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인의 성지에서 경험한 신기한 체험
쳉스토호바(Częstochowa)는 "검은 성모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인과 다른 외국인들은
"검은 성모상(Black Madonna of Częstochowa)"이라고 하지만,
폴란드인들은 "검은 성모상"이라 부르지 않고,
"쳉스토호바 성모상(Matka Boska Częstochowska)"이라 부른다.
쳉스토호바의 성모상은,
타민족 비율이 매우 낮고,
90퍼센트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에서
매우 중요한 민족적,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폴란드 갈 때마다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매번 구체적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냥 쉬면서 여행도 하고 그럴려고
느슨하게 폴란드 바르샤바에 갔던
2016년 여름엔
한 번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
쳉스토호바(Częstochowa)도 넣어뒀다.
그해 7월 초에
자코파네(Zakopane) 갔다 돌아오는 길에
크라쿠프(Kraków) 갔다가
거기서
쳉스토호바(Częstochowa)를 들렀다오는
루트를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여러 군데를 들르면
아무래도 각각의 도시에 덜 집중할 것 같아서,
그건 별루인 것 같고,
쳉스토호바(Częstochowa)랑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크라쿠프지만
바르샤바에서도 쳉스토호바(Częstochowa)가 멀지 않길래
그냥 나중에 바르샤바에서 따로 가기로 하고,
7월 초에는
우선 자코파네랑 크라쿠프만 다녀왔었다.
그러다
7월 말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로
폴란드에 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폴란드 그리스도교 1050주년(1050 rocznica chrztu Polski)을 기념하여
쳉스토호바(Częstochowa)를 방문한 장면을
뉴스로 보면서
마치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는 듯이
서둘러
그 다음 주에 쳉스토호바(Częstochowa)행 버스티켓을 예약했다.
내가 교황 방문 다음 주
쳉스토호바(Częstochowa)를 간다니까
친구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할 때
가지 그랬냐고 했는데,
난 타지인 폴란드까지 가서
예약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고,
오래 줄서는 거,
시끌벅적한 거,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것도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다.
난 뭔가 다른 사람들과 상관 없이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 유명한 "검은 성모상"만
원본으로 보고 오고 싶었다.
쳉스토호바(Częstochowa)는
폴란드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래 지도에서 보이듯,
크라쿠프(Kraków) 북서쪽,
브로츠와프(Wrocław) 남동쪽,
바르샤바(Warszawa)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폴란드 도시가
크라쿠프인데다가
"동유럽 성지 순례" 투어로 많이들 가기 때문에
쳉스토호바(Częstochowa)에 가는 한국인들은
주로 크라쿠프에서 가는 것 같다.
크라쿠프(Kraków)에서 쳉스토호바(Częstochowa)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고
요금은 2017년 현재
15-30즈워티(약 4,500원-9000원)다.
기차로는
기차 종류에 따라 1시간 30분~3시간 걸리고
요금도 달라지는데 버스보다는 좀 많이 비싸다.
바르샤바(Warszawa)에서 쳉스토호바(Częstochowa)까지는
버스로 3시간이 조금 못 걸리고
요금은 2017년 현재
20-30즈워티(약 6,000-9,000원)이다.
기차로는 2-3시간 정도 걸리고,
요금은 2017년 현재 47즈워티(약 15,000원), 69즈워티(약 20,000원)다.
나는 폴스키 부스(Polski Bus)를 타고 갔다.
[http://www.polskibus.com/en/index.htm]
인터넷에서
쳉스토호바(Częstochowa)를 검색해보니,
검은 성모상 말고 다른 게 안 나오길래,
그냥 그것만 보고 오면 될 것 같아,
아침 일찍 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보통 폴란드 사람들도 그렇게 가는지
"바르샤바-쳉스토호바"간
폴스키 부스(Polski Bus) 운행 시간도
딱 그렇게 하루 두번이다.
그렇게 3시간을 조금 못 달려 도착한
쳉스토호바(Częstochowa) 시외버스터미널은
꽤 한적하고 시골스러웠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아래 사진과 같은 이정표가 있는데,
왼쪽엔 위부터 아래로
"열차 역사 박물관", "병원", "Stradom 기차역"이,
오른쪽엔 "야스나 구라", "가톨릭 성당", "정교회 성당", "기차역", "시청"이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가장 위,
중요하다는 듯 노란색으로 특별히 표시된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즉 '밝은 산'이라는 의미의 장소에
검은 성모상이 있다.
이정표에 따르면
시외버스터미널에서부터 거기까지
2Km가 조금 넘는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날씨도 좋아서,
거뜬히 걸어갈 만 했다.
쳉스토호바(Częstochowa)라는 이름은
정확한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전설의 인물 쳉스토흐(Częstoch)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즉, "쳉스토흐(Częstoch)의 도시"라는 뜻이다.
하지만
보통의 폴란드 사람들은
"자주"라는 의미의 "쳉스토(Często)"와
"걸어다니다"라는 의미의 동사 chodzić와 형태적으로 유사한 "호바(chowa)"가
결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처음 이 지명을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즉, "자주 걸어다니는 곳"이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쳉스토호바(Częstochowa)는
이름처럼 걸어다니는 게 어울리는 도시인 것 같다.
쳉스토호바의 지도는 다음과 같다.
가운데 진한 세로 점선이 기찻길이고,
그 중간의 붉은색 네모 PKP가 기차역,
그 옆 붉은 네모 PKS가 시외버스터미널이다.
그리고 왼쪽 상단의 붉은 네모로 표시한
야스나 구라(Jasna Góra)가
검은 성모상이 있는 곳이다.
우선 시외버스터미널 PKS에서 북쪽으로
"자유"라는 의미의 볼노시치 길(Aleja Wolności)을 따라 걸었다.
이 도시는 도심만 그런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그런지
성당이 많다.
어쩜
다른 특별한 눈에 띄는 건축이나 기념비가 없어서
성당이 유독 눈에 띄는지도 모른다.
그 길을 걷다 가장 먼저 나온 곳은
주님 탄생 성당(Rzymskokatolicka Parafia pw. Narodzenia Pańskiego)인데,
별로 특별한 의미나 역사를 가진 성당은 아닌 것 같다.
건물이 비교적 현대적이고,
내부도 그렇다.
미사 없이
몇몇 신자들이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분위기는 매우 경건하고 조용했다.
또다른 성당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길래,
그런데
아직 시간도 많은 것 같길래,
그걸 보러
길을 건너서
코페르니쿠스 길(Mikołaja Kopernika)로
걸어 들어가봤다.
중간에 뭔가 평범해보이면서도
어딘가 남다른 중고서점이 나온다.
밖에서 보아하니
이 안에 뭔가 희한한 게 많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휴가중(Urlop)"이라는 안내와 함께 잠겨 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와 영화필름 롤 위에 적힌 글은
쳉스토호바와 인근 지역에 관련된 영화를 삽니다.
라는 뜻이다.
그 길의 끝에
두 개의 성당이 등장한다.
노란색 성당은
둥근 돔 지붕 때문에
그리고
"체르키에프(Cerkiew)"라는 특별한 명칭 때문에
정교회 성당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나
쳉스토호바 성모 마리아 이콘 성당(Cerkiew Ikony MB Częstochowskiej)으로
동방정교 성당이다.
보통 폴란드어에서
성당/교회는 "코시치우(kościól)"라고 불리며,
정교도가 대다수라,
교회라고 하면 무엇보다 정교회 성당을 일컫는
러시아에서
교회는 체르코프(церковь),
우크라이나에서는 체르크바(церква)다.
아마 폴란드어 "체르키에프(Cerkiew)"도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에서 온 것 같다.
원래 다른 곳에 정교회 성당이 있었는데,
그게 가톨릭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여기에 새로 정교회 성당을 짓게 되었고,
1994년에 짓기 시작해
2009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서
정교회 성당 왼쪽에 보이는 현대적 건물은
우체국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성당은
주님 승천 성당(Kościół Wniebowstąpienia Pańskiego/Kościół Ewangelicko-Augsburski)
이라는 이름의 가톨릭 성당이며,
1905년에 지어졌으니,
110년 조금 넘은,
유럽 성당치고는 역사가 짧은 성당이다.
성당 맞은 편에는
쳉스토호바 중앙 우체국 같은 느낌의
커다란 우체국이 있다.
우체국, 정교회 성당, 가톨릭 성당이
세 개의 모퉁이를 차지한
이 사거리의 마지막 모퉁이엔
소박하고 편안하고 아담한 공원이 있는데,
이름이 연대 공원(Skwer Solidarności)이다.
아마도 이건
1980년 자유연대노조를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건너편의 정교회 성당과 가톨릭 성당을 보니,
그리스도 교회 사이의 연대, 혹은 일치를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 공원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맑은 하늘색이던 하늘이 극적인 회색빛이 되었다.
갑자기 야스나 구라(Jasna Góra)에
서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큰 길로 나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큰 길로 나와서
조금 더 걸어가면
이제 성모 마리아 길(Aleja Najświętszej Maryi Panny)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쭉 걸어가면
야스나 구라(Jasna Góra)에 도달한다.
아래 사진이
성모 마리아 길(Aleja Najświętszej Maryi Panny)의 서쪽편인데,
"순례자들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보니
순례자가 된 것 같아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진다.
하긴
폴란드인의 "성지"에 온 것만으로
나는 이미 순례자인지도 모른다.
아주 멀리 아득하게 높이 솟은 성당이 보인다.
뒤돌아보니
거리 풍경은 거의 비슷한데,
반대편 끝에는 아마도 공장이 있나보다.
커다란 굴뚝 같은 건축물이 있고,
영화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지금 보니
내가 서 있던 그 횡단보도 앞이
성(聖)과 속(俗)이 교차되는 지점이었던 거다.
양쪽이 하늘 색깔도 다르다.
성(聖) 쪽으로,
"밝은 산",
즉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쪽으로 걸어갔다.
쳉스토호바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라는 광고가
폴란드어와 영어로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1박 2일 이상으로 왔으면 다운로드 받았을텐데
당일치기 여행인데다가
성당만 보고 갈거라
난 그냥 이 길 위에 있는 여행안내센터에서
지도랑 안내브로셔를 받아 움직였다.
이건 쳉스토호바 시청(Ratusz)이다.
19세기에 지어진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라는데,
지은 지 얼마 안된,
마치 20세기 후반이나 21세기에 지어진 건물 같아 보인다.
이정표의 노란색 부분을 보니
이제 야스나 구라(Jasna Góra)까지
약 1Km밖에 안 남았다.
가는 길 중간에 만나는
비둘기들과 함께 있는 소녀 분수 (Fontanna Dziewczynka z gołębiami)는
2008년 아카데미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한,
"Peter and the Wolf"라는 에니메이션의 피규어를 만들었던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제 꽤 걸어왔는지,
반대편 공장 굴뚝(?)이 아주 작게 보인다.
이렇게 나는 점점
야스나 구라(Jasna Góra)로 가까와지고 있는데,
다른 거리에서 찍은 사진엔
이상하게 그게 안 드러난다.
가까울 때나 멀 때나 비슷한 모습이다.
내가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성당에 포커스를 맞춰
비슷한 각도로 찍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건 똑같더라도
양옆의 길 풍경은,
나무 크기라든가 가로등 크기라든가
그런 게 달라져야할텐데
이 길의 풍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아님 야스나 구라(Jasna Góra)가
"밝은 산"이라는
이름답게
산 위에 있어서
주변 풍경에 가려지지 않아 그런지,
거리가 달라져도 풍경은 거의 똑같다.
길가에 여러 기념비가 나온다.
이건 공산 정권 때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의 편에 서서
반 공산주의 활동을 활발히 하다
결국 암살된
포피에우슈코(Jerzy Popiełuszko)신부의 동상이다.
요한 바오로 2세와 관련된 설치물도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래 십자가에 쓰여진 단어들
Bóg, Honor, Ojczyzna
신, 명예, 조국
은 폴란드 군의 모토라고 한다.
군인들을 위한 추모비다.
이제 드디어
야스나 구라(Jasna Góra)에 도착했다.
그 전 주에 있었던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의 설치물이
아직 해체가 안 된 채로 남아 있다.
언덕 위라
길게 뻗은
성모 마리아 길(Aleja Najświętszej Maryi Panny)이
이제 한눈에 들어온다.
야스나 구라(Jasna Góra)는 수도원으로
다음 사진처럼 거의 사각형 모양으로 생겼다.
요새처럼 높고 두꺼운 벽과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 왼쪽 하단의 문으로 들어가면,
수도원이 나온다.
아래는 야스나 구라(Jasna Góra)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한 약도인데
20번문과 21번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
난 20번으로 들어가서 21번으로 나왔다.
야스나 구라(Jasna Góra) 홈페이지(영문)
http://www.jasnagora.pl/Default.aspx
입구에 커다란 청동 동상이 서 있어서,
처음엔
폴란드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인물 중 하나인
요한 바오로 2세인가 했는데,
아니다.
비쉰스키 주교 상(Pomnik kard. Stefana Wyszyńskiego)으로
나치와 공산 정권에 맞서 싸운,
폴란드인들의 존경을 받는 종교인이란다.
이제부터 4개의 문을 지나면
수도원의 안뜰에 도착한다.
4개의 문의 이름은
루보미르스키 문(Brama Lubomirskich),
승리의 성모 문(Brama Matki Bożej Zwycięskiej),
고통의 성모 문(Brama Matki Boskiej Bolesnej),
야기에워 문(Brama Jagiellońska)이다.
가장 바깥쪽 문이
루보미르스키 문(Brama Lubomirskich)이다.
18세기 초에 만들어진 석조문으로
후원자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문 위 쪽에
검은 성모상이 총천연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승리의 성모 문(Brama Matki Bożej Zwycięskiej)과
고통의 성모 문(Brama Matki Boskiej Bolesnej)은 18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가장 안 쪽의 야기에워 문(Brama Jagiellońska)은
17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14세기에
폴란드 야기에워(Jagiełło) 왕의 지원을 받아
이 수도원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이제 이 문을 지나면 대성당(Bazylika)이 나온다.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수도원은
14세기 후반에 세워졌다.
수도원 중심에 있는
대성당(Bazylika)은 15세기 초반에
처음 기틀을 다진 목조건물이었는데,
17세기 후반에 불에 타서,
재건축되고 증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성당(Bazylika) 안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뭐니뭐니해도
외국인들은
"검은 성모상(Black Madonna of Częstochowa)"으로,
폴란드인들은
"쳉스토호바 성모상(Matka Boska Częstochowska)"으로 부르는
그 성모상이다.
이 성모상이 야스나 구라(Jasna Góra)에 온 건
14세기인데,
이 성모상은 로마 카톨릭이라기 보다는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의 성모이며,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 루카 혹은 누가가
예수님 가족이 쓰던 탁자 위에
이 성모상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믿기 힘든 이 성모상의 전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래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이 성모상을
폴란드 남부 실롱스크(Śląsk) 혹은 실레지아(Silesia)
어딘가 다른 곳으로 싣고 가던 중이었는데,
쳉스토호바(Częstochowa)에서
말이 멈추더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혹은
그것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고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수도원에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쳉스토호바 성모상(Matka Boska Częstochowska)" 얼굴에는
칼자국이 두 개 나 있는데,
이것은 15세기에 보헤미아의 신교도인
후스파들의 침략 때 생긴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 사연에도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그 중 한 버전은
당시 그들이 이 성모상을 훔쳐가려고 했는데
말이 움직이지 않자,
성모상을 땅에 내동댕이치고
성모상의 얼굴을 두번 찔렀다.
하지만 그 다음에 찌르려고 하자
그 도둑은 큰 고통을 느끼며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칼자국을 없애려고 온갖 노력을 했으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없앨 수 없었단다.
또다른 버전은
후스파 교도들이 이 성모상을 훔치려하자
성모상이 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그들은 도망가고,
성모상의 얼굴에는 그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후반 스웨덴이 폴란드를 침략했을 때에는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야스나 구라(Jasna Góra) 수도원이
끝까지 방어되고,
결국 스웨덴군을 물리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이 성모상 덕분이라고 생각했고,
폴란드왕은 이 성모상에게
"폴란드 여왕이자 수호자(Patronka i Królowa Polski,
Queen and Protector of Poland)"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 이외에도 폴란드의 여러 국난을
쳉스토호바의 성모상이 극복하게 도와주었다고
폴란드인은 믿고 있고,
폴란드 전국 방방곡곡의 성당에
"쳉스토호바 성모상(Matka Boska Częstochowska)"의 카피본이 걸려 있다.
그 뿐 아니라 폴란드인들은 이 성모상이
개인적인 차원의 기적도 행한다고 믿는다.
쳉스토호바 대성당(Bazylika)을 들어가면
성당 앞쪽에
철창이 쳐진 작은 예배당이 있고
그 안에 성모상이 있다.
그 작은 예배당을 둘러싼 왼쪽, 뒤쪽, 오른쪽 벽엔
ㄷ자로 통로가 있어서,
한명씩 차례로
성모상을 둘러 걸을 수 있다.
이 성모상 주변은
분위기가 매우 엄숙하고 경건한다.
그 ㄷ자 통로를 걷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무릎을 꿇고 무릎으로 걸어서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이 곳에서는 그렇게 해야한단다.
아마도 존경과 자기 낮춤의 표시인 것 같다.
그곳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 원래도 많겠지만,
그 때는 그 전주에 크라쿠프에서 열린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가 끝나고
폴란드 다른 지역도 관광차 방문한 듯 보이는,
기념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나는 그 ㄷ자 통로는 돌지 않았고,
그냥 성모상이 있는 예배당 앞에 서 있었다.
"성지"니 만큼 특별히 많이 미사를 해서,
한 두 시간에 한 대꼴로 미사를 한다.
하루에 10-15번 정도 하는 것 같다.
보통은 폴란드어로 하고,
가끔은 라틴어로도 하는데,
내가 예배당 앞에 서 있을 때는
갑자기 스페인어 미사가 시작되었다.
원래 그런건지,
아님 이 날 방문한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
참석자들을 위한 배려였는지는 모르겠다.
미사가 시작되고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 티셔츠를 입은
라틴 계열 느낌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성당 안 작은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천주교 신자인 나도,
스페인어는 모르지만,
예배당 철창 밖에 서서 미사를 같이 드리기로 했다.
그 언어를 몰라도
어차피 전세계의 미사는
같은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록 강론은 못 알아 들어도
천주교 신자라면
영성체는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까지 천 여년 동안
대부분의 나라에서 미사가 라틴어로 진행되어
지식인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민중들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사를 보기도 했고,
사실 천주교에서는
강론보다 영성체가 좀 더 중요하다.
(동영상 1: 쳉스토호바, 야스나 구라 수도원, 검은 성모상 앞 미사)
예배당 철창 바깥에 서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미사가 이제 끝나갈 즈음
영성체를 하러 예배당 안에 들어갔는데,
무슨 일인지
영성체 전후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엄숙한 분위기라
계속 긴장하고 있긴 했지만,
그 순간 슬프진 않았는데,
그리고 그 여름 폴란드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었는데,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편안했는데,
나쁜 일을 당하거나,
특별히 나쁜 일을 한 기억도 없는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데,
멈추지를 않는다.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는 온 몸에 힘이 빠져서
한동안 그냥 멍하니 성당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성당 벽에 목발도 걸려 있고,
칼도 걸려 있고,
십자가도 걸려 있다.
여기에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것일까?
아님 성당에서 기적을 형상화해 만들어 붙인 것일까?
성당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도
미사 중에 나와 같은 체험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그렇게 앉아서,
멀리 다음 미사가 진행되는 걸,
그리고 성당 내부와 사람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보니,
몸과 마음이 다시 기운을 찾았고,
한결 가벼워졌다.
폴란드인들에게 기적을 일으킨다는
이 성당에서
그렇게
나한테도 작은 기적이,
보통 성당 사람들이 "성령이 임했다"고 표현하는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뭔가가 크게 변화한 것 없었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마음이 정화된 것 같았다.
이제 대성당 밖으로 나와서
수도원 내 다른 장소들을 구경했다.
이건 2010년
러시아 스몰렌스크 상공에서 의문사한
폴란드 전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Lech Kaczyński) 추모비다.
수도원 안뜰에는
동쪽과 서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나는 동쪽으로 올라갔다.
아무 설명이 안 되어 있지만,
이건 아무래도 예수님 같은데,
금관과 번쩍이는 금장식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거리가 먼 그의 삶과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아무 설명이 없으니
어떤 폴란드 왕을 형상화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이 동상이 왕이라 하더라도
그런 세속적 지도자의 동상은
이 수도원에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대성당(Bazylika)은
시간을 두고 여러번 증축을 거듭한 건축물이라
이질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뒤섞여 있다.
수도원 동남쪽에
코르데츠키(Pomnik o. Augustyna Kordeckiego) 기념비가 있다.
스웨덴군이
야스나 구라(Jasna Góra)에 침입하려 했을 때
그걸 막아낸 수도원장이라고 한다.
그 전 주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 때
설치한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란색 푯말에 쓰인 글씨를 보니
여기는 "기자석"이란다.
멀리 내가 걸어 들어온
성모 마리아 길(Aleja Najświętszej Maryi Panny)도 보인다.
수도원 외곽 남서쪽의 풍경도 보인다.
수도원 동북쪽엔
사람 좋은 얼굴로 멀리 손을 흔들고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기념비(Pomnik św. Jana Pawła II)가 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울먹울먹하던 하늘이
어느새 파래졌다.
수도원 서북쪽엔
모르슈틴 요새(Bastion Morsztynów)가 있다.
17세기 스웨덴인,
18세기 러시아인,
19세기 오스트리아인의 침입을 막아내야 했던
이 수도원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수도원과 성모상을 지키는데 반드시 필요했을
그런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햇볕이 좋아 여기 좀 앉아 있었다.
수도원 서남쪽에도
뭔지 잘 모르겠는 조각이 하나 서 있다.
그리고 여기는
수도원 뜰에서
서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아래 사진의 노란색 표지는 역시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의 잔재로 추정되는데
"국회의원, 외교관, 성가대 좌석"이라고 쓰여 있다.
동쪽과 서쪽에 있는 이런 계단으로 올라가면
수도원 바깥쪽으로 둥글게 길이 연결되어 있어서,
계속 한 방향으로 가다보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웬지 그냥 떠나기 아쉬워
기념품을 사고
수도원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나서
서쪽에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문(Brama św. Jana Pawła II)으로 걸어나왔다.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 때
걸어놓은 만국기가 길 양쪽을 장식하고 있다.
그 때 태극기를 봤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보다.
아무리 봐도 못찾겠다.
저녁 6시 조금 넘어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바르샤바로 돌아갈거라
시간 여유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쳉스토호바(Częstochowa) 시내도 좀 둘러보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빨리 흘러가서
야스나 구라(Jasna Góra)랑 야스나 구라 가는 길
말고는 별로 구경도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친해지지 못한
쳉스토호바(Częstochowa) 시내가
아까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출발시간에 거의 맞춰
바르샤바 행 시외버스를 타러 터미널에 갔다.
어딘가 다른 도시에 들렀다 오는 그 버스는
벌써 도착해 있다.
급하게 운전기사에게 표를 체크받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빈 자리도 좀 보이지만,
자리가 거의 다 찼다.
아, 그런데
2층 제일 앞 줄 4좌석 중에
한 좌석이 비어있다.
얼른 가서
"이 자리 주인 있나요?(Czy to miejsce jest zajęte?)"
라고 물어보니
없단다.
그래서 정면 통유리로 전망이 다 보이는
폴스키 부스(Polski Bus)의
2층 가장 앞 명당 자리를 운 좋게 차지했다.
내 왼쪽에는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남자애 무릎에 여자애가 거의 눕다시피 하고
창에다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야를 방해하지 않으니,
뭐 문제될 건 없다.
내 오른쪽에는 어떤 점잖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해
쳉스토호바 시내를 지났다.
버스 2층에서 보는 시내 풍경이 신기하고,
신나고,
시원시원하다.
(동영상 2: 버스에서 본 쳉스토호바 시내)
고속도로로 나왔다.
내 오른쪽에 있던 아저씨는
그냥 점잖게 앉아만 계시더니
내가 사진찍고
동영상 찍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어느 순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비록 언제 자기가 사진을 찍었냐는 듯이
새침한 무표정으로 먼 데를 보며
금새 다시 전화를 집어넣긴 했지만...
유리창에 얼룩이 묻어 있어서
사진과 동영상 화면이 깨끗하진 않다.
그래도 다시 보니
그 날의 그 업된 기분이 다시 재생된다.
(동영상 3: 쳉스토호바-바르샤바 고속도로 1: 밝음)
이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동영상 4: 쳉스토호바-바르샤바 고속도로 2: 어둠)
그리고 이제 해가 다 진 후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폴란드인의 성지이자
기적의 공간인 쳉스토호바(Częstochowa)에서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했더니,
내 주변 사람들이 다들 흥미로워 한다.
자기가 겪은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런 걸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겪었다는 걸
신기해하기도 하고,
그런 경험이 어떤 건지 그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 일 이후 폴란드에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특별한 일 없이
무사하게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적극적으로 발생하는 좋은 일만큼이나
그냥 특별하게 나쁜 일 없는 상태가
좋은 일인 것 같긴 하다.
사람들은
마치 좋은 일은
자기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일인데,
나쁜 일은
자기에게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인 양 생각해서,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에 대해서는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자연스럽게,
마치 누군가에게 맡겨둔 것을 다시 돌려받듯,
꿔준 돈을 되돌려받듯
그렇게 받아들인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나쁜 일이 없다는 건
작은 좋은 일들이 있었다는 건데,
그 작은 좋은 일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질문을 가지지 않으니
그걸 어떻게 내가 겪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크게 티는 안 나지만,
특별하게 기억도 안 나지만,
어쩜
그런 당연하게 받아들인 작은 좋은 일이 바로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상이
내게 준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검은 성모상 앞에서 경험한 신비한 체험에 비해
나의 속된 일상은
너무 평범하게 흘러가서 그런지,
그게 끝이 아니고,
뭔가 다른 특별한 게 또 있을 것만 같다.
지금도 난
그 때 나한테 일어난 그 체험이 뭐였는지,
무슨 의미였는지 여전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