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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an 15. 2020

해안이 짧다 하여, 바다가 좁을쏘냐?

중세식 고딕 건축 마을, 슬로베니아 피란(Piran)의 파란 바다


크로아티아인들이 슬로베니아에 대해 하는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Znate koji je najkraći vic na svetu? Šeta bračni par slovenskom rivijerom...

세상에서 가장 짧은 우스개가 뭔지 아세요? 결혼한 커플이 슬로베니아 해안을 산책하는데..


슬로베니아 해안이 너무 짧아서

슬로베니아 해안이 나오는 우스개도

그렇게 시작만 겨우 하고 짧게 끊나 버리는 거다.


처음에 이걸 읽었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러시아도 아니고,

총면적이 남한의 반 정도 크기인

크로아티아가 이런 얘기를 하다니,


 “어설프게 가진 자”가 “좀 덜 가진 자”를 

업신여기는구나 싶어,

좀 마음이 씁쓸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크로아티아인만이 아니라

슬로베니아인들도 하는 그 동네식 농담이다.


슬로베니아인들도 웃는 농담이라면,

뭐 그렇다면야

 특이한 메타 텍스트 유머에 웃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수도권 두 배 크기 정도인,

'아담한 나라' 슬로베니아해안선이 짧긴 짧다.


아래 지도 서남쪽에

Koper, Izola, Piran으로 이어지는 아주 짧은 선이

바로 슬로베니아 해안이다.


https://www.lonelyplanet.com/maps/europe/slovenia/


그냥 보기에도 좀 짧아 보이는데,

총길이가 43km 밖에 안 된다.


마라톤 풀코스 하나 정도 되는 거다.


작은 나라들이 많은 유럽엔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아예 바다가 없는 나라도 많지만,


이렇게지도를 잘 들여다봐야 겨우 보이는

'미니 바다'를 가진 나라는

오히려 흔치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해안선이 짧고,

영해가 좁다고 해서,

해안에서 직접 보는 바다까지 좁진 않다.


사람들이 임의로 금을 그어두었을 뿐,

바다에는 실제적으로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 “국경 없는” 슬로베니아 앞바다는

드넓을 뿐 아니라,

유난히 맑고 예쁜 푸른빛을 띠며,

정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나는 2018년 3월 말-4월 초 부활적 연휴에

슬로베니아를 3박 4일 가면서,

슬로베니아 해안 도시 중에 어딜 가볼까 하다가,


작지만 야무진 바다를 가진,

대표적 "관광지" 피란(Piran)에 다녀왔다.




A. 피란 가는 길


나는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서

피란에 갔는데,

류블랴나에서 피란까지는 버스로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이 걸린다.


편도에 13유로 정도다.


나는 류블랴나에서 직접 표를 구입했는데,

류블랴나 버스터미널 사이트에서

신용카드로 예매가 가능하다.


슬로베니아는 남한의 1/5 정도,

수도권 면적 정도 되는 작은 나라이고,

 

수도 류블랴나는 그 작은 나라의 중심에 있어서,

 

류블랴나에서 슬로베니아 어느 도시에 가든

대중교통으로 2-3시간이면 되는  같다.


그리고 슬로베니아는 작아도

어디를 가나 참 예쁘다.


(2018년 4월 Piran가는 길, Slovenia)

(동영상 1: 류블랴나에서 피란 가는 길 1)

(2018년 4월, Ljubljana에서 Piran 가는 길, Slovenia)

(동영상 2: 류블랴나에서 피란 가는 길 2)

(2018년 4월, Ljubljana에서 Piran 가는 길, Slovenia)
(2018년 4월 Piran에서 Ljubljana 가는 길, Slovenia)

(동영상 3: 피란에서 류블랴나 돌아오는 길)

(2018년 4월, Piran에서 Ljubljana가는 길, Slovenia)




슬로베니아어 피란(Piran),

이탈리아어 피라노(Pirano)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특징적인 퇴적암의 "붉은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πυρρανoς[피라노스]에서 기원했단 설과


혹은 그리스어 πυρoς[피로스]가

 ""을 의미하기 때문에,

피란 항구에 서있는 등대에서 기원했다는 설,


4세기 아일랜드 가톨릭 성인 파이란(Saint Piran)

에서 기원했다는 설 등


그 이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피란에는 매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고,

이 오래된 소도시의 오래된 이름의 기원에

 오랜 세월만큼 다양한 설이 거론되는 거다.


가장 먼저 피란의 역사에 등장한 거주민은

이미 기원 전부터 발칸반도에서 활약했던

고대 켈트족인 일리리아인들이다.


이후 피란은 2세기 로마제국의 일부로서

본격적으로 주류 역사에 등장한다.


5-6세기에는 동쪽에서 온 아시아계 아바르족

동유럽 슬라브족의 침입을 받는다.


이후 7세기,  

다시 동쪽 비잔틴 제국의 지배에 놓이면서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 피란은,

 

이후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

달마티아 해안 도시들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한다.


우선 13세기

서쪽의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18세기 후반까지 그 일부가 되었다.


지금 피란 구시가의 중세식 고딕 건축

이때 형성되었다.


이후 18세기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백여 년간

오스트리아의 일부가 되고,


19세기 초반 몇 년간

나폴레옹 프랑스

일리리아 주(Illyrian province)가 되기도 했다.


1차세계대전 이후부터 2차세계대전까지

다시 이탈리아에 병합되었다가,


1954년 이스트라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된다.


피란에 거주하던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이때 이탈리아로 이주하고,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슬로베니아인들이

이탈리아인이 떠난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탈리아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도시라서,


현재도 공식어

슬로베니아어이탈리아어다.


아래 사진처럼

공공 게시물에는 두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래서 그런지

피란에는 이탈리아 관광객도 무지 많았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슬로베니아가 독립하면서,

독립 슬로베니아가 얼마 가지지 않은,

“귀한” 해안 도시가 되었다.


피란은 아래 지도와 같은 반도 또는 이다.


아래 지도 왼쪽 하단,

내가 적어놓은 파란색 B자 왼쪽,

자동차 그림이 있는 곳에 버스터미널이 있고,

거기에서 천천히 걸어가며 둘러보면 된다.


http://ontheworldmap.com/slovenia/city/piran/piran-hotels-and-sightseeings-map.html


인터넷에서 찾은 지도의 번호가 너무 작아서

위 지도에 임의로 알파벳을 붙였는데,

그 순서에 따라 둘러보도록 하겠다.




B. 구시가 바깥


버스터미널에서 몇 분 걸으면,

멀리 구시가가 눈에 들어온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 중간에 마네킹이 하나 서 있는데,

그냥 현대 설치미술인 줄 알았던

그 고개를 숙인 마네킹은

수중 작업 박물관(Muzej podvodnih dejavnosti, The Museum of Underwater Activities)을 알리는 표지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거기서 1-2분 정도 걷다 보면,

U자형 선착장 오른쪽에

타르티니 광장 입구가 보인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U자형 선착장은 100-200년 된

역사적인 건축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선착장 북쪽에 있는 아래 사진 왼쪽의 건물은

1910년 처음 문을 열었다는

타르티니 극장(Gledališče Tartini, The Giuseppe Tartini Theatre)이다.


여기는 해안선만 짧은 것이 아니라,

건물들도 이렇게 다들

아담하고 아기자기하다.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내부 사진을 보니,

밖은 작고 소박하지만 극장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위 사진에 보이는,

타르티니 극장 오른쪽 Vila Piranesi 1층에는

피란 수족관(Akvarij, Aquarium)이 있다.


피란 수족관 오른쪽에 있는 조금 더 큰 건축은

1826년, 즉 약 200년 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트레비시니 저택(Palača Trevisini, Travesini Palace)이다.


아래 사진 가장 왼쪽 4층짜리 건물인데,

이 항구에서 가장 외관이 깔끔한

이 고풍스러운 건축은

2008년부터는 Euro-Mediterranean University (EMUNI)라는 대학 건물로 사용 중이란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수족관과 트레비시니 저택 사이엔,

작은 도시 피란에서라면 

"광장"이라 불릴 만하다 싶은,

아주 작고 네모진 공간이 있고,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 건너편으로 19세기 중반에 지어졌다는

역시나 신 고전주의적인 파사드의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 Pomorski muzej)이 보인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C. 광장


이제 그 선착장을 벗어나면

피란의 가장 중요한 명소 중 하나인

타르티니 광장(Tartini Square, Tartinijev trg, Piazza Tartini)이 눈 앞에 펼쳐진다.


피란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이던 17세기 말

피란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의 이름이

18세기 후반 이 광장의 이름이 되었고,

광장 가운데 그의 동상이 서 있다.


피란에선 여기저기 “타르티니”란 이름을 만나는데,

아마 그가 피란 출신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하지만 이름을 그때 얻었다 뿐이지,

타르티니 광장 자체는

최소한 13세기 말부터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광장 북쪽엔 13세기 

피란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가 될 때 건설된

시청(Občinska palača, Municipal Palace)이 있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건 19세기 중후반이란다.


전면 위에 자리 잡은, 책을 펼친 날개 달린 사자

아드리아해 해안 달마티아와 이스트라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당시 아드리아해 연안의 동쪽과 서쪽을 넘나들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시청 앞의 타르티니 동상도

19세기 말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손에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항구에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날개 달린 베네치아 사자

용을 물리치는 말 탄 기사,

즉 성 제오르지오가 새겨진,

(영어로는 George, 동방정교의 게오르기)


그림과 글씨가 선명하지 않아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돌로 만든 깃대가 두 개 서 있는데,

 

자그마치 15세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란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광장 서쪽,

시청을 보고 섰을 때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법원(Sodniška palača, Court Palace)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광장의 입구인 이 자리엔 14세기에 곡물 창고,

16세기엔 전당포가 있었고,

현재의 법원은

19세기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바로 아래 사진의 버스 옆 분홍색 2층 건물,

그 아래 사진의 측면에 그리스식 열주가 돌출된

흰색 건물도 법원이다.


다른 건축에 비해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타르티니 광장의 중요한 경계가 되는 건물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타르티니 광장 동쪽에 있는 건축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베네찬카(Hiša Benečanka, Venetian house)라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의 건축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베네치아식 고딕 양식으로

건축학적 가치를 갖는다는데,

창문의 디테일과

왼쪽 중간의 아담한 발코니가 

'피란스럽게' 아담하고 앙증맞다.


색깔마저도 분홍색이다.


다른 사진에서는 좀 더 선명한 꽃분홍색이던데,

내가 갔을 땐

분홍빛이 아주 약간 도는 연핑크색이었다.


대부분 19세기에 지어졌거나 리모델링된,

광장의 여러 건축과 달리,

1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인,

타르티니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베네찬카 동쪽에는 타르티니 저택(The Tartini House, Tartinijeva hiša)이 있다.


"타르티니"라는 이름이 붙은 건

그가 살았던 곳이어서가 아니고,

타르티니 관련 전시를 하는 박물관이 있는,

피란 이탈리아 커뮤니티 건물이기 때문인 것 같다.


타르티니 저택은 14세기 후반 고딕 건축이고,

20세기에 신고전주의로 리모델링되었다는데,

아마도 벽의 그리스 기둥을 닮은 납작한 부조가

그 신고전주의 요소인 것 같다.


아래 사진 가장 왼쪽에 반만 나온 건물이

바로 타르티니 저택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 옆의 작은 건물은 성 베드로 성당(Cerkev sv. Petra, St. Peter's Church)이다.


역시나 전면의 돌출된 그리스식 기둥과 삼각 지붕이

신고전주의 양식인 듯한

1818년에 지은 200년 된 성당이다.


작은 성당의 문 위쪽 벽엔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전해주는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피란의 성당들은 문이  열려 있었는데,

이렇게 사진이나 그림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당으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미사가 없을 때만 설치해 놓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부활절 연휴에 방문한 것치곤,

성당에 사람도 없고,

별다른 부활적 장식이나 이벤트도 없고

좀 특이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광장 동북쪽 끝에,

타르티니 저택과 비슷한 노란 건물과


베네찬카의 창문과 비슷한 디테일의 창문과

베네치아의 날개 달린 사자가 있는

벽돌색 작은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의 로지아 사이로 들어가면

구시가 동쪽으로 가는 좁은 골목이 나온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타르티니 광장을 둘러보면 이런 느낌이다.


(동영상 4: 피란 타르티니 광장)

(2018년 4월, Tartini 광장, Piran, Slovenia)




D. 성당


피란에서 또 다른 중요한 관광명소는

성 제오르지오 가톨릭 성당(Cerkev sv. Jurija, St. George's Church)이다.


제오르지오 성인은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한 기사로,

백마를 타고 용을 물리친 전설의 주인공이라,

그는 항상 그 모습으로 묘사된다.


당시 그리스였던 지역의 출신인데,

그래서 그런지 가톨릭보다는

동방정교에서 많이 언급되는 성인인 것 같다.


그리스에서도 제오르지오 혹은 조지(George)의

그리스식 이름인 

게오르기오스(Γεώργιος)의 이미지를 여러 번 봤고,


모스크바를 세운 "유리 돌고루키"의

유리(Юрий)게오르기(Георгий)이기도 해서,

모스크바의 수호성인처럼 간주되어,


모스크바 정교회 성당 안팎 여기저기에서

말 타고 용을 죽이는 게오르기 이미지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성 제오르지오 성당의 종탑은

피란 어디에서나 보이는 중요한 이정표라,

그 종탑을 향해 걸어가면,

어디서든 금방 성당을 찾을 수 있다.




피란에서 성 제오르지오 성당으로 가는 루트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첫 번째는 타르티니 광장에서 베네찬카 옆길로 올라가는 방법.


베네찬카 왼쪽 옆길로 들어가서,

종탑이 보이는 쪽을 향해 계단을 오르면,

5분 만에 성당 동쪽에 도착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 두 번째는 해안에서 올라가는 방법.


서북쪽 해안에서 구시가 골목으로 들어가서,

위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성당의 서쪽에 도착한다.


이 길은 바다가 많이 보여서 좋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처음엔 이런 난간이 나오다가,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나중엔 이런 철조망이 나온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리고 그 철조망 끝에 성당이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3) 세 번째는 성당 바로 아래 난 좁은 길로 올라가는 방법.


나는 이 길로 올라가지는 않고,

내려가기만 했는데,

성당 바로 남쪽에 있는

아주 좁은 골목으로 내려가다 보면,

타르티니 광장이 나온다.


골목이 아주 좁아서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라,

무슨 미로를 걷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성당 동쪽에는 세례당(Krstilnica sv.Janeza Krstnika, Baptistery)이 있는데,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8각 모양의 작은 건물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피란 어디에서나 보이는

그 옆의 종탑은 17세기 초반에

지금 성당 건물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는데,


아마 당시 가장 핫한 가톨릭 건축이었을,

16세기 완성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산 마르코 종탑을 모방했다고 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사진을 찾아보니,

산 마르코 종탑이랑 정말 비슷한데,

종탑 위의 가브리엘 천사

아마 베네치아의 종탑을 참고한 것 같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이것들이 따로따로 있을 땐 그냥 평범한데,

모아놓으면 참 예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성 제오르지오 성당은 12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현재 모습으로 리모델링된 건 17세기초라고 한다.


르네상스 양식이라는 전면은 수수하고,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바로크 양식이라는 내부는 화려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나는 일요일 오전 미사 보고 나서,

다른 관광객에 편승해 내부 사진을 찍었는데,

보통은 성당문이 닫혀 있어서,

입장하기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동영상 5: 피란 성 제오르지오 성당)

(2018년 4월, 성 제오르지오 성당, Piran , Slovenia)


성당 북쪽엔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바다가 그렇게 맑고 예쁠 수가 없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만든 아름다움은

신이 만든 아름다움을 넘어서지 못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영상 6: 성당에서 바라본 Piran 앞바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신의 작품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성당 남쪽에,

인간의 작품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도

사실 매우 아름답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영상 7: Piran 구시가 전경)

(2018년 4월, Piran, Slovenia)




E. 성벽


성당에서 보니,

동쪽 언덕 위에 성벽이 보이길래,

성당을 둘러보고 그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성당에서 한 5-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되는데,

가다가 뒤돌아보니,

이제는 성당을 포함한

새로운 피란 구시가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 종탑에도 2유로인가를 내고 올라가는

전망대가 있다고 하던데,


종탑에는 안 올라가 봤지만,


성당까지 한눈에 들어오니,

피란 전망은 종탑보다 여기가 더 나을 것 같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냥 언덕만 올라가도 전망이 좋지만,

성벽 안에 입장해서,

망루에 오르면,

좀 더 탁 트인 전망을 만날 수 있다.


입장권은 2유로였는데,

자동판매기에서 토큰을 사서 넣고

회전 바를 밀고 들어가는 무인시스템이었다.


나는 토큰이 나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버튼을 한번 더 눌렀더니,

하나가 더 나오길래,

그건 뒤에 오는 사람에게 팔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피란 성벽(The Walls of Piran, Piransko obzidje)은 7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7세기면 비잔틴 지배기다.


두브로브니크도 비잔틴 지배기에 성벽을

처음 쌓기 시작했는데,

아마 이런 높은 돌 성벽이 비잔틴 문화인가 보다.


도시가 커지면서 성벽이 하나씩 늘어났는데,

초기에 쌓아 올렸던

다른 성벽들은 이제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고,


지금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이 북동쪽 성벽은

오스만 터키의 침입에 대비해서,

15-16세기에 쌓아 올린,

가장 최근의 성벽이라고 한다.


지금 남은 성벽은 사실 매우 단순하게 생겨서,

가운데 높은 전망대가 있고,

그 옆으로 남북으로 직선의 성벽이 서 있다.


'피란 답게'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 성벽 서쪽을 보면,

구시가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쪽에는 예쁜 초록 잔디 운동장이 있다.

괜히 들어가서 한번 뛰어보고 싶은 공간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리고 북쪽으로는,

가까운 바다는 연두색, 초록색,

먼 바다는 연파랑색인 맑은 바다가 보인다.


바다 색이 너무 예뻐서 멍하니 쳐다봤는데,

이 성벽에서 매우 중요한 포토존이라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기다려서,

오래 서 있진 못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영상 8: 성벽에서 바라본 Piran 바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구시가 밖의 피란과

멀리 피란 밖 바다가 보인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 성벽 남쪽으로는 또 다른 성벽이 있고,

그 성벽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타르티니 광장에 다다른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F. 베네치아식 골목


타르티니 광장 주변에는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기 생긴 건물들이

가득한 좁은 골목들이 있고,

그 좁디좁은 미로를 걷는 재미가 또 솔솔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타르티니 광장 서쪽의 골목들을 걷다 보면,

5월 1일 광장(Trg 1. maja, May 1st Square)이 눈 앞에 나타난다.


13세기 타르티니 광장이 그 역할을 맡기 전까지,

이 광장이 피란의 메인 광장이었다고 하는데,


메인 광장이었던 전력치곤,

'피란 스럽게도' 많이 아담하다.


이 광장 주변은 바로크 건축들이 둘러싸고 있고,

광장 중앙에는 18세기 만들어졌다는 우물이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광장 남쪽에는 각각 정의을 상징하는

조각이 서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5월 1일 광장 동북쪽으로 가면,

유대인 광장(Židovski trg, Jewish Square)

눈 앞에 나타나는데,

이건 아무리 피란이어도 

광장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아담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크로아티아어 trg는 '광장'이면서 '시장'

체코어 trh, 폴란드어 targ는 '시장'이니,


아마 슬로베니아어 trg도 

한국어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라는 의미보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물물거래를 하던 장소로서의

광장을 의미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공간으로도 작다.




G. 해안


타르티니 광장 서쪽 골목의 서쪽으로 나오면

바다가 보인다.


피란은 워낙 구시가의 크기가 아담해서,

구시가를 둘러싼 해안도 사실 길지 않은데,

그래도 바다가 예뻐서,

해안을 따라 산책하기 좋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서쪽 해안의 현대적인 건축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오래된 건물 중 하나는

건강 성모 성당(Cerkev Marije Zdravja, Our Lady of Health Church)이다.


13세기 처음 역사에 등장한 이 성당은

원래는 선원들의 수호성인인

성 클레멘트(St. Clement) 성당이었는데,


17세기 전염병 후에,

"건강 성모 성당"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에서도 이런 이름의 성당을 가끔 만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작은 성당의 문은 열려 있었는데,

아마 지금은 성당으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의자도 없이 그냥 그림만 걸려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성당 지붕 위로 보이는 기둥은

성당의 종탑이 아니라,

등대(svetilnik, lighthouse)의 일부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원래는 성벽이었는데,

이 탑에 19세기 말 빨간불이 달리면서,

등대가 되었다고 한다.


워낙 주변의 건물들이 다들 낮아서,

피란 바닷가 어디서나 보이는,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등대 옆에는 울퉁불퉁한 바위들과

그냥 바다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바다가 고요하고 참 예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영상 9: 북쪽 해변에서 본 Piran 바다 1)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영상 10: 북쪽 해변에서 본 Piran 바다 2)


(동영상 11: 북쪽 해안에서 본 Piran 바다 3)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해안 북쪽으로는

성 제오르지오 성당이 있는 절벽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성당에 직접 올라가는 길은 없고.

좀 더 남쪽 해변으로 걸어 내려와

구시가 골목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아무튼 피란의 바다는 어느 쪽이든 맑고 푸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남서쪽 해변에 서면,

버스터미널이 있는 피란 남쪽도 보인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타르티니 광장 쪽으로 U자형 길이 나 있는

항구까지 걸어가면

드라간 사칸(Dragan Sakan)이란 조형물이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드라간 사칸은 세르비아 출신 유명 광고인으로,

중동부 유럽 광고계의 거장인데,

1990년대에 피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피란의 공공 행사를 위한 아이디어도 냈다고 한다.


흔히 보는 축소된 청동 모형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으로 피란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특이하지만,

또 너무 튀지 않고 주변 경관에 잘 어울린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H. 동쪽 골목과 해안


타르티니 광장 동쪽의 골목은

서쪽에 비해 좀 덜 관광지 같다.


아래쪽 골목은 피란 서쪽에 비해 좀 덜 좁고,

건물들은 좀 덜 오래된 듯 보이고,


성벽으로 이어지는 위쪽 골목은

피란 서쪽의 골목만큼 오래된 것 같아 보이는데,

좀 더 좁고, 좀 덜 평지라,

좁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쪽 해안에는 작고 예쁜 저택들이 서 있고,

요트가 여러 대 정박되어 있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그중 한 아담한 저택에

무슨 갤러리라고 쓰여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작품은 특별한 걸 잘 모르겠고,

2층에서 바라본 전망은 정말 좋았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동쪽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17세기  로코 성당(Cerkev sv. Roka, St Roch Church)도 보인다.


피란의 다른 성당과 마찬가지로

크기가 아담하고 외관은 수수하지만,

성당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본

내부 장식은 꽤 화려하다.


로코 성인은 병자순례자의 수호성인이라는데,

아래 사진에서 상처 난 허벅지를 가리키며,

강아지와 함께 있는 왼쪽의 동상이 로코 성인이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거기서 구시가 동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수도원(Saint Francis Minorite Monastery, Minoritski samostan sv. Frančiška)이 나온다.


보통 유럽 수도원은 일반인들의 입장을 금하는

엄격한 종교 시설이거나,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서 들어가는

관광지화된 경우가 많은데,


성당의 문이 대체로 열려 있는 피란에서는

수도원도 그냥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피란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은

14세기 초반에 처음 생겼는데,

지금 건축은 17, 18세기 리모델링된 것이라고 한다.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2018년 4월 Piran, Slovenia)




사실 해안선만 따진다면,

프랑스보다 더 길다는,

크로아티아에 체류 중이었던 나는,


굳이 해안선도 유난히 짧은 슬로베니아까지 가서

바다를 볼 필요는 없었다.


슬로베니아에 비하면

크로아티아는 해안선이 매우 길 뿐 아니라,


붉은 지붕의 집들과 건축들로

가득한 구시가도 하나 같이 근사하고,

바다도 하나 같이 다 맑고 또 예쁘고,


슬로베니아 가기 1-2달 전에

두브로브니크(Dubrovnik)와

스플리트(Split)를 다녀와서,

바다, 그것도 매우 "질 좋은" 바다를 본 지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꽉 찬 3박 4일 일정으로

슬로베니아라는 나라에 처음 가서,

수도 류블랴나에만 머무르기보다는,


혹은 또 괜히 다른 나라에 들렀다 오기보다는,


언제 또 가게 될지 모를,

슬로베니아의 다른 곳들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그 유명한 블레드 호수를 가보기로 결정하고,


그다음에

슬로베니아의 세 해안도시 중에서,

그나마 휴양지라서 고른 게 피란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별 목적도 없이,

그냥 대충 바다 보고 싶어서 갔던 나에게

피란은 기대 이상의 선물이었다.


난 아침 7시 40분 류블랴나에서 출발해서,

10시쯤 도착한 후,

오후 4시 15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비수기라 그런지,

그게 가장 늦게 출발하는 류블랴나행 버스여서

어쩔 수 없이,

피란에는 겨우 6시간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란은 아담해서,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피란 구시가에서 가장 중요한 명소를 고르라면

타르티니 광장,

성벽,

그리고 성당 이렇게 3개일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있는 피란의 구시가는 작아서,

6시간이면 그거 다 보고,

또다시 한번, 두 번 더 보고 나서도 시간이 남는다.


나는 몇 시간 체류하는 동안

구시가 여기저기를 두세 번을 돌았는데,

그렇게 여러번 돌아봐도 질리지 않고,

그저 마냥 예뻤고,


언덕이 있지만 높지 않아서,

돌아다니기에 너무 평이하지 않으면서,

또 너무 힘들지도 않아서,

오르락내리락 걷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가장 맘에 들었던 건 바다였는데,


피란의 파란 바다 자체가

연두, 초록, 하늘, 파랑, 남색이 섞인

색깔도 오묘하게 예쁜 데다가,

 

파도도 높지 않은 것이

고요하고 착하고 순한 인상이고,

물은 또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마침 날씨도 온화해서 산책하기에도 딱이었다.


이것저것 모든 게 다 딱 맞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거기 있을 뿐인 피란이

괜히 나를 반겨주는 느낌, 

괜히 많이 대접받고 온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피란이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유럽 바다를 많이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피란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예쁘긴 하지만,

구시가와 해안이 너무 작아서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해안도시를 줄기차게 여행하다

슬로베니아에 온

이 동네 바다를 너무 많이 경험한 사람에게도

추천하긴 어려울 것 같다.


크로아티아 해안 도시들과 비슷하면서,

크기는 더 아담해서,

특별하게 볼 게 없다는 느낌이 많이 들 거다.


슬로베니아 여행 중

바다도 보고 싶다거나,


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같은

바다 없는 유럽 내륙을 여행하다가,


관광객에 많이 치이지 않으면서,

너무 무리하지 않고 좀 쉬는 기분으로,

맑고 예쁜 바다를 반나절 정도 보고 싶을 때,


저가항공을 타거나,

류블랴나에 들러 거기서 버스로 가면

기분 좋은 짧은 휴식으로 딱 좋을 것 같다.


비록 해안은 짧아도,

그 넓고 파란 공간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기에,

피란의 바다는 충분히 크고도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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