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 러시아 방문자를 위한 몇 가지 정보 (2026년 2월)
13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2013년 6월 말에 마지막 방문하고,
2026년 1월 말에 간 거니까,
정확히는
12년 7개월 만인가 보다.
주변 사람들한테는
“방학마다 동유럽 가는 사람”
으로 과대포장된(?)
러시아어 전공자인 내가
그동안 정작 러시아를 10년 이상 안 간 건,
사실
러시아어로 된 웬만한 자료는
대체로 온라인 검색으로 쉽게 얻을 수 있어서
굳이 러시아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러시아어 아닌 다른 슬라브어 연구를
점점 많이 하게 되어
사실 러시아어 자료도 예전보다 덜 필요하고,
외국인 등록, 출입국 카드 등으로
짧게 머물러도 통제받는 느낌이 강하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러 번 가 봐서
여행지로도 크게 설레지 않고,
한국인, 러시아인 지인들, 친구들이
대부분 한국으로 왔거나 다른 나라로 가서
딱히 누군가를 방문하러 갈 일도 없었다.
대신 나는
연구 자료 검색하고 구입하기 위해서,
현지 언어 연수를 하기 위해서,
1-2달 방학 동안 지내기 위해서,
낯선 곳을 여행하기 위해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체류 3개월은 비자도 필요 없고,
(크로아티아 말곤) 대체로 외국인 등록도 필요 없고,
그냥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폴란드, 체코, 크로아티아, 불가리아를 갔다.
그런데 갑자기 러시아 출장 일정이 생겨서
급하게 준비하고,
오래전부터 잘 알지만,
너무 오래 안 가서
이제는 어딘지 낯설어진 러시아에 가게 됐다.
가기 전에 찾아보니 최신 정보가 너무 없길래,
나처럼 최신 정보를 찾아 헤매고 있는
소수의 러시아 방문자를 위해
러시아 여러 번 갔으나
마치 처음 방문 같았던 나의 경험을 정리해 본다.
이 시국 러시아 방문을 위한 항공편으로
직항은 없다.
예전엔 대한항공과
아에로플롯(Aeroflot) 및 기타 러시아 항공사에서
러시아와 한국을 오갔지만,
2022년 3월 이후 이제 직항은 없어졌다.
우선 전쟁이 끝나야
수요도 생기고 직항 운항 재개도 가능할 것 같다.
적어도 2026년 2월 현재까지는 직항이 없으니
다른 나라를 거쳐 가야 하는데,
유럽, 미국, 일본을 통하는 길도 막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크게
(1) 중국과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등] 항공사
(2) 중동 항공사 [튀르키예, 아랍에미레이트 등]
라는 선택지가 있다.
(1)은 광활한 러시아 영공을 가로질러 가는
옛 러시아 직항 노선과 거의 비슷한데
중간에 다른 나라에서 잠깐 쉬어가는 느낌이고,
(2)는 굳이 중동을 거쳐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지만
비행기, 공항, 기내서비스가 좋은 항공사들이다.
나는 중국의 남방 항공을 이용했는데,
비행기 좌석도 생각보다 편안하고,
베이징 다싱 환승 공항도 아늑하고 편리했다.
그리고 러시아 영공을 지나기 때문에
환승이어도 별로 오래 걸리진 않았다.
(현재 유럽, 한국 항공사는
러시아 영공을 피해 간다.
영공을 지날려면 항공사가 이용료(?)를 내는데,
한국과는 그런 관계가 다 단절된 상태다.)
이번 출장 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갔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두 도시를 오가는 가장 흔한 운송수단은
비행기와 기차이고
러시아인이든 한국인이든 기차를 많이 탄다.
나도 보통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갈 때
기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밤기차를 탔다.
그런 밤기차의 좌석은
(1) 하나의 폐쇄된 객실 안에서
2명이 양쪽 침대에 편안히 누워 갈 수 있다는
‘침대차(СВ, спальный вагон)’,
(2) 문이 달린 폐쇄된 객실에
승객 4명이 양쪽 위아래 칸에 누워가는
‘쿠페’,
(3) 쿠페 같이 4개의 위아래 칸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구성에 덧붙여
복도 위아래까지 2자리가 더 있는데,
그런 6인 좌석 세트가
벽이나 문 없이 9개가 연결되어 한 기차칸에 담긴,
시베리아횡단열차 영상에서 흔히 보는
‘플라츠카르트’
가 있는데,
(1)-(3) 순으로 점점 저렴해진다.
그래서 보통은 (2), (3)을 이용하는데,
일행이 있으면 좀 더 프라이빗하고 편안한 (2),
혼자 이동하는 거면 열린 공간에 보는 눈이 많아
오히려 안전한 (3)을 선택했었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기차는
보통 8-10시간 정도 걸렸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서 종점에 내리면 되니까
밤기차를 타면
여행의 이동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인이든 러시아인이든
다들 밤기차를 탔었는데,
2009년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간
고속열차 “삽산(Сапсан)”이 운행을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2012-2013년 경부터
삽산을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난 2013년에 이런 게 있는지 몰라서 못 탔고,
그래서 이번에 처음 타봤다.
두 도시 간 거리가 약 700킬로 정도 되는데
3-4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부산은 400킬로 정도 되는데,
KTX로 3시간 걸리니,
“매”라는 뜻답게
삽산이 KTX보다 많이 빠르다.
더군다나 정차역도 3-4개 정도밖에 안 된다.
삽산은 좌석도 KTX보다 더 넓고 쾌적하고,
서비스도 좋고,
물티슈, 이어폰, 신문 등을 공짜로 제공한다.
이런 장점 때문인지,
요금은 삽산이 KTX보다 많이 비싸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편도가
2026년 1월 현재
5000-6000 루블,
즉 10만원 내외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티켓은 PDF 파일로 저장해서
탑승할 때 승무원에게 보여주면 된다.
난 러시아 가기 2주 전에
삽산 좌석을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구글에 검색하면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는 사이트가 여럿 나온다.
한국에서 하듯이
날짜, 좌석 정하고 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그런데 그 간단한 걸
나는 몇 시간 만에 힘들게 해냈다.
전쟁 때문에 러시아 내에서
Master, Visa 카드 결제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예매 사이트에 카드 번호 입력하자마자
결제가 차단되기도 하고,
이때까지는 아무 문제없다가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한국 카드회사가 결제를 차단하기도 한다.
(1)
tutu travel
OneTwoTrip
travel.yandex.ru
가 전자였고,
(2)
russiantrain.com
이 후자였는데,
이건 Belarus anyday travel이라는
벨라루스 회사였다.
(3)
마지막으로
railrussia.com에서 도전해서 성공했다
여기는 러시아 철도청에서 하는 사이트다.
그런데 루블 계산과 달러 계산 시 비용이 다르고,
러시아 외부의 visa, master는 달러만 결제되는데
달러로 계산한 게 티켓값이 더 비싸다.
그 가격 차이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달러로 하면
루블보다 10-20% 정도 더 내는 것 같다.
러시아다운 외국인 프리미엄이다.
러시아는 박물관도 외국인과 내국인 요금이 다르다.
그래도 미리 예매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나는 한국에서 삽산 승차권을 예매했는데,
경제적, 시간적 측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종전 전에는
러시아에 가서 기차표 사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2025년 여름에 러시아 출장 간 후배도
러시아에 가서 삽산 표를 구매했다고 했다.
여행 성수기엔 여름에도 그게 가능했다면,
출발 며칠 전 현지에서 삽산 표를 예매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닌 거다.
이 시국 러시아 회사와 거래에서
한국 카드를 사용할 수 없으니,
러시아 출장 준비에서
호텔 예약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른 건 러시아 도착해서 할 수 있지만,
호텔은 미리 예약하고 가야 하지 않는가?
다행히
숙박예약 사이트 “오스트로복(Ostrovok)”에
호텔방 예약만 미리 해 놓고,
숙박비는 호텔 체크인 때 지불하는 옵션이 있다.
이 사이트에 올라온 모든 호텔에 다 있는 건 아니고
이게 되는 호텔이 있다.
예약하고 결제까지 마치는 평범한 옵션에 비해,
예약만 하고 결제는 나중에 하는 이 옵션은
가격은 10-20% 비싸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유일한,
그래서 고마운 러시아 숙소 예약 방법이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에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고,
많은 글로벌 기업이 동참했다.
Master카드, Visa카드, Paypal 등도 동참했다.
그 말인즉슨,
이런 결제 시스템을
러시아 회사와의 거래에서 쓸 수 없다는 뜻이고,
Master, Visa가 적혀 있어서
해외 사용이 가능한 한국 신용카드, 체크카드도
러시아에서는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railrussia.com에서
한국 신용카드로
삽산 기차표 결제가 된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그래서 2026년 2월 현재 러시아에서
외국인은 현금을 쓰거나
러시아 체크카드를 따로 만들어 써야 한다.
러시아에는 Master, Visa 같은 회사 대신
Мир(미르)라는 러시아 회사가 있어,
러시아 및 주변 국가의 카드 결제를 가능하게 하고,
신한, 삼성, 현대 카드 등 대신
YooMoney(Юmoney)라는 실물카드가 있다.
YooMoney: your personal finance space
구글플레이에서는
YooMoney 어플을 다운로드할 수 있고,
애플스토어에서는 다운로드가 안 되지만
홈페이지로 로그인해서
온라인 카드 발급이 가능하다.
이 번호만 있는 온라인 체크카드로는
온라인 예약, 온라인 주문 등
온라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능이
러시아 입국 전엔 무용지물이다.
유머니 온라인 체크카드로 기차표 결제를 하려고,
유머니 계좌에 돈을 입금하려 보니,
이런 방법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한국에서 입금할 방법은,
메뉴 2번째,
1% 커미션을 내고 한국 카드로 입금하는 거다.
그래서 Master 신용, Master 체크,
Visa 신용카드 등
내가 가진 한국카드로 다 시도를 해봤는데,
유머니 차원에서는 승인이 되었으나,
한국 카드 결제 단계에서 모두 거절되어,
결국 한국에서
유머니 체크카드 계좌에 입금은 못했다.
모든 경제활동을 온라인에서만 할 수 없으니
유머니 실물카드가 사실 더 필요한데,
어플이나 홈페이지에서 미리 신청하고
러시아 유머니카드 사무소에서 수령할 수 있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으로 입국한다면
공항에서 발급 가능하다.
공항 출국장 나오면 좌측 바로 옆에 있다.)
13년 전에 러시아에 갔던 옛날 사람인 나는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미리 yoomoney 온라인 카드를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실물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실물 카드 발급에 5분도 안 걸린 것 같다.
미리 신청하지 않고
러시아의 유머니 카드 지점에 가서
즉석에서 발급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시간은 좀 더 오래 걸릴 거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발급받을 때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발급비가 299루블 (5-6천원) 있는데,
실물카드 수령 후 카드계좌에 루블을 입금하면
자동으로 빠진다.
그 카드로 15000루블(약 30만원)을 쓰면
299루블은 캐시백된단다.
아무튼 난 공항에서 발급받은 실물 체크카드로
러시아에서 소비한 모든 것을 결제했다.
모스크바는 현금을 거의 안 쓰고,
그래서 원칙적으로 현금 결제를 받아준다 해도
잔돈이 없어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현금을 쓰면
그런 식으로 비자발적 팁을 지불하게 되는 거다.
그러니 모스크바에선
러시아 체크카드 발급이 필수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2026년 1월까지는 아직 현금으로 계산 많이 했다.
하지만 거기도 곧 달라질 것이다.
아, 그리고 중요한 게 있다.
유머니 계좌는 카드를 사용 안하더라도
계좌에서 돈이 조금씩 빠져나간다고 한다.
일종의 보관료를 그렇게 자동 지불하나 보다.
그러니
'나중에 러시아 오면 또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유머니 계좌에 루블을 많이 남기지 말고,
가능하면 유머니 계좌의 돈은 다 쓰고,
남은 루블은 다 출금해서
달러나 유로로 재환전하는 것이 낫겠다.
실물 유머니 카드를 러시아에서 사용하려면,
체크카드 계좌에 돈을 입금해야 하는데,
유머니에서 제공하는 위 7가지 방법 중에서
전쟁 중 단기 방문자가 쓸 수 있는 건 1번 방법,
즉 ATM으로 현금을 입금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한국에서
(1) 루블을 환전해 가거나
(2) 달러, 유로를 환전해 가서,
러시아에서 루블로 다시 환전해야 한다.
루블은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쓰고 남았을 때 처치가 곤란하다.
그래서 난 호텔 숙박비랑 첫날 쓸 돈만
한국에서 루블로 환전하고,
나머지 예상 체류 비용은 달러로 환전해 갔다.
한국에서 루블은 하나은행과 사설환전소에서
환전 가능하다.
나는 사설 환전소인 머니박스에서 환전했고,
동대문, 서울역, 명동, 인사동, 마포 지점 등에서
루블을 팔았는데
그때는 인사동이 환율이 제일 좋길래
거기서 출국 1주일 전 미리 환전했다.
달러는 출국 전날 가까운 은행에서 환전했는데,
은행에 환전하는 사람이 없어서,
줄 하나도 안 서고 은행 가자마자 했다.
하긴 여행 성수기도 아닌 겨울인 데다가,
외국에 나간다 하더라도
외국에서도 한국 카드로 다 결제되는 시대에
환전하는 사람 많은 게 더 이상한 거다.
러시아에서 달러/유로를 루블로 환전할 때는
일반 은행이나 사설환전소를 이용할 수 있다.
요새는 환율 차이가 별로 없어서
은행에서 환전하는 게 안전하다.
이번에 나는 얀덱스 지도의 리뷰가 좋은
Альтернатива (Alternativa)라는
숙소 가까운 사설환전소에서 환전했는데,
환율도 좋고, 커미션 없고, 빠르고, 정확했다.
모스크바 시내 여기저기에 지점이 있다.
나는 러시아를 갈 때,
장기로 가든, 단기로 가든,
항상 러시아 sim 카드를 구매해서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러시아는 sim 카드 살 때
한국보다도 제약이 적어서,
아무런 가입절차 없이
그냥 마트 가서 물건 사듯이
통신사 가서 번호를 사서
sim 카드를 갈아 끼면 됐다.
그런데 전쟁 중인 러시아에선 이제 그게 안 된다.
스닐스(СНИЛС, Страховой номер индивидуального лицевого счета)라는
주민등록번호 같은 개인 사회보장번호가 있어야
휴대전화 sim 카드를 살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난생처음 로밍을 사용했다.
전쟁 후 러시아는
로밍도 입국 24시간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는
글을 읽고 갔는데,
이번에 가 보니,
러시아 도착하자마자 로밍이 활성화된다.
단,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고,
러시아 통신사에서 오는 문자를 클릭해야 한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해서
Airplane 모드를 해제하자마자
두 러시아 통신사 MTS와 Megafon에서
문자가 와 있었다.
(1)
MTS가 더 일찍 더 많이 문자를 보냈는데,
클릭해도 로밍 활성화가 안된다.
(2)
다행히 Megafon에서 온 문자를 클릭하고
하라는 대로 하니
로밍이 활성화됐다.
(3) 그렇게 며칠을 잘 썼는데,
어느 날 인터넷이 안 된다 했더니,
Beeline이라는 또 다른 러시아 통신회사에서
또 문자가 왔다.
링크를 눌었더니 다시 로밍이 활성화되었고,
귀국 때까지 다른 문제 없이 잘 썼다.
러시아에 장기 체류 하다 보면,
꼭 필요하지 않아도
“혹시 몰라서“ 해두는 것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법 없이”
그저 관행대로 다른 사람 하는 대로 하며 사는데,
그 유명무실했던 또는 새로운 법과 규칙이
갑자기 앞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똑같이 평소 하던 대로 했는데,
누군가는 그 법/규칙의 바리케이드에 걸리고,
누군가는 무사히 빠져 나간다.
그래서 관행대로 하다가
숨은 바리케이드에 걸리더라도 통과할 수 있게
“혹시 모르니”
법/규칙대로 미리 준비해 놓는 거다.
2022년 러우전쟁 이후,
특히 2024년 모스크바 극장 테러 이후
러시아는 국가안보를 위해
자국인과 외국인의 개인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ruID라는 어플로
외국인이 러시아 입국 최소 3일 전
얼굴, 지문, 목소리 및 기타 개인정보를
등록하게 한 것도 그중 하나다.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했다는데,
2026년 1월까지도 아직 전면 시행은 아니었다.
즉 ruID 어플로
러시아 전자정부 시스템인
고스우슬루기(Госуслуги)에 등록하는 것이
아직 필수적이진 않다.
그래도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했으면
언제 그걸 검사하더라도 정당한 절차이므로
“혹시 몰라서”
나는 러시아입국 20일 전쯤
ruID 어플을 깔고 내 개인정보를 등록했다.
이거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10분 넘게 걸린 것 같다.
혹시나 그 어플에 등록한 거 보여주면
입국심사 과정이 조금이라도 빨라질까 해서,
러시아 입국심사할 때,
이 어플을 보여주며,
나는 여기 등록했다고 말했는데,
입국심사에 그건 필요 없단다.
그래서 그냥 헛수고했네 하고 말았는데,
러시아 도착 다음 날 이메일이 왔다.
5일 안에
사회보장번호 스닐스(СНИЛС)가 준비될 테니,
RuID 앱에 들어가서 확인하란다.
그 번호가 있어야
러시아 sim 카드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고스우슬루기 등록이 필수는 아니더라고
러시아 중장기 체류자는
러시아 입국 전에 등록해야 할 것 같다.
러시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지 1달이 다 되었는데
RuID 앱의 내 계정에는 아직도
내 스닐스 번호가 그대로 있다.
아마도 주민등록번호처럼
한 번 등록해 놓으면 평생 가나 보다.
역시나 “혹시 몰라서”,
외국 이메일 잘 안 될까 봐,
러시아 방문 준비하면서 가입한
러시아 여러 사이트 계정의 이메일은
모두 러시아 이메일로 적었다.
난 예전에 만들어놓은
(1) yandex.ru
(2) mail.ru
이렇게 2개의 러시아 이메일 계정이 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이메일은
(2) mail.ru이다.
이 이메일 계정이 있으면
8G의 무료 클라우드도 쓸 수 있다.
내 러시아 이메일 계정은
러시아 사이트 계정 말곤 거의 안써서,
이번에 러시아에서는 외국 이메일 계정을 썼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단, google의 Gmail을 쓰고,
구글 검색을 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그 밖의 다른 기능을 사용하려고 할 때에는
“지금 당신이 있는 나라에서는 이 기능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메시지가 뜨면서 차단됐다.
한국 이메일 계정도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리고 한국 앱 사용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러시아 출국 1-2일 전에
한국 물건을 온라인쇼핑으로 구매하려 하니,
결제 마지막 단계에서
이런 메시지가 뜨면서 차단됐다.
분단국가인 한국이
국가안보의 이유로
Google에 지도 정보를 모두 허용하지 않듯이,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도
Google 지도는 쓸 수 없다.
우리가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을 쓰면서
아무 불편함을 못 느끼듯이,
러시아인도 “얀덱스(yandex) 지도”를 쓰면서
아무 문제를 못 느낀다.
즉 Yandex map은 러시아 여행의 필수앱이다.
단, 이번 출장 중에
"내 위치"가 실제 내 위치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나와서,
낭패스러운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건 드론 공격 대비해서
GPS를 가끔씩 교란해서 그런 거란다.
그리고 실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그리고 모스크바에서도 중심부 근처에서
얀덱스 지도가 더 자주 길을 잃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얀덱스로 택시를 부를 때는
"내 위치"에 오류가 난 적이 없었다.
물론 나는
얀덱스 택시를 자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긴 하다.
아무튼 YandexGO라는 택시 어플도
러시아 여행의 필수 어플이다.
카카오택시 사용 방식 그대로 택시를 부를 수 있고,
택시뿐 아니라,
퀵,
배달 등도 이 어플로 주문할 수 있다.
비용은 카카오택시보다 저렴한 것 같다.
자동차의 종류,
막히는 시간대와 안 막히는 시간대가
다른 것 같긴 한데,
1시간 정도 걸리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셰레메티예보 공항까지
1-2천 루블 대(약 2만~4만 원 대) 나오는 것 같다.
러시아 출장 가기 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러시아는 남한의 약 170배의 크기에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11개의 시간대가 있다.
(참고로 한국과 일본은 1개의 시간대를 공유하고,
유럽 국가들은 3개의 시간대를 함께 쓴다.)
러시아는 서북쪽에 위치한 모스크바에서
자기 나라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유럽 서쪽 런던이
거리 상 더 가깝다.
그래서 러시아 서남쪽에선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잔혹한 전쟁이 한참이지만,
오히려 외국보다 더 거리가 먼
나머지 지역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그래서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전쟁 지역 및 전쟁 위험 지역은 3-4단계로
방문 및 여행이 금지되어 있지만,
나머지 러시아 영토는 특별여행주의보 지역으로
이 엄혹한 전쟁 중에도 방문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업하는 분들,
교환학생들,
러시아 관련 연구하는 선생님들은
전쟁 후에도
자기 본업을 하러 다들 러시아를 간다.
한국인의 러시아 비자 발급에도 문제가 없다.
전쟁 초기에는
경제제재에 동참한
한국 사람들을 까다롭게 심사해서
입국심사에 1시간 걸렸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13년 전과 달리
이제는 열손가락 모두 지문을 입력해야 하지만,
이번에 입국심사 자체에는 5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그리고
예전엔 입국심사 전에 출입국 카드를 써야 했는데,
지금은 그들이 알아서 입력해서 주기 때문에,
그거 잘 받아서 여권에 넣고 다니다가,
출국할 때 되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1-2년 전 전쟁 중인 러시아에 방문했던 선배가
'관광객이 없어서 줄 안 서고 박물관 들어갔다'며
쓴웃음을 지었었는데,
나도 주말에 박물관 방문했을 때,
줄 오래 안 서고 금방 입장했다.
관광객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한 사람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구관은
온라인으로 예약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기도 했다.
영토 어딘가에선 전쟁 중이지만,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체로 전쟁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도 그대로이고,
굼(ГУМ) 백화점과
1층에서 파는 아이스크림도 그대로이고,
스탈린 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바국립대학도 그대로,
한겨울 혹한의 모스크바 강도 그대로,
아르바트 거리 “빅토르 최” 추모 벽도 그대로 있고,
필하모니 공연하는 차이코프스키 홀도 여전하고,
화려한 모스크바 지하철 장식들도 그대로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 광장과 에르미타쥬 박물관도 그대로,
꽁꽁 언 겨울의 네바 강도 그대로다.
오히려 13년보다 여러모로 더 좋아졌다.
결제는
휴대전화나 contactless 카드로 다 되고,
생활은 스마트폰 앱과 QR 코드로 다 되어,
오히려 한국보다 더 디지털화된 것 같고,
대중교통 이용도 더 편리하고,
거리와 건물, 지하철은
예전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쾌적하며,
예전과 달리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져서,
별 거 아닌 거에 칭찬하고,
웃음에 지독히도 인색하던 러시아인들이
이제 초면에 이방인인 나에게 미소를 짓는다.
다들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살아가고,
언뜻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만난 러시아 선생님들도
전쟁 얘기는 하지 않는다.
나도 굳이 전쟁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비블리오 글로부스라는 대형서점에 갔더니,
표지에 큰 글씨로 "전쟁의 역사"라고 쓰인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90세 되신 나의 러시아 은사님은
당신이 경험하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의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우크라이나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어린 아이로 체험했던 전쟁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대로에는
2차 대전 중 나치와 900일간 대치하며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갔던
"레닌그라드 봉쇄"를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레닌그라드 봉쇄가 1941-1944년인데,
굳이 2025-2026년에 걸어놓은 건,
지금의 전쟁이 그때처럼
나치와의,
네오나치와의 전쟁이라고
러시아인들이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러시아 방문 준비하면서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그리고 검색한 내용과 실제 겪은 내용이 달라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보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브런치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이 글이 쓸모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전쟁이 빨리 끝나서,
이 글이 정보가 아닌
그냥 역사적 기록의 작디작디작디작은 단편,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