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단스크의 현재와 과거를 가르는 모트와바 강
2013년 여름 내가 그단스크를 갈까 한다 했더니
바르샤바 홈스테이 여주인이
활짝 웃으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그단스크라고 했었다.
그녀는 바르샤바도 아니고 그단스크도 아닌
폴란드 동쪽의 소도시 출신인데,
(그 집에서 그 지도를 봤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폴란드 사람들에게도
그단스크는 아름답고 특별하게 느껴지나보다.
2013년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그단스크에 갔다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서
2016년 여름에 폴란드에 갔을 때도
또 그단스크를 갔다.
다음에 또 폴란드에 오래 머무를 기회가 생기면,
아마 또 그단스크를 갈거다.
바다가 좋고
또 그 옆에 있는 그단스크가 좋고,
또 그단스크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그 근방의 도시들이 좋아서다.
그단스크는 항구도시지만
그단스크 안에서 관광객들은 사실
바다와 직접 대면할 기회가 별로 없다.
대신 그들은
그단스크의 모든 구시가길들이 그곳을 향해 달리는,
모트와바(Motława) 강변에서
바다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진짜 바다와 직접 만나려면 20-30분 정도
도시고속철도 SKM을 타고
소폿(Sopot)이나 그디니아(Gdynia)로 가야한다.
2013년 그단스크가
북쪽 발트해 연안의 도시라는 것만 알고 갔을 때,
난 그 구시가길 동쪽에 흐르는 그 물이
발트해인 줄 알았다.
발트해는 염도가 매우 낮다는데,
정말 내가 가 본 발트해 연안의 도시들,
상트 페테르부르그, 헬싱키, 투르쿠, 스톡홀름, 탈린에서 맡은 바다 냄새엔 짠내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단스크 구시가가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그 물에서
비릿한 짠내가 안나도
그것이 바닷물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곤
의심하지 않았다.
그단스크가 발트해 연안에 있는 도시니,
그 물이 당연히 발트해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긴 그단스크 북단도 아니고,
발트해도 아니고,
그단스크 구시가 동쪽을 흐르는
모트와바(Motława) 강이었고,
발트해는 거기서 한참을 북쪽으로 가야 나온다.
하지만 바다를 그리워하는 건
그것의 이름이 바다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끝없이 넓고 깊은, 닿을 수 없는,
무한대로 수렴하는 그 무엇이어서이므로,
결국은 그런 발트해와 만나게 되는,
발트해로 나가는 여객선에
오르고 내리는 선착장이 있는,
바다로 나가는 입구이자 출구인,
깊고 짙은 모트와바(Motława)강은
나에게 바다나 마찬가지였다.
동서로 길게 난 그단스크의 구시가길은 모두
모트와바(Motława)강을 향해 흐르는데,
이 강의 서쪽 강변은 그단스크의 먼 과거를
이 강의 동쪽 강변은 그단스크의 현재,
혹은 가까운 과거를 담고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 둘러본
구시가 기다란 시장(Długi Targ, Long Market) 끝,
녹색 문(Brama Zielona)을 나서면
녹색 다리 (Zielony Most) 위에 서게 되는데,
그 다리에서 북쪽으로 쭈욱,
모트와바(Motława)강 서쪽 강변으로는
옛스런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노라마 사진도 찍었는데,
세 번만에야 겨우겨우 성공했다.
휴대폰으로도 파노라마를 몇 컷 찍었는데,
너무 용량이 커서 Brunch에는 안 올라간다.
그단스크 모트와바 강변 서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뭐니뭐니해도 크레인(Żuraw, The Crane)이다.
기다란 시장(Długi Targ, Long Market)의
넵투누스 동상과 더불어
그단스크 구시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이 크레인은 14세기에 처음 세워졌으나 불에 타
15세기에 지금의 형상으로 다시 만들어졌고,
19세기 중반까지 작동을 했으며,
그단스크의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레인이었으며,
지금은
유럽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항구 크레인이다.
안에서 사람들이 직접 커다란 바퀴를 돌려
작동하는 시스템이었고,
선박에 짐을 싣고 내리거나,
배의 돛을 들어올려주는 기능을 주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국립해양박물관(Narodowe Muzeum Morskie,
National Maritime Museum)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으며,
바로 옆에 현대적인 해양박물관 건물이 붙어 있다.
영어 단어 crane이
"학, 두루미" 같은 새를 의미함과 동시에
"크레인"을 가리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어 단어 żuraw [쥬라프]도
두 가지를 모두 가리킨다.
그래서 이 크레인 꼭대기에는
학인지 두루미인지,
비전문가인 나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새 모양 장식이 있다.
좀 더 북쪽으로 걸어가면
전면의 커다란 통유리창이 눈길을 사로잡는
해양문화센터(Ośrodek Kultury Morskiej)도 있다.
이것도 국립해양박물관의 일부다.
들어가보지 않아서 어떤지 알 수는 없으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설명만 봐서는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체험식 박물관인 것 같다.
모트와바 강변 서쪽에 있는 다른 건물 중에
크게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듯 보이는
건물은 없고,
1층은 대체로 카페나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건물 자체는 구시가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풍스럽다.
구시가의 일부인 여기에도 역시
7-8월에는 성 도미니크 장터가 선다.
이렇게 서쪽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갑자기 강변 길이 오른쪽으로 꺾어지면서
그 꺾어지는 부분 뒤로 뭔가 눈에 익은
고딕양식의 벽돌탑이 등장한다.
바로 백조 탑(Baszta Łabędź, Swan Tower)이다.
14세기 후반에 세워졌고,
그단스크 중세시대 성채 중에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폴란드 해양 클럽(Polski Klub Morski)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앞에는 바다로 가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강 건너편으로는 발틱 필하모니(Filharmonia Bałtycka, Polish Baltic Philharmonic) 건물이 보인다.
백조 탑 뒤로는
공산시대에 세워진 듯 보이는 기념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폴란드 함장 지우코프스키(Tadeusz Ziółkowski)의 동상이다.
사진에 찍힌 동상 위의 새는 동상의 일부가 아니라,
지금 잠깐 날아와 앉아 있는 중이다.
또 하나는 폴란드 땅 그단스크를 위해 투쟁한 이들 기념비(Pomnik Tym co za polskość Gdańska)다.
이 기념비는 직역하면 "그단스크의 폴란드성(=폴란드스러움)을 위한 사람들 기념비"인데,
1308년 독일 튜턴 기사단이 그단스크를 침략하여
많은 폴란드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그단스크를 차지하였을 때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여름에는 이 길 뒤로
지난 포스트에서 봤던 야첵 탑 있는 곳까지
길게 중고물품 장터가 펼쳐진다.
내가 백조 탑 앞에 갔을 때는
누가 일부러 그 앞에 가져다 놨는지,
아니면 이 앞에 원래 백조가 많아서
그 탑 이름이 백조가 된 건지,
마침
강가에 백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폴란드 사람들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동영상:백조 탑 앞의 백조)
이제 모트와바 강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갈려면,
아래 지도에서 붉은 색 네모로 표시한 곳에 있는
녹색 다리(Zielony Most)를 지나야 한다.
지도의 붉은 네모가 녹색 문과 녹색 다리,
파란색 네모 중 위의 것이 필하모니,
아래가 요트선착장이다.
모트와바 강변 동쪽엔
보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지도에서도 알 수 있듯,
모트와바 강변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두 개의 섬이 보이는데,
왼쪽과 오른쪽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왼쪽 섬엔 근사한 발틱 필하모니 건물,
그리고 그 섬 뒤로 요트와 고급 아파트들이 보이고,
오른쪽엔 황량한 폐허 같은 공간 위에
한참 공사가 진행중이기도 해서
무언가 풍족함과 부족함이 극한 대조를 이룬다.
2013년에 폐허였던 공간의 한 귀퉁이에
2016년에는 관람차가 생겼다.
다른 놀이 기구 없이 딱 이것만 있다.
그단스크 주민들에게는
의미 있는 이정표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단스크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단스크 둘째날 아침에 가까이 가봤더니,
아직 개장하기 전
점검이 한창이었다.
그걸 보니
괜히 이 놀이기구의 안정성에 신뢰가 갔다.
하지만 여전히 딱히 타보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녹색문 앞의 녹색 다리를 건너면
곡물창고 섬(Wyspa Spichrzów)이 나오는데
[위 지도에서 녹색 네모로 표시한 부분이고,
지도에 붉은 색 동그라미로 표시한 부분이
이 섬 북쪽에 있는 관람차다]
그 섬 위에 동서로 난 길을 쭉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면
이 길에서도
구시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옛날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여기도 사실 구시가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이 길의 동쪽 끝에는
스통기에브나 문(Brama Stągiewna)이 서 있는데
"우유통 문"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중세식 벽돌 건축은
비슷하게 생긴
다른 그단스크의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구시가의 경계를 표시한다.
지금은 폴란드 플라스틱 아트 예술가 조합
(Spółdzielnia Pracy Twórczej Polskich Artystów Plastyków ARPO)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통기에브나 문(Brama Stągiewna)옆에는
같은 이름의 작은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다시 모트와바 강변을,
이번엔 동쪽 강변을 걸을 수 있다.
이 다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또 다시
왼쪽과 오른쪽이 심한 불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오른쪽엔 요트와 고급 아파트가
왼쪽엔 아직 개발이 다 안 된,
거의 폐허에 가까운 공지가 보인다.
여기서보면
폐허 뒤의 관람차가 꽤 고급스러워보이기까지하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방치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걸 짓기 전 과도기 상태인 것처럼 보여서
아마도 몇 년 후 다시 가면
또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
그것이 개선이 될지, 개악이 될지는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모트와바 강 서쪽 강변의 건물들을
많이 가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저 흰색 관람차보다는
훨씬 보기 좋고, 의미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요트는 역시나 이곳에서도 부의 상징이라
요트가 정박한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보트의 소유주만,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게
꽁꽁 잠겨있다.
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조형물도 보인다.
아마도 이 길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건 꽤
최근의 일인가 보다.
요트로 장식된 모트와바 강변 동쪽을 걷다보면
두 가지 갈림길이 나오는데,
하나는 필하모니가 있는
오워비안카(Ołowianka) 섬으로 가는 길,
또 다른 하나는 지금 걷던 그 동네를
강변 아닌, 안쪽으로 계속 걸어가는 길이다.
필하모니가 있는 섬 쪽으로 가는 길이
강도 가까이 보이고
건물들도 좀 더 매력적으로 보여
나는 우선 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중에서도 우선 강에 가장 인접한
강변통로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2013년에 갔을 때는
오워비안카 섬에서 다른쪽 끝길을 빠져 나와
그 바깥 동네까지 갔다 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 바깥은 그냥 어느 나라에나 있는
평범한, 조용한 주택가였다.
그래서 2016년에 갔을 때는
굳이 그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오워비안카(Ołowianka) 섬의 강변 통로에서
요트 선착장쪽을 보면 이런 그림이다.
수영하는 사람은 전혀 안 보이는데,
가끔씩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지,
아님 혹시나 강변이나 배에서
실수로 떨어지는 사람을 위한 것인지
곳곳에 구명 튜브가 걸려 있다.
여기서 보기에
건너편 서쪽 강변의 가장 눈에 띄는 이정표는
크레인(Żuraw, The Crane)이고,
크레인 쪽에서 보기에도
건너편 동쪽 강변의 가장 근사한 풍경은 역시나
이 필하모니 쪽 오워비안카(Ołowianka) 섬이다.
이 근처가 사람도 별로 없고,
건너편의 고풍스러운 건물들도 한눈에 보여서
그단스크 강변 풍경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위에 올린 모트와바 서쪽 강변 사진 중 상당수는
여기서 찍은 것이고,
동영상도 찍었는데,
마침 카누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길래
그것도 찍었다.
(동영상1: 그단스크 모트와바 강변)
(동영상2:그단스크 모트와바 강변의 카누)
오워비안카(Ołowianka) 섬의 강변에는
소우덱(Sołdek)이라는 배가 정박해 있다.
이 배는 1945년
그단스크 조선소(당시 레닌 조선소)에서 건조된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해양 항해용 선박으로,
소우덱(Sołdek)이라는 이름은
이 배의 건조팀을 이끌었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의 성에서 딴 것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모하여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고,
이 배 앞에 있는 건물에서
입장권을 구매해서 입장하면
엔진실과 선원방, 그 밖의 선박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소우덱(Sołdek) 배 뒷쪽에는
매우 거대한 낡은 기계들이 서 있다.
이 배와 관련되어 있는 건지,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인지 등은 알 수 없다.
아무래도 무언가 예전에 있던 시설을
아직 다 제거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필하모니 건물 뒤에서도
그런 구조물들을 만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필하모니와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다.
뭔가 다른 곳에 모아두고 이름을 붙여두면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런 구조물 중 하나에는
설명이 안 되어 있는데 아마도
배 안에서 설치했던 장치인 것 같고,
다른 하나에는
해상 부표(Pława bezpiecznej wody, Safe Water Buoy)라고 써 있다.
오워비안카(Ołowianka) 섬의 강변을 따라 걷다보면
발틱 필하모니 건물을 만나게 된다.
2016년에 갔을 때는
필하모니 공연을 한번 보고 싶어 기웃거렸는데,
무언가 그 건물 옆에서
야외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서 있던 직원에게
혹시 오늘 무슨 공연 있냐고 물었더니,
그 다음날 공연이 있을 거라고 했고,
공연표는 혹시 지금 다 매진되었냐고 물었더니,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 다음날 저녁 7시인지 8시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그 때 오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을거라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2013년에도 우연히 이 근처를 갔다
야외콘서트 하는 걸 봤는데,
아마도 매년 그 때 쯤에는 야외콘서트를 하나보다.
미리 알았으니,
2016년에는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갔다.
대형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가 나와서
대중음악가수들과 협연을 하기도 하고,
대중음악만 하기도 한다.
근데
야외에,
밤에,
강가에,
시원한 밤 공기에,
대형 스크린에,
더구나 나에게는 매우 이국적인 그런 동네에서
그렇게 콘서트를 접하니,
사실 노래가 어떻든
그런 경험 자체가 좋을 수 밖에 없다.
2013년, 2016년 공연 모두 좋았다.
2013년 출연자 중에 아는 이름이라곤
바비 맥퍼린만 있었는데,
간만에 듣는 그의 음악이 좋아서
2014년인가 2015년에 내한할 때
얼른 공연 티켓을 예매했고,
2016년엔 아는 출연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Naturally 7가 부른 Fix you, Englishman in New York, I can feel it 등이
멜로디도 너무 감미롭고,
새삼스레 가사도 마음에 깊게 와닿고 그래서
괜히 업되어 따라 부르고,
한국에 와서 그들의 앨범도 사서 들었다.
근데 Bobby McFerrin도 그렇고,
Naturally 7도 그렇고,
그단스크에서 들었던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동영상3: 2013년 8월 Olowianka 공연, 바비 맥퍼린)
(동영상 4: 2016년 8월 Olowianka 공연, orchestra)
(동영상 5: 2016년 8월 Olowianka 공연, orchestra와 랩 음악의 협연)
(동영상 6: 2016년 8월 Olowianka 공연, Naturally 7)
사실 녹색 다리(Zielony Most) 남쪽
모트와바 강변에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역사적으로 혹은 건축적으로
의미있는 건물들이 없어서 그런지
여행안내책자나 관광객용 지도에는
대체로 별 표시가 안 되어 있다.
여행안내센터에서 준, 좀 더 큰 지도에 보니
그 아래도 몇 개가 관광명소로 표시되어 있길래
(물론 지도니, 이름만 적혀 있고 설명은 없었지만)
2016년 두번째 그단스크에 갔을 때는
모트와바 강변을 따라
녹색 다리 남쪽으로도 걸어가봤다.
곡물창고 섬(Wyspa Spichrzów)에 의해 갈라지는 모트와바 강줄기는
두 개로 나뉘고
그 중 구시가의 연장선인, 곡물창고 섬 서쪽의 강은
구 모트와바(Stara Motława)강으로 불린다.
녹색 다리 남단의 구 모트와바 강변 풍경은 이렇다.
전면이 흰색, 벽돌색인
좀 더 큼직큼직한 삼각지붕 건물들은
곡물창고 섬(Wyspa Spichrzów)이란 이름을 있게 한 장본인 곡물 창고(Spichlerz, granary)다.
즉, 그쪽이 구시가 바깥쪽, 모트와바 강 동쪽이고,
좀더 작은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는 쪽이
구시가쪽, 즉 모트와바 강 서쪽이다.
여긴 그 동쪽의 또다른 모트와바 강 줄기인
신 모트와바(Nowa Motława)강이다.
멀리 고풍스러운 스통기에브나 문(Brama Stągiewna)이 보이긴 하지만,
이 강변만 해도
이제 구시가의 느낌이 별로 없다.
나는 좀 더 구시가 느낌이 많이 나는
구 모트와바(Stara Motława) 남쪽으로
걸어내려 갔는데,
[위 지도의 녹색 화살표]
강변을 걷다가 나오는 큰 길을 건너려면
지하도를 통과해야 한다.
낮고 기다란 지하도에는 끝에서 끝까지 길게
그단스크를 모티브로 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남쪽으로 걸어가도 여전히
동쪽 강변에는 곡물창고 건물이 가득한데,
어떤 건물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어떤 건물은 비어 있다.
아마도 고급 아파트로 리모델링할 예정인지,
아파트 조감도가 건물밖에 크게 걸려 있기도 하다.
강변 서쪽에는
이제 평범한 현대식 건물들만 보이는데
군데군데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교회와 박물관이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건
그단스크에서 가장 큰 고딕 성당인
성 베드로 바오로 성당(Kościół św. Piotra i Pawła)이다.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면
소 무기고(Mała Zbrojownia, Small Armoury)도 있다.
건물 자체는 그냥 소박한 붉은 벽돌 건물인데,
벽 위의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놀이터 뒤에 보이는 벽돌건물이 소 무기고다.
이 쯤에서 구 모트와바 강은 끝이 난다.
나는 그렇게 강이 갑자기 끝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뭐 연결되는 작은 시냇물도 없이
딱히 수면이 낮아지지도 않은 채,
그렇게
어떤 주택가 앞에서 깔끔하게 끝이 난다.
아니, 여기가 상류니까,
강이 그렇게 "시작된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 강으로 흐르는 작은 시냇물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은 채,
물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흘러내리나 보다.
그렇게 강이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가니
심상치 않아 보이는 초록 언덕이 나온다.
성 게르트루다 보루(Bastion św. Gertrudy)라고 불리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언덕이 아니라
17세기에 그단스크 방어를 위해
일부러 쌓아올려 만든 인공적인 보루다.
그러고보면 그 갑자기 사라진 강줄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이 보루를 만들면서 일부러 덮어버렸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는데,
전망도 좋고,
가끔씩 멀리 지나가는 기차 구경하는 것도 재밌고,
시야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니
마음도 탁 트이고,
주변 자연도 초록초록하며 자연스럽고,
관광객으로 미어 터지지도 않고,
벤치도 텅 비어 있어,
앉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앉을 수 있고,
무언가를 보기 위해 줄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여러모로 여유있는
이 관광지 아닌 유적이 매우 맘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보물을 발견한 느낌 때문에 아마 더 그랬을거다.
내가 간 날은
여기서 주변 풍경을 그리는 화가도 있었다.
조금 멀리 보이는 초록색 언덕 또한
당시 만들어진 다른 보루다.
(동영상: 성 게르트루다 보루)
사실 이 곳은
독일이 그단스크를 지배할 때 만든 거니,
그리고 그단스크 남단에 있는 거니,
그들이 막고자 했던 외적은
아마도 폴란드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폴란드인 입장에 빙의해서 생각해보면,
남의 나라 땅에 들어와서 살면서
원래 주인과 맞서 싸우기 위해
매우 괘씸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긴 한데,
그런 정당성 없는 불손한
창안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언덕에 서면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자유롭다.
공간 자체가 가진 매력 때문이기도 할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 부대끼지 않아서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와서 그런 것도 같다.
만약에 여기가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되어서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면,
아마 나도 큰 기대를 가지고 갔을테고,
그래서
쉽게 실망하고,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내가 여기서 느낀 만족감은
기대감으로부터의 자유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렇게 또 두번째 간 그단스크에서
특별한 공간을 발견했고,
남들 다 아는,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아름다운 구시가랑 아름다운 강변뿐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다른 그단스크를 알게 된 것 같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