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it ain't over till it's over!"
2008년에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Muzeum Powstania Warszawkiego, Warsaw Uprising Museum)에
처음 가봤는데,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런 식의 하나의 역사적 테마를 가진 박물관도,
그리고
여러 멀티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박물관도
나한테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폴란드와 다른 나라의 몇몇 다른 박물관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테마로 한 박물관은 흔치 않다.
2014년에 문을 연 그단스크의 유럽연대센터(European Solidarity Centre)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테마로 하긴 했지만,
그건 1980년의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뿐 아니라
그 이후의 폴란드 현대사까지 망라한 박물관이라,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Muzeum Powstania Warszawkiego)과는 또 다르다.
또한
최근에 생긴 박물관에서는
멀티미디어가 많이 활용되지만,
그 때만 해도
난
이렇게
손으로 직접 작동해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많은
최신 박물관은 처음 가봤다.
그 이전까지 나에게 가장 익숙한 박물관 안내문은
"만지지 마시오(Do not touch)"였다.
그래서 그런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인상이 깊고
또 매우 마음에 들었고,
2008년, 2013년, 2016년 바르샤바 갈 때마다
이 박물관에 어김 없이 들렀다.
아마 전시내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이 박물관의 주테마인
바르샤바 봉기(Powstanie Warszawkie)가
뭔지도 모르고 간 2008년엔
박물관을 방문하고나서도,
1944년의 이 역사적 사건이 성공한 건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박물관의 형식적 측면,
최신 기기들과 다양한 인터페이스에
감탄하며 둘러보느라
중요 내용을 놓친 것도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살표를 열심히 따라가면서 관람했는데,
처음엔 집중하며 설명을 읽다가,
나중엔 진지하고 딱딱한 내용이 담긴
촘촘한 글씨 읽는 데 좀 지쳐서,
안내문을 제목만 보고
꼼꼼히 안 읽어서 그런 것 같다.
2013년 박물관에 다시 갔을 때는
이것이 실패한 봉기임을 알았는데,
그제서야
그게 너무 이상했다.
왜 폴란드 사람들은
실패한 역사적 사건을
박물관까지 만들어 기념하는 걸까?
2016년에는
이 박물관에 다시 갔을 뿐 아니라,
바르샤바 봉기와 관련된 거리행사도 체험하고,
폴란드인들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도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이 박물관은
바르샤바 봉기라는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바르샤바 현대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폴란드라는 나라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박물관이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Muzeum Powstania Warszawskiego)은
바르샤바 도심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지하철 2호선 Rondo Daszyńskiego(다신스키 로터리)역에서 내리거나
[아래 지도의 하늘색 선]
트램 1, 9, 14, 22, 24, 44번을 타고
Muzeum Powstania Warszawskiego 05, 06(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역 [지도의 초록 네모]이나
버스 102, 105번을 타고
Muzeum Powstania Warszawskiego 01, 02(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역 [지도의 주황 네모]
에서 내리면 된다.
단, 버스는 차편도 많지 않고 배차간격도 좀 길어,
오래 기다려야 한다.
박물관은 화요일 휴무고,
다른 요일은 대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목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다.
입장료는 일반 20즈워티 (약 6,000원),
할인 16즈워티 (약 5,000원)이며
일요일은 입장이 무료다.
그 밖의 정보는 아래 홈페이지 참고하면 될 것이다.
박물관은 그냥 붉은 벽돌 건물인데,
그 옆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바르샤바 봉기[Powstanie Warszawskie]의 약자인
P와 W가 위아래로 합쳐진 마크가
크게 찍힌 망루가 서 있고
폴란드 국기가 걸려 있는데,
박물관 입장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기에 올라
바르샤바 전경을 둘러볼 수 있다.
2016년에 갔을 땐
"바르샤바 봉기"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난 워낙 전쟁영화는 안 좋아하는 데다가,
제목을 보아하니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너무 분명할 것 같아,
예술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어서
영화 DVD 파는 걸 보고도 사오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다.
당장 보지 않더라도
나중에 볼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사실
"그 때의 나중"인 지금은 보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 때 안 산 게
지금 좀 후회된다.
바로 위 사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벽돌 건물이 매표소다.
거기서 표를 사서 입장하면 된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의 건설은
1980년대 기획되었는데,
10여년이 지나
바르샤바 봉기 60주년이 되는
2004년이 되어서야 개관했다.
바르샤바 봉기(Powstania Warszawskie, Warsaw Uprising)는
2차세계대전중이던
1944년 8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63일간,
약 두 달 여 가량을
나치 독일에 저항하여
바르샤바 전역의 시민들이
거국적으로 맞서 싸운 봉기다.
8월 1일이라는
심상치 않은 날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갑작스레 일어난 항거가 아니라,
오랫동안 계획된 봉기였다.
하지만 봉기는
나치 독일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건 우선
내부적으로 폴란드 저항군과 시민군이
군사적으로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상태였고,
외부적으로 동쪽에서 지원군을 보내줄 줄 알았던
소련군이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르샤바 곳곳에서 저항을 하며
어떤 지역에서는 전투에서 이기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던 시민군과 저항군은
결국 2달여만에 항복을 하고 마는데,
이후
독일군은 그에 대한 복수로
봉기에 가담한 바르샤바 시민들을 학살하고,
바르샤바 곳곳을 파괴시켜
거의 완벽한 폐허 상태로 만들었다.
"덕분에"
바르샤바는 2차대전 이후
파괴된 옛 건물들을 재건하고,
새로운 건물들과 도로를 건설하며
완벽하게 새로운 도시를 세워야했다.
이러한 저항의 과정과 그 결과가
이 박물관에 그대로 전시되고 설명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바르샤바 봉기 마크가 새겨진
은빛 스티커를 나눠주는데,
그걸 받아 들어가면
영화관처럼 어둑어둑하고
전투 효과음이 계속 들리는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전시는 시간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박물관에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건 공중전화다.
거기서 옛날식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들면
당시 사건을 직접 경험했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거의 항상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차례를 좀 기다려야 한다.
물론 전화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폴란드어로 말한다.
이 전화기 뒷편에는
커다란 당시 바르샤바 시내 사진을 배경으로
폭격의 잔해가 전시되어 있다.
당시 바르샤바 시내 사진 속의
Żywiec라는 식당과 비슷한 이름과 모양의
Żywieciel이라는 오래된 식당을
바르샤바 북서부에서 본 적 있다.
그게 이 사진 속 식당이랑 연관이 있는 건지,
아님 그냥 이름만 비슷한 건지는 모르겠다.
약 2달간의 봉기의 진행상황과
국제 정세를 보여주는
짧은 연대표도 있다.
그 밖에도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문이,
관람객이 하나씩 빼서 가져갈 수 있도록
브로셔 형식으로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건
1944년 8월 1일 봉기 시작 며칠 전부터
10월 2일 봉기가 끝난 이후 며칠 후까지
하루하루의 상황을
설명한
일력 형식의 안내문이었다.
이걸 읽어내려가면
"바르샤바 봉기"가 뭔지 전혀 모르고 들어가도
박물관을 나설 쯤에는 그게 뭔지 대충 알 수 있다.
우선 이건 영어와 폴란드어로 적힌
일반 안내문이다.
A4 정도의 크기로
박물관 여기저기에 꽂혀있다.
일력처럼 생긴 안내문 중
지금 나한테는 폴란드어버전밖에 없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원래 폴란드어만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혹시 필요할지 몰라
보이는대로 뽑아서 챙겨왔는데,
듬성듬성 비어 있는 날도 있고,
두 개씩 뽑아온 날도 있다.
A4용지 1/4 정도의 크기다.
우선
이건 1944년 7월 27일부터 8월 31일까지 상황을
묘사한 일력
앞면과 뒷면이고,
(참고로 바르샤바 봉기는 8월 1일에 시작된다)
이건 1944년 9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 상황을 묘사한 일력
앞면과 뒷면이다.
(참고로 바르샤바 봉기는 10월 2일에 끝난다)
이런 안내문들은 박물관 관람객이
"바르샤바 봉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설명이 너무 구구절절하고,
영어건 폴란드어건
문장이 길고,
딱딱하고 묵직한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잘 읽히지도
단번에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박물관 한쪽 구석에는
당시 바르샤바 시민들에게 배포된
인쇄물을 찍던 인쇄소가 있는데,
2008년엔 어떤 남자분이 기계 앞에 서서
그 자리에서 직접 인쇄물을 찍어 나눠주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내가
당시 봉기에 실제 참여하는
레지스탕스가 된 것 같은
뭔가
알 수 없는 긴박감,
희안한 떨림과 기분좋은 전율 같은 걸 느꼈었는데,
그걸 기대하고 간
2013년, 2016년에 모두
그런 특별한 "체험" 없이
그냥 관람객이
자유롭게 들어가서 쓰윽 구경하게 해두었다.
이게 2008년에 넘겨 받은 인쇄물인데,
2013년, 2016년에는
그냥 아무나 집어 갈 수 있게
인쇄소 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폴란드인들이여(Polacy)!"
라는 제목의 호소문으로
독립 폴란드 만세(Niech Żyje Polska Niepodlogła)!
라는 구절로 끝난다.
그 밖의 당시 사진들도 걸려 있고,
"바르샤바 봉기" 마크도 벽에 크게 새겨 있고,
당시 사용하던 비행기와 무기도 전시되어 있다.
바르샤바 시민들이
어떻게 용감하게 싸웠는지 뿐 아니라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
어떻게 희생했는지에 대한
전시물들도 있다.
그렇게 하나둘씩 전시를
시간 순서에 따라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면
한쪽 구석에 갑자기
밝은 공간이 등장하는데,
1944년 분위기를 살려 만든 것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페다.
항상 난 늦은 시각에
(이제 곧 박물관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왔을 때)
이곳에 도달하는 바람에
이 옛스런 카페는 그냥 구경만 했다.
박물관 1층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20-3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도 상영하고,
북쪽으로 가면
망루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지붕 없는 열린 공간이 나오는데,
거기서 바르샤바 시내를 둘러볼 수 있다.
특이한 건
여기에서는
1944년 바르샤바 봉기 직후의 바르샤바 사진과
현재 바르샤바 사진이 묘하게 결합된 판넬을 통해
바르샤바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거다.
1944년 10월 2일 시점에선
실패한 봉기였지만,
결국 이렇게 멋진 도시를,
독립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걸,
관람객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하는거다.
뭔가 9회말 역전 만루홈런처럼 감동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느라 얼마나 많은 땀과 피를 흘렸을까 싶어 짠하기도 하다.
2008년 처음 망루에 올랐을 때는
정말 가슴이 찡했는데,
2013년, 2016년엔
마치 결말을 다 아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그보다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리 봐도
여기가 이 박물관의 가장 클라이막스인 것 같다.
여기를 딱 올라갔다 내려오면
해피앤딩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처럼
벅찬 가슴을 안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박물관을 나설 수 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 서쪽인데,
2013년과 2016년 두번 찍었더니,
2013년과 2016년이 또 다르다.
여긴 동쪽.
여기도
2013년에 공사하던 건물들이
2016년에는 완성된 게 보인다.
이렇게 사진을 비교하면서 보면
폴란드가 그리고
바르샤바가 얼마나 빨리 달라지고 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긴 북쪽이다.
여긴 남쪽이다.
여기 보이는 지역이 볼라(Wola)인데,
"바르샤바 봉기"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볼라(Wola)는 폴란드어로 "의지(will)"라는 뜻이다.
여긴 망루에서 가까이 보이는 풍경이다.
박물관 지붕은 회색이다.
여긴 동쪽의 찻길 옆 골목.
알록달록 포스터가 걸려 있다.
여긴 찻길 너머 고층건물.
여기 어딘가에서
2016년 7월 NATO회담이 열렸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른다.
이 바르샤바 봉기에 대해
폴란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
하나는
나치 독일이라는 거대 세력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일어나 싸운 바르샤바 소시민들의 용기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좀 더 기다렸어야 했는데
준비가 다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작전을 개시해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바르샤바가 너무 심하게 파괴되게 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당시 여러모로 미숙했던,
친서구 성향의 폴란드 저항군은
이 봉기의 실패로 그 힘을 잃었고,
대신
친소련적인 공산당이 폴란드 내에서 권력을 잡아,
이후 폴란드가 공산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스탈린이 "일부러"
소련의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래서 그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좀 더 기다렸어야 했다고 말하는
폴란드인도 본 적 있는데,
그래도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두 가지 태도 중에
첫번째 태도가 더 우세한지
그 실패한 시도를 기념하는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가 세워졌을 뿐 아니라,
바르샤바 곳곳에서
기념비와
P와 W가 세로로 붙어 있는
바르샤바 봉기 마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르샤바 중심가에는
바르샤바 봉기군 광장(Plac powstańców warszawy)이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고,
그 한쪽에는
그 이름에 걸맞는 바르샤바 봉기 마크가 새겨진
커다란 기념비가 있고,
지도:
바르샤바 서남부 솔레츠(Solec) 지역
비에이스카(Wiejska) 거리에는
거대한
폴란드 지하 정부와 저항군 기념비(Pomnik Polskiego Państwa Podziemnego i Armii Krajowej)
가 있는데,
거기에도 커다란 "바르샤바 봉기" 마크가 새겨 있다.
지도:
그 밖에
"바르샤바 구시가" 포스트에 올렸던
소년병의 동상(Pomnik Małego Powstańca)도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고,
대법원 앞 군인들 동상의 이름도
1944년 바르샤바 봉기를 기리는
Pomnik Powstania Warszawskiego(바르샤바 봉기 동상)이다.
그 밖에 바르샤바 곳곳에서
"바르샤바 봉기"와 만날 수 있는데
비슬라나(Wiślana), 바르샤바 대학 옆 공원에 있는,
"1939-1945 전쟁 중 사망한 선생님들"추모비에도
돛처럼 생긴 P가
닻처럼 생긴 W 위에 올라탄
"바르샤바 봉기"마크가 있고,
바르샤바 서북부
그단스크 기차역(Dworzec Gdańsk)
북쪽 도로변에 서 있는
"1944년 그단스크 기차역 근처에서 순직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에도 어김 없이 등장한다.
난 지나가다 이 조각이 뭔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어떤 여성을 기리는 동상이거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조각이 아니라
뒤에 있는 추모비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거였다.
아마도 그단스크 기차역이 격전지였는지,
기차역 동쪽에는
바르샤바 봉기에서 사망한 207명의 CZATA 49대원들에 대한 추모비가 있고,
그 옆엔 1943년 나치 독일군에 의해 총살된
폴란드 사람들에 대한 추모비도 세워져 있다.
이건 지하철 2호선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Centrum Nauki Kopernik)역 입구에 있는,
당시 활약하던
암호명 "엘렉트로브니아(Elektrownia)"라는
저항군을 기리는 기념비.
이건
Plac Konstytucji (헌법 광장) 근처에서 찍은 건데,
바르샤바 곳곳에서 흔히 보는 추모비 밑
폴란드 국기에도
어김 없이
"바르샤바 봉기" 마크가 찍혀 있다.
이렇게
꼭 "바르샤바 봉기" 마크가 찍혀 있지 않더라도
바르샤바 곳곳에
"바르샤바 봉기"를 연상시키는 설치물과
2차세계대전 당시 희생당한 폴란드인을 기리는
수많은 공식 추모비와
비공식 그래피티(?)를 만날 수 있다.
이건 8월 달에
바르샤바 중심
크라코프스키에 프셰드미에시치에(Krakowskie Przedmieście) 길에 설치된,
다큐멘터리 영화 "바르샤바 봉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형 입간판이다.
이건 대형 광고물.
이건 1939년 9월,
2차세계대전이 막 시작되었을 때
사스카 켕파(Saska Kępa)지역을 수호하려 애쓴
바르샤바인들의 투쟁을 설명한 판넬.
(참고로 사스카 켕파의 프란추스카(Francuska) 길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힙한 장소 중 하나다)
이건 여행 안내 책자에 따르면
사스카 켕파 지역 및 바르샤바 전체에서
가장 맛있는 케밥을 판다는
케밥집 Efes 옆에 있는
25명 승자들의 사진이다.
그 밖에 다른 설명은 없지만
아마도 2차대전 당시 싸웠던 사람들일거다.
이건 같은 건물 다른쪽에 붙어 있는 기념비인데,
여기서 그들은 끝까지 버텼다.
1939.9.28
라고 쓰여 있다.
이런 무언가 국가적, 공적 차원에서
만든 그런 공식적인 기념비뿐 아니라,
그냥 개인 차원에서 표시한 듯한
"바르샤바 봉기" 마크와 낙서, 그래피티를
바르샤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건 비스와 강변의 어떤 벽이다.
이건 비스와 강변에서 본 구시가인데,
Pamiętamy(우리는 기억합니다)
라고 쓰여있는 글씨 중 P가
바르샤바 봉기(Powstanie Warszawskie) 마크다.
"바르샤바 봉기" 마크는
동남부
사스카 켕파(Saska Kępa) 지구의
평범한 상점 벽에도 그려져 있고,
바르샤바 서북부
지하철 1호선
윌슨 광장 (Plac Wilsona)역 출구에도 있다.
이 바로 옆에 Żywiciel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이건 아마도 거기서 새겨넣은 것 같다.
2016년에 갔을 때는 바르샤바 곳곳에서
Godzina "W"
즉
W 시간
이라고 쓰여 있는 광고판을 자주 봤는데,
이 "W시간"은
1944년 8월 1일 오후 5시
바르샤바 봉기가 시작되는 시점을 가리키는
암호명으로,
매년 이 날 이 시간이 되면
바르샤바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자동차들이 멈춰선다.
또한 매년 이 시간
바르샤바 시민들은
바르샤바 중심지 Centrum에 모여
이 시간을,
그리고
이 사건을 기린다.
2013년에도 8월 1일을 끼고 바르샤바에 갔지만
이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2016년에 새삼 알게 된 나도
8월 1일 오후 5시에 맞춰
바르샤바 중심으로 갔다.
10분 전쯤 도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미 그 때 바르샤바 중심부는
트램, 버스, 자동차는 다니지 않고,
그냥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다들 모였는데,
뭐 특별한 퍼포먼스나 행사, 공연을 하는 건 아니다.
5시,
즉 W 시간이 되면
[아마도 W는 Warszawa의 약자인 것 같다.
하지만 '자유'라는 의미의 Wolność거나,
'의지'라는 의미의 Wola이거나,
그 밖의 W로 시작되는 다른 단어의 약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사이렌과 함께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사실 저렇게 공공시설 위에 올라가는 건
위험한 거지만,
왠지
1944년 8월 1일 오후 5시의 폴란드 시민들도
이런 마음으로
절실하게 자유를 기다렸을 것 같아서
뭔가 좀 애틋했고,
그런 무언가를 절실하게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괜히
순간적으로 1944년의 역사적 시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그들과 비슷한
어떤 생생한 자유를 향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동영상 1: 바르샤바 W시간)
이제 한 2-3분이 지나면 (좀 더 길었을 수도 있다)
행사가 다 끝나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누군가는 이 번개처럼 지나가버린 행사에 참가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그런 기념 사진 찍는 사람들을 찍기도 하면서.
(동영상 2: 바르샤바 W시간 2)
사실 특별한 퍼포먼스도 없고
시간도 짧은
뭔가 싱거운 행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난
이 "꾸밈이나 허세가 없이"
"본질에 충실한"
소박한 행사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이 행사가 끝나고
차가 하나도 없는 대로를 걷는 것도 좋았다.
자동차는 금세 다시 다니기 시작했지만,
트램이 다시 운행을 시작하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려서
대로 한가운데 트램길을 자유로이 걸을 수 있었다.
이럴 때 아니면
이런 대로를 거침 없이 걸어다니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그렇게
1944년 W 시간을 기획한
폴란드 레지스탕스가 꿈꿨던 자유와
결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나
"자유"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72년 후 2016년에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끝에서 온 내가
거기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그 순간을 잘라내
손 안에 담아 가지고 있고 싶을 만큼
그 짧고 흔치않은 자유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시는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이렇게 대로를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경험은
2016년 11월 이후 서울 광화문에서
여러번 다시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동영상 3: W 시간이 끝나고)
이렇게 바르샤바에서 "W 시간"을 경험하고,
"왜 폴란드인들은 굳이 실패한 역사적 사건을 박물관까지 만들어 기념하는 걸까?"
에 대한 답을 얻었다.
대부분의 폴란드인들에게 이건
실패한 역사적 사건으로 종결된 게 아닌거다.
레니 크레비츠의 노래 It ain't over till it's over처럼
끝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은 거니까.
바르샤바 봉기(Powstanie Warszawskie)는
1944년 10월 2일에
나치 독일을 바르샤바에서 몰아내는덴 실패했지만,
그래서 그걸로 끝난 게 아니고
그 이후 어느 특정한 시점에도 끝나지 않고,
폴란드인의 머릿속에
가슴 속에,
그리고 거리 곳곳에 담겨,
계속해서 기억되고 기념되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재진행중"인 사건인거다.
이기기 힘들 걸 뻔히 알면서
그래도 그런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우는
그게 바르샤바인들이고
그게 폴란드인들인거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3.1절"이라는
실패를 기념하는 국경일이 있다.
단지 우리에게 그건 역사책 안에 박제된
과거의 사건이며,
설날 이후 처음 맞는 고마운 공휴일이라는
현재적 가치밖에 지니지 못하긴 하지만 말이다.
3.1 운동 정신의 계승은
법전 안에만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폴란드인은 국경일로 안 정해도
저렇게 열심히 기억하고 기념하는데,
왜 우린 국경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저항정신의 본질을 잊고 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