연상시키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고풍스러운 모던 건축도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중앙우체국 동쪽의 보행자 전용도로

초포바 길(Čopova ulica)로 가면

구시가지로 연결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리고 비록 지지난 포스트에서 둘러본,

류블랴나 아르누보 건축 집결지

미클로시치 길에 비해

관리가 잘 안 된 외관이긴 하지만,



슬로베니아 대로에는

이런 거대한 아르누보 건축들도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20세기 초반 투박한 아르누보 건축들 사이에

"네보티츠닉(Nebotičnik)",

즉, "마천루"라는 의미의 높은 건물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933년 건설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는데,


이젠

류블랴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도 못 되지만,

이 건물 꼭대기 카페에서

류블랴나 전경을 볼 수 있어서,

아직도 매우 특별한 건축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네보티츠닉 북쪽으로 난 출입구의

거대한 문을 통과하면,


마치 비밀결사단의 아지트이기라도 한 듯이,

어두컴컴한 조명검은색 돌벽으로 둘러싸인,


하지만 곡선형 회오리 계단이며,

두상 조각이며,

여러 가지로 특이한 디테일이 많은

로비에 서게 된다.


이제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올라가면 되는데,


컴컴한 조명 때문에 유흥시설 같은 쎈 느낌을,

1층 한 켠에 세워진 자전거들이

순한 맛으로 중화시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1층 카페에는

운 좋게도 빈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어서

난 바깥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멋진 풍경을 보며 그렇게 커피를 다 마시고는

난간을 쭈욱 돌며,

사진을 찍었다.


여긴 류블랴나 동쪽의 구시가.

멀리 프레셰렌 광장의 성모승천성당,

대성당,

류블랴나 성도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1: 류블랴나 동쪽)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기는 슬로베니아 대로 북쪽.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기는 북서쪽 시슈카 지역.

왼쪽엔 로쥬닉 언덕,

오른쪽 멀리는 만년설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2: 류블랴나 북서쪽)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기는 지난 포스트에서 둘러봤던

서쪽의 로쥬닉 언덕.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3: 류블랴나 서쪽)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여기는 슬로베니아 대로 남쪽.

왼쪽으로는

중앙우체국, 의회 광장,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류블랴나 남쪽)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 공화국 광장


Congress square에 없던 Congress는

공화국 광장(Republic Square, Trg republike)에 자리잡고 있다.


회의 광장(Congress square)에서

슬로베니아 대로를 건너

서쪽으로 한 블록 걸어가면 나온다.


나는 회의 광장에서 지하로 나 있는 길을 통해,

공화국 광장까지 갔던 걸로 기억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런 냉전시대 유물 같은

지하 반공호 길이 이끈 공화국 광장도,

냉전이 한참이던

20세기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류블랴나에서 흔치 않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인 건축과 조각들을

볼 수 있는데,


그래도 류블랴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덜 직접적이고, 덜 거칠고, 덜 위압적인 느낌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195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의회인데,

생각보다 좀 아담한 규모에,

입구에 있는 조각이 꽤 예술적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공화국 광장 다른 편엔

혁명 기념비 (Spomenik revolucije, Revolution Monument),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카르델 기념비(Edward Kardel Monumnet, Spomenik Edvardu Kardelju)가 서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에드바르드 카르델은 슬로베니아 출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정치인이라는데,


동상이 그 사람 한 명을 단독으로 우상화하지 않고,

이렇게 여러 사람들 사이에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게 매우 인상적이다.


슬로베니아 공산주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많이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공화국 광장 바깥쪽에도

비슷한 느낌의 기념비가 있었는데,


2차세계대전 중에 활약한

슬로베니아 파르티잔 로즈만(Franc Rozman)을 기리는 거다.


유고슬라비아에 산이 많아서,

2차대전 중 파르티잔, 

즉 빨치산이 맹활약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아무튼 공화국 광장은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고,

"사랑스러운" 류블랴나와 거리가 좀 멀지만,


1991년 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선언한

매우 중요한 장소이고,


류블랴나가 걸어온 역사를 투영하는,

여러 진실한 얼굴 중 하나다.


고대와 중세, 근대와 공산주의 시대를 거쳤으니,

이제 좀 더 현대적 공간으로 넘어가서

류블랴나 여행을 마무리하겠다.




21. 다양한 것이 공존하는 힙한 도시 뒷골목


류블랴나 USE-IT 지도에서

트루바리에바 길(Trubarjeva ulica)

"모든 것들의 중심"이라고 표현하며,


세계 각지의 음식들과

여러 다양한 것들이

불협화음을 이루는 곳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동해서 가봤는데,


부활절 연휴 중이라서

가게들이 많이 문을 닫은 관계로,

그 다양함과 활기를 제대로 경험하진 못했다.


하지만 뭔가 관광지의 표본 같은

"모범생" 프레셰렌 광장 옆에 붙어 있는

대충 차려입은 수더분하고 유머러스한

“날라리" 친구 같은 공간인 건,

닫힌 문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부활절 연휴라 내가 누리지 못했던,

그 "세계 음식 천국" 상업지구가 끝나면,

이런 힙한 그라피티 벽이 등장하고,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런 힙한 성당도 눈 앞에 등장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Parish Church, Župnijska cerkev sv. Petra)

류블랴나의 많은 성당처럼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인데,


나중에 리모델링되면서

개성 있는 디테일이 덧붙여져,

지금의 개성 있는 모습이 되었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약 7블록 정도 계속되어,

꽤나 긴 트루바리에바 길 동쪽 끝쯤에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나저나 그때 류블랴나 곳곳에 붙어있던

그 실종된 이탈리아 청년 사진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그가 결국 무사히 돌아왔는지 새삼 궁금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2. 예술이 공간이 되고, 공간이 예술이 되다.


트루바리에바 길의 중간쯤에서

북쪽으로 3블록쯤 걸어가면

메텔코바 현대 예술 박물관(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Metelkova, Muzej sodobne umetnosti Metelkova), 

약어로 MSUM라 쓰는 힙한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mg-lj.si/


매우 개성 있는 깔끔하고 각진 최신 건축인데,

보이는 것처럼 날카롭거나 차갑지 않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조화로운 공간이었다.


미술관이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기보다

주변으로 분산되어 물러나 있고,

가운데는 여러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광장으로 만들었는데,


그래서 인라인을 타는 청소년들,

유모차를 끌고 온 동네 주민들,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

산책 나온 어르신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그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지인들이 많이 앉아 있는 벤치의

한쪽 구석에 나도 앉아서,

공간을 기분 좋게 나누고 

또 사람들의 일상적 활기도 나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5: 류블랴나 현대 미술 박물관)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미술관 건물과

그 주변 공간도 매우 특이한데,


그 미술관 북쪽에

다른 도시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매우 특별한 예술 공간이 있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위의 표지판은 언뜻 봤을 때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건가 했는데,

다시 보니

"사람을 찍지 말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어떤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흑인 남자가 한 건물에서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니,

건물 외벽의 색채와 문양이 

아프리카적인 것 같기도 하다.


난민이나 이주민 예술가들이

생활하는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옆 이웃과 상관없이

그저 각자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이 비주류 예술들이 

이 공간 안에서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만약에 그곳이 내 예상대로

정말 난민이나 이주민 예술가를 위한 공간이라면,

혹은 그냥 일부만 난민이나 이주민이라 하더라도,


그곳은

새로운 예술을

새롭게 전시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공간 자체가 예술이 되는,


류블랴나라는 공간이

그 겉모습과 구성원에 있어서,


뭔가 다른 차원으로 넓어지고

새로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류블랴나 시청 근처

구 광장(Old square) 길에 있는 상점에서

첫날 우연히

USE-IT 지도 류블랴나 판을 "줍고",


3박 4일 류블랴나 체류 동안

거기 적힌, 현지인이 콕콕 찝어 준 장소를

거의 다 가봤다.


현지인이 만든 USE-IT지도

그게 어느 도시든,

재미있는 설명과 뒷이야기도 덧붙여 있고,

그 장소 선정 자체도 항상 유용하고 알차다.


아무튼 그래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다른 안내지도에선 따로 소개하지 않은,

관광지 중심에 없어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트롤리 공원로쥬닉 산,

그리고 트루바리에바 길을 경험한 것이고,


그것 말고도 전반적으로

류블랴나 구석구석을 가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류블랴나를 넓게 둘러보긴 했지만,

안쪽까지 깊이 들어가 보지 못하고,

겉만 쓰윽 보고 온 것 같아 좀 아쉽다.


보통 나는

현지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데를 여행하는데,

슬로베니아어를 잘 모른 채로 돌아다녀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

생각보다 작지 않은 도시 

류블랴나를 제대로 보기에


"이틀 + a+a"는 좀 짧아서 그런 것 같다.


(a와 a는 블레드와 피란에 다녀온 후

류블랴나에서 보낸 저녁 시간)


대도시는

사실 사람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도 많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대도시가 되기 위해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이

그 도시에 본디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기는 다양성으로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류블랴나가 딱 그런 대도시인 것 같다.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의 

“대”도시 류블랴나는


그렇게 다양한 시대의 

다양하고 개성 있는 모습을 담고 있기에,


절대 작지 않은,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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