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보다 과정에서 더 큰 행복을 얻다.
카르투지(Kartuzy)로 갈 땐
그냥 거기서 2박 3일,
아니
늦은 저녁 도착해서,
셋째날 이른 저녁에 출발 예정이었으니,
실질적으로는 2박 2일 동안
그냥 카르투지에 있으면서
천천히 구경하고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루 해보니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첫날 카르투지의 두 호수를 두 번이나 돌고,
물론 그러면서
시내는 또 몇 번씩 왔다갔다 하면서,
둘쨋날 여기를 또 두세 번 도느니,
다음날에는
뭔가 카슈비아(Kaszuby의 다른 동네를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카르투지의 호수와 자연이 마음에 들어서
그 주변 다른
"카슈비아의 스위스(Szwajcaria Kaszubska)"는
또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자칭 "카슈비아의 수도(Stolica Kaszub)"인
카르투지에서
기대보다 카슈비아어가 안 들리고 안 보이길래,
어딘가 다른 지역에 가면
좀 더 "오지"로 들어가면
카슈비아어를 많이 쓰는 곳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저녁에 호텔에 들어가며 직원에게 물었다.
카슈비아 방언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데가
혹시 어딘지 아냐고.
카슈비아 오기 전,
카슈비아 어떤 도시로 여행가면 좋겠냐는 질문에
무심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던
바르샤바 지인들의 반응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난 별로 기대 안하고
그냥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직원이
"아마 흐미엘노(Chmielno)일 거"라고
즉각 대답한다.
카슈비아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다 알고 있는 건지,
아님
내가 운좋게도
그걸 알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이왕 카슈비아 다른 도시, 혹은 다른 마을을 가려면
카슈비아어 많이 쓰는 지역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흐미엘노(Chmielno)를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그런데 카슈비아 방언 이야기는 안 나오고
카슈비아어로 된 표지판이나
간판 사진도 안 나오고,
엄청 큰 호수와
거기서 할 수 있는 카누타기 등 레저활동만 나온다.
구글의 관련사진을 보니
사실 그 호수가 좀 매력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 매력만 생각하고
흐미엘노(Chmielno)에
그냥 무턱대고 반나절 갔다가는
그 큰 호수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날은
바르샤바로 돌아가기로 예정된 날이라,
저녁에 그단스크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바르샤바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카르투지에서 그단스크까지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니,
그만큼 일찍 출발할 걸 생각하면,
카슈비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갔다 올 수 있는
카르투지 인근 마을에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검색하는데,
카르투지(Kartuzy) 바로 옆에
와팔리체(Łapalice)라는,
버스로 7분밖에 안 걸리는 마을이 있고
거기 특이한 성이 있단다.
가까우니 이동에 버리는 시간이 별로 없는 데다가,
그 성은 1980년대
아직 폴란드가 공산국가일 때
어떤 야심만만 투자자가
자신의 가구 공방으로 쓸 건물로 짓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경제적 문제가 생겨서 짓다 말았다는,
그리고 행정기관에서 계속
그 건축 재개를 반려했다는,
그래서 어쩌면 곧 허물지도 모른다는,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하지만 곧 사라질 성"
이라는 특이한 사연도 가지고 있다.
뭔가 사연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 다음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와팔리체(Łapalice)행 버스를 탔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매표소가 마땅히 없길래
버스 타러 기다리면서
나랑 같은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50-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어떤 폴란드 아주머니에게
버스표는 운전기사에게 사면 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마침 뭔가 희한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그 아주머니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내가 혹시 카슈비아 전통음악이냐고 물었더니,
그 아주머니가
자기도 카슈비아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단다.
아마도 성당에서 행사를 하는 중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구보니 슬픈 멜로디가 장송곡 같기도 하다.
장례미사중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나와 아주머니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주머니가 나더러 와팔리체는 왜 가냐고 해서
성을 보러 간다고,
그런데 어떻게 가는 줄은 아냐고 해서
전혀 모른다고 했더니,
나더러 용감하다(odważny)고 했다.
사실 그건 용감이 아니라, 무모함일 수도 있고,
인터넷에 그 성에 대한 블로그 글이 많은 걸 보면
분명 그 동네의 명물이라 찾기 쉬울 것이라는,
어떤 나름 잔뼈 굵은 여행자의 예감일 수도 있고,
비록 카슈비아어는 별로 못 만났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매력이 많았던
카르투지가 좋았기 때문에
혹시 그 성을 못 찾고
되돌아오더라도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뭔가를 이미 가지고 있을 때 부릴 수 있는
배짱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여행에서는 실패하더라도
그게 또 경험이고 이야깃거리라고 포장할 수 있는
여행자 특유의 너그러움과
자기 합리화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함께 높아져만 가는
삽질에 대한 맷집 혹은 면역력 혹은
실패 불감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아주머니는 자기도 그 성 얘기는 들었지만
한번도 가 본 적은 없는데,
사진을 봤을 때 그 성이 자기 취향이 아니었다고,
자신은
좀 더 고전적인 스타일의 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그녀는 의례적으로 나더러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남한에서 왔을 거라 생각했다며,
북한은 자유가 없지 않냐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생각하는 한국의 위상과 다르게
외국에 가면 흔히 남한과 북한을 헷갈리는데,
러시아, 폴란드, 불가리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보면
이 곳 사람들은
남한이 어떻고 북한이 어떤지 아주 잘 안다.
나이 든 세대의 경우는
특히
공산주의 시대에 교육을 받으면서
아주 분명하게
적과 친구를 구별해야 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
하지만
워낙 독서량이 많고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그게 공산주의 시대부터 고착화된
사회의 기본 상식인지,
젊은 사람들도
남한이랑 북한 거의 헷갈려하지 않는다.
그 아주머니가
나더러 한국은 날씨가 어떻냐고 물어보길래,
여름엔 덥고 습하고,
겨울엔 춥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라고 했더니,
그녀는
"어떻게 바다 옆에 있는 나라가 대륙성 기후냐?"
고 되물었다.
한국을 비롯한 극동 지역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한국이 바다 옆에 있다는 걸 안다는 게
우선 놀라웠고,
한번도 품어 본 적 없는,
"어떻게 한국은 삼면이 바다인데,
해양성 기후가 아니라 대륙성 기후일까?"
라는 예리한 질문에 또 한번 놀랐다.
그 아주머니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첫번째 정류소에 버스가 서더니,
벌써 와팔리체(Łapalice)에 도착했단다.
정겨운 말동무가 되어 준 그 아주머니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나오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길 건너서 위로 쭉 올라가면 된다고 알려주신다.
내가 버스 탈 때
와팔리체(Łapalice) 성에 간다고 말하고
버스비를 계산했는데,
그 때 그걸 잊지 않고
내릴 때 길을 일러주신거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고 서 있으니,
그 말벗 아주머니가 차창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역시 시골 인심은 따뜻하다.
인터넷에 와팔리체(Łapalice)를 검색하면,
그 성만 나와서
난 그게 그 동네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고
당연히 거기로 가는 이정표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거 전혀 없다.
처음엔 쪽길로 올라갔다가
그쪽으로 가는 길은 막혔다길래
차 다니는 길로 내려왔다.
그래도 명색이 찻길인데
길가에 카페, 상점 이런 거 하나도 없다.
그냥 차 다닐 수 있는
작은 돌들이 조금 굴러다니는
구불구불한 차선도 없는 찻길이 있고
양 옆에 들판과 산이 펼쳐져 있다.
진짜 시골에 온거다.
그 마을에 들어선지 한 3-5분 지점에
세워진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길거리 예배당이 있다.
뭔가 한국 시골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종교적 정체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마을 입구를 드나들 때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무사와 안녕을 빌었을 걸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게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나도 여기서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해먹고 살길래,
그 한여름에,
그 한낮에,
그 넓은 들판에는 밭일하는 사람이 없고,
찻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 다녀서,
사람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몇 분 남았는지 반복적으로 물었다.
한번은
어떤 집이 대문이 열린 채로
아저씨와 어떤 소년이 옥상에서
뭔가 일을 하고 있길래
그 아저씨에게
성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 정도 걸리냐고 물었더니
15-20분 정도 걸린다고 하셨는데,
정작 그 때 물어볼 때 시계를 안 봐서
언제쯤이 10분인지 15분인지 모르고
그냥 느낌으로
시간 관념 없이 하염없이 걸었더니
성은 안 보이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길에는 사람이 없어서 좀 심란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이 동네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카르투지와 그 인근이
카슈비아의 스위스(Szwajcaria Kaszubska)라 불린다더니,
길 서쪽의 산도 아름답고,
길 동쪽의 들판과 호수도 아름답다.
더군다나 작은 호수 옆 들판에서
소랑 말이 한가로이 노니니
이건 정말 스위스다.
카르투지는 호수는 스위스 같았지만,
그래도
이 부근에서 가장 큰 도시라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좀 작지만 그래도 시가지가 있는 소도시였다.
카르투지에서
거기가 시골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팔리체(Łapalice)에 와보니
여기야말로 진짜 시골이고,
여기는 그냥 마을 전체가 스위스 같다.
이런 시골을 마지막으로 언제 가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시골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매우 멋진 시골을.
그렇게 걸어가다
이제 슬슬 성이 보이는 것 같길래,
작은 산쪽으로 올라갔다.
여기서는 산이지만 우리로 치면 언덕이라
올라가는 길 옆으로 집도 있고,
올라가기는 힘들지 않았는데,
이런!
성이 멀리 보이기만 할뿐,
그리로 통하는 길이 없다.
다시 내려가서
얼마나 더 걸어야되는지 알 수 없는
또 비가 추적추적 오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거다.
그런데
그런 실패라면 실패인 상황에서 주변을 보는데,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그냥 풀밭인데,
경사가 져 있으니,
이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이 노래부르던 바로 거기다.
비가 와서 풀밭 색은 더 선명하고,
비오는 날 흔히 맡을 수 있는 식물의 비릿한 냄새,
생명 가득한 그 냄새가
기분 나쁘지 않게 주위를 감싼다.
그래서 또 거기 혼자 서서
"너무 좋다"
한국말로 내뱉었다.
동영상도 찍었다.
(동영상1: 카슈비아, 와팔리체 어느 언덕의 풀밭)
하지만 달리 벤치도 없고,
비가 와서 딱히 풀밭에 앉기도 그렇고,
성을 보러 왔으니,
서둘러 성을 보러 움직였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8월인데
그 옆의 밭은 벌써 누렇다.
날씨도 그렇고
뭔가 가을 느낌이다.
그리고 드디어 성으로 가는 길에 도달했다.
길 이름이 "잠코바(ulica Zamkowa)",
즉 "성 길"이다.
계속해서 경사진 시골길을 올라가는데,
처음엔 집도 나오고
길거리 예배당도 나오더니,
조금 더 걸으니
그냥 양옆으로 나무만 울창한 숲길이다.
그냥 이 길을 걷기만해도 좋겠다 생각할 즈음
눈 앞에
드디어 성이 나타났다.
자동차길은 막혀 있고,
사실 사람이 드나드는 길도 따로 없는데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벽에 구멍이 생겼다.
이곳은 일종의 사유지라 그렇게 들어가는 게
엄밀하게 말하면 불법이라는데,
뭐 다들 그냥 그렇게 들어가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근데, 성(Zamek)이 생각보다 별로다.
블로그에서 사진으로 볼 때는
그래도 꽤 괜찮아 보였는데,
직접 보니 좀 더 초라하다.
더군다나 비가 오니,
공기는 좀 더 눅눅하고,
냄새는 쾌쾌하다.
그리고 성 모양 자체도
버스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하더니,
가서 보니 내 취향도 아니다.
근데, 그러고보니 성의 지붕 모양이
소폿(Sopot)에서 본 건물의 지붕이랑
비슷한 것 같다.
뭔가 좀 더 완성되어,
창문이 생기고
외벽이 좀 더 깔끔하게 칠해지면,
그리고 그 외벽이 햇볕에 반사되면
또 근사한 성이 될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미완성의 그 상태로는 별루였다.
이 성에 대한 폴란드 블로그 글이나 인터넷 기사가
조금씩 다르긴 한데,
이 성의 역사는
폴란드가 아직 공산정권이던 시절,
가구 공방이 필요했던 어떤 그단스크 사업가가
여기에 공방을 짓기 시작했던 데서 시작된다.
그 처음이 1979년이라는 글도 있고,
1984년에 허가를 받았다는 글도 있다.
아무튼 80년대에 지은 거다.
즉 원래는 "성"을 짓겠다는 게 아니었고,
성 모양의 거대한 가구 공방을 짓겠다는
의도로 지어졌고,
아마 행정기관에는 그렇게 신고가 되었을 거다.
아무튼 그 사업가의 이 야심만만한 "가구 공방"은
무도회장도 있고,
지금은 없지만 원래는 분수도 놓을 생각이었고,
또 수영장도 만들 예정이었단다.
지붕의 돔은 12개가 있는데,
예수님의 열두제자에서 따온 거란다.
그런게 돔이 12개나 되니
전체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물론 완성되진 않았지만,
방도 엄청 많다.
그런데 이 "공방" 혹은 "성"을 짓다가
폴란드에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정치적, 사회적 체계가 바뀌었고,
이 건물의 투자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어
건축을 계속할 수 없었단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러서
그 투자자가 건축을 다시 하려고 하자,
행정기관에서 계속 서류가 미비하다며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뭐 "면"에서는 좋다고 했는데,
"군"에서는 안된다고 하고,
"군"에서는 좋다고 했는데,
"도"에서는 안된다 하고 뭐 그런 식이었던 거다.
그래서 결국 지금까지 건축을 재개하지 못한 채
이렇게 숲 속에 흉가로 남은 거다.
2015년 3월에는
"해리포터" 광팬들이 마법 학교으로 쓰기 위해
이 성을 사겠다고 나섰다는 기사가
지역 신문에 나오기도 했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가 없는 걸 보면
아마 그러다가 말았나보다.
이게 그 기사인데, 영어판은 없다.
사실 이 정도로 이슈가 되면
그냥 행정기관에서 허가를 내어줄만도 한데,
그러기 힘든 게,
자연보호를 위한 법률에 위배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허물지도 못하고,
투자자는
아직도 계속 이 건물을 완공하고 싶어하고,
이 건물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 짓다만 성에 나름 있을 건 다 있다.
그리고
나름 신경 쓴 것 같은 느낌이다.
계단도 멋내어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짓다 말아 계단에 난간이 없다.
폭도 좁아서
계단에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중간에 만나면
안쪽에 있는 사람이
가능한한 바짝 벽에 붙어줘야 한다.
그래서
밖에서 볼 땐 별 거 아닌 것 같던 계단이
올라가 보니 사실 좀 무서웠는데,
다른 사람들도 무섭다고 하면서
천천히 조심조심
올라오고 내려오고 했다.
짓다만 건물이라 회전 계단은
이렇게 난간 없이, 그 밖에 아무 안전 장치 없이 이렇게 끝나는데,
이렇게 위험한 곳에도 고백을 써 놨다.
정말
Love is all around다.
그래피티와 낙서도 많다.
그 중에는 폴란드어 욕도 있다.
아마 여기가 무도회장으로 설계된 곳인가 보다.
다른 곳과 달리
여기는 이층 혹은 한층 반 정도의 높이고,
방 크기도 다른 방보다 많이 넓다.
도대체 저기에 어떻게 저런 걸 그려 넣었는지
신기할 따름인데,
지붕 위에 그려진 흰 토끼를 보니,
정말 지붕이 토끼 얼굴 같이 생겼다.
주변엔 달리 보이는 게 없다.
그냥 숲이다.
아마 조금 더 높았으면
멀리 호수랑 들판도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 높이에서 보이는
저 울창한 나무 숲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근사하다.
여기가 성 입구인데,
잠겨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저 입구 오른쪽 그래피티 있는 담옆에 구멍이 있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는 뒷문으로 가는 길도 있다.
거긴 문 자체가 없다.
아마 뒷문까진 공사를 못했나보다.
성이 사연만큼 재밌지도 않고,
실물이 사진만큼 근사하지 않아서,
힘들게 물어 물어 찾아간 성에는
사실 좀 실망했는데,
그래도 와팔리체(Łapalice)의 전원 풍경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그냥 자연이어서
그야말로 "카슈비아의 스위스" 여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숨겨진 보물을 또 하나 발견한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이제 돌아나오는 길은 너무 잘 알지만,
이제는 성을 찾겠다는 목적의식도 없으니,
아무 목표 없이
그냥 "현재를 즐기며",
천천히 주변 풍경을
눈으로
귀로,
코로,
살갗으로 느끼며
걸어 나왔다.
우선 숲길을 걸었다.
멈춰서서
들판이랑 마을 풍경도 찬찬히 보고,
중간에 호수가 보여
호수쪽으로도 걸어 가봤다.
비가 조금 내릴 때는 그냥 맞고 걸었는데,
이쯤에서 비가 좀 많이 내려서
우산을 꺼내쓰고,
비내리는 호수를 한참 바라봤다.
그 전날 카르투지에서처럼
호숫가를 걷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가만히
호수를 바라보는 것도 좋다.
주변에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다.
바람도 분다.
그래서 고독하고 쓸쓸한데,
그런데
좋다.
(동영상 2: 비내리는 와팔리체 호수)
그리고 다시 또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좋다", "좋다" 그러며
계속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카르투지 가는 버스 타는
그 찻길로 나왔다.
이제 거기서 버스를 타고 카르투지를 가면 되는데,
시간 여유도 있고
그냥 괜히 기분이 좋아서
그냥 좀 걷고 싶길래
그냥 걷기 시작했다.
올 때 버스로 7분밖에 안 걸렸으니
걸어가면 20-30분 정도 걸릴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딱 그 정도 걸렸다.
그 길에서
"카슈비아어" 간판과 표지판들을 발견했다.
이건 유턴해서 6분 가면 흐미엘노(Chmielno)에서
카슈비아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광고다.
카슈비아를 일컫는 Kaszëbë를 보아하니
크게 써진 글자가 카슈비아어다.
왼쪽에 써진 "카슈비아 요리"를 의미하는
Kuchnia Kaszubska는 표준 폴란드어다.
카슈비아 사진에서 흔히 봤던
폴란드어 표준어와 카슈비아어 방언이
병기된 표지판도 여기 있었다.
이제 막 떠나려는 순간 그 사진에 나오던
두 언어 혹은 두 방언의
병기 표지를 찾은거다.
여기 오기 전엔
여기엔 표지판이나 간판이
전부 다 저런 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길을 걷는 재미는 딱 여기까지였다.
차를 위해 만들어진 2차선 도로라
보행자를 위한 길이 없어서
차가 옆에 안 지나다닐 땐 아스팔트를 걷다가
차가 오면 풀밭에 들어가 잠깐 서 있거나
혹은 풀밭을 걸어 갔는데,
비가 와서
땅은 찐득찐득하고
풀에 붙은 물방울이 다리에 튄다.
옆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데,
가끔씩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나무 사이를 걷는 느낌보다는
자동차 옆을 걷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한 번은 할 만 한데,
여러번 할 일은 아니었고,
20-30분 이상을 걷는 건 좀 별루였을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카르투지(Kartuzy)에 도착했다.
그리고 카루투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무사히 그단스크(Gdańsk)행 버스를 타고
거기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무사히 바르샤바(Warszawa)로 돌아왔다.
원래 카슈비아는
카슈비아 방언이 궁금해서 갔었는데,
카슈비아 방언은 거의 못 듣고 못 봤지만,
"카슈비아의 스위스(Szwajcaria Kaszubska)"를 만났고,
사연 있는 성을 보러
와팔리체에 갔다가,
결국 목적지인 성에는 실망했지만,
가는 도중에 그곳의
아름답고 평온한, 휴식같은 자연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항상
뭔가 더 좋은 걸 이렇게 빨리 발견하는
행운 혹은 횡재의 주인공의 되지는 못하더라도,
여행에서는
사실
실패해도,
헤매도,
삽질해도,
잊어버려도,
잃어버려도,
결국 다 추억거리가,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히려
"빗나감"이 없는 계획대로 예상대로 흘러간 여행은
당시엔 만족스럽지만,
특별한 일탈적 서사가 없어서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기억하기 어렵기도 하다.
물론 그냥 사진만 봐도
영상만 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행복감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빗나감" 대신 오는
"특별함"을 발견하는 속도가 좀 많이 느려서 그렇지,
그래서
가끔은 그게 그 "대신"이었다는 걸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그 "빗나감"이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였다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끔은 실패로 생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