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하고 사랑스러운 비스와 강변의 소도시 Kazimierz Dolny
2016년 여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친구가 혹시
카지미에쥬 돌니(Kazimierz Dolny)
가봤냐고 물었다.
내가 안 가봤다고 했더니,
카지미에쥬 돌니라는 도시에서
지금 영화제를 한참 하던데,
영화 좋아하니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는 도시 자체도 예뻐서
폴란드인들이 그냥 놀러도 많이 간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2013년 바르샤바 시내에서
"강변 영화 예술제(Festiwal Filmu i Sztuki DWA BRZEGI)"를
알리는 광고판을 본 적이 있다.
포스터가 맘에 들어 사진을 찍어놓긴 했는데,
나중에 보러가야겠다 하고
그 담에 특별히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바르샤바에서 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다른 인근 도시에서 하는 거였던 거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바르샤바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영화를 보러
다른 도시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근데 도시 자체가 예쁘다니,
그리고 바르샤바에서 멀지 않다니
좀 마음이 움직였다.
이 때는 주중에 폴란드어 수업을 들어서,
주말에 짬을 내서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 주 금요일 폴란드어 수업 시간에
프랑스에서 온 미셸 아저씨가
나더러 주말에 뭐하냐고 물었다.
내가 카지미에쥬 돌니 간다고 했더니
자기도 가봤다며
성도 있고,
"Très jolie(트레 졸리)"라고 했다.
[Cette ville est très jolie 였는지,
Elle est très jolie였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난다.]
미셸 아저씨는 원래 프로그래머였다 은퇴하고
지금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여름 휴가에 잠깐 폴란드어 연수하러
바르샤바에 온 거였다.
외모는 60대 정도 되어 보이고,
매우 유쾌하신 분인데,
대체로 다른 젊은 사람보다
이해하는 속도가 좀 많이 늦고,
가끔은 아예 이해를 못하기도 해서,
수업시간에 엉뚱한 이야기로 웃음을 주곤 하셨다.
그래도 젊지 않은 나이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게 너무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분 외할아버지가 폴란드 사람이었단다.
미셸 아저씨가 폴란드어 하는 걸 보면
젊을 때 배웠거나
어릴 때 집에서 사용하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자신의 뿌리에, 자신의 근원에
좀 더 가까워지고 싶나보다.
아무튼 그래서
칭찬에 인색한 프랑스인답지 않은
그의 호들갑스러운 반응
"Très jolie(트레 졸리)"가
1/4 폴란드인으로서 그가 가진
애국심에서 나온 건지,
미셸 아저씨 특유의 유쾌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누가 봐도
"매우 매력적인, 귀여운, 사랑스러운" 곳인지
직접 보고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카지미에쥬 돌니(Kazimierz Dolny)는
아래 지도에서 보이듯,
폴란드 남동쪽에,
바르샤바 남동쪽, 크라쿠프 북동쪽,
비스와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큰 도시 중에서는 루블린(Lublin)과 가장 가깝다.
이 도시엔 기차역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바르샤바에서는 미니버스를 타고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실제 거리는 130Km 정도라는데
직행이 아니라 여기저기 다 섰다 간다.
내 친구가 말할 때는 가까운 데 같았는데,
꽤 오래 걸린다.
마침 한참 휴가철인데다가
영화제까지 하니
주말에 숙소 잡기가 쉽지 않겠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카지미에쥬 돌니 시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거기서 있는 숙소 4-5 군데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예상대로
모두 빈 방이 없다고 답장이 왔다.
("카지미에쥬 돌니" 공식 홈페이지:영문)
당일치기 여행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냥
바르샤바에서 아침 7시 쯤 출발하는 첫버스와
카지미에쥬 돌니에서 저녁 7-8시에 출발하는
막버스를 예매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버스에서 운전기사에게 표를 샀는데,
난 숙소 예약이 안 되는 걸 보고
혹시 버스표도 없을까봐
전날 가서 미리 예매했다.
사실 예매 안하고 그냥 가서 타도 됐을 거다.
자리가 없으면 서서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중간에 다른 마을에서
타고 내리기 때문에
혹시
처음에 서서 가더라도 중간에 자리가 났을거다.
바르샤바
마르샤우코프스카(Marszałkowska) 길,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 맞은 편에서 타면 된다.
사진 속에 보이는,
건너편 문화과학궁전(Pałac Kultury i Nauki)이
간만에 보니,
괜히 반갑다.
이 날은 비가 계속 왔고,
대체로 맞고 다닐만 할 정도이다가,
중간에는 꽤 많이 내리기도 했다.
바르샤바를 떠나는 아침에도 비가 내렸다.
2시간 반 정도 만에
드디어 도착한 카지미에쥬 돌니(Kazimierz Dolny).
시외버스터미널이 참 소박하다.
8월 초였는데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다.
아래 사진에서 저 멀리 보이는 교회가 구시가다.
카지미에쥬 돌니(Kazimierz Dolny)는
"아래 카지미에쥬"라는 뜻이다.
12C 카지미에쥬 2세 대공이 자신의 영지인 이 곳을
수녀들에게 내주고 여기에 살게 했고,
그걸 고맙게 여긴 수녀들이 그의 이름을 따 이 곳을
"카지미에쥬(Kazimierz)"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크라쿠프 근교에도
"카지미에쥬(Kazimierz)"라는 지명을 가진
유대인 거주지가 있어,
그 곳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 곳에는 '아래, 밑'이라는 의미의
"dolny"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아마도 크라쿠프보다
비스와(Wisła) 강 하류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아래 카지미에쥬"가 되는 것 같다.
카지미에쥬 돌니는
또다른 카지미에쥬 왕이자
폴란드의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로 간주되는
카지미에쥬 대왕(Kazimierz Wielki) 시절
즉, 14C초반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후 비스와 강변의 주요 도시로
강을 통한 무역(주로 곡물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번창했고,
16-17세기에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다 17세기 중반 스웨덴이 폴란드에 침입하여
도시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했고,
그 이후 강을 통한 무역도 쇠퇴하면서
도시의 발전은 침체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침체 덕분에
16-17세기 유적이
"그대로" 보전되어
주요 관광 자원이 되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근처의 루블린과 바르샤바 사람들에게
이 곳의 풍광이 알려지며,
스파와 별장이 들어서고,
중요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20세기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이 곳에서 작품활동을 했으며,
지금도 이 곳에는 갤러리랑 화랑이 많다.
이러한 문화적 측면뿐 아니라
자연적 측면에서도 카지미에쥬 돌니는
중요성을 가져서,
도시를 둘러싼 주변의 숲은
카지미에쥬 자연 공원(Kazimierski Park Krajobrazowy)으로 지정되었다.
아래 지도에서 가운데 부분과 도로 주변에만
사람들의 거주지가 살구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나머지는 자연 공원을 의미하는
연두색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지도는 중심부만 표시한
구시가 지도인데,
이 안에 중요한 관광지는 거의 다 들어 있다.
위 지도에서 티쉬키에비차(Tyszkiewicza) 길 위의
버스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시외버스터미널이고,
거기서 좁은 길을 따라,
2016년 8월 초엔 코스모스가 피어있던
바로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면
대 광장(Duży Rynek)이 나온다.
[위 지도에서 1.1.로 표시되어 있다.]
꽤나 큰 광장이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살구색 건물에
여행안내센터가 있는데,
내가 폴란드어로 지도 좀 얻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직원분들이
매우 환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답하면서
지도와 여러가지 여행 자료를 건네주었다.
관광안내 브로셔를
폴란드어와 영어판 모두 챙겨주는 바람에
손에 한가득 안내물을 챙겨들고 나왔다.
광장 한 가운데는 우물이 있는데,
뭔가 굉장히 오래된 곳처럼 보인다 했더니
겨우 19세기에 생겼다고 한다.
원래 노천 샘이었는데
20세기 초 어떤 폴란드 건축가가
지금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단다.
아래 건물은 프쉬비우프 (Przybyłów) 건물인데,
광장 동쪽에 자리잡은,
가장 눈에 뜨는 건물이다. [위 작은 지도의 1.2]
1615년에 지어졌으니
이 도시가 가장 번성할 때 만들어진거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하는데,
언뜻 보면 하나의 건물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마치 쌍둥이처럼 매우 비슷하게 생긴 두 건물이
붙어있는 걸 알 수 있다.
두 건물 다 3층에,
꼭대기엔 화려한 장식이 있고,
1층에는 3개의 아치가 있다.
그리고 전면에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이 건물은
재력가인 프쉬비워프(Przybyłów)가문의
크쥐쉬도프(Krzysztof)와 미코와이(Mikołaj) 형제의 소유였으며,
그래서 건물 전면 오른쪽에는
크쥐쉬도프가 아기 예수를 어깨에 앉히고
강을 건너는 모습이,
왼쪽에는 주교 옷을 입은 미코와이(Mikołaj)가
사각형 안에 새겨져 있다.
그러고보면 건축물에 그냥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이렇게 주인 혹은 기증자, 후원자의 모습을
예술의 형식으로 덧붙이는 거
꽤나 멋진 생각인 것 같다.
혹시 나중에 주인이 바뀌거나
이름이 바뀌더라도
그 형상은 예술로 길이길이 남는거니까.
난 크쥐쉬도프 부조가 맘에 들었는데,
크쥐쉬도프와 미코와이의 모습 말고도,
좀 더 작긴 하지만,
여러 동물과 사람들이 아기자기하게 새겨있다.
"강변 영화 예술제(Festiwal Filmu i Sztuki DWA BRZEGI)"가 한참인데다가
휴가철이고,
또 중요한 관광지라
여러가지 행사를 하느라
인공적인 구조물과 자동차가 광장을 채우고 있어서,
광장 자체를 한 눈에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본 다른 블로그 포스트에 보니
이런 게 없을 때는
예술가들이 그림이나 그밖의 예술 작품을
광장에 놓고 파나 보던데,
그게 훨씬 더 나았을 것 같다.
내가 갔을 때 설치된 인공적인 구조물들은
너무 상업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도 많이 떨어졌다.
10주년을 맞는
"강변 영화 예술제(Festiwal Filmu i Sztuki DWA BRZEGI)"를 알리는 플래카드도 걸려 있다.
광장 북쪽에는 커다란 성당이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산, 혹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아마 아래 사진에서도 성당이 다른 건물에 비해
좀 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게 느껴질 것이다.
성 흐쥐치치엘과 바르트워미에이 성당(Kościół św. Jana Chrzciciela i św. Bartłomieja)
[위 작은 지도에서 1.12]
은 14-15세기에 지어졌고,
한번에 다 지은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분 부분 증축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을 모두 가진 성당이 되었다.
성당 한 켠에 요한 바오로 2세 동상이 있다.
이 곳을 방문했다거나 그런 얘긴 발견하진 못했고,
그가 사후에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아마 그 차원에서 설치한 상인 것 같다.
아직 본격적으로 언덕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여기에서 보이는
초록 나무들 사이 빨간 지붕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나쁘지 않다.
물론 위로 올라가면 좀 더 시야가 확 트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성당에서 나와서
언덕을 올라가면
왼쪽에
성(Zamek)이 보인다.
그 성으로 작정하고 올라가기 전에
그 밑에 보이는 작은 계단을 따라 오르면
십자가가 있고,
거기에서
아래쪽을,
강쪽을 바라보면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이 작고 성가진 계단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풍경은 더 근사해진다.
체코의 체스키 크룸루프도 그렇고,
에스토니아의 탈린도 그렇고
빨강, 진홍 혹은 진주황 지붕 집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하늘과,
강과,
바다와
그리고 숲과
선명한 색의 대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간 날은 흐리고 비가 와서
하늘과 강의 색은 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록달록 지붕들은
유독 숲과 나무와
색의 대조를 만들어냈다.
이제 다시 십자가를 지나
계단을 총총 내려오면
또다시 성(Zamek)으로 가는 언덕길을 만나게 된다.
성당에서 이 길로 올라오지 않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삼십자가산(Góra Trzech Krzyży)이라고,
6-7미터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십자가 세 개가
놓여 있는 산이 나오는데,
지금 찾아보니,
카지미에쥬 돌니 전경을 보기엔
거기가 가장 좋다고 한다.
[위 작은 지도에서 1.19]
그 땐 그걸 몰라서 그냥 지나갔다.
아무튼
카지미에쥬 돌니엔
성이 두 개가 있는데,
우선 아래 성(Zamek dolny)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위 작은 지도에서 1.16]
아래 성(Zamek dolny) 안에 매표소가 있는데
여기에서 표를 사면 그걸로
아래 성(Zamek dolny)과
위 성(Zamek górny)을 모두 입장할 수 있다.
2016년 현재
입장료는 5즈워티(약 1,500원)다.
입장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니,
홈페이지에서 체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카지미에쥬 돌니 유적 안내 홈페이지:영문)
여기가 입구고 오른쪽에 매표소가 있다.
안에 들어가면 성은 사방이 막힌 요새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 목조건물이 매표소다.
지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도 있는데
지금은 열린 공간이지만,
예전에 여기 한 번 갇히면 못 나겠다 싶게
돌벽이 두텁고 묵직하고 튼튼해 보인다.
붉은 벽돌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아래 성(Zamek dolny) 전경과
강과 도시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역시
점점 위로 올라갈 수록 전망이 좋아진다.
(동영상1: 카지미에쥬 돌니, 아래 성 전경)
저 멀리 보이는 탑이
위 성(Zamek górny)이다.
(동영상2:카지미에쥬 돌니, 아래 성에서 본 전경)
지하에 전시실도 있다.
성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설명되어 있고,
이 근방에서 발견된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지하 전시실에는
카지미에쥬 돌니의 본격적인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한,
가장 위대한 폴란드 왕 중 하나인
카지미에쥬 대왕(Kazimierz Wielki)의 러브스토리,
즉
이전에
"바르샤바 유대인 역사 박물관 Polin" 포스트에서
언급한 적 있는,
유대 여자 에스테라(Estera)와 사랑에 빠져,
유대인에게 큰 관용을 베풀었다는
그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용 만화도 그려져 있었다.
여기 전시실에
카지미에쥬 대제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건,
아래 성(Zamek Dolny)이
14세기 카지미에쥬 대제(Kazimierz Wielki)의 제안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후
17C 스웨덴의 공격을 받아 약탈과 방화를 당하고,
19C 오스트리아 통치 시기에는
안전을 이유로 일부 벽을 헐어버리기도 했다 한다.
현재는 폐허 상태 그대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위 성(Zamek górny)은
탑(Baszta)이라고도 불리는데,
13-14세기에 세워졌고,
감옥, 등대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 작은 지도에서 1.18]
아래 성(Zamek Dolny)에서 위 성(Zamek górny)으로
올라가는 길엔 계단이 엄청 많다.
그 계단을 다 올라 입구에 도달하면
입장권을 검사하고
다시 또 탑 꼭대기까지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여기도 역시 올라가면 갈수록
시야가 더 넓어지고
풍경이 더 근사해진다.
마치 노력과 수고에 대한 보답이기라도 한 듯이.
나무 계단을 타고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읽어볼 수 있게
돌벽에는
탑과 탑 안 생활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 나무 계단을 다 올라오면
하늘과 만난다.
이 곳에서 깃발로 배에게 신호를 주었다는
설명과 함께
깃발이 걸려 있다.
아이들은 어김 없이 빼서 들어보고
사진도 찍고 한다.
높은 곳이긴 한데 돌벽이 높고 두꺼워서
아이들에게도 위험해보이지 않는다.
넓지 않아 금방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안내판에는 중세 시대
이 곳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지금 풍경과 비슷하면서도 또 좀 다르다.
이젠 이 쪽에 "문화"적인 부분은 다 봤고,
지도에 보니 그 너머로는 "자연"이길래
자연 속을 좀 걷다가
강변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여기도 어김 없이 길거리 예배당이 있다.
그렇게 30분 -1시간을 걷다 강변으로 나왔다.
당시에 비스와(Wisła) 강을 봤을 때는
참 넓다 생각했는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강 자체가 넓다기 보다는
강 저쪽 편에 시야를 가로막는
인공적인 건축물이 없어
강과 강너머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니
그 때문에
강이 더 넓게 느껴진 것 같다.
비스와 강은 바르샤바까지 이어지고,
보다 북쪽인 바르샤바가 바다에 더 가까우니
사실 훨씬 더 넓을텐데,
바르샤바에서 비스와 강을 봤을 때는
항상 강을 건너 어딘가를 가는 중이어서,
강은 목적이 아니라
그냥 통로 혹은 장애물이어서,
강이 어떻다, 저떻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근데 여기선 강에 더 집중하게 된다.
강변엔 오래된 역사적 건물들도 보인다.
아래 건물은 현재
자연 박물관(Muzeum Przyrodnicze)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은
자연을 박물관까지 가서 볼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여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도 없고, 배도 없고,
산책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강변에는
"수영 금지"표지판과
강변 방파제에서 자동차 다니는 걸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머리의 왕관을 보니 이건 아마도
카지미에쥬 대제인 것 같은데,
아무 설명도 없고 명패도 없이
그냥 강변에 방치되어 있다.
배도 보인다.
동영상도 찍었는데
바람 소리와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크게 녹음되었다.
(동영상 3: 카지미에쥬 돌니, 비스와 강변)
이제 시내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남동쪽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예술가들의 도시답게
도시 여기저기 갤러리와 화랑이 많지만
특히 남동쪽
루벨스카(Lubelska) 길,
즉, "루블린 길"에 갤러리랑 화랑이 많다.
대체로 그냥 둘러보고 나오면 되는데,
한 화랑에서 나오려는데 "어땠냐?"고 묻길래,
"좋은 작품이 많다.
그런데 외국에 가지고 나가긴 힘들 것 같다."고
답했더니,
"외국에 들고 나가는 것 불법 아니다.
포장도 잘 해주겠다."
뭐 그렇게 적극적으로 판촉하는 경우도 있었다.
담벼락에 내가 좋아하는 폴란드 가수
그줴고쥐 투르나우(Grzegorz Turnau)
콘서트 포스터가 있어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벌써 끝났다.
물론 당일치기로 왔으니
이 날 했어도 못 봤겠지만 괜히 아쉽다.
여긴 화랑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폴란드 전통 문양(?)을 새겨넣은
커다란 판넬도 세워져 있다.
지도에 보니 여기 어디 성당이 있다고 나와 있어서
한참동안 이 근방을 두리번거렸는데,
알고보니 골목길에 있는 작은 성당이다.
이름은
성 안나 성당(Kościół św. Anny).
난 초록색 지붕과 소박한 규모가 마음에 들었는데,
아마도 건축학적으로는
르네상스식(?) 전면 장식이 더 중요한지,
우선 그게 언급된다.
루벨스카(Lubelska)길이 끝나면
찻길이 나오는데, 그 길로 쭈욱 남쪽으로
체르니아비 길(Czerniawy)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유대인 묘지(Cmentarz żydowski)가 나온다.
14세기 카지미에쥬 대제 시대부터
이 곳에 유대인이 많이 모여들게 되고,
1차세계대전 즈음엔
이 도시 인구 반이 유대인이었단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의 박해를 받았고,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42년에
이미 이 곳엔 유대인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단다.
다들 끌려가거나 처형을 당했던 거다.
묘지라고 해서
비석이 세워진 넓고 평평한 공간을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수직 벽이다.
난
아마도 2차세계대전 중에
다들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게 죽어서
그냥 비석만 이렇게 모아서
벽을 만들었나보다 했는데,
그래서 뭔가 더 슬프고 등골이 오싹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1851년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그러니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학살을 당한 사람들은 아닌거다.
다행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묘비들이 연결된 벽이 나오고
그 뒤엔 "그냥 숲"이 있다.
난 당시 이게 2차세계대전 이후에
생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슬픈 데다가,
내가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고,
근처 도로나 숲 속에도 사람이 없어서 좀
무섭기도 했다.
좀 있다 다른 사람이 오니까
원인 모를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슬픔은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았다.
카지미에쥬 돌니에서 유명한 게
도시를 둘러싼 울창한 숲이고,
그 숲엔 다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
여행 안내서에 보니
그 중에 어떤 숲길은 너무 울창해서
뿌리와 나무 꼭대기 잎도 서로 만나
위와 아래가 이어져서
마치 자연 동굴처럼 보이기도 하는 사진이 있었다.
난 그게 너무 멋있길래
길에서 어떤 여자분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 물었더니,
잘 모르겠단다.
숲길이 한 두개가 아니니 헷갈릴만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겠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들로부터 멀어지면서 드는 생각이,
꼭 사진에 나오는 거기가 아니라도
그냥 아무 숲길이나 걸어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있던 데서 가장 가까운 숲길로 향했다.
운이 좋으면
그렇게 들어간 숲길이
그 사진에서 본 그 숲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의 요행도 바라며.
그런데
내가 들어간 숲은 숲길이 비교적 짧게 끝나고
들판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의 숲속 탐험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그냥 그렇게 왕복 1시간을 채 못 걷다가
다시 나왔다.
그런데 비록
그 사진에서 본 그런 풍경은 아니었더라도,
숲 자체에 나무가 많다보니
그냥 숲을 걷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사실 들판도 좋았다.
바르샤바로 돌아갈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남겨두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서
광장과 시내를 좀 더 돌아다녔다.
그냥 길도 구경하고
거리 곳곳에 있는 화랑에도 들어가보고
나를 위한 기념품이랑
사람들에게 선물할 것도 좀 샀는데,
"수닭 빵(Kogut Kazimierski)"을
특산물이라고 팔기에
그것도 샀다.
바르샤바 가서 먹어보니 특별한 맛은 아니다.
그냥 부드러운 빵,
안에 단팥이 없는 단팥빵 혹은
크림이 없는 크림빵 같은 질감과 맛이었다.
아마 이 빵은 모양이 중요한가보다.
그래서 찾아보니
카지미에쥬 돌니에는 수닭의 전설이 있다.
옛날옛적에
악마가 카지미에쥬 돌니에 찾아들었는데,
그 곳이 마음에 들어 숲에 살며
수닭을 하나씩 잡아 먹었단다.
결국 마을에는
수닭이 한 마리밖에 안 남게 되었는데,
그 닭은 꾀를 썼다.
꽁꽁 숨어서,
악마가 수닭을 찾아 헤매게 만든 다음
그 동안 악마의 집에 성수를 뿌렸고,
수닭을 못찾은 악마가 결국 집에 돌아왔을 때
성수 냄새를 맡고 줄행랑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카지미에쥬 돌니 사람들은
수닭 모양의 빵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 남동쪽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Kościół Zwiastowania Najświętszej Maryi Panny)과 수도원이 있다.
이 성당은 16-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의해 도시가 점령되었을 때는
그 지하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당 자체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여기서도 알록달록한 붉은 지붕들이 조금 보인다.
이건 수도원 담장인데,
이 바깥 길을 따라 시내로부터 멀어지며 걸어가면
주택가 끝에 숲이 나온다.
비가 와서 담장 색이 유독 선명하다.
이제
바르샤바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강을 한번 더 보러 강변으로 걸어가는데,
멀리 심상치 않은 존재감을 발산하며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를 지나쳐
강가에 서니
서쪽 하늘에선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갸날픈 자태로 서 있는 전신주(?)가
너무 아슬아슬해 보인다.
동쪽 하늘은 아직 붉은 기운이 없다.
아직 밝은 것이 낮 같다.
물론 몇 분 후엔 저 쪽도 어두워질거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그 계단 위에서
심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던 그 남자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정확한 제목은 모르지만
샹송이다.
이제 비스와 강변은 파리 센 강이 된다.
그 순간이 너무 꿈 같아서,
잠시 정신을 놓고 있다가
음악이 끝나기 전에
빨리 영상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해가 지는 강변에
배경 음악까지 나오니
뮤직비디오가 되어 버렸다.
아,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국어.
(그 때 찍은 아래 동영상4에서도
그 한국어가 들린다.)
바로 내 뒤 천막에서
"강변 영화 예술제(Festiwal Filmu i Sztuki DWA BRZEGI)"를 하고 있었고,
마침 한국 영화를 상영하고 있던거다.
뭔가 너무 희안한 일이
한 순간에 벌어진다.
무슨 한국 영화인가 궁금해
소리나는 쪽으로 내려갔다.
(동영상 4: 카지미에쥬 돌니, 샹송이 울려퍼지는 저녁 비스와 강변)
무슨 영화인가 했더니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내가 1박 2일로 여기 와서,
첫날 저녁에 영화제에서 하는 영화를 봤으면,
기껏 폴란드까지 와서 한국영화를 볼 뻔했다.
계속해서
숙소를 미처 예약 못해서
1박 2일 못 있고,
당일치기로 있다 가는 게 아쉬웠는데,
물론 지금도 그게 좀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한국 영화를 보는 건
별루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쉬운 마음을 좀 덜었다.
비스와 강변에서 본 멋진 풍경과
음악, 그리고 기분좋은 강바람도
이제 떠나도 아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멋진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제 바르샤바 행 버스에 타자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동영상5: 카지미에쥬 돌니-바르샤바 가는 길, 저녁)
어차피 나는 종점에 내리니까
아무런 긴장감 없이
그렇게 그 멋진 창밖 풍경을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남기며,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중간에
버스가 서더니
사람들이 다 내린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다른 버스에 올라탄다.
나도 그냥 다른 승객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긴 했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내가 음악을 듣느라 무슨 일인지 못 들은 건가 싶어
내 뒤에 앉은 승객에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런 건 아니고, 아마 좀 더 큰 버스에 사람들을 많이 싣고 가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이유가 정확하게 뭔지는
다른 승객들도 모르고 그냥 짐작만 하나보다.
그렇게 수상하게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나서는
특별한 사건 없이
바르샤바까지 무사히 갔다.
카지미에쥬 돌니에 다녀오고 나니,
그 미셸 아저씨의 평가가
이 소도시에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Très jolie(트레 졸리).
Joli는 프랑스어로
'귀엽다, 사랑스럽다, 예쁘다, 잘생겼다'
뭐 그런 뜻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정말 "귀여운" 곳이다.
규모는 아담하고,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매력은 강렬하거나 자극적이기 보다는
은근히 가만가만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식이다.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지만,
이미 완벽하게 아름다운 곳이라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빈틈이 있고,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곳이다.
그리고
폴란드인들한테 말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남들이 잘 모르는 걸
"혼자",
"먼저" 알고 있을 때 느끼는
그런 남모를 뿌듯함을 안겨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