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oga Feb 04. 2021

이름처럼 "사랑스런” 오래된 모던 도시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Ljubljana)  1 -  구시가 중심부


1. "사랑받은" 류블랴나


2018년 상반기 6개월 크로아티아에 머무는 도중

3월 말-4월 초 부활절 연휴 동안

슬로베니아에 3박 4일 다녀왔다.


슬로베니아는

한국의 1/5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나라이고,


수도 류블랴나(Ljubljana)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웬만한 슬로베니아 도시는

류블랴나에서 2-3시간이면 간다.


(출처: Map of Slovenia (lonelyplanet.com))


나는 류블랴나에서 3박 4일 머무르면서,

둘째 날은 블레드(Bled) 호수,

셋째 날은 바닷가 피란(Piran)에 다녀왔는데,



두 곳 다 막버스가 오후 늦게 출발해,

류블랴나에 초저녁에 도착해서,


류블랴나는 일수로만 치면 4일간 구경했고,

그래서 여기저기 좀 많이 돌아다녔다.




"류블랴나"에 가기 한참 전,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사랑받은 도시"라는 뜻이리라 짐작했다.


러시아어에서 любить[류비트]가

"사랑하다"라는 의미고,

-an-은 슬라브어의 전형적인

수동 형동사(participle) 어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로아티아어를 배우고 보니,

크로아티아어 ljubiti [류비티]는 “키스하다"여서,


(옛날에는 이게 “사랑하다"란 의미였다는데,

지금은 voljeti [볼리에티]가 “사랑하다”다.)


혹시 슬로베니아어도 그런 거 아닌가 찾아보니,


슬로베니아어에서 "키스하다"는

poljubiti [포류비티]이고,

ljubiti [류비티]는 러시아어처럼 “사랑하다"다.


하지만 동사 ljubiti [류비티]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외모”라는 의미의

ljubija [류비야]에서 파생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어느 경우든 어원적으로는

“사랑받은 곳",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의미인

류블랴나는

그 깜찍한 이름 그대로,

실물도 구석구석 정말 사랑스럽고 예쁘다.




가운데 강이 가로지르고,

산으로 둘러싸인 

온화한 기후의 살기 좋은 도시 류블랴나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그렇게 본디 살기 좋은 곳이어서,

척박한 유럽 동북쪽에서 온 슬라브인들이 

"사랑스러운", "사랑받는"이란 이름을 붙인 것 같다.


1-5세기에는 라틴어 에모나(Emona)로 불리는,

로마제국의 도시였어서,


류블랴나 남서쪽에는

당시 로마시대 유적이 아직 남아있다.


에모나는 로마제국의 동북쪽 경계였다고 하는데,


지도를 보면 지금도 슬로베니아 서쪽 국경 너머에

이탈리아가 있고,

류블랴나 지명에서도 

이탈리아식 이름이 많이 발견되는 것이

그 이후로도 계속

이웃 이탈리아와 교류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로마제국이 쇠락하고, 

이후 7세기 슬라브인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류블랴나는 슬라브인의 도시가 되었지만,


독립된 슬라브 국가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9C 독일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고,

13C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영토의 주인과 관계없이

이 슬라브인의 도시는 꾸준히 발전했고,


12세기에 독일 이름 "라이바흐(Leibach)"로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오랫동안 독일어 사용국가의 일부였던 류블랴나는

19세기까지 외부에

슬로베니아어 “류블랴나”보다는

독일어 “라이바흐”로 알려졌다.


19세기 초 아주 짧게(1809-1813)

슬로베니아 근방 지역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지배 하에 놓이는데,


류블랴나가 이때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일부를 포함하는

프랑스령 일리리아 주(Illyrian Provinces)의

수도가 된다.


1813년 류블랴나는

다시 오스트리아의 보통 도시가 되지만,


100년 후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1차세계대전 패전 후 생성된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공산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 지방의 수도였고,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 후에는

슬로베니아라는 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이렇게 도시로서의 역사는 길지만,

지금의 정체성을 갖게 된 역사는 짧은,

“오래된 새 도시” 류블랴나는

그 외관 또한 우리 눈엔 고전적이면서, 

유럽 기준으로 보면 또 모던하다.




2. 루블랴나 가는 길


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류블랴나를 갔는데,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 바로 북쪽에 있고,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에서도 북쪽이라,


자그레브에서 류블랴나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https://geology.com/world/slovenia-satellite-image.shtml


버스는 하루 8대 정도 있는데,

2시간 20분 걸리고,

비용은 편도 10유로 내외 정도이다.


Get by bus 사이트나

류블랴나 버스터미널 사이트에서 예매할 수 있다.


기차는 하루에 5대 정도 있고,

비용과 소요시간 모두 버스와 비슷하다.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왔는데,


슬로베니아 솅겐 국가이고, 

크로아티아 비 솅겐 국가여서,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한번,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한번,

이렇게 두 번 버스에서 내려 출국, 입국심사를 한다.


3개월 이상 유럽에 머무는 게 아니라면,

한국인에게는

솅겐, 비솅겐 국가가 큰 차이가 없다.


단, 솅겐(Shengen) 조약에 가입한 국가들끼리는

입출국 심사를 하지 않지만,


유럽 비솅겐 국가들의 국경,

그리고 솅겐 국가와 비솅겐 국가의 경계에서는

자국인, 외국인 모두에게 입출국 심사가 있다.


슬로베니아의 다른 이웃나라들은 다 솅겐국가니,

거기서 들어가면 국경에서 멈추지 않겠지만,

크로아티아에서 들어가면 국경에서 멈추게 된다.


사실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국경에서

입국심사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여권을 아주 짧게 보고 돌려주고,


나 같은 외부인은 무언가 조회를 해서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그래도 그냥 그것만 하고 금방 여권을 돌려준다.


그런데 여권 검사할 담당자를 기다리고,

승객이 다 내린 버스를 따로 검사하고 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 가는 아침길의

두 번의 국경 체류 시간은 거의 1시간이었다.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 돌아가는 저녁길의

입출국 심사는 좀 덜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슬로베니아 가는 날,

8시 버스를 타느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 안에서 좀 더 잠을 자려고 했는데,

두 번을 그렇게 오래 찬바람을 쐬니,

아침잠이 싹 달아났다.


(2018년 3-4월, Croatia-Slovenia 국경)
(2018년 3-4월, Croatia-Slovenia 국경)
(2018년 3-4월, Croatia-Slovenia 국경)


그렇게 자그레브 출발 3시간 만에

11시쯤 류블랴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류블랴나 버스터미널

아래 사진처럼 임시 가건물처럼 생겼다.

내부 공간도 별로 넓지 않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동쪽으로 좀 더 걸어가면,

그보다 많이 근사한 

고풍스러운 연노랑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류블랴나 기차역이다.


19세기 중반 건축이라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내부는 더 근사했다.


하지만 3박 4일 간 기차를 이용할 일이 없어서,

그냥 쓰윽 구경만 하고 나왔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기차역 바로 건너편에는

마이스터 장군 동상(General Maister Monument, Spomenik generala Maistra)이 서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흔하게 보는 평범한 동상인데,

동상 옆의 생화가 있는 게 인상 깊어 찾아보니,


루돌프 마이스터 장군은

1차세계대전 말에 오스트리아에 저항해서,

슬로베니아 북부 지역을 사수한

슬로베니아 국민 영웅이라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마이스터 장군 동상으로부터 한 블록 서쪽에 있는,

트리글라브 보험사 건물

(Palača Zavarovalnice Triglav, Palace of Zavarovalnica Triglav)이다.


1930년에 건설된,

거의 백 년이 다 된 건물인데,

“오래됐지만 그래도 현대”인

백 년 전이란 시간답게,

오래된 건물 같으면서도 또 현대적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지붕 밑, 끈으로 연결된 현대적인 아틀라스는

"연대(solidarity)"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들이

“남쪽의 슬라브 나라”인 유고슬라비아로 연대했던,

당시의 시대정신이 건축에 반영된 것 같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시내에는

이렇게 비교적 현대적이면서

디테일이 특이하고 예쁜

아르누보(Art Nouveau),

즉 “새 예술”이란 의미의 20세기 초반 건축이 많다.


류블랴나는 구석구석 구경할 게 많은 도시라,

이 포스트에서는 우선

류블랴나 구시가를 둘러보겠다.


아래 USE-IT 지도에서

보라색과 초록색은 다음 포스트에서 보고,

이번 포스트에서 주황색 번호를 따라갈 것이다.


지도출처: https://www.use-it.travel/cities/detail/ljubljana/




3. 아르누보 건축의 향연


류블랴나는 1895년 큰 지진을 겪었다.


당시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자리에

새로운 건물들이 건축되면서,


당시 유럽에서 가장 핫한 트랜드면서,

당시 류블랴나가 속해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특히 발달했던,

아르누보 또는 빈 분리파 양식 건축이

자연스럽게 류블랴나에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세계대전 후에 재건축되었더라면,

20세기 밋밋한 회색 콘크리트 고층 건물이나

거대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건물이 대신했을 텐데,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보낸 보낸 두 번의 세계대전을

불행 중 다행으로

도시 자체는 비교적 무사히 넘겨,


20세기 초 건축이 많이 남아 있는 류블랴나엔

지금도 예쁜 아르누보 건축들이 많이 보인다.


언뜻 보면 유럽 다른 도시에서 많이 보던

평범한 19세기 건축인 것 같은데,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훑어보면

뭔가 현대적이고 특이한 디테일과 장식이 보인다.


그런데,

19-20세기는 발칸반도에 민족의식이 싹트고,

언어와 종교에 기반한 민족국가

이루려는 움직임이 강한 시기여서 그런지,

아르누보 건축에서도

어떤 “민족적 특수성” 같은 게 감지된다.


건축 문외한인 내가 언뜻 보기에,


류블랴나 중심가에는

독특한 디테일의 아르누보 건축이,

많이 모여 있기도 하지만,


다양하고 선명한 색을 입고 있어서 더 눈에 띄고,


그래서 유리, 타일 같은 독특한 재료

가늘고 정교한 이 특징적인

체코나 오스트리아,

그리고 그 밖에 다른 나라에서 본

아르누보 건축들과 변별되는 것 같다.




이건 지나가다가 예뻐서 찍은,

류블랴나 구시가 끝자락

달마티노바 길에 있는 그냥 평범한 건물인데,


혹시 몰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20세기 초 아르누보 건물 맞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건 그 옆에 있는 데겐지 저택(Deghengijeva hiša, Deghengi House)인데,


다른 디테일은 좀 부족한 듯 보이긴 하지만,

알록달록한 색과

중절모 같은 둥근 원통 지붕이 특징적인 이 건물도  

찾아보니

20세기 초 아르누보 건축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구시가에는 뭐 이런 식으로

뭔가 독특한 디테일과 다양한 색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축들이 많이 보이고,


이런 건축들이 모여

류블랴나라는 도시의

개성 있고 예쁜 “얼굴”

자꾸 걷고 싶은 기분 좋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류블랴나 구시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아르누보 건축의 집결지는

뭐니 뭐니 해도

미클로시치 길(Miklosič Street, Miklošičeva cesta)이다.


끈으로 연대한 아틀라스가 인상적인,

그 붉은 건물 옆으로 난 미클로시치 길을 따라

아르누보 건축을 보며 걷다 보면

(구글 지도로 세어 보니 4블록이다)

구시가 중심 프레셰린 광장까지 이어진다.


그 길 중간에 있는

미클로시치 공원(Miklošičev park) 근처,

창문 위 곡선 장식이 인상적인

노랑과 연두색이 어우러진 모퉁이 건물은

20세기 초 건설된 레갈리 저택(Regallijeva hiša, Regalli House)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작은 원통 지붕 장식이 어딘지 모르게 닮은 건물 

레갈리, 데겐지는 둘다 이탈리아식 이름인데,

이건 그냥 우연의 일치인 것 같다.


장식 많고 화려한 이탈리아 아르누보보다는

오스트리아나 발칸반도에서 더 많이 본 스타일이다.


그 남쪽 밤베르그 저택(Bambergova hiša, Bamberg House)은

건물 자체는 다소 밋밋한데,

지붕 쪽의 장식이 특이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파란 바탕에 노란색 옷을 입은

저 얼굴들이 다 누구일까 너무 궁금했는데,

밤베르크라는 사람은 출판업자였고,

이 건물에 새겨진 얼굴의 주인공들은 

당시 출판업에 종사했던 사람들로 추정된단다.


그러니 그 얼굴들이 더 특별해 보인다.


정치인도 영웅도 아니고, 

작가나 예술가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동료들의 얼굴을

자기 건물에 새겨 넣은 아이디어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참신하고 독창적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남쪽 상업신용조합(Zadružna gospodarska banka, Commercial cooperative bank)은

1920년대 건설된 아르누보 건축인데,

화가였던 건축가의 아내가

이 건물에 

슬로베니아 전통문양색채를 가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아르누보 건축들 중에서

가장 슬로베니아적인 건축이라 평가받는다는데,

보면 볼수록 정말 그런 거 같다.


“슬로베니아적”인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민속적”, “전통적”인 문양임은 분명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남쪽 국민신용은행 (Ljudska posojilnica, People's Loan Bank)은

너무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가미된 장식과

하늘색과 흰색의 조화가 주는 안정감 때문에

한눈에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너무 높아서 정확히는 못 봤는데,

지붕 위에 있는 맨발의 여자들은

지갑과 벌집,

그리고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고,

이 건물의 용도에 맞게

근면과 절약를 상징한다고 한다.


인문학도인 나는

이렇게 숨겨진 “의미” 찾는 게 너무 재미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건물을 지나면 이제 프레셰렌 광장에 도착한다.




4. 만남의 공간, 프레셰렌 광장


류블랴나에는 구시가 안과 구시가 밖 모두

볼 게 많지만,


그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

류블랴나 성 강 건너에 자리 잡은

프레셰렌 광장(Prešeren Square, Prešernov trg)이라 할 수 있다.


아래 사진에서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프레셰렌 광장은 교통의 요지로

여러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


강변과 다리에서 오는 통로까지 합치면

총 7개의 길프레셰렌 광장에서 만난다.


그래서 류블랴나 시민들의 만남의 광장이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여기는 프레셰렌 광장의 동쪽 풍경.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광장 북쪽 한 구석에는

류블랴나 구시가의 모형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류블랴나 구시가 모형 바로 동쪽,

광장 바로 북쪽에서는

성모승천 프란치스코 성당 (Franciscan Church of the Annunciation,  Frančiškanska cerkev Marijinega oznanjenja)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오래전부터 성당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성당이 자리 잡은 건 17세기 중반.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으로

벽면을 반입체적으로 만든

분홍색 건물이 매우 아름답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원래 프레셰렌 광장은 이 성당의 이름을 따

마리야 광장(Marijin trg)이라고 불렸는데,

20세기 초

프레셰렌 동상(Prešeren Monument, Prešernov spomenik)이 세워지고 난 후,

지금은 프레셰렌 광장이라 불린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프란체 프레셰렌(France Prešeren)

19세기에 활동한 낭만주의 시인으로,

당시 주로 독일어로 쓰고 말하던 슬로베니아에서

슬로베니아어로 창작하며,

슬로베니아 문학을 확립한

슬로베니아 민족시인이다.


러시아로 치면 푸시킨(Пушкин),

폴란드로 치면 미츠키에비치(Mickiewicz)인 건데,

모든 유럽 국가에

이런 낭만주의 민족시인이 있는 건 아니다.


프레셰렌의 시는

슬로베니아 국가의 가사라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프레셰렌의 머리 위에 월계수 잎을 들고

앉아 있는 존재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이다.


동상 남쪽에는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던

"사비차의 세례"라는 서사시의 장면이 새겨 있고,

북쪽에는 또 다른 그의 시가 새겨져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슬로베니아인의 영웅인 위대한 시인 프레셰렌도

현실의 사랑에서는 고전을 면하지 못해서,

율리야 프리미츠(Julija Primic)

여인을 흠모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시인 개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쩜 그런 해소되지 않는 만성적 결핍이

그의 예술적 동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프레셰렌 동상은

그녀가 살았던 건물을 응시하고 있고,

그가 응시하는 건물 2층에는

율리야 프리미츠의 목조 부조가 붙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율리야의 집 동쪽에는

아기자기한 기하학적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된,

특이한 지붕의,

아담하고 예쁜 아르누보 건물이 보이는데,

19세기 말에 건축된

하우프트만 저택(Hauptmannova hiša, Hauptmann House)이다.


이 광장에서 가장 높은 건축이어서 그런지,

작은 마천루(Mali nebotičnik)라 불린다고 한다.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에 어울리는

귀여운 별칭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1: 류블랴나 프레셰렌 광장)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5. 하나이자 셋인 다리, 삼중교


프레셰렌 광장 남쪽에는

세 개의 작은 다리가 연결된 돌다리가 있다.


구글 지도에서

삼중교(Triple Bridge, Tromostovje)라 했던데,

매우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삼중교 자리에는 오래전부터

오래된 다리(Stari most),

아래 다리(Spodnji most)라 불리는

목조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프레셰렌 광장의 성당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다리(Frančiškanski most)라는

석조 다리가 그 목조 다리를 대신했는데,


1930년대 그 다리 위에 트램이 지나다니게 되면서,

양옆에 보행자용 다리를 보조로 달게 되었다.


이제 트램은 더 이상 이 다리 위에 다니지 않지만,

양 옆의 보행자용 다리는 그대로 남아서,

다리 3개가 나란히 있는 삼중교가 된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가우디"라 불리는 건축가

플레츠닉(Plečnik)의 작품인데,

가우디만큼 개성 강한 작품들은 아니지만,

여기 말고도 류블랴나 곳곳,

‘와, 이거 멋있는데~’ 싶은 곳에 플레츠닉이 있다.


(앞으로 그의 이름을 자주 만나게  거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6. 옛 류블라나의 중심, 시 광장


삼중교 남쪽은

시 광장(Town Square, Mestni trg)으로 연결된다.


멀지 않은 곳에 대성당(cathedral)이 있는데,

류블랴나 초기에는

그 대성당과 이 근처를 합쳐서

Mesto [메스토], 

"도시", "시내"라고 불렀단다.


그게 확장되어 지금의 류블랴나가 된 거고,

여기가 류블랴나의

가장 오래된 중심 중에 중심인 것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시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정표는

로바 분수(Robba Fountain, Robbov vodnjak)로,


북쪽 삼중교에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길,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쪽 대성당에서 들어오는 길,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서쪽 시청에서 들어오는 길이 만나는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로바(Robba)는 분수를 만든 이탈리아 건축가인데,

로마의 분수를 본떠서

18세기 후반 이 분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분수 아래 세 조각은

이 지방의 세 개의 강,

류블랴니차(Ljubljanica), 사바(Sava), 크르카(Krka)를 형상화한 것이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로바 분수 서남쪽엔 류블랴나 시청(Ljubljana Town Hall, Ljubljanska mestna hiša)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류블랴나 시청은 15세기에 처음 건설되었는데,

16세기 지진으로 무너져서,

(이 동네가 생각보다 지진이 많이 나나보다)


18세기 초 리모델링을 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양식의 영향으로

시계탑, 입구의 로지아, 창문의 발코니 같은 것들이 덧붙여졌다고 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2: 류블랴나 시 광장)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시청 앞이 넓긴 하지만,

그래도 “광장”보다는 “길”인 것 같은데,


시청 서남쪽으로 한참을

시 광장(Mestni trg, Town square)이라는 

넓은 길이 계속되다가,

구 광장(Stary trg, Old sguare)이라는 

좀 더 좁은 길로 연결된다.


이 곳에 예전엔 시장이 섰다는데,


아마 크로아티아어와 마찬가지로,

예전엔 슬로베니아어 trg [트르그]도 

"광장" 말고 "시장"이란 의미도 있었나 보다.


아무튼 그래서  

이 오래전 두 "시장"이 연결된 이 길은

지금도 상업시설이 가득해서,

먹을 데, 마실 데, 쇼핑할 데가 많고,


홍대 앞 연남동 같은 느낌의

작고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가게도 많고,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파스텔 톤의 고풍스러운 

키 작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어서

그냥 구경하면서 걷기도 좋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7. 류블랴나 시장


류블랴니차 강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인

플레츠닉 아케이드(Plečnikove tržnice, Plečnik's arcades)는

아래 사진 가운데 옆으로 길게 뻗은 건물로,


류블랴니차(Ljubljanica) 강의 남쪽,

삼중교와 도살자 다리 사이에 하나,

도살자 다리와 용다리 사이에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줄지어 서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요제 플레츠닉(Jože Plečnik)은 

류블랴나 출신

아르누보 건축가인데,


해외에서 활동하다 돌아와, 

20세기 초중반 류블랴나 곳곳의 건축에 참여해서,

그의 작품이

류블랴나 시내 곳곳에 있고,

(앞서 본 “삼중교”도 그의 작품이다.)


플레츠닉 아케이드는 그가

1940년대 초반 2차세계대전 중에

류블랴니차 강변에 만든

2층짜리 실내 마켓이다.


이나 광장은 유럽 도시에서 흔한 거지만,

이렇게 강을 따라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실내 마켓은

다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는 가장 류블랴나적인 풍경이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플레츠닉 아케이드 가운데 폐쇄된 건물 안에는 

실내 상점과 식당이 있고,

오픈된 로지아에서는 수공예품을 판매한다.


여기는 수공예품도 예쁘고,

식당도 저렴하고 맛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아 보였다.


아래 사진의 리바르니차(Ribarnica)

수산시장으로,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생선 가게들이 나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리고 그 아케이드 남쪽 광장에는

완전히 오픈된 시장이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부활절 연휴라 그런지,

여기는 장이 안 섰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리고 그 광장 뒤에는 류블랴나 대성당(Ljubljana Cathedral, katedrala Ljubljana)이 있다.


다른 많은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류블라냐는 이 대성당을 중심으로 확장했기 때문에,

대성당 자체는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지만,

지금 대성당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역시 18세기 바로크 양식인 시청과 마찬가지로

지붕과 탑에 초록색 돔과 지붕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대성당 서쪽의 통로를 지나면,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대성당의 그 서쪽 문은

슬로베니아 문(Slovenska vrata, Slovene Door)이라 불리는데,


746년 슬로베니아인의

그리스도교 세례를 형상화하여

20세기 말에 설치한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보통 이 문은 닫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부활절 전야 미사를 볼 때

대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부활 전야 미사 치고는

신자들이 너무 없고 너무 고요했다.


20년 전 조사한 자료에 

류블랴나 가톨릭 인구가 40%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이 줄었나 보다.


성당 남쪽에는 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거기에도 또 문이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문은 류블랴나 문(Ljubljana Door, Ljubljanska vrata)으로

20세기 슬로베니아 주교들을 형상화한

현대적인 반입체 부조가 있다.


류블랴나에서는 이렇게 대성당에서도

오래된 것 현대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대성당 건물 근처는

의 조화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플레츠닉 아케이드를 비롯해서

대성당 건물 북쪽과 동쪽은

류블랴나에서 가장 큰 노천시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대성당 북쪽과

신학교 도서관(Bogoslovno semenišče) 사이

작은 골목에도 청과물 가판이 있고,

그걸 따라가면 

동쪽 광장의 청과물 시장으로 이어진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첫날엔 연휴 전날 오후라서 문을 많이 닫았지만,


마지막날 갔을 땐,

부활절 연휴 마지막 날인데도,

물건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으로 북적북적한

활기찬 재래 시장이었다.


러시아,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에 있을 때

난 한국에서처럼

보통 마트에서 모든 식료품을 구매했는데,


크로아티아에선

크로아티아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과일이나 채소는 재래시장에서 샀었다.


자그레브에도 구석구석 대형마트가 있고,

가공 식료품은 거기에서 샀지만,


청과물은 재래시장이 싸고,

물건도 훨씬 신선할 뿐 아니라,

큰 재래시장이 도시 중앙에 있어,

접근이 매우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에 같은 나라였던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도

현지인은

이 도시 중심의 시장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있는 현재적 시장이라

시장엔 활기와 생명력이 가득했다.


한국처럼 시장이 건물 안에 고정된 게 아니라,

매일매일

때가 되면 넓은 광장에 가판대가 들어섰다가,

때가 되면 철수되어 빈 광장이 되는

시장이라는 거 빼고는

특이한 게 별로 없는 그냥 떠들썩한 시장인데,


잘 둘러보니,

이국적인 우유 자판기(Mlekomat)도 보이고,


(체코랑 발칸반도에서는

가끔씩 이렇게 컵이나 병에 

생우유가 나오는 우유 자판기를 볼 수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19세기 초 슬로베니아 계몽주의 운동에 선봉에 섰던

가톨릭 사제이자 최초의 슬로베니아 시인 

보드닉의 동상(Vodnik Monument, Spomenik Valentina Vodnika)도 보인다.


희한한 건,

동상이 광장 가운데가 아니라,

광장을 등지고 건물을 향해 서 있다는 거다.


광장 쪽에서 보이는 그의 기념비 뒤엔 그의 시

"나의 기념비(Moj spomenik)"의 일부가 있는데,

아마도 이것 때문에 이렇게 뒤돌아 있나 보다.


Ne hčere ne sina
Po meni ne bo.
Dovolj je spomina,
Me pesmi pojó.

딸도 아들도,
내 뒤엔 아무도 없다.
(그래도) 기억은 충분하고,
시는 나를 노래한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8. 도살자 다리


그 시장에서 강 쪽으로 걸어 나오면,

류블랴나 곳곳에서 만나는,

크로키를 3차원화한 듯,

불분명한 라인이 흘러내리는 독특한 실루엣의

아담과 이브 동상이 나타나고,


그 뒤에 도살자 다리(Butchers' Bridge, Mesarski most)가 보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어

나도 구글지도를 그대로 따랐지만,

뭔가 차갑고 냉혹한 느낌의 “도살자”는

사실 그냥 “고기 파는 사람”, “정육업자”란 뜻이다.


여기엔 원래 고기 파는 가판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리에 그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원래 플레츠닉이 이 아케이드를 구상할 때,

두 아케이드 사이에 다리를 놓고,

이 다리 위에도 지붕을 씌울 예정이었는데,


2차세계대전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다리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2010년에

지금과 같은 오픈된 형태로 다리가 세워졌다.


난 이 다리가 플레츠닉의 원래 계획대로

로지아 위에

지붕을 씌운 형태였음 더 좋았을 것 같다.


도살자 다리 가운데에도, 

그 흐믈흐물 거리는 기법으로 주조한,

뱀에 놀라는,

그리스 신화의 정령 사티로스 동상이 서 있다.


나는 검색해보기 전까지,

술 취한 취객을 형상화한 줄 알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의 자물쇠지만,

류블랴나엔 유독 이 다리에

그 사랑의 자물쇠가 잔뜩 걸려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도살자 다리 북쪽에는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거친 윤곽선의 동물 조각도 서 있다.


이 근처에 프로메테우스 조각도 있었는데,

내가 그건 사진을 안 찍은 것 같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동영상 3: 류블랴나 도살자 다리)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플레츠닉 아케이드와 도살자 다리를

밤에 보면 뭐 이런 느낌인데,


류블랴나는 어둠으로 모든 것이 가려질 때,

조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화려해지는,

“조명발 도시"가 아니라서,

밤에는 육안으로도 그리고 보통의 카메라로도

멋진 풍경을 만나기 어렵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9. 류블랴니차 강변


류블랴니차 강에는 그 밖에도 여러 다리가 있는데,

강폭이 넓지 않아,

다리를 이리저리 건너면서,

강변을 산책하는 것도 

류블랴나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구시가에서 동쪽으로

류블랴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걷다 보면,

관광객이 점점 줄어들면서 조용한 산책로 앞에

류블랴니차 수문(Ljubljanica Sluice Gate, Zapornica na Ljubljanici)이 나타난다.


용다리에서 동쪽으로 다리 두 개를 지나면 나온다.


(위치 지도)


이 또한 건축가 플레츠닉의 작품으로,

류블랴나의 상징적 경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아마 당시에는 여기까지가 류블랴나였나보다.


원래는 보행자용 다리로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통행을 할 수 없게 출입구를 막아두었다.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 장식을 해서

나름 신고전주의로 정성스럽게 만든 것 같은데,

관광지를 한참 벗어난 곳이라

보통 인적이 드물고 한산하다.


나는 숙소 오가는 길에 자주 봤는데,

처음엔 엄숙하고 중요한 멋스러운 건축물 같더니,

몇 번 더 보니,  

모자 쓴, 맘씨 좋은 사람들 같아 보였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아무튼 구시가 중심부를 기준으로 

동북쪽 류블랴니차 강변은

그냥 류블랴나의 생활공간 같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적고 좀 조용한데,


서남쪽 강변은

비교적 길게 상업공간에 이어져서

좀 더 북적거린다.


구시가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계속 걸으면

삼중교에서 두 번째 다리인

구두수선공 다리(Cobblers bridge, Šuštarski most)에 다다른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어딘지 모르게 삼중교랑 비슷하다 했더니,

이 다리도 플레츠닉의 작품이고,

여기에 구두수선공의 공방들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삼중교가 "아래 다리"라는 나무다리였을 때,

이 다리는

"위 다리(Zgornji most)"라는 나무다리였는데,

삼중교처럼 20세기 초 석조 다리가 되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구두수선공 다리 근처

드보르 광장에는

1912-1918 유고슬라비아를 위해 싸운

슬로베니아 의용군 기념비(Spomenik slovenskim vojnim dobrovoljcem)가 서 있다.


그냥 기둥 같은데

잘 보면 사람들 얼굴이 새겨져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활동 초기에 한 시즌을

류블랴나 극장에서 지휘자로 근무했기 때문에,

그 근처에는 구스타프 말러 동상도 있다.


(위치 지도)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그 길로 좀 더 걸어가면,

구시가가 끝나는 블록의 강가에 

TipoRenesansa Studio라는 

민간 인쇄술 박물관인 인쇄 스튜디오도 있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옛날 방식으로 실제로 인쇄도 하고,

관련 전시도 하고,

또 행사도 기획하는 곳이라는데, 

그냥 구경만 해도 재밌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희한하게도,

구시가 중심 서남쪽 번잡한 강변에서도,

 

류블랴나 성을 등진 강변 쪽에는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는데,

류블랴나 성 건너 강변에는 그런 게 별로 없다.


그래서 강변을 좀 걸어다니기

류블랴나 성 건너편 강변이 좀 더 낫고,

 

강변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기엔

류블랴나 성 쪽 강변이 더 낫다.


아무튼 중심을 벗어난

류블랴니차 강변 근처도

구석구석 예쁘고 사랑스럽다.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2018년 3-4월, Ljubljana, Slovenia)


이 포스트에선 류블랴나 구시가를 둘러보고,

류블랴니차 강변까지 산책했는데,


생각보다 볼 것 많은 류블랴나 구경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다음 두 개의 포스트에서는

오래된 모던 도시 류블랴나의 지평을

“좀 더 오래됨”과 “현대적임”으로,

그리고 수직과 수평적 공간으로 확장해보겠다.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호수, 섬, 성 그리고 마을, 블레드(Bl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