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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Dec 09. 2017

인간의 얼굴을 한 중세성화, 보야나 성당

소피아 남쪽 비토샤 기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여러 언어를 배우다보면

희안하게도

외국인을 위한 특정 언어 교재의

독해텍스트 내용에

일정한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초급에선 차이가 별로 안나는데,

중고급에서는

나라마다 선호하는 텍스트 주제가

조금씩 다른 게 보인다.


러시아어는

러시아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되는

인류 보편적 주제를 이야기하는

텍스트가 많은 것 같고,


폴란드어를 배울 때는

이민, 여성의 지위, 남녀평등, 애완동물 같은,

동시대 폴란드 사회의 중요 문제에 바탕한,

현대 폴란드가 투영된

보편적 현상에 대한 텍스트가 특징적이었고,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큰 체코어는

교재에 텍스트보다는 대화가 더 많았는데,

수업에서 읽은 텍스트는 주로

프라하에 현존하는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현재 체코에 관한 내용을 담거나,

현존하는 장소에 얽힌 전설 같은 걸 다뤘다.


그런데

불가리아어 중고급 교재에는

전세계에 보편적인 현상이나

불가리아의 현재 상황보다

불가리아의 역사 및 역사적 장소에 관련된 텍스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불가리아어 수업을 통해

불가리아어를 배울 뿐 아니라,

불가리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소피아 남부
"비토샤" 산 자락에 위치한
보야나 성당 또한

불가리아어 교재에 나오는 텍스트를 읽고

알게된 장소였다.

10-11세기

불가리아 왕국 시절에 처음 건설된
보야나성당(Боянска църква, Boyana Church)

남유럽 중세미술의 기념비로

1979년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바로
이 성당 안의 벽화 때문이다.


수업에서 읽은 텍스트의 내용에 따르면,

보야나 성당 안의 벽화는
매우 생생한, 진짜 사람의 표정이 

특징적이라고 했는데,
 
며칠 후 새로 우리반 수업을 맡은 블라디미르 샘이

나중에 보충적으로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그 이전 성화가 정해진 틀 대로만 그렸던 것과 달리
보야나 성당 벽화에 묘사된 성상화 속 사람들은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있고,
 
그것은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14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토보다

1세기 정도 앞선 거라고 한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는

그런 설명이 나와있진 않았는데,


오히려 그냥

중세 예술의 전형적 요소들을 보유한

"중세 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념비라는 게

이 성당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쓰여 있는데,


아마도 그것과 상관 없이

불가리아인들이 생각하는

보야나 성당의 가치는


중세 시대 미술의 전형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 혁명적 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보다 앞선,

인간성에 대한 예술적 포커스라는 태도인가 보다.

 
(유네스코 World Heritage List "보야나 성당")




보야나 성당소피아 남쪽

비토샤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아래 지도 남쪽 초록색이 비토샤 산이다.


아래 지도를 보면,

소피아 시내의

성 네델랴 성당과 성 소피아 성당에서

소피아 공항 가는 거리보다 더 먼,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임을 알 수 있다.


출처: 구글, 위 텍스트의  "보야나 성당"의 링크를 클릭하면 구글지도로 연결된다.

 
소피아 시내에서 보야나성당으로 가기 위해선
64번이나 107번 버스를 타야 한다.
 
루트를 보니
107번 보다
산을 많이 거쳐가는 64번이 더 나을 것 같고,
 
지도를 보니,

우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종점 비토샤(Витоша, Vitosha)역에 내려서

거기서 약간 걸은 후

64번 버스를 타면 될 것 같았다.
 
"덕분에" 소피아 와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2호선 종점에 내렸다.


햇살 따뜻한 2월의 어느 날이었다.


(2014년 2월, Vitosha 지하철역 근처, Sofia, Bulgaria)


불가리아에선

봄의 첫날인 3월 1일에

Баба Марта[바바 마르타]를 기념하는데,

Баба Марта는 '3월 할머니'라는 의미며,


불가리아인들은

이 "3월 할머니"가 추운 겨울을 끝내고

봄을 시작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날을 기념하며 불가리아인들은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빨강색, 흰색 실이 달린 장식을 주고 받는데,

특히 젊은이들은

팔찌처럼 생긴 실로 만든 장식을

팔뚝에 여러개씩 걸고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2월 내내

소피아 길거리에선 어디가나

이 붉은색, 흰색 실 팔찌 장식을 팔았는데,

이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가리아어 수업에선

이게 불가리아 전통이라고 배웠는데,

작년엔가

그리스에서도 봄에 이런 걸 주고받는다는

블로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불가리아뿐 아니라 발칸반도에서

널리 행해지는 봄맞이 풍습인가보다

  

(2014년 2월, Vitosha 지하철역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지하철역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지하철역 근처, Sofia, Bulgaria)


남쪽으로 비토샤 산도 보인다.


(2014년 2월, Vitosha 지하철역 근처, Sofia, Bulgaria)


이렇게 지하철에서 내려

슬슬 낯선 동네를 구경하며
64번 버스를 타러 갔는데,
막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64번이 떠나버렸다.
 
근데 그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

거의 20-30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유명한 관광지니 

당연히

정거장 이름이 "보야나 성당"이겠거니 했는데,


64번 버스루트가 적혀 있는 표지판에 열거된
정거장 중 어디에서 내려야
보야나 성당을 갈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2014년 2월, Vitosha 지하철역 근처, Sofia, Bulgaria)


.киноцентър Бояна (보야나 극장)
.в. з. кв. Бояна (보야나 지구 в.з.: в.з.가 뭔진 모르겠다)
.Боянско ханче (보야나 호텔)
. кв. Бояна (보야나 지구)
.резиденция Бояна (보야나 주택가)
.гробишен парк Бояна (보야나 묘지 공원) 


"보야나 성당"없이

"보야나" 이름 들어간 정류장 이름만 6개다.
 

정류소엔 나말고 아무도 없었고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길래,

버스에 올라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버스를 탔고,
문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어느 역에서 내려야 보야나 성당에 가나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진짜 나이 많은,
한 80살-90살 정도는 된 것 같은

그런 "진짜"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뭐라고 뭐라고 대답하시는데,
우물우물 발음하시니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버스에서 안내방송은 안나와도
내가 버스루트를 스마트폰으로 찍었으니,
정류소 이름만 알면
몇 정거장인지 세면서 가면 될 것 같아서,


내가  
"혹시 정류소 이름 아시냐"고 여쭤봤는데,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지,

무슨 소린지 잘 못 알아듣겠다.
 
그래서 다시 여쭤봤더니,

정확하진 않지만
"나도 거기 가니까, 내가 가르켜 줄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옆에 다른 좀 더 많이 젊은 승객도 몇명 있었는데
아무도 거들지 않았고,
난 그냥 그 할아버지를 믿고 가기로 했다.


버스는 어느새 언덕에 접어들어

오른쪽 차창 밑으로 소피아 시내가 보이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왕복 2차선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할아버지께서 곧 내리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나도 내려야 하냐고 하냐며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아니라고

크게 손사래를 치셨다.
 
내가 몇 정거장 더 가면 되냐 물었더니,
잠깐 생각하시는 것 같더니,
왼쪽 창문을 가리키며
그 쪽을 보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뭐라고 하고

느릿느릿 조심조심 버스에서 내리셨는데,


할아버지가 그 말 하실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고,


할아버지가 내리고 나서야

그게
след завоя[슬레드 자보야]

'커브 돌고나서'
라는 걸 이해했다.
 
그걸 이해하느라
미처 할아버지께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그 할아버지 여전히 버스 타고 다니시며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왼쪽에 커브 나오는 거 보고 내리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왼쪽을 바라보며 가고 있었는데,


정말 "보야나 성당"을 알리는 푯말이 나왔고,
계속 직진만 하던 버스는
이제 살짝 좌회전을 했다.
 
'이제 여기서 내리면 되나보다'
 
하고 막 내릴려고 했는데,


누가 뒤에서 뭐라고 말을 한다.


뒤돌아보니,

내 뒤에 앉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유난히 뽀얀 얼굴의

맑고 순수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예쁜 남자애가 웃는 얼굴로
여기 아니라고,
다음에 내리면 된다고,
자기도 거기서 내린다고 설명해줬다.
 
아마 내 뒤에 앉아서
나랑 할아버지랑 말하는 것 듣고서
내가 어디 가는지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무사히 버스를 내렸고,
유난히 뽀얀 얼굴이

눈부신 햇살을 받아

비현실적으로 환하게 빛나던 그 남학생은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뒤돌아보며
"저 쪽으로 가면 돼요."라고 길을 알려줬다.
 
얼굴도 예쁜 애가 마음도 착하다.

외모도 마음도 정말 천사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보야나성당까지는

좀 걸어가야한다.


계속 직진해서 걸어가면

왼쪽에 낮은 담이 나오고,

그 담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보야나 성당의 입구가 보인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어

물어보지도 못하고,
내가 맞게 가나 계속 의심하면서 걸어가는데,

그 길이 맞다는 걸 강하게 암시하면서,
어떤 하얀색 관광버스 하나가
나를 추월해서 올라간다.
 
단체 관람객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관광객들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천천히 걸어 갔는데,
결국은 만나고 말았다.


(보야나 성당 홈페이지)
http://www.boyanachurch.org/abouten.htm


(2014년 2월, Boyana 성당 가는 길,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가는 길,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가는 길,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보야나 성당은 열린 정문을 통과해서,

조금 걸어들어간 후에 

안쪽에서 입장료를 내면 되는데,

 

2017년 현재 일반 10 레바(약 7500원),

학생은 2레바(약 1,500원)이고,

월요일엔 3시 이후 입장이 무료라고 하는데,

https://historymuseum.org/en/filial/bojanska-cyrkva/

내가 간 날이 월요일이었는지,

돈낸 기억이 없다.


출입구 안에 들어가면

공원의 산책로 같이 생긴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보야나 성당 건물이 나타난다.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보야나성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데다가

워낙 작아서,

아무나 원할 때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한번에 10명 정도씩 들어가고

그들이 나오면 

그 다음 10명 정도가 들어가고 하면서,

소수의 인원이 

차례차례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안에 들어가면

불가리아인이 안내하며 영어로 설명한다.


그런데 내가 성당 앞에 도착했을 때는

버스를 타고 나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몇몇은 벌써 들어갔다 나오고

몇몇은 아직 들어가지 못한 상태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들 성당 입구에 몰려 있었다.
 
성당 입구 앞에
그렇게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서 있으니
나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들 나름의 순서대로 들어가는거라 줄도 없어서

줄을 서며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벽화를 안 보고 돌아갈 수도 없고,
그래서 그 작은 성당 주위를 

빙빙 돌고만 있었다.


그 중국 단체 관광객들의 가이드는

중국인 남자와 불가리아 여자

이렇게 두 명이었는데,

참 희안하게도 이 그룹의 중국인 가이드는
불가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그 불가리아 가이드와 대화를 했다.


보통은 현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

가이드를 하는데,

이 중국인 가이드는 소피아 유학생이 아닌가보다.


그때는 생각 못했는데,

그 단체 관광객들이

불가리아나 소피아 관광만 하는 게 아니라

유럽이나 발칸반도 여행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드디어

중국가이드의 성당에 대한 설명이 끝났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 앞에서
세네명씩 모여 개인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참 이상한 건
모두다 동일한 포즈로,

모두다 동일한 장소에서.
 
그걸 지켜보다가

난 한번 더 성당 건물 주위를 돌았다.
 

그동안
기념사진을 다 찍은 중국인들은

차례차례로
한 그룹이 들어갔다 나오면
그 다음 그룹이 들어가고 뭐 그러고 있었는데,


어떤 그룹이 들어갈 즈음
불가리아인 가이드가 영어로
"더 들어갈 사람 없냐?"고 묻길래,


내가 불가리아어로
"나 이 그룹은 아닌데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불가리아 여자 가이드는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나는

"나는 이들과 같은 단체 중국인 관광객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싶었던지,


평소 나답지 않게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마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텐데 말이다.




보야나 성당은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개의 건물이 하나를 이루고 있는 구조다.


아래 도면에 나오는 

가장 안쪽의 동쪽 건물은 10-11세기,

중간건물은 13세기,

출입구 쪽 서쪽 건물은 19세기에 지어졌고,


서로 다른 시대에 지어진

이 세 개가 한 건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세개의 독립적이면서

또 연결된

이 세 개의 건물 내벽에

모두 성화가 그려져 있다.


출처: http://www.boyanachurch.org/mapen.htm


이건 성당 앞쪽.

즉 19세기에 지어진 부분으로

아래쪽의 작은 문을 통해 입장한다.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이건 측면.

측면에서 보면

서로 이질적인 세 개의 부분이 있는 게 감지된다.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이건 또다른 측면.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이것 뒷면.

즉 10-11세기 가장 처음 지어진 부분이다.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그렇게

나는 결국 한무리의 중국인들과 함께

그 작은 교회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더 들어갈 사람 없냐?"고 물을 때

합류하게 된 나는
좀 늦게 들어가서,


내가 "19세기 방"에 들어섰을 때
다른 관광객들은 벌써 "13세기 방"에 가 있었고,

거기 관리하는 불가리아 여자 직원분이
영어로 열심히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질문 없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질문 하지 않았고,
 
나는 그 때 아직

블라디미르 선생님의 추가 설명을 듣기 전이라
 
'표정이 생생해서 유네스코 유산이 됐다'
 
는 얘기가 딱히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직원분에게 다가가서
영어로
'표정이 생생한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단지 그것 때문에 유네스코 유산이 된 거냐?'

물었다.


그 분이 여기를 보고, 여기를 보라며
여기는 11세기, 여기는 13세기인데,
이렇게 다르다며,


그 생생함이라는 게 뭔지 설명해줬고,
이제

나는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이제 직원분은 다시 설명을 계속했고,
또 질문 없냐고 하길래,
나는 다시
"이 그림을 한 사람이 그린 건지,

여러 사람이 그린 건지"
영어로 질문했다.
 
그랬더니,


'그건 알 수 없다'고,

 
두 명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분이 다시
'질문 없냐?'고 물었더니,
이제 중국인들 사이에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40-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분들이

질문을 했는데,

아주 유창하진 않아도
그 나이대 중국인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마도 교수거나 뭐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보니 불가리아 가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거기서 처음 본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못봤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소피아 시내도 아닌 외곽이고,

특별하게 아름다와서

인기있는 것도 아닌 그 곳에 온 걸 보면

그들은

그냥 흔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닌지도 모른다.


근데 그들의 질문은
보야나 버전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가리키며
"저기서 누가 예수냐?" 뭐 그런거였다.
 
아니, 저기서 누가 예수냐니?
가운데 있고

누가봐도 특별한데
딱보면 알지 않나?
 
정말 보통의 중국인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이 없나보다.
 
암튼 그렇게 작은 성당의 투어가 끝났는데,
 

나는 괜히 그 직원분께 가서
불가리아어로
 
"여기서 불가리아어 배우고 있는데,
교과서에 보야나 성당에 대한 텍스트가 나와서 보러 왔다"

 
고 말했다.


나 원래 내성적이라 잘 안 그러는데,

누가 말 걸기 전에 먼저 말 꺼내는 편 아닌데,

나도 내가 이 때

왜 이렇게 적극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흔한" 단체 여행객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근데 나의 그런

쓸데없는 불가리아어 말 걸기에

그 여자분은
영어로
 
"불가리아어 공부하는데 잘은 못해요 

그러면서 오는 사람들 많다"


고 말하며 웃는다.
 
아, 이런!!!


그래도 이 때는 불가리아어 꽤 많이 늘었을 땐데,
 
그리고 아까 그 문장

그래도 꽤나 매끈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이상했나? 뭔가 실수했나?
 
아님
 
진짜 그런 사람들 너무 많이 봐서
그런 반응을 보인건가?
 

혹시

내가 아까 한 질문이 너무 무례했나?


성당 안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관람하느라

등에 맨 배낭이 관람경계선 안쪽으로

들어가서 지적받은 적이 있는데,

그런 나의 행동이 거슬렸을까?


아님 이제 곧 퇴근 시간이라

방문객들과는 더 이상 말섞기 싫었을까?


어쩜

나는

흔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과 다른 차원을 넘어

그녀에게

더 안 좋은 방문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설명 듣다가

자기들끼리 모여 사진 찍다 가는 게,

괜히 별 내용 없는 말로

잘난척 하며

성가시게 하는 것보다 그녀에겐 나았으리라.


암튼 그렇게 어색하게

10-20분 간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 감상은 끝이 났다.


기다림에 비해

소요시간이 너무 짧았던 견학을 마치고,

그냥 그렇게 나오기

좀 아쉬워서

성당 건물 주변을 좀 둘러봤다.


보야나 성당 건물 말고

다른 건 없고

그냥 나무들이 좀 있었는데,


아직 2월이라

좀 휑했다.


여름에 가면

좀 더 좋을 것 같다.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성당 건물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금방 끝나고

짧은 산책로를 되돌아 나와

이제 성당 정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갔는데,

그냥 그렇게 허무하게 집에 오기 뭐하기도 하고,


날씨도 좋고,

하늘은 푸르고,

 
버스타고 가면서 본 주변경치가 좋기도 하고,
 
워낙 거기 지대가 높기도 하고,
 
그리고 딱히 이제 할 일도 없고 해서
 
슬슬 구경하면서

걸어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동네
전망도 좋고
집들도 꽤나 괜찮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주로 부자들이 사는 동네란다.


아마도 "소피아의 평창동"인가보다.


20세기초에 쓰여진 불가리아어 희곡 중에

"비토샤 기슭에서(В полите на Витоша)"라는

작품이 있는데,

당시 불가리아 브루주아에 대한 이야기란다.


여기에 불가리아 부자들이 살기 시작한 건

최근의 경향이 아닌거다.
 

(2014년 2월, Boyana 성당,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근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Boyana 성당 근처, Sofia, Bulgaria)


그렇게 구경하며 걸어가다가 

갈림길이 나왔는데,

키큰 나무가 우거진 곳 옆에 대로가 보이고,

그 아래로 소피아 시내도 보이길래

그 길을 따라 걸어내려왔다.


그런데 걸어보니 그 대로가 생각보다 길다.


그리고

나무가 우거진 오른쪽 길은

정말 다른 것 없이

그냥 나무만 우거져 있는데,

그 우거진 나무 사이로 들어가는 통로는 없다.


풍경이 계속 같아서
중간에 좀 지겨워지긴 했는데,

뭐 돌아가긴 뭐하고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도 안 다닌다.


그래서

한두번씩 뒤를 돌아다보며,


'아래로 내려오지 말고

비토샤 산 쪽으로 올라가볼 걸 그랬나',


'그냥 다시 올라갈까?'

 

생각했다.


역시 "가지 않은 길"은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사실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좀 단조롭긴 해도 풍경도 근사하고,

이 내려가는 길도 나쁘지 않았는데,


사실 산 오르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그래서 아마 위쪽으로 난 길을 봤어도

정작 산을 오르진 않았을거면서도,


비토샤 산에서 멀어질수록

그 이제 "오르지 못할 산"쪽을

더 자주 바라보게 된다.


불가리아어에서  기슭은

поли[폴리], 즉 "스커트"라고 부른다.


영어랑 러시아어에서

"발"(foot, подножие)이라고 부르는데,

왜 불가리아어에선 스커트라고 하나 했더니,


정말 비토샤 산은 해발고도는 높아도

경사가 급하지 않고 완만해서

치마를 펼쳐놓은 것 같다.


내 눈엔 산 기슭뿐 아니라

비토샤 산 전체가 치마 같아 보인다.


소피아 바깥으로 나갔을 때

다른 불가리아 지역에서 보는

발칸산맥의 다른 산 봉우리도

모양이 비슷했다.


신기하다.


근데

한국어의 '기슭'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멀리 눈 덮인 봉우리도 보인다.


이 겨울엔 유난히 눈이 안 와서

불가리아인들이 가뭄을 걱정할 정도였는데,

비토샤 정상은 눈이 안와도

저렇게 항상 눈으로 덮여있었다.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2014년 2월, Vitosha 산 아래, Sofia, Bulgaria)


결국 그 대로의 끝까지 내려왔는데,

거의 30-5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런데 그 대로 끝에 
버스나 트램, 트롤리버스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어서,


좀 더 걸어서
그 낯선 동네를 좀 더 구경하고
트롤리 버스 2번을 타고 시내로 왔다.
 
트롤리 버스 2번 타는 데에
"국립 역사 박물관"이 있었고,

며칠후에 거기도 갔다.




나에게 "보야나 성당"

그 성당 건물이 아니라,


보야나 성당을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

그 정체모를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비토샤 산 기슭에서 본 소피아 시내,

정말 스커트처럼 생긴 비토샤 산,

그리고

햇살 가득한 늦겨울 어느 날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옆에서

기분좋게 걸어내려오던 기억이다.


목적지도 뭐 나쁘지는 않았으나,


체류 시간을 짧아서 그런지,

오고 가는 길이  

그리고 그 과정이

여러모로 더 인상적이었던

그런 여행 중 하나였다.


만약에

내가 그 맘씨 좋은 할아버지랑

처음부터 의사소통이 잘 됐으면,

그리고 그래서

천사같은 소년을 못 만났으면,


처음엔 괜히 경계했으나

결국은 그냥 점잖고 지적인 사람들이었던

그 중국인 관광객들 없을 때,

줄 서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그냥 후딱 들어가서

쉽게 보고 나왔으면,


성당 보고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버스타고 집에 휑 왔으면,


나한테 아무 의미도,

어떤 특별한 기억도 없는

그런 장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신성보다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보야나 성당의 중세 시대 성화를 보러 가서


난 성당이랑 성화뿐 아니라

그림 밖 사람들의 얼굴과

나의 얼굴

그리고

소피아의 다른 얼굴을 만나고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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