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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an 15. 2017

우주를 닮은, 깊고 짙고 서늘한 바다 헬(Hel)

"You know what? I've been to HEL!!!"


예전에 폴란드 친구가

Hel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폴란드 북쪽에 Hel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 자체엔 딱히 볼 게 없지만,

좁고 길게 튀어나온 곶(cape)이라

거기 가는 길이 신기하다고,


Hel로 가는 기찻길이 바다 바로 옆에 있어서

(이 부분을 묘사하면서는

두 손바닥을 마주보게 한 후

거의 1센티미터 떨어질까 말까 하게

아주 가깝게 놓았다)

기차가 바다에 딱 붙어 달리는 그 경험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중에 한 번 꼭

Hel이라는 델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다에 딱 붙어 달리는 그 기차의

특별한 체험이 뭔지 궁금했고,


또 하나는

그 심상치 않은 Hel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거기 다녀와서 나중에 외국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테니까.


"You know what? I have been to HEL!!!"




2013년에 별다른 사전조사 없이 그단스크 가서,

그 옆 소폿(Sopot)이라는 휴양도시를 갔을 때,

그곳에서

헬(Hel)까지 가는 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런 걸 알게 되는 순간은,

항상 그렇듯이,

이미 막배가 떠나고

이제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을 때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소폿(Sopot) 옆에 있는

그디니아(Gdynia)라는 도시를 갔는데,

거기에선 내 친구가 말했던,

바로 그 헬(Hel)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그 때 잘못 본 건지,

아니면 그 때는 그랬는지,

그 헬(Hel) 가는 기차가 하루에 몇 대 없는 와중에

그나마 역시 마지막 열차가 떠난 후였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2013년에

꽉찬 2박 3일 일정으로 그단스크 가서

소폿도 가고, 그디니아도 가고, 올리바도 갔으니

사실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온 건데,


그 때는

결국 헬(Hel)에 가지 못한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가지 못한 것도 가지 못한 거지만,

뭔가 계속 바로 눈 앞에서 놓치고 만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더욱더 갈망하게 됐나 보다.

 

그래서 2016년 여름에 그단스크 갈 때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가 바로 헬(Hel)이었다.


더군다나

2016년에 가장 많이 듣고 봤던 단어 중 하나가

헬조선이니

헬(Hel)이라는 지명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왠지 친숙한 느낌이었다.


그런데다 헬(Hel)도 반도다.


그렇게

2016년 여름

Hell을 떠나온 나는,

Hel을 찾아 떠났다.




폴란드 북단,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헬(Hel) 주변 지도는 다음과 같다.

아래 지도에서 초록 나뭇잎으로 표시된 부분은

소도시 Hel 이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고 가는 곶(cape) 전체가

지역 Hel이다.


(지도 출처:http://holidays.staypoland.com/gdansk-bay-hel-peninsula.aspx)


헬(Hel)을 가는 방법은 크게 셋인데,


하나는 내 친구가 말해준 것처럼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

[위 지도에서 검정색 점선이 기찻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직접 차를 운전하고 가는 방법,

[위 지도에서 주황색 실선이다]


마지막 방법은

그단스크, 소폿, 그디니아에서

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이 중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이

가장 물리적 거리도 짧고,

시간도 짧게 걸려,


"그단스크-헬"은 편도로 약 2시간,

"소폿-헬"은 편도 약 1시간 30분,

"그디니아-헬"은 편도 약 1시간이 걸리며,


요금은 2017년 1월 현재 편도가

그단스크, 소폿, 그디니아에 상관없이

헬까지는 모두

일반 35즈워티(약 만원),

할인 25즈워티(약 7천원)다.


그 루트는 다음과 같다.


(지도 출처: http://www.zegluga.pl/zatoka-gdanska.html)


(그단스크, 소폿, 그디니아-헬 운행 선박 회사 링크)


나는 내 친구의 묘사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우선 기차를 타기로 했다.


갈 때는 기차를 타고

올 때는 배를 타보면 되겠다 생각하고

헬(Hel)로 가는 편도 기차표를 끊었다.


헬(Hel)로 가는 기차는

그디니아 주기차역(Gdynia Główna)에서 탄다.


2013년 여름에 봤을 땐

열차편이 몇 개 없던 것 같은데,

2016년 8월에 보니

생각보다 기차편이 많고

가는 데 시간도 오래 안 걸린다.


그디니아 주기차역(Gdynia Główna)에서

1시간 2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고,

1-2시간에 한 대씩 열차가 있었다.


2016년에는 폴란드 북부에 5박 6일 있으면서,

그단스크, 소폿, 카르투지

차례차례로 숙소를 잡고

조금씩 조금씩 서쪽으로 움직였는데,

그단스크 세번째 날 아침 일찍

휴양도시인 소폿(Sopot)으로 가

거기 호텔에 짐을 풀고,

거기서 그디니아(Gdynia)까지 가서

헬(Hel) 가는 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이렇게 말로 하면 사실 좀 루트가 복잡해보이는데,


도시고속철도 SKM을 타면

그단스크, 소폿, 그디니아,

삼원도시(Trójmiasto, Tricity)

그 주변 소도시를 쉽고 빠르게 오고 갈 수 있다.


지금 찾아보니,

"그단스크-소폿"은

SKM으로 20분 걸리고 4즈워티(약 1000원),

"소폿-그디니아"는

13분 걸리고 4즈워티가 든다.


2016년 여름

그단스크 시내 트램 요금이 3.80 즈워티였으니까

요금도 거의 비슷하고,

SKM은 우리로 치면

"좀 더 가깝고 빠른 국철" 정도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그래서 아침 일찍 SKM을 타고

소폿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짐 풀고 서둘러 나가려 하니,

프런트에서 접수하는 분이 어디 가냐고 묻는다.


헬(Hel) 간다니까,

"와, 이렇게 날씨 좋은데?!!"라며

좀 부러운 듯 반응한다.


예전엔 좋은 데서 일하니까 좋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때 문득

남들 다 노는 시즌에

관광지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 일이겠다 싶었다.


그 프런트에서 일하시는 분이

밤 12시가 되면 출입문을 잠글테니,

누르고 들어오라며 비밀번호를 쪽지에 적어줬다.


'12시 넘어서 들어올 일이 없을텐데...'


생각하며

그 비밀번호를 주머니에 넣고 호텔을 나와

기차 출발 시간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길래

소폿 바닷가를 좀 걷다가

기차역으로 올라왔다.  


근데 그 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소폿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미리 기차표를 샀었어야 했는데,

아님 호텔 체크인하고

소폿 바닷가를 걷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때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보다.


원래는 소폿에서

 "소폿-그디니아" SKM과 "그디니아-헬" 기차표를 한꺼번에 살 생각이었는데,


아침과 달리 이제 소폿(Sopot) 기차역은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계속 서도 줄은 안 줄어서,


포기하고

결국은 SKM을 타고 우선 그디니아(Gdynia)로 가서,

거기서 헬(Hel)가는 기차표를 사기로 했다.


좀 더 큰 기차역인

그디니아 주기차역(Gdynia Główna)

창구가 많아 사정이 좀 더 나았지만,

그래도 줄은 서야해서,

결국

1시 반 좀 넘어 출발하는 기차를

거의 10분 정도의,

정말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다음 기차는 1시간 반-2시간 정도 후에 출발이었다.


그 기차를 타고

오후 3-4시에 출발하면,

너무 늦지 않을까?


아, 뭔가 2013년의 데쟈뷰를 보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헬(Hel) 가기가 힘든걸까?


소폿(Sopot)에 이틀 있을 예정이어서

그냥 '그 다음 날 갈까'도 잠깐 생각해봤는데,


그 담날 날씨가 이렇게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담날은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좀 늦게 출발하는 거라도

그냥 그 기차를 타고 가야겠다 싶었다.


안 그러면 올해도 못 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헬(Hel) 가는

가장 빠른 다음 기차 티켓을 구매하고,

열차 출발하기 전 중간에 뜨는

1시간-1시간 반 동안엔

2013년에 가봤던,

그래서 2016년엔 딱히 갈 생각이 없던

그디니아(Gdynia) 시내를 걸어

바다를 살짝, 정말 아주 짧게 보고 왔다.




아, 근데

그디니아 역에서

"그디니아(Gdynia) - 헬(Hel)" 기차표를 살 때는

줄을 잘 서야 한다.


기차역에

세 가지 종류의 매표소가 있는데,

1. PKP intercity (인터시티) : 폴란드 전역의 도시 연결

2. PKP SKM(도시 고속 철도) : "그단스크"-"소폿"-"그디니아" 삼원도시 연결

3. PKP Przewozy Regionalne (PR) (지역 운송) : 이 지역 도시/마을 연결

중에서


"그디니아(Gdynia) - 헬(Hel)" 기차표는

Przewozy Regionalne (PR)라고

쓰여진 매표소에서 살 수 있다.


PKP intercity

크라쿠프나 바르샤바 같은

다른 먼 도시 가는 기차 탈 때,

PKP SKM

그단스크, 그디니아, 소폿이라는 삼원도시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기차 표를 사는 곳이다.


난 소폿에서

"줄이 짧은" PKP SKM 매표소에 서 있다가

결국 내 차례가 되었는데,

"그건 저 쪽에서 사야한다"는 말을 듣고

옆 줄로 옮겨서 다시 줄을 서야 하기도 했었다.


근데 이건 시스템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과분화" 현상인 것 같은 것이,


오히려

자그마한 헬(Hel) 기차역에서는

그냥 한 줄을 서면

열차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작은 역이 발권이 더 편했다.


아마 다른 작은 기차역들에서도 다 그럴 것 같다.


그러고보면

기술의 발달과 시스템의 분화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아마 이 시스템 분화의 과도기를 지나면,

그디니아, 그단스크, 소폿 같이 좀 더 큰 역에서도

이제 곧 발권 시스템이 통합되고

더 빠르고 더 편리해지지 않을까 싶다.


기차표는 이렇게 생겼다.


어림잡아

세로 7cm*가로 10cm 안팎의 크기인 것 같다.


헬(Hel)로 갈 때는

Przewozy Regionalne (지역운송)를 타고

헬(Hel)에서 올 때는

PKP intercity(인터시티)를 탔다.


Przewozy Regionalne (지역운송) 표는

17.10즈워티(약 5,000원)이고

좌석은 따로 안 정해져서

일찍 가서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PKP intercity(인터시티) 표는

24.00 즈워티(약 7,000원)이었다.


(2016년 8월, "Gdynia-Hel", "Hel-Gdynia" 기차표, Poland)




그렇게 나중에 겪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또 그걸 겪고 있는 와중에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장벽이 되는,

그런 소소한 우여곡절 끝에

헬(Hel) 행 기차에 올랐다.


그디니아에서 헬까지 가는

Przewozy Regionalne (지역운송)기차는

기차 자체가 아주 최신식이었고

쾌적하고 승차감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근데 내가 탄 것만 유독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노선의 기차가 대체로 그럴 것 같다.


지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2016년 8월에 내가 탔을 때보다

2017년 1월 현재 "그디니아-헬" 노선에

기차편수가 훨씬 더 많다.


내가 표 사느라 애를 먹었던 그 시간대엔

한 시간에 두세 대가 다니기도 한다.

아마도 이 노선에 운행되는 기차가

점점 증차되는 중인가보다.

그래서

2013년 8월보다는

2016년 8월에 기차 편수가 더 많았고,

2016년 8월보다는

2017년 1월이 더 편수가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폴란드 정부에서 헬(Hel)을

관광자원으로 더 개발하려고

운송수단에 투자를 좀 더 많이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헬(Hel)에 갔던 그 날에 유독 이용객이 많아서

기차표가 거의 다 매진되고

1시간 반-2시간 후 기차표를 사야했을 수도 있지만,


만약 헬로 가는 차편 자체가 점점 증차되는 거라면,

자연 파괴하지 않으면서

관광지로 잘 개발해서,

더 많은 사람이

헬(Hel)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열차편은 여기서 검색해볼 수 있다.


근데

이 날 날씨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툭 튀어나올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하고 좋은 날씨였기 때문에

아마도 유독 더했기는 했겠지만,

가는 길에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근사하다.


하늘도 아름답고,

들판도 아름답다.


그리고

이제 그 쫌스럽고 밋밋한 우여곡절 따윈 잊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오길 잘했다는 성급한 평가를 내린다.


그런데 내 친구가 말했던

기찻길 바로 옆의 바다는 기대보다

덜 감동적이었다.


우선은

내가 앉아 있던 쪽이 바다 쪽이 아니어서 그랬지만,

내 좌석이 바다 쪽이었다 하더라도

생각보다 기찻길이 바다와 많이 붙어있지 않아

크게 감동 받았을 것 같지 않다.


한국에서 꽤 오래 생활한 내 폴란드 친구가

아직 정동진 가는 기차를 안 타 본 게 분명하다.


정동진보다 덜 붙어 있고,

정동진보다 바다가 보이는 시간이 짧다.


근데

바다 아니어도

그냥 흔한 차창 밖 풍경이 그렇게 근사할 수 없다.


나무가 우거진 초록 숲길도 지나가고,

뭉게뭉게 구름 낀 파란 하늘과

들판도 널찍널찍 시원시원하다.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여긴 조선소였다.)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동영상 1: Gdynia-Hel 기차 차창 풍경 1)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동영상 2: Gdynia-Hel 기차 차창 밖 풍경)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동영상 3: Gdynia-Hel 차창 밖 풍경 3)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동영상4: Gdynia-Hel 차창 밖 풍경 4 - 숲길)

(2016년 8월, Gdynia발 Hel행 기차, Poland)


그렇게 5시가 다 되어 헬(Hel)에 도착했다.


원래 그디니아(Gdynia)에서 출발할 때는

'돌아올 때는 배를 타봐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 기차가 맘에 들어서

돌아갈 때도 기차를 탈려고

줄을 서서 돌아가는 기차표를 샀다.


어차피 호텔 비밀번호도 가지고 있으니

12시 넘어 숙소에 도착해도 되고,

느지막이 헬(Hel)에 도착했으니

가능한한 오래 머무를 요량으로

제일 마지막 기차표를 달라고 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는 기차는

밤 9시 반 정도 출발하고

그 기차엔 앉아가는 표가 없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산 "헬(Hel)-그디니아(Gdynia)"표는

PKP intercity였고,


그런 기차엔

일반 유럽 기차와 마찬가지로

기다란 복도 옆에 쿠페(coupé)가 여러 칸 들어있고

그 쿠페 안에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데,

그 좌석이 벌써 다 팔린 거였다.


뭐 "입석"도 한번 타보지  싶어,

그걸 사고 기차역을 나왔다.




해가 벌써 많이 내려 왔지만

그래도 아직

날씨는 맑고,

태양은 쨍쨍하고,

구름은 포실포실하고,

낮은 한창이다.


(2016년 8월, Hel 기차역, Poland)
(2016년 8월, Hel기차역, Poland, 뒤에 보이는 기차가 Hel-Gdynia를 운행하는 PR기차다.)


기차역 옆에 있는 헬(Hel) 지도를 보니

그냥 한쪽 방향으로 가면 되나보다.


(2016년 8월, Hel, Poland)


헬(Hel)은 폴란드 북부 발트 연안에 있는

기다란 반도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반도 끝에 있는 소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헬(Hel)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다.


폴란드어 위키피디어에 보면,

고대폴란드어로 Hel은

 '모래 언덕, 황무지'라는 의미여서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또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영어와 마찬가지로 '구두의 힐'을 의미하는

덴마크어 Heel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설도 있고,  


추위와 연관된,

북구의 '지옥의 여신' Hel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우린 지옥을 불구덩이라고 생각하는데,

북구 사람들은 "추운 곳"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신기하다.


나는 아무래도 Helsinki와 연관이 있지 않나 싶어,

Helsinki의 어원을 따로 찾아보니,

Helsinki의 Hel-은

'목', '강의 좁은 부분' 또는 '여울, 급류'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hals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폴란드의 반도 헬(Hel)의 생김새를 보면

목과도 비슷해 보이는데,

Hel은

스웨덴보다는 덴마크인들과 접촉이 더 많았던지,

헬(Hel)의 어원에는 그런 설명이 없다.


아무튼

헬(Hel)지옥(Hell)

어원적으로 연관될 가능성도 있는 건데,


헬(Hel)이 좀 추워서

딱히 천국 같다 하긴 어렵지만,

(물론 찌는 듯한 여름 한낮에 그 서늘함이야말로

천국의 가장 중요한 증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옥과는 한참 멀어보인다.


지옥에 반대되는 아름답고 쾌적한 곳이다.


오히려 헬의 바다는

하늘과 더 가까이 있으면서,

하늘과 닮았다.


내 폴란드 친구가

자기는 헬(Hel)을 좋아하지만,

볼 건 별로 없다고 그랬기 때문에,


그리고

난 헬에 올 때 타고 온 기차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그리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별다른 기대하지 않고

지도에 나온 곳을 사심없이 걸어다니는데,


이 헬(Hel)이라는 동네

볼수록 너무 맘에 든다.


우선은 바다쪽 말고 내륙쪽을 좀 걸어가봤다.


그러다가

성체 성당(Parafia Bożego Ciała)이라는 이름의

성당도 하나 발견했는데,

다른 폴란드 성당과 많이 다르게 생겼다 했더니,

20세기 초반에 세워진 거라 한다.


(2016년 8월, Hel, Poland)


군사 역사 루트(Szlak Historii Militarnej)라는 것도 가다 발견했다.


폴란드 최북단 지역인 Hel은

폴란드 해군 기지가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


이 루트는

일반인들이 군, 전쟁, 전투와 관련된 박물관을 보고,

여러 관련시설을 볼 수 있는 자동차 루트인데,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돌아볼 수 있다.


나는 물론 자동차도 없었고

시간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2016년 8월, Hel, Poland)


더 이상 뭍에서는

딱히 재미있는 구경 거리가 없어 보이길래,

바다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 길은 그냥 한국에나 다른 나라에나 있는

그런 친근한 느낌의 바닷가 동네 같다.


근데 희안한 건,

실제 몸이 느끼는 것과 관련 없이,

그 마음이 오랫동안 담아온

"남쪽", "따뜻한 곳" 이미지가 강한,

바다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지,


여기는 "북쪽"이고, "추운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 동네에서는

이상하게 "남쪽" 느낌이 난다.


어떤 집 앞에 활짝 피어 있는 커다란 꽃도

왠지 한국의 남쪽에서 자생할 것 같은

그런 꽃같이 생겼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그리고 이제 드디어

바다로 나왔는데,


요트가 몇 대 정박되어 있는 건

좀 이색적이긴 하지만,

고깃배처럼 보이는 투박한 배와

방파제와

등대가 있는 뻔한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흔하디 흔한 항구와 달리

여긴 뭔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 매섭디 매서운 바닷바람과

차갑디 차가워 보이는 진파랑 혹은 남색 바다가

뭉실뭉실 구름과

파란색 하늘,

그리고

이제 한참 수평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하지만 아직도 한낮의 기세를 잃지 않고 있는

눈부신 태양을 만나니

그렇게 멋있을 수 없다.


태양빛에,

그리고

그것과 닿을 듯 말듯

아주 가까이서 그것을 담은 바닷빛에

눈이 부셔 눈을 잘 뜰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쩜 그래서 더더욱

"눈부시게" 아름답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선은 등대 쪽으로 걸었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동영상도 찍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바람 소리가 크게 난다.


(동영상 5: Hel 항구 좌우)

(2016년 8월, Hel, Poland)

(동영상 6: Hel 항구 상하)

(2016년 8월, Hel, Poland)

(동영상 7: Hel 등대 근처 바다)

(2016년 8월, Hel, Poland)


요트가 정박된 쪽으로도 방파제 길이 있길래

그 쪽으로도 걸어갔다.


헬(Hel) 가는 길에 기차 안에서,

기차역에서,

그리고 헬(Hel) 곳곳에서

나 말고 다른 동양인은 한 명도 못보고

폴란드어 아닌

다른 나라 말을 하는 서양인도 못 봤는데,

여기 정박된 요트들은

폴란드뿐 아니라 북유럽 곳곳에서 온 것이다.


물론 내가 너무 늦게 가서

다른 관광객들과 방문 시간대가

안 맞았을 수 있겠지만,


바닷가를 거닐면서


'이렇게 괜찮은 데, 왜 외국인 관광객이 없나?'


의아해 했는데,

그나마

북구 사람 중에는 여길 방문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도 요트 타고 오나보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멀리서 봤을 때

피지 않은 연꽃처럼 생긴 희안한 건물이 보여서

궁금해서 다가갔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근사하게 생기지도 않고,

특별한 곳도 아니었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그런데 그 꽃봉오리처럼 생긴 곳에서

그단스크, 소폿, 그디니아 가는

배 티켓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걸어가니

마침 그단스크 가는 배가 정박해 있는 게 보인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그런데 그 배에 가까이 가서

그 배와 거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 배에 타지 않길 잘했다는,

돌아가는 기차표를 예매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냥 내 느낌인지 모르지만,


혹시나 실제로 그렇다면

그건 왜 그렇게 했는지,

혹은

하필 그 때 왜 그랬는지는 설명할 순 없지만,


이 방파제와 맞닿는

발트해의 짙고 깊은 바닷물의 수면이

유난히 높이 올라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곧 넘쳐서

방파제 위로 바닷물이 올라오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

배는 너무 낮은 것 같고,

배에 탄 사람들이 너무 낮은 곳에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배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열린 창문으로 바닷물이 출렁출렁 넘어들어가

배가 곧 잠길 것 같은 느낌에

공포가 엄습했다.


바닷가엔 세찬 바닷바람이 윙윙 불고,

바다는 유난히도 짙고, 깊고, 또 차가와보였다.


거기 빠지면 얼마나 차가울까,

세월호에 갇혔던 그 아이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러웠고,

그런 비극을 정치적으로 몰고가고 있는 상황이,

이제 지겹다고, 그만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의 몰인정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나의 가장 크거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는데,


그 새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배를 보는 바로 그 순간

바닷 속에 빠지는 상상을 하며 두려움을 느끼다니,


유가족뿐 아니라, 생존자뿐 아니라

그걸 티비로 계속 가슴졸이며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그건 무지하게 큰 상처였나보다.


그걸 제대로 치유하지 않고 대충 덮어놨더니,

2년이 지났는데도

비슷한 상황에서

거기가 다시 아프기 시작하다니,


한편으로 사람 마음이라는 게 신기하고,

한편으로 무섭고,

그리고 한편으로 서글프고 답답하면서,


아주 많이 몸과 마음이 서늘했다.


내가 한국에 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자기도 그랬을 것 같다고 공감했다.


아래 동영상은 등대 옆 바다에서 찍은 건데,

이걸 보니

다시 그 때 그 서늘한 느낌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동영상 8: Hel 연안 발트해)

(2016년 8월, Hel, Poland)


그단스크행 배는

그렇게 "불안하게"(?) 헬(Hel)을 떠났지만,

다행히 그날 배사고에 대한 뉴스는 없었다.


그 배의 선실이 유난히 낮아 보였던 건

단지 내 맘 속의 곪아있던 집단 상처에서 삐쳐나온 두려움 때문이었나보다.


나는 다시 방파제 옆을 따라

긴 길을 되돌아 걸어나왔다.


이제 해는 더 많이 바다에 가까와졌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방파제 옆에는 백사장이 있다.


일종의 해수욕장인데

그냥 서 있어도 추운 그런 날

그리고 이제 해도 많이 저문 그런 시간에

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바닷가 풍경도 멋지고,

바닷소리도 정겹고 한 그 바닷가 곳곳에는

모래밭과

그 바깥 도로 위 난간

그리고 지붕 덥힌 나무 정자에 앉은 사람들이

바다를

그리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앉았다가 걷다가 또 섰다가 걷다 하면서

그 해변을 걸었는데,


그 해변과

해지는 풍경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분명히 내 폴란드 친구는

거기 별로 볼 게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너무 기대할까봐,

그리고 "폴란드 사람스럽게"

그 친구가 좀 비관적으로 이야기를 한 건지,


내가 그날 운이 좋아서

유난히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건지,


아님 내가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아

만족감이 유난히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 이 헬(Hel)의 바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이 백사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2016년 8월, Hel, Poland)


박물관 건물도 뭔가 예사롭지 않다.

어업 박물관 또는 낚시 박물관(Muzeum Rybołówstwa, Fisheries Museum)으로,

14세기 지어진 성 베드로 바오로 성당 건물을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동영상 9: Hel 석양의 모래해변 1)

(2016년 8월, Hel, Poland)

(동영상10: Hel 모래해변 2)

(2016년 8월, Hel, Poland)


바다도, 그리고 석양도 너무 아름다운데,

뒤를 돌아보니,

그림을 오려낸 것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여긴 그냥 평범한 주택가인데,

연하늘색 하늘과 연녹색 들판 사이의 빨강 지붕이

힘을 잃어가며 마지막 잔광을 발산하고 있는

태양빛을 흠뻑 받으니,

색 하나하나가 묘하게 선명해지더니

그냥 그렇게 그림이 된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아래 조형물은

베드로 소성당(kapliczka św. Piotra)인데,

그 옆에 나와 있는 설명에 따르면

베드로는 오랫동안 헬(Hel)의 수호성인이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14년 우표에 그의 모습이 새겨진 것이라고 하니

아마 베드로가 Hel의 수호성인이 된 건

1414년 이전이었을 것이다.


그 설명 밑에는 다음 성경구절이 덧붙여 있다.


Ty jesteś Piotr (czyli Skała) i na tej skale zbuduję Kościół mój, a bramy piekielne go nie przemogą. I tobie dam klucze królestwa niebieskiego, cokolwiek zwiążesz na ziemi, będzie związane w niebie, a co rozwiążesz na ziemi, będzie rozwiązane w niebie. (Mt 16, 18-19).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오복음 16: 18-19, 가톨릭 성경)
(2016년 8월, Hel, Poland)


그래서 헬(Hel)의 문장에는

베드로의 열쇠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베드로의 열쇠 옆의 두 개의 별

이 문장이 만들어질 당시의 두 개의 헬(Hel),

즉, 구 헬(Stary Hel)과 신 헬(Nowy Hel)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열쇠로 인해,

발트해의 곶(cape)인 헬(Hel)은

"그단스크 만(gulf)의 열쇠(Klucz do Zatoki Gdańskiej)"로도 불린다고 한다.


(그림 출처: http://www.gohel.pl/strona-158-herb_helu.html)


그 바닷가에서 안 쪽으로 들어오면

양쪽으로 상가가 쭈욱 늘어서 있다.

기념품 가게, 카페, 식당, 낚시용품점 등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2016년 8월, Hel, Poland)


저녁을 먹으러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여름인데도 날씨가 추워서

이렇게 난로를 피워주고 있었고,

고기잡는 어망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유리 지붕 밑에 걸려 있었고,

한 켠에서는 어떤 남자가

기타를 치며 폴란드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뭔가 묘하게 이국적이면서도 또 익숙하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기차를 타러 밖으로 나왔는데,

이제 해가 완전히 져서 하늘이 깜깜하다.


뭔가 그래도 조금만 더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고 가고 싶어

바다쪽으로 갔는데,


이제 정말 바닷소리 밖에 안 들리는

인적 드믄 고요한 바다가

아주아주 조금 남은

태양의 흔적을 품은 하늘 아래

그렇게 고혹적으로 서 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어지기 바로 직전

그 순간들을 사진에 담고,

곧 하늘과 바다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진파랑의 그 무엇이 되는 바로 그 순간까지

눈에 담고

기차역으로 갔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돌아가는 기차는

폴란드 북서부의 헬(Hel)을 출발해

바르샤바를 거쳐

폴란드 남동부의 제슈프(Rzeszów)라는 도시까지

길고 먼 여정을 떠나는

Intercity(인터시티) 기차였다.


내가 표를 살 때 입석 밖에 없어서

어차피 난 자리가 없으니,

헬(Hel)을 떠나는 기차를 찍고 싶어서

가장 뒷칸에 타서 창문을 향해 섰다.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2016년 8월, Hel, Poland)

(동영상 11: Hel을 출발하는 기차)

(2016년 8월, Hel, Poland)


그렇게 끝까지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거기서 보낸 시간은 만족스러웠다.


그냥 바다 보러,

그냥 기차 타러,

그냥 심상치 않은 그 이름이 맘에 들어 간건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멋진 바다와 하늘과 다른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뭔가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열차 맨 뒷칸에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디니아-헬" 기차 타고갈 때

바다 쪽이던 창에 서 있어서,

바다가 옆에 느껴지긴 하는데,

너무 어두워서 통 보이지를 않는다.


그나마 그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시간마저도

역시 길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람들이 입석표는 기차 안에서도 막 산다.


그니까 그냥 무작정 기차를 탄 후,

차장이 기차에 오르면

차장에게 기차표를 사는거다.


나 앞엣 사람들이 다 그렇게 표를 사니,

차장이 나한테도 표를 팔려고 하다가,

내가 입석표를 보여주니 그냥 갔는데,

나처럼 표 가지고 있는 입석이 별루 없었다.


그리고 그 기차 복도에 접이식 철제의자가 있어서,

접혀 있는 의자를 내리면

거기에 앉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그래도 불편한 좌석이고,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다닐 때마다

일어나야 해서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기차는 느릿느릿,

그리고 작은 역에도 오래오래 정차했다 출발해서

"그디니아-헬"로 갈 때보다

"헬-그디니아'로 올 때 30-50분은 더 걸린 것 같다.


거기서 소폿 역

(내 숙소에선 소폿 중앙역보다

그 옆의 역이 더 가까워서 거기서 내렸다)

까지 SKM를 타고 가니

밤 12시가 넘었다.


(2016년 8월, Sopot, Poland)


12시가 넘어서 호텔에 돌아오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결국 호텔에서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용조용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만약 좀 더 일찍 헬(Hel) 가는 기차를 탔으면 어땠을까?


뭔가 좀 더 많이 구경하고,

더 많은 데를 가보고,

좀 더 많이 사진을 찍었겠지만,


그래서

그게 꼭 더 많이 좋았을 것 같진 않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디를 얼마나 많이 "가는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보다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만나고"

무엇을 "느끼는가"

가 더 중요해지는데,


내가 헬(Hel)에 머무르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래서

내가 헬(Hel)을 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가는 길부터

오는 길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벅찼고,


거기 있으면서

내 깊은 곳에 있는 생각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났고,

또 내 눈 앞에 펼쳐진,

그리고

나를 둘러싼 그 멋진 자연에 충분히 감흥했다.


7월에 자코파네 타트라산 카스프로비 봉에 올라

받은 그것과 비슷한 위안을

8월 폴란드 땅끝마을 헬(Hel)을 감싸 안은

발트해 바다에서 받았다.


어쩌면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내 폴란드 친구도

헬(Hel)에 대해서 묘사할 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자기는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내가 그 때 느꼈던 그런 만족감을,

한국어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 느낌을

영어로 과연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아마 표현하지 못할 게 확실하지만,


이제

내가 만약


"You know what? I have been to HEL!!"


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Hel과 Hell 사이의 pun 이상의 것을

말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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