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평범의 한 구석엔 어김 없이 비범이 숨어 있다.
2013년 여름 포즈난(Poznań)에 가면서
브로츠와프(Wrocław)에도 들렀다.
그 때 브로츠와프에 간 건
우선
브로츠와프(Wrocław)와 포즈난(Poznań)이
가깝기 때문이며,
(이건 아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당시 폴란드 친구 M이
브로츠와프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M이 브로츠와프로 간 후
나와 M은
2-3년간 별다른 연락을 안 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우린 그러다가
또 오랫만에 만나면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알고 보니
M의 또다른 한국 친구 o님도 그렇단다.
그래서 간만에 o님이 M에게 연락을 해보니,
우리가 폴란드 서부의 포즈난, 브로츠와프로 갈 때
마침 M은 자기 고향인
폴란드 중동부의 바르샤바에 와 있었다.
그래서 결국 우린 얼마 후 8월에 바르샤바에서
몇년만에 M과 재회하긴 했는데,
아무튼 그래서 2013년 7월말 브로츠와프에는
가서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 친구가 없다는 걸 알고서는
그냥 브로츠와프에 가지 말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포즈난까지 왔으니
브로츠와프에는 당연히 가봐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o님의 강력추천으로
3박 4일 일정 중
3번째 날인지에
브로츠와프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그 전에 포즈난에 살면서
브로츠와프에 가봤던 o님은
안 가겠다고 해서,
브로츠와프에는 나 혼자 갔다.
지금 검색해보니 2017년 현재
포즈난에서 브로츠와프까지
기차로는 2-3시간 걸리고,
기차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편도 40즈워티(약 12,000원)
버스로는 약 3시간 걸리고,
최저가 편도 13즈워티(약 4000원)이다.
만약 바르샤바에서 브로츠와프에
곧장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
검색해보니,
바르샤바에서 브로츠와프까지는
기차로 약 4-5시간, 평균 55즈워티(약 16,000원)
버스로 약 6-7시간, 50-60즈워티(약 15,000원-18,000원)이 든다.
걸리는 시간을 보면
포즈난 가는 김에
브로츠와프 가길 잘 한거다.
하지만
어쩜 그 때 안 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2013년에 다녀온 브로츠와프를
특별히 2016년에 또 갈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2016년 바르샤바 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2016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된 브로츠와프에서 하는 행사에 관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아래 사진 좌측 하단에 있는 포스터가 그거다.
이 포스터의 행사 자체에는 크게 끌리지 않았는데,
2016년 자그마치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브로츠와프의
다른 문화행사들이 좀 궁금하긴 했다.
나중에 기회 되면 가야지 생각은 했는데,
그 이후 다른 안 가본
폴란드 도시들 여러 군데 여행하다보니,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어버렸다.
만약 2013년에 브로츠와프에 가지 않았다면
아쉬운 마음에
2016년 여름 폴란드 갔을 때
반드시 그 곳을 방문했을거고,
그러면 그곳에서 벌어진
다양한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 행사를
운좋게 경험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음
또
2016년에 알게 된
다른 폴란드 도시들의 아름다움은
경험하지 못했을 지 모른다.
그리고
비록 브로츠와프 바깥에서긴 했지만,
결국 2016년에
그 브로츠와프 문화를 체험하긴 했다.
2016년 가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참가한
브로츠와프 극단이
대학로에서 하는 공연 "우드커터"를
관람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참 희안하다.
뭔가 계속 안 되는 것 같다가도 되고,
되는 것 같다가도 안 되고 그런다.
포즈난에서 브로츠와프까지
나는 기차를 탔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아마 아래 사진들에 보이는
8시 35분 기차를 탔나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2013년 당시 포즈난 기차역은
겉모습은 매우 현대적이지만
속은,
그니까 플랫폼과 통로는 매우 낡았었다.
역시나 브로츠와프 가는 기찻길에 나를 반긴 건
폴란드 어디가나 눈에 익은
평평한 들판의 풍경이었다.
2-3시간을 달려 도착한 브로츠와프 기차역은
기차역 건물 자체뿐 아니라
플랫폼도 현대적이고
훨씬 밝은 분위기였다.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쾌적했다.
플랫폼 한 귀퉁이에는
종교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구조물이 서 있었다.
폴란드 곳곳에서
이런 스타일의 길거리 예배당을 자주 보는데,
기차역 안에 있는 건 이게 처음이었고,
이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이 구조물 위, 아래에 쓰여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 카타리나여,
철도원들을 지켜주고,
여행객들을 돌봐주소서!
폴란드 철도청 S.A.
유로2012를 앞두고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는
깔끔한 플랫폼과
유럽식 아케이드처럼 높고 둥근 지붕이 덮힌
현대적인 역사 건물을 빠져나오면,
너무 반듯하고 단정해서 괜히 정이 안가는,
마치 한국의 놀이동산 안의 성처럼 생긴,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의
브로츠와프 주 기차역(Wrocław Główny, Wrocław main station)
정문이 눈 앞에 펼쳐진다.
19세기 중반 독일 건축가가 지은
신고딕 양식의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붕과 망루의 디테일이 중세 성을 연상시킨다.
이제 여기서 길을 건너,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한 블록을 걸어가면
구시가를 둘러싼 해자(fosa, moat)가 나온다.
해자 곳곳에는 크고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다리 너머로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브로츠와프(Wrocław)는
폴란드어로 실롱스크(Śląsk),
독일어로 슐레지엔(Schlesien),
체코어로 슬레스코(Slezsko)라고 불리는,
폴란드 남서부, 체코 북서부, 독일 남동부 지역을 아우르는
실레시아(Silesia) 지역에 속한다.
아래 지도의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실레시아 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상
브로츠와프(Wrocław)는
역사적으로도 체코, 폴란드, 독일 모두와 연관된다.
브로츠와프(Wrocław)는 10C 경
보헤미아(현재의 체코) 왕
브라티슬라프(Vratislav I)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며,
"브로츠와프"라는 명칭은
그의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후 10C 말 폴란드 왕 미에슈코(Mieszko) 1세가 실레시아 지역을 정복한 이후
폴란드 땅이 된 브로츠와프는
폴란드인뿐 아니라
보헤미아인(=체코인), 유대인, 독일인도 거주하는
다민족적 상업중심지였다고 한다.
13C 몽골의 침입 이후에는
독일인이 주로 거주하게 되었고,
14C 초반에는 보헤미아(=체코)와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지배하에 들어가,
독일 도시 브레슬라우(Breslau)가 되었다.
16C에는
합스부르그 왕국(=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이고,
18C 중반에는 프로이센(=독일)에 병합된다.
19C 초반 나폴레옹과의 전쟁 때
독일 해방 운동의 중심이 되기도 했는데,
그 이후 브로츠와프,
당시 명칭으로 브레슬라우(Breslau)는
주요 산업과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고,
2차세계대전 즈음에는 독일 동부에서
베를린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고 한다.
1차세계대전 이후 브로츠와프에는
폴란드인이 증가하고
폴란드어와 폴란드 문화 진흥을 위한
움직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 독일은 그런 활동들을 억압했다.
1945년 2차세계대전 종전 후 포츠담회담에서
브로츠와프의 폴란드 귀속이 결정되고,
이 때부터
브로츠와프(Wrocław)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된다.
당시 도시 거주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독일인은 독일로 송환되고,
다른 지역의 폴란드인들이 대거 유입되어
브로츠와프는 이제 폴란드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폴란드 도시로서의 브로츠와프의 역사는
별로 길지 않고,
도시 곳곳의 옛 건물에서
독일, 체코 등의 다양한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폴란드 도시들과 구별된다.
관광객들이 브로츠와프에서 구경할 만한 곳으로는
구시가 광장(rynek, marketplace),
브로츠와프 대학(Uniwersytet Wrocławski, University of Wrocław) 건물,
툼스키 섬(Ostrów Tumski) 등이 있다.
구시가 바깥의 남쪽 해자를 건너자
눈 앞에 커다란 관광지도가 등장한다.
두 가지 버전의 루트까지 표시되어 있는데,
붉은 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게 되고,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강변과 해자변을 따라 산책하게 된다.
나는 우선 붉은 색을 따라 움직이다,
초록색을 따라 걸었었다.
아래 지도 하단의 갈색 네모로 표시된
Tutaj Jesteś (You are here).
에서 출발했다.
브로츠와프 구시가 광장(Rynek, Marketplace)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구시가 광장 중 하나인데,
널따란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광장 남쪽의
구시청(Stary Ratusz, Old City Hall)이다.
13C에 처음 세워지고,
그 이후에 증축과 변형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외관이
여러가지 다른 조각으로 덧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건물 전체로는 후기 고딕양식이라고 하는데
곳곳에 르네상스 양식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현재 구시청 건물은
브로츠와프 시 박물관(Muzeum Miejskie Wrocławia)으로 사용되는데,
그 안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입장시간은 수-토 10:00-17:00/일 10:00-18:00,
수요일은 무료입장이다.
구시청(Stary Ratusz, Old City Hall) 건물의 동쪽은 이렇게 생겼다.
구시청(Stary Ratusz, Old City Hall) 건물의 남쪽은 이렇게 생겼다.
창문의 아기자기한 장식이 르네상스 양식이란다.
구시청(Stary Ratusz, Old City Hall)의 서쪽에는
19C에 신르네상스와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신시청(Nowy Ratusz, New City Hall)건물이 있는데,
현재 브로츠와프 시장이
실제로 이곳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아래 사진의 노란색 건물이다.
신시청(Nowy Ratusz, New City Hall) 앞에는
현대적인 분수가 있다.
이 거대한 구시청, 신시청 건물 뒤로는
상인들의 집(Dom kupców),
외부 상인들의 노점상(Smatruz),
의류상의 집(Dom Płócieników)이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이 광장 중앙의 건물들 둘레를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알록달록한 색깔의 예쁜 건물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구시가 서북쪽에는
성 엘리사벳 대성당(Kościół św. Elżbiety)이 자리잡고 있는데,
멀리에서도 잘 보이는
이 고딕 성당은
16C부터 1946년까지는 루터교 교회이다가
그 이후에는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서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성당이 그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그 길 끝에는
비 그리스도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조각상이 모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이 날은 기온이 매우 높아
날씨와 매우 정말 잘 어울리는
조각상이라는 느낌이었다.
근데 겨울에 보면 쌩뚱맞을 것 같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도시였던
브로츠와프(Wrocław)는
당연히 독일군의 공격을 받지 않아
큰 손상을 입지 않다가
1945년 전세가 역전되어
소련군의 공격을 받게 되면서
폭격을 맞아 건물들이 많이 파괴됐고
전후에 복구되었다.
브로츠와프 구시가 곳곳에
당시의 파괴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 밖에 구시가 곳곳에는
여러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최근에 리모델링된,
역사가 오래된 건물들도 눈에 띈다.
그런데 브로츠와프 구시가에서는
이런 고풍스러운 건물이나
신기한 장식뿐 아니라
붉은 머리 요정들을 만날 수 있다.
붉은 머리 요정은
폴란드어로 Krasnoludek[크라스노루덱]인데,
krasny[크라스니]는
현대 폴란드어에서 자주 쓰지는 않지만,
'붉다'는 의미고,
ludek[루덱]은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붉은 모자를 쓴 인간 형상의 작은 크기의 존재라
그렇게 이름이 붙은 것이다.
사실 붉은 머리 요정(Krasnoludek)은
디즈니 버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그 난쟁이들을 닮았다.
그래서 어쩌면 "난쟁이" 혹은 "소인"이라고
번역해야할지도 모르지만,
폴란드 작가 므로제크 작품에 나온 묘사에 따르면,
담뱃값 뒤로 걸어가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의,
손가락만한 작은 크기라고 하고,
뭘 하는 존재인가 찾아보니,
밤에 사람들이 잘 때 나타나
다 못끝낸 집안 일을 대신 끝내고
나쁜 영으로부터
아이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생김새는
백설공주의 친구 "난쟁이"에 가까워도
그 크기와 하는 일은 "요정"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영어의 dwarf는
폴란드어에서
krasnolud[크라스노루드]라는 형태로,
붉은머리요정은 지소형 어미 -ek을 붙여
krasnoludek[크라스노루덱]이라 구별하는 걸 보면,
두 명칭이 서로 다른 존재를 일컫는 말인거다.
그런데 이 붉은 머리 요정(Krasnoludek)이
브로츠와프 구시가 곳곳에 숨어 있다.
어떤 것은 이름이 붙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이름 없이 그냥 조각상만 있기도 한데,
그 높이가 20-30센티미터 정도고
대체로 발치에 있고,
가끔씩 높이 있어도 크기가 작아서
잘 봐야 보인다.
신경써서 잘 찾아봐야 발견할 수 있다.
난 2013년 폴란드어 개인교습선생 Ewa에게서
"브로츠와프에 가면
붉은 머리 요정(Krasnoludek)을 찾아보라"
는 팁을 듣고 안 건데
그걸 못 들었으면
아마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거다.
폴란드 사람들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물론 아이들이 더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 같긴 하다)
붉은 머리 요정(Krasnoludek)을 찾아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
귀찮음과 남부끄러움을 불사하고 말이다.
2013년에는 그 수가 100-200정도였던 것 같은데,
계속 그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지,
2017년 현재 브로츠와프에는
310명의 붉은머리 요정(Krasnoludek)이 있다 하고,
그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 알려주는 사이트도 있다.
나는 동상을 10개 정도 밖에 못 찾았다.
붉은머리 요정(Krasnoludek 혹은 krasnonal)이
브로츠와프의 상징이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80년 자유연대운동(Solidarność) 이후
1981년 계엄령을 거치면서
자유와 인권에 대한 억압이 더 심해져서
폴란드 전역에 반 공산주의 정서가 팽배해졌는데,
브로츠와프에서는 그것이
오렌지 대안운동(Pomarańczowa Alternatywa, Orange Alternative)이라는 이름의
지하조직이 이끄는 저항 운동으로 이어졌고,
그들이
반 공산정부 슬로건과 더불어
붉은머리 요정(Krasnoludek)을
도시 곳곳에 그려놓으면서,
그것이
이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브로츠와프 시에서
작은 동상들을 도시 곳곳에 세우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300여개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구시가를 빠져나가
오데르(Oder)강 쪽으로 나가면
바로크 양식의
브로츠와프 대학(Uniwersytet Wrocławski, University of Wrocław) 본관 건물이 나온다.
1702년에 설립된 브로츠와프 대학은
독일 대학이던
브레슬라우 대학(Universität Breslau) 시절엔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고,
현재도 폴란드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이며,
본관 건물은 브로츠와프 오데르 강변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이다.
이건 대학 건물 뒤쪽에 있는 분수다.
이 근처에
학자처럼 보이는 붉은머리요정도 숨어 있다.
이제 여기서 다리를 건너면,
오데르(Oder)강 건너편
북쪽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오데르 강 서쪽에는 파란색 철교가 보이는데,
시코르스키 다리(Most Sikorskiego)이고,
그 다리 너머로는 관광지가 아닌
그냥 흔한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다.
대학 본관 건물에서 좀 더 동쪽으로 가서
구시가가 끝나는 곳에 있는
피아스코비 다리(Most Piaskowy)를 건너면,
툼스키 섬(Ostrów Tumski)이 나온다.
아래 사진의 빨간 다리가
피아스코비 다리(Most Piaskowy)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동서로 난
툼스키 다리(Most Tumski)를 한번 더 건너면
툼스키 섬(Ostrów Tumski)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청록색 다리엔
사랑의 증표로 달아놓은 자물쇠가
빽빽하게 매달려 있다.
툼스키(Tumski)라는 이름의 섬은
포즈난에도 있는데,
포즈난 관련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성당 섬"이라는 의미다.
이곳은 10C
폴란드 피아스트 왕국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11C 초반 이곳에 목조 성당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4C부터는
섬 전체가 교회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브로츠와프 툼스키 섬(Ostrów Tmski)과 대성당은
포즈난의 툼스키 섬(Ostrów Tumski)과 대성당처럼
폴란드 전체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 묻혀있거나 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독일 도시였던 이 곳에서
흔치 않은
폴란드적인 역사와 가톨릭문화를 간직한
(독일은 16세기부터 신교가 강세였다)
가장 폴란드적인 장소 중 하나인 것 같다.
1945년 폭격으로 황폐화되었던 모습이
대성당 입구 벽에
흑백사진으로 걸려있다.
브로츠와프 대성당은
13-14C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16C 파손된 지붕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보수되고,
17C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이 덧붙여지고,
19C에 내부장식이 신고딕양식으로 리모델링되었다고 한다.
즉 오랜 시간을 거쳐오면서,
그 시간의 흔적을
그 성당 건축 안에 모두 품고 있다.
섬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다른 작은 성당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인
성 십자 성당(kościoł św. Krzyża) 앞에는
성 네포무크 동상(Pomnik św. Jana Nepomucena)이 서 있다.
그렇게 브로츠와프 관광지를 다 보고나서
난
오데르(Oder) 강변과
구시가 주변 해자(moat, fosa)변을 걸었는데,
브로츠와프 시민들이 주로
산책하고
운동하는 곳인지
곳곳에 산책하기 좋은 길이 나 있고
그 길 위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발견한
녹색 건축물은
아마 EURO 2012 경기를 개최했던
그 경기장인 것 같다.
이날은 30도가 넘는 무척 더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의
하늘이 하얗게 나왔다.
오랫만에
사진을 다시 보니
그 날의 열기가 생생히 다시 떠오른다.
날씨 때문인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탁 트인 신시가 광장(Nowy targ)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선탠하는지
낮잠자는지
그와중에 땡볕에 누워있는 사람 둘을 발견했는데,
희안하게 여기 벤치는 다 저렇게 생겼다.
선탠이나 독서, 낮잠용으로 만들어졌나보다.
그렇게 남쪽으로 걸어내려가다가
성 빈센트, 야곱 교회(Katedra greckokatolicka pw. św. Wincentego i św. Jakuba)라는
우니아트(Uniate) 교회를 발견했다.
우니아트 교회는
가톨릭과 동방정교의 요소를 결합한 교회로,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지배했을 때,
1596년 브레스트 회의를 통해
교회에 대한 교황의 권한은 인정해주면서
동방정교의 전례를 그대로 따르는,
가톨릭-정교 통합 교회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역에 새로 만들었다.
벨라루스보다는 우크라이나에,
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 서부에
우니아트 교회가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책에서만 보던 그 교회를
폴란드 서부에 와서 만날 줄은 몰랐다.
성당 문이 열러 있어 들어갔는데,
성당 관계자분이
러시아어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그러라고 하면서
한 장짜리 안내문도 하나 줬었는데,
그건 어디에 두었는지 못찾겠다.
성 빈센트, 야곱 교회(Katedra greckokatolicka pw. św. Wincentego i św. Jakuba)는
13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니
처음엔 가톨릭 성당이었을텐데,
16C에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되었다가,
다시 가톨릭 성당이 되었고,
1997년에
지금의 동방가톨릭연합교회 건물이 되었다.
이제 남쪽으로 더 걸어내려오면
브로츠와프 오페라 (Wrocław Opera) 극장이 보인다.
19세기 중반에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2013년 여름에는 거대한 날개를 닮은 구조물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맞은 편에 서 있는,
19세기 후반에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었다는
모노폴 호텔(Monopol Hotel) 건물도 근사하다.
그렇게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다 보면
심상치 않은 설치물을 발견한다.
익명의 보행자 기념비(Pomnik Anonimowego Przechodnia)라는 이름의 설치물인데,
1977년 바르샤바에 처음 세웠던 것을
2005년에 브로츠와프로 옮겨왔다고 한다.
2011년에는
Newsweek에서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15곳
(15 most beautiful places in Poland) 중 하나로,
2015년 Arch20이라는 건축잡지에서는
가장 창의적인 동상 25(25 most creative statues)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한다.
비록 그 시작은 1977년이었지만,
그래서 1981년 계엄령을 상징하는 게
작가의 의도일 리 없지만,
폴란드 사람들은 이것을
1981년 계엄령으로 본격화된
공산정부의 억압 속에 사는
폴란드인의 모습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나도 처음보자마자
그런 반 공산정부적 동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
그냥 어느 시대,
어느 도시에서나
크고 작은 무게의 짐을 어깨 위에 지고 걸어가는
처연한 인간의 모습인 것 같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은 죽음을 향해, 땅 속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을 상기시키며,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구절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아무튼
땅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여러모로
처절하고 어딘가 모르게 짠하다.
남의 모습 같지 않아서
옆에 서서 한참을 쳐다봤다.
이제 브로츠와프 기차역에 거의 다다르니,
건너편 건물에
Dobry wierczór we Wrocłąwiu.
라는 인삿말이 눈에 들어왔다.
"브로츠와프에서 좋은 저녁을 보내세요."
라는 환영 인사지만,
나에게는 따뜻한 작별인사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실 이제 어떤 도시를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건 안 좋아한다.
만약에 그 도시에 있는
어떤 특정 랜드마크만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어떤 도시를 보러" 간다면 말이다.
예전엔 당일치기 여행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남들이 으레 가는 곳"에 발도장 찍고
기념 사진 찍고
그냥 그렇게 그곳을 떠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사실 웬만한 유럽 도시의 관광지는
"한번 보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적어도 2박 3일은 있어야,
첫날 가서 좋았던 곳은
둘째날에 한 번 더 가봐야,
그 도시를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남길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당일치기로 간 브로츠와프는
포즈난-브로츠와프 간 기차 시간 때문에
거의 6-7시간 밖에 못 머물렀던 것 같다.
그래서 브로츠와프는
구석구석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사실
브로츠와프 자체가
뭔가 "시각적인" 면에서
남다른 게 많은 유럽도시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랫만에 포스트를 쓰면서
"브로츠와프"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그 도시가 좋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엔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은 따뜻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떠오르는 모습이 딱히 없었는데,
좀 더 생각해보니
붉은 머리 요정도 떠오르고,
익명의 보행자 기념비도 떠오른다.
그리고 오랫만에 사진을 보니,
그 때 그것들을 발견하며
그것들 안에서 특별함을 보면서
느꼈던 성취감과 만족감이 다시금 떠올랐다.
브로츠와프뿐 아니라
사람이건 사물이건
평범해보이고 밋밋해보이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비범함이 있다.
만약 그런 비범함이 하나도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비범함이 없음" 때문에 비범해질 것이다.
브로츠와프에서 내가 발견한
비범한 구석은
붉은 머리 요정과 익명의 보행자 기념비였고,
그 비범함 때문에
브로츠와프 자체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브로츠와프에서 사람들이
붉은 머리 요정 동상을 찾고
애써 인증샷을 찍는 것도
어쩌면
그 작은 것이
브로츠와프의 특별함이자,
여행의 특별함이자
또 인생의 특별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찾으러
지금 당장 브로츠와프를 다시 갈 수는 없으니
그 특별함,
그 "붉은머리 요정"들을
내 평범하디 평범한 인생에게 좀 찾아볼까보다.
모든 평범에는 비범이 있다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어김없이
크고 작은 "붉은 머리 요정"들을 찾을 수 있을거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브로츠와프 여행에는
당일치기 여행 답지 않은
특별한 여운이 있었던 거다.
꽤나 "길고" 비범한 당일치기 여행이었던 거다.
그리고
어쩌면 여행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머무르는가가 아닌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