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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an 23. 2017

폴란드 항구도시 그디니아(Gdynia)

살아보면 더 나을지 모른다.

그디니아(Gdynia)는

그단스크(Gdańsk), 소폿(Sopot)과 더불어

삼원도시(Trójmiasto, Tricity)인데,

사실 관광객에게는

이 세 도시 중에 가장 덜 매력적이다.


2013년 꽉찬 2박 3일로

별 사전 정보 없이 그단스크(Gdańsk)를 갔다가

첫날과 둘째날,

발트해 연안 그단스크(Gdańsk), 소폿(Sopot)에서

기대치 못했던 보물을 찾은 나는

세번째날

이번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잔뜩 기대를 하고 그디니아(Gdynia)를 갔는데,


이번엔

좀 실망이 컸다.


그디니아(Gdynia)엔


그단스크(Gdańsk) 같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운 옛건축이나 매력적인 구시가도 없고,


소폿(Sopot) 같은 아름다운 해변도 없다.


내가 이 이야기를

바르샤바 출신 폴란드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도

"그디니아엔 볼 게 별루 없다"는 데에 동의했다.


여행안내책자에 따르면

삼원도시 중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과

꽤 좋은 호텔을 갖춘,

그리고 밤문화도 매우 흥미로운 곳이라는데,


그걸 모르거나

그걸 알아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겐

매력이 크지 않다.


어쩌면 그디니아 자체의 매력보다는

다른 삼원도시 소폿과 그단스크의 매력이 커서

상대적으로 매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20세기 초반까지도 그디니아는 

그냥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단스크

자유도시(Free City of Danzig)가 되면서

그 주변 소폿과 그디니아까지 

같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조선소가 세워지고,

커다란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생기면서

그디니아는 성장했고,


2013년에는 "폴란드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히기도 했다고 한다.


1970년에는

바로 이 그디니아에 있는 조선소에서

파업을 했다가

18명의 노동자들이 총에 맞아 숨졌는데,


10년 후 1980년

그단스크에서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운동이

생기는 데 기폭제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1980년 파업이 끝나고

정부와 협상할 때 그 조건 중 하나가

1970년 사망한 조선소 노동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었고,

그것은 지금 그단스크 조선소 앞에 우뚝 솟아 있다.


1974년 이후

매년 그해 최고의 폴란드 영화를 선정하는

그디니아 영화제(Festiwal Filmowy w Gdyni, Gdynia Film Festival)

개최되는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디니아에 가려면

그단스크에서 도시고속철도 SKM을 타야하고,

아래 지도의 오랜지색 동그라미 사이를 움직이는

시간은 35분,

비용은 6즈워티(약 1500원)다.


(지도출처: http://www.skm.pkp.pl/)


그디니아 주기차역(Gdynia Główny) 자체가

이 주변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역 중의 하나이며,


지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헬(Hel)에 갈 때도

여기서 기차를 타야 한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주기차역)


그디니아 중심부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


기차역에서 내려 "2월 10일 길(10 lutego)"을 따라 직선으로 쭉 걸어가면

바다에 도착할 수 있다.


(지도 출처: http://www.royalgroup.pl/index6.html)


난 2013년에 그디니아를 방문하고,

2016년 헬(Hel)가는 길에

기차 시간까지 남은 1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잠깐 둘러봤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건

그단스크나 소폿에 비해

20세기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는거다.


공산주의 시대 지어진 것 같은 건물들도 많고,

그런 조형물들도 적지 않다.


(2016년 8월, Gdynia, Poland)


이 동상은 카슈비아 지식인

안토니 아브라함(Antoni Abraham)의 동상인데,

분명 공산주의 시대의 동상이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폴란드 공산 붕괴 후 1995년에 세워진 거란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스타일로 만들었을까?

이해되지 않는다.


동상 밑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Antoni Abraham 1860-1923 Syn Ziemi Kaszubskiej - Bojownik o jej polskość.

안토니 아브라함 1860-1923 카슈비아 땅의 아들 - 그것[=카슈비아 땅]의 폴란드성을 위해 투쟁한 투사.
(2013년 8월, Gdynia, Poland)


1939-1945년에 사망한 폴란드 선원들을

기리는 기념비도

공산주의 붕괴 후 1991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모양도

꽃도

문구도 다 뭔가 공산주의 시대의 유물 같다.


여기에 쓰인 문구는 다음과 같다.

Największe ofiary i przelana krew staną się żywym świadectwem naszego trwania nad polskim morzem.
가장 위대한 희생과 그들이 흘린 피는 우리가 계속 폴란드 바다에 존재함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될 것이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이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7년

이 도시 사람들을 만난 장소가

바로 이 곳임을 표시하고 있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6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그 길 끝에 작은 해수욕장도 나온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그리고 그 옆엔 요트가 많이 정박되어 있다.


소폿에선 요트를 못 본 것 같고,

그단스크에선 보긴 봤지만 이렇게는 많지 않았는데,


아마 그디니아 바다가 요트 타기에 유난히 좋거나

혹은 이 동네에 부자들이 많나보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그리고 이제 그 옆으로

엄청나게 길고 넓은 

남쪽 부두(Molo Południowe)가 펼쳐진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이건 그디니아 수족관(Akwarium Gdyńskie).


[그디니아 수족관 홈페이지: http://www.aquarium.gdynia.pl/]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이건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 Józef Konrad Korzeniowski)의 기념비와

돛 기념비(Gra Masztów)다.


아무리 찾아봐도

폴란드계 영국 작가인 조셉 콘라드가

그디니아랑 특별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영국 상선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뱃사람이었고,

또 바다를 모티브로 한 작품도 많이 남겼기 때문에,

위대한 폴란드인이자 뱃사람인 그의 기념비를

여기 만든 것 같다.


이 기념비 정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Nic tak nie nęci, nie rozczarowuje i nie zniewala, jak życie na morzu

바다에서의 삶만큼 유혹적이고, 환멸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멀리 조선소도 보인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6년 8월, Gdynia, Poland)


이 부두에서는 배가 정박했다 떠나기도 하고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6년 8월, Gdynia, Poland)


계속 정박해 있으면서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거대한 배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포메라니아의 선물(Dar Pomorza, Gift of Pomerania)이다.


이 배는 원래 20세기 초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들어졌는데,

1930년 폴란드에서 해군 훈련용 배로 구입했고,

1983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6년 8월, Gdynia, Poland)


그 맞은 편에는 정말 이게 뭘까 궁금한 구조물이

물음표를 그리며 서 있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그 옆에는

번개(Błyskawica, lightning flash)호가 서 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사용되었던 구축함으로

이것도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2016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 8월, Gdynia, Poland)


(동영상1: 2016년 그디니아 부두)

 

(2016년 8월, Gdynia, Poland)


2013년에 그디니아에 갔을 때는

반나절 정도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여기저기 구경했었는데,

조금씩 비도 흩뿌리고 날씨가 좀 흐렸고,


2016년에 갔을 때는

헬(Hel)가는 기차 타는 시간까지 남은

1시간 30분 동안 짧게 머물렀는데,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그디니아는

2016년 여름 버전이 더 좋다.


우선은

시간이 없어 짧게 머무니, 아쉬움이 컸던 것 같고,


또 다른 한편으로

2013년에 기대하고 갔다 좀 실망한 경험이 있어

이번엔 기대감이 크지 않아서

상대적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날씨가 좋아서 당시에 기분이 들떠 있었고,

지금 다시 사진이나 영상을 봐도

그 좋은 인상이 계속 유지된다는 거다.



이래서 여행하면서 짧게 머문 도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유럽 배낭 여행할 때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는 좋다고 하는 사람과

별로라고 하는 사람으로

분명하게 나뉜다고 그랬었다.


나에게 파리는 그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는데,

나는 좋았다.


여행하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한테서

"파리가 별루일 수도 있다"는

경고 아닌 경고를 받아서

각오를 하고 있었고,


3일을 머물어서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서로 상쇄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낯선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그게 날씨든,

길에서 만난 사람이든,

자연이든,

인공물이든,

부정적인 이미지 혹은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상쇄할 수 있는 시간을

그 도시에게 줘야하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디니아에겐 마땅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보자마자, 겪자마자 맘에 든

그단스크, 소폿과 달리

사실 난 그디니아는 그냥 그런데,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한 매력을 잘 모르겠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그디니아에 충분히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 도시를 좀 더 많이 알았으면,

여기가 왜

폴란드에게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는지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데 말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이 도시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는

그단스크, 소폿보다 덜 매력적인 곳일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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