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대폴란드(Wielkopolska)의 고도(古都)
2013년 여름에 바르샤바에 갔을 때
내 폴란드 친구의 한국 친구,
즉 친구의 친구 o님을
바르샤바 시내에서 자주 만났다.
우리 둘은 친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폴란드 친구와 함께 몇 번 본 사이라,
그런데다가
바르샤바에서 아는 한국인을 만나는 게
흔한 일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면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한국말 수다도 떨었는데,
o님이 포즈난(Poznań)에 간다길래
나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2013년 나의 바르샤바 체류의 여러 목적 중
중요한 두 가지가
폴란드어 공부와
폴란드 다른 도시 여행이었는데,
공부는 가자마자 시작했지만,
여행은
그냥 생각만 품고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항상 시작이 어렵다.
o님의 포즈난행에 그렇게 꼽사리 끼게 된 게
2013년 내 폴란드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었고,
어떻게 보면
2016년 보다 자유롭게 떠난 폴란드 여행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o님은 예전에 포즈난(Poznań)에서 지낸 적이 있어
그 도시를 아주 잘 알고, 또 좋아했고,
o님 선배가 포즈난(Poznań)에 있는데
숙소도 싼 걸 알아봐준다 하고,
포즈난행 기차표 인터넷 예매도 o님이 했다.
[돌아오는 바르샤바행 기차표는 내가 끊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그냥 같이 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나의 바르샤바 바깥 구경은
그렇게 쉽고 편하게 시작되었다.
포즈난(Poznań)은 폴란드 중서부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검색해보니
2017년 현재
바르샤바(Warszawa)에서 포즈난(Poznań)까지는
기차로 2시간 반-3시간 반 정도 걸리고,
평균 55즈워티(약 15000원),
버스로는 3시간-5시간이 걸리고,
25-40즈워티(7000원-12000원 정도)다.
우린 그 때 기차를 타고 갔다.
목욜 오후에 출발해서
일욜 오후에 돌아오는
좀 느슨한 3박 4일 일정이었다.
이 때 난 월욜부터 금욜까지
주 5일 폴란드어 개인교습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목욜 낮까지만 수업하고
포즈난을 가겠다 했더니,
개인교습 선생 에바(Ewa)가
그 주 5일치 수업을 4일로 몰아
그렇지 않아도 인텐시브한 수업을
더 인텐시브하게 했었다.
사실 그냥 금욜 수업 하루 안해도 되고,
그렇게 하루 수업을
4일에 배분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또 그렇게 해주겠다는 데 거절하기도 뭐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당시 나 자신이
폴란드어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기도 했다.
심지어 7주 동안 폴란드어를 인텐시브하게 하면
마스터할 수 있으리란
야무진 꿈을 꾸고 있기도 했다.
역시나 7주간 폴란드어 정복은 택도 없는 소리였고,
당시에는 의욕도, 욕심도 과해서 그랬는지,
할애하는 시간에 비해
폴란드어가 많이 는 것 같지 않아 실망했었는데,
그 후 한국에 돌아와
특별히 폴란드어를 하지 않고 있다가
2016년 다시 폴란드에 갔을 때
그전에 생전 못 듣던
'폴란드어 잘 한다'는 칭찬을 여러번 들었다.
솔직히 내 스스로 느끼기에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은 걸 보면,
내가 2016년에 운 좋게도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폴란드인들을 만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2013년에 Ewa 혼자 고군분투하며
이런저런 새로운 자료로 진행하던
그 인텐시브 개인교습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나보다.
그때 괜히 조급해서
쉽게 절망했던 마음이 부끄럽고,
다른 한편으로
여러모로 애써 준 Ewa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이 때 내가 포즈난 간다고 Ewa는
"포즈난 음식"에 관한
폴란드 유명 블로그의 글을 일부러 찾아서
수업에서 그 글 독해하면서 설명해주고,
"브로츠와프"도 들를 것 같다고 했더니
브로츠와프 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귀뜸도 해주었었다.
아무튼 그래서
평소보다 좀 늦게 목욜 수업이 끝나고
바르샤바 기차역에서
o님과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에 바르샤바에서 출발했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2013년 여름 폴란드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최고기온이 많이 올라갈 때는
36-37도까지 올라가고,
보통 30도를 넘나들었었다.
우리가 포즈난(Poznań)에 갔을 때도
계속 30도가 넘었었다.
그것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그것과 상관 없는
다른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바르샤바를 거의 막 벗어나려고 하는 찰라
기차가 서더니
거의 1시간 가까이 그렇게 가만히,
땡볕에 서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늦게
포즈난(Poznań)에 도착했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매번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
아님 원래 폴란드 기차가 그런지,
난 폴란드 기차 타고
목적지에 정시에 도착한 적이 없다.
탈 때마다 거의 항상 연착되었었다.
그래서 난 폴란드에서는
가능하면 기차보다는 버스를 타고 다닌다.
이 때는 포즈난 가 본 o님이 기차를 타자고 했고,
검색해봤을 때
버스보다 기차가 더 빨랐었다.
비록 기차가 연착되어
결국은 버스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됐지만 말이다.
바르샤바도 평야지대고,
포즈난(Poznań)도 평야지대라
바르샤바에서 포즈난으로 가는 길 내내
창밖으로 평평한 땅이 보인다.
우리가 포즈난 갈 때 탄 기차는
좀 옛날 기차였다.
그래서 에어컨도 작동 안되고,
30도 넘는 여름 한낮에 내부가 좀 많이 더웠지만,
그래도 뭔가 폴란드스러워서 정겨웠다.
기차가 달릴 때는 창밖에서 바람도 불어왔다.
기차 내부의 안내문이
폴란드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렇게 자그마치 4개국어로 쓰여 있다.
영어도 없이 말이다.
"옆문은 자동으로 닫힌다"는 뜻이다.
포즈난(Poznań)은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레흐(Lech), 체흐(Czech), 루스(Rus)라는
삼형제가 살았는데,
셋이 길을 가다 갈림길이 나오자
레흐는 북으로,
체흐는 남으로,
루스는 동으로 향한다.
북쪽으로 간 레흐(Lech)는
나무 위에 독수리를 발견하고,
그 곳에 나라를 세운다.
폴란드어로
둥지가 gniazdo[그니아즈도]이기 때문에,
그곳은 그니에즈드노(Gniezdno)라는 이름을 얻고,
현재 그니에즈노(Gniezno)라고 불리는 도시가
바로 그곳이다.
한편 체흐(Czech)는
남쪽으로 내려가 체코를 세우고,
루스(Rus)는 동쪽으로 가서 러시아를 세운다.
레흐(Lech)라는 이름은
폴란드인을 포함한 서슬라브인의 일부를 일컫는
레히트인(Lechici, Lechites)이라는 표현 안에 들어가 있고,
폴란드인들 중에
레흐(Lech)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도 꽤 많으며,
포즈난에서 생산되는 폴란드 맥주 이름도
바로 레흐(Lech)다.
이 전설을 혹시 아는지 러시아인들에게 물어봤는데,
모른단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체코에도 있는 전설이라는데,
체코 버전엔
루스 없이 레흐와 체흐 형제 이야기로 나온다.
아무래도 체코나 폴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전설이
두 나라에서 각각 다르게 발전하고,
러시아에는 전달 안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래서 폴란드의 역사는
그니에즈노(Gniezno)라는 곳에서 시작되는데,
이 그니에즈노에서 가깝기 때문에
[그것은 아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폴란드 초기 역사에서
그니에즈노와 함께 크게 발전했던 도시가
바로 포즈난(Poznań)이다.
966년 폴란드 미에슈코(Mieszko) 왕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일 때
아마도 포즈난에서
왕의 세례식이 있었을 거라 한다.
그리고 13세기 말 아주 잠깐
폴란드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1290-1296).
18세기 후반 폴란드가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삼국에 의해 분할되었을 때는
독일 프로이센의 관할 하에 놓였는데,
당시 독일어로
포젠(Posen)이라 불리던 포즈난(Poznań)을
프로이센 황제,
즉 카이저(Kaiser)가 거주할 곳으로 만드느라
성도 쌓고 도시도 정비하고 했단다.
그래서인지 포즈난(Poznań)은
전반적으로 독일 도시같은 느낌이 강하다.
공산정권 하에서는
1956년에 일찍이
반 공산 시위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시위는 실패했다.
포즈난(Poznań)이라는 이름은
'알게 되다' 라는 의미의
동사 poznać[포즈나치]의 과거분사 혹은 형동사형
poznany[포즈나니]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즉, "알려진 도시"라는 의미다.
경제적인 면에서 포즈난은
소득수준이
수도 바르샤바에 이어 폴란드에서 두번째로 높다.
폴란드 서쪽에 자리 잡아
지리적으로 서유럽에 가깝고
역사적으로
독일과 활발히 교류했던 전통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많이 투자를 하고
그 밖에 많은 서유럽 기업들이
폴란드 지사를 포즈난에 두고 있다.
포즈난은 아래 지도와 같이 생겼다.
사실 이 지도가 방위는 좀 이상하다.
왼쪽이 북쪽이고 위쪽이 동쪽이다.
그래도 이게 인터넷에서 찾은 지도 중에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지도였다.
왼쪽, 즉 북쪽에 보이는 기차역이
포즈난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 할 수 있고,
남북으로 이어진 붉은색 글자로 표시된 세 장소
즉 중심부(Śródmieście), 구시가(Stare Miasto), 툼스키 섬(Ostrów Tumski)이
가장 중요한 관광지다.
그리고 이제
중심부(Śródmieście), 구시가(Stare Miasto), 툼스키 섬(Ostrów Tumski)의 순서로
포즈난을 둘러볼까 한다.
포즈난에 도착하면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포즈난 기차역(Poznań Główny)은
매우 현대적이다.
찾아보니 처음 건설된 건 20세기 초반인데,
2012년에 리모델링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럽과 한국의 소도시들에서처럼
역시나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외버스터미널 또한 자리잡고 있다.
다른 현대식 기차역처럼 역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고,
커다란 쇼핑센터도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주변에 자연스럽게 시가가 형성되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좀 한산한 분위기였다.
여름철이라
다들 어딘가로 휴가를 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이 도시는
어디 가나 특별히 붐비는 느낌이 없었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폴란드 봉기
(powstanie wielkopolskie 1918–19, Greater Poland Uprising (1918–1919))기념비가 서 있다.
대폴란드 봉기는
20세기 초반 독일의 지배 하에 있던 폴란드에게
독립을 가져다 준 중요한 사건이다.
내가 갔을 때 마침 해가 막 진,
어둑어둑한 시점이라 사진이 어두운데
원래 기념비의 장식은 좀 더 선명하다.
사실 포즈난에서는 이것보다 1956년 6월 기념비
(Pomnik Poznańskiego Czerwca 1956, June 1956 Monument)가 더 중요하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1956년 소련에서는
스탈린 격하운동이 시작되었는데,
1956년에 소련 안팎 이곳저곳에서는
반공산정부 시위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폴란드 포즈난의 대규모 시위다.
이 시위는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폴란드 공산정권은 그 후로도 30여년이 더 지난
1989년에 가서야 무너졌다.
당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이 기념비는
1980년 자유연대노조(Solidarność)의
파업 협상 조건 중 하나로
1981년 설립되었다.
포즈난 갔을 때
이 기념비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진을 대신 올린다.
기차역에서 조금 걸어 포즈난 중심부로 가면
대로의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과
그 뒤로 현대식 건물들이 보인다.
이 곳이
포즈난 중심부(Śródmieście) 중에서도 중심부다.
대로의 건물들은 20세기 초
폴란드가 프로이센, 즉 독일의 지배 하에 있을 때
이 곳에 머물고자 했던
프로이센 황제의 명으로 지은 것들로
어딘지 모르게
포즈난에 독일 도시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아래 보이는 건물은 대학홀(Aula Uniwersytecka, University Aula)인데,
신 르네상스 양식의
[여긴 르네상스 및 신 르네상스양식 건물이 많다]
아름다운 건물로
지금은 포즈난 필하모니의 콘서트 홀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건물은
황제의 성(Zamek Cesarski, Imperial Castle)이라 불린다.
새롭고, 모던하고, 인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프로이센의 황제 빌헬름 2세의 요구대로
20세기 초에 지은 건축이며,
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하고 웅장하고,
어딘지 모르게 엄숙하고 무겁다.
현재는 우체국, 극장 등으로 사용되는데,
아마 건물 내부도 구경할 수 있는 것 같다.
난 3박 4일 포즈난에 머물면서
이 길을 한 두번 지난 게 아닌데,
이상하게도 밝은 날 이 건물을 찍은 사진이 없다.
물론 낮보다는 밤에 좀 더 신비스러워보이긴 한다.
이 건물들 뒤쪽으로도
다른 역사적이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있다.
말 그대로 중심가라서
그나마 건물과 사람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난 그 곳을
포즈난을 잘 아는 o님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구경하고 다녔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진이 없다.
혼자 다니면 사진을 많이 찍는데
누군가랑 같이 이야기하며 다니면
확실히 사진을 덜 찍게 된다.
그래서 비록 증거 사진을 보여줄 순 없지만
포즈난 중심부도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듣고 느끼기 꽤 괜찮은 곳이다.
포즈난에서 여행객에게, 특히나 동양이나 미국 등 유럽 바깥에서 온 관광객에게
가장 매력적인 장소를 꼽자면
무엇보다도 구시가일 것이다.
그곳의 역사를, 사연을 전혀 모르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예쁜 곳이다.
구시가 광장 중앙에는
알록달록한 작은 건물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매우 포토제닉한
상인들의 집(Domki budnicze, Merchant Houses)이 있다.
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건물들은
1535년 이 곳에 목조 가판대가 세워지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고,
이 건물들의 가장 윗층에는 상인들이 거주하고,
1층에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상품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른 폴란드 도시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2차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던 것을
르네상스 스타일로 다시 복원해서,
여행 안내 책자에 따르면,
지금은 포즈난에서 가장 괜찮은 기념품과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고 한다.
포즈난의 구시가(Stare miasto)는
크라쿠프, 브로츠와프에 이어,
폴란드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하는데,
광장 한 가운데 상인들의 집이 서 있고,
그 주변에도 다른 건물들로 가득 차서
사실 별로 크다, 탁 트여있다는 느낌이 없고,
광장보다는 오히려 시장의 이미지가 강하다.
아래 지도의 붉은 사각형이
포즈난 구시가의 광장인데
그 안에 다른 크고 작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은 관광객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찾는 곳이고
(바르샤바의 구시가 같은 곳은 순전히 관광객을 위한 곳이다)
그래서 사람도 많고,
작은 문화 행사나 판촉 행사도 많이 눈에 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행사가 이뤄지는 곳은 시청이다.
다른 유럽 도시의 구시가와 마찬가지로
구시가 한 구석에는
시청(Ratusz, The Town Hall)이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 중반에 새로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며,
스웨덴이 침입했을 때 무너졌다가
18세기 후반에 다시 세워졌고,
다시 2차세계대전 때 크게 파손되었다가
전후에 다시 복원되었다고 한다.
포즈난 시청은 건물이 높고 큰데
그 앞에 공간이 넓지 않아서
내가 2013년에 쓰던 카메라로는
한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쓰는 카메라로는 찍힐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전면이
아기자기한 르네상스식 장식을 한껏 뽐내고 있다.
매일 정오가 되면
사람들이
시청 앞에 모여드는데,
그건 정오마다
이 건물에서 두 마리의 염소가 나와
서로 머리를 맞부딪히다 사라지는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정오가 가까와오면
사람들이 이렇게 시청 앞에 자리를 잡는다.
ㅇ님의 제안으로
우리는 그 앞 까페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정오가 되자 정말
염소 두 마리가 나왔다.
동영상도 찍었다.
[동영상: 포즈난 시청 염소]
이게 너무 유명해서 폴란드 사람들에게
포즈난의 상징은 무엇보다도 염소다.
이렇게 염소가 시청 첨탑에 등장한 건
전설이라기 보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건에서 비롯된다.
1551년 시계 장인인 Bartlomiej Wollf가
자신이 만든 시청의 시계를 선보이기 위해
각계 각층의 여러 고위 인사들을 초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대접하려고 준비한 고기가
모두 타버리고 말았고,
푸줏간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라
주방장 보조는
가까운 곳에서 마땅한 고깃감을 찾다가
마침 그 근처에 있던 두 마리 염소를 발견한다.
그는 염소 두 마리를 잡으러 달려들었고
염소들은 도망치다
시청 첨탑에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이걸 본 주지사가 웃음을 터트렸고,
고기가 부족한 건 문제삼지 않은 채,
이 재미난 사건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만들라고 명령해서
그 이후로 시청 시계 첨탑에
염소 두 마리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시청 앞에는 필로리(pręgierz, pillory)가 있는데
예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를 공개하고
그들을 세워두는 장소였다고 한다.
(한국말로는 뭐라고 번역해야 할 지 모르겠다)
1535년에 세워진 건축물이고,
칼을 든 기사의 발 밑에 라틴어로
Iusticie라고 쓰여 있다.
Justitia가 라틴어로 정의니,
그와 관련된 단어인 것 같다.
이 "정의 기둥"은 18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그냥 기둥에 묶인 채로
군중들의 시선에 노출된 것 만으로도
대단한 처벌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둥의 원본은 시청 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 광장에 있는 건
1925년에 만들어진 카피본이라는데,
그 역사적인 기능과 상관없이
현재 이 기둥은
포즈난 사람들이 약속장소로
가장 많이 애용하는 곳이다.
광장 한구석에는 네포무크의 요한(Jan Nepomucen,John Nepomucene) 동상이 있는데,
네포무크의 요한은 체코의 카톨릭 성인으로,
보헤미아 여왕이 한
고해성사의 비밀을 밝힐 것을 거부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아마 이 사람도 무언가 종교적인 인물인 것 같은데,
누군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건물 벽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다.
포즈난 구시가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는
밤베르카 동상(Pomnik Bamberki, Statue of Bamberka)이며,
1915년 Goldenring 가문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세워졌다고 한다.
밤베르(Bamber)는 독일 남부 지역의 명칭이며,
원래는
18세기 성직자들의 공식 초청을 받아
그곳으로부터 포즈난으로 이주한
독일 정착민을 의미했고,
이들은 포즈난의 발전과 번영에 크게 기여했는데,
현대 폴란드에서는
포즈난 외곽 시골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밤베르카(Bamberka)는
밤베르(Bamber)의 여성형이다.
광장 곳곳에는
넵투누스, 아폴론, 마르스 동상이 세워진
분수가 있는데
그 중에 내가 찍은 건
넵투누스와 마르스의 분수이다.
포즈난에서 가장 번화한
포즈난 구시가는 밤에도
늦게까지 사람들이 북적댄다.
구시가를 빠져나오면
누군가 남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꾸며 놓지 않은,
진짜 사람들이 사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그런 주택가가 나타난다.
그 중엔 포즈난을 모티브로 한
이런 소박한 벽화도 보인다.
이런 염소 동상도 있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지만,
염소 모양 벤치도 있다.
이 벤치 옆엔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저씨의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 이름은 늙은 마리흐 동상(Pomnik starego Marycha, Old Marych Statue)이다.
늙은 마리흐는
자기 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가끔씩은 정치 상황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도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하던,
가상의 포즈난 시민인데,
1983년부터
1999년 담당배우가 사망할 때까지 방송된,
매우 인기있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툼스키 섬은 포즈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보통 폴란드어로 '섬'은 wyspa[비스파]이고,
остров[ostrov, 오스트로프]는 러시아어로 섬인데,
폴란드어 섬 이름에
ostrów[오스트루프]가 들어가서 희안하다 했더니
[처음엔 포즈난 방언인가 했다]
폴란드어에서 ostrów는 바다가 아닌
"강이나 호수 위의 섬"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Tum, Tuom은
독일어로 "대성당"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툼스키 섬은 "대성당 섬"이라는 의미고,
정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대성당이다.
정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지,
모든 자료에 다 "추정된다"가 붙는데,
이 곳에서
피아스트(Piast)왕조의 미에슈코 왕(Mieszko I)이
966년 그리스도교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를 폴란드의 국교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즈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툼스키 섬의 성당도
968년에 "대성당(Katedra, Kathedral)"으로 승격되었다.
그 대성당이
지금과 같은 고딕 양식의 외관을 가지게 된 건
그로부터 몇 세기가 지난
14-15세기이다.
대성당 안에는
벽쪽으로 쭈욱 둘러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미에슈코 왕과 볼레스와프 흐로브리를 기리는
황금 예배당(Zlota kapelica, Golden Chapel)이
가장 중요한 예배당이라고 한다.
ㅇ님과 나는 특별한 사전지식 없이 들어가서
그냥 둘러봤는데
모르고 봐도 이 방이 가장 눈에 띄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대성당의 지하에는
미에슈코 왕을 비롯한
많은 중요한 폴란드인의 유해가
안장된 지하묘지(krypta, crypt)가 있으며
소정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방문할 수 있다.
5즈워티(약 1,500원 정도)인지
10즈워티인지 그랬던 것 같다.
아래 사진은 성당 중앙 뒷부분의 바닥인데,
여러 왕을 포함하여
중요한 폴란드인들의 이름이 써 있다.
아마도 이곳 지하에 묻힌 사람들 이름인 것 같다.
이제 여기는 성당 안 지하묘지다.
대성당 밖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까 위의 지도에는 없었는데,
툼스키 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말타 호수(Jezioro Maltańskie, Lake Malta)가 자리 잡고 있다.
1952년에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이며,
포즈난 시민들의 중요한 휴식처라고 한다.
포즈난을 잘 아는 o님과 함께 가지 않았으면
아마 몰랐을,
현지인이 아니면 잘 모를 숨겨진 장소다.
인공호지만 호수가 꽤 커서,
한 바퀴 도는데 1-2시간은 걸리는 것 같았다.
(반 바퀴가 1시간이었는지,
한 바퀴가 1시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이건 말타호수 가는 길에 만난
대형 광고 구조물이다.
말타 호숫가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도 많았는데,
o님의 추천에 따라
나도 언덕 위에서 타고 내려오는
눈 없이 타는 썰매를 탔다.
한국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
줄 서지 않고 돈 내자마자 바로 탔는데,
뭐 별로 난이도가 높거나,
전망이 특별히 좋거나,
오래 타거나
뭐 이렇다할 만한 특별한 건 없었지만,
무더운 여름
높은 언덕에서
바람을 맞으며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경험도 나쁘지 않았다.
호숫가의 이 기차도 유명한데,
여기서 이 작은 기차를 타면
근처 동물원까지 20분 만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말타 호수는 ㅇ님이 포즈난에서 지낼 때
자주 오던 곳이라고 하는데,
나도 포즈난에 살았으면
자주 산책 나왔을 것 같다.
호수 한쪽은 자연이고,
다른 한쪽은 놀이시설과 찻길이 있다.
우리가 간 날은 찌는 듯이 더웠는데,
봄여름에 산책하거나
운동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 말타 호수 인근 지역은
대형 쇼핑몰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너무 늦게 들어갔는지,
그 크기에 비해 사람들이 너무 없어
뻘쭘하긴 했지만,
정말 크긴 컸다.
2013년에 폴란드 포즈난에 갔을 때
포즈난 자체를 가고 싶었다기 보다
그냥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거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작이 된 바로 이 여행이
폴란드에서 유일하게 혼자 떠나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포즈난은 포즈난 자체보다
"함께 한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3박 4일 내내 붙어 있던 것도 아니고,
거의 반은 혼자 다녔는데도 말이다.
o님에게 포즈난은
새롭거나 신기한 도시가 아니었고,
또 포즈난에서 따로 만날 친구, 지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따로 따로 다니기도 많이 했는데,
아마 3박 4일 계속 붙어다녔으면
서로 좀 불편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ㅇ님과 함께 하는 동안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놓고 있으니,
청각에 보다 신경이 집중되어서,
새로운 시각적 자극에 덜 반응하게 되어서,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3박 4일 있는 동안
하루는 당일코스로 혼자
근처 "브로츠와프"라는 도시에 다녀왔었는데,
그 때 반나절 동안 브로츠와프에서 찍은 사진이
2박 3일동안 포즈난에서 찍은 사진에 비해
시간 대비 별로 적지 않다.
내가 여행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끊임없이 찍어대는 건
어쩌면
분절되지 않는, 의미 없는 소리로 가득한
청각의 공허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오는
지속적인 온기의 부재를,
예측가능한 카메라의 셔터소리와
미지근한 기계의 온열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3박 4일의 포즈난 여행을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길에 탄 기차는
최신 기차였다.
포즈난 갈 때 탄 기차와 달리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왔고,
연착도 별로 안 되고,
(몇 분 정도는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차안 자리도 창가라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며 왔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기차 이름마저도
Błękitna fala(하늘색 물결)이라는
매우 시적인 이름이다.
그런데 불편하지도 않고 특별한 사건도 없으니
포즈난에서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길이 어땠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 때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포즈난에서 바르샤바로 오는 길에
Rogal Marciński라는 포즈난 빵을 사서
저녁으로 대신 먹었나 보다.
그 때 내가 포즈난에 간다는 걸 알고
내 폴란드어 선생님 Ewa가
포즈난 가면 맛보라고 요리를 몇 개 알려줬는데,
그 중에서도 포즈난에 가면
감자떡 같이 생긴
포즈난식 감자 요리랑
크로아상에다 설탕과 견과류를 덧뿌린
Rogal Marciński[로갈 마르친스키]라는 빵을
먹어보라고 했다.
결국 포즈난식 감자 요리는 못 먹었고,
Rogal Marciński는 두어번 먹었었다.
Rogal Marciński는
원래 11월 11일 성 마르틴의 날에 먹는 요리라
Marciński[마르친스키],
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Rogal[로갈]인데,
포즈난 전통 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포즈난 밖 다른 폴란드 도시에서도 맛볼 수 있다.
포즈난에 다녀오고 나서
어딘가 다른 폴란드 도시에서 이 빵을 보면
괜히 반가와서 사먹곤 했었다
그러고보니
이 빵의 뿔모양이
포즈난 시청탑에서 머리를 맞부딪히는
염소들의 뿔을 닮았다.
(하지만 이 빵의 기원이 그 염소들에 있진 않다)
사실 난 포즈난이 맘에 들긴 했지만,
포즈난에 특별히 큰 애정은 없었는데,
간만에 포즈난에 관한 글을 새로 쓰니,
괜히 포즈난이 그립다.
기찻창으로 보이던 그 밋밋하고 평평한 들판과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구시가와
특별한 이유 없이 박치기하던 시청탑의 염소들과
널찍한 말타 호수와
엄숙한 독일식 석조 건물과
달콤한 Rogal Marciński와
애써 수업 준비를 해주었던 친절한 Ewa와
의미없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그 카메라에서 느껴지던 미지근한 온기,
그리고
지금은 기억 안나는,
ㅇ님이 들려준 갖가지 이야기가,
그리고 그렇게 여행 중이던 4년 전의 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