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시내 종교 건축
4-6세기에 건설된 성 소피아 성당에서
그 이름이 기원하는
"성스러운 소피아의 땅" 소피아엔,
그리스도교 종교 건축이 많다.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중세시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리스도교가 종교뿐 아니라,
학문, 미술, 음악, 문화, 생활방식 등
모든 영역을 지배했던
유럽 여러 도시에는
교회, 수도원 등 오래된 그리스도교 종교건축이
남아있기 마련이지만,
"성스러운 땅"소피아의 종교건축은
그 전반적인 풍경과 건물 자체의 디테일이
흔한 유럽의 종교 건축과 사뭇 다르다.
불가리아는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동방정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중세시대 절정을 이룬 가톨릭의 유럽,
그리고 그걸 모방한 미국, 한국의
뾰족뾰족하고 각진 고딕양식 교회가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둥근 지붕의 동방정교 교회들이 있고,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피아엔
고대 울피아 세르디카 시절에 만들어진,
아직 가톨릭, 동방정교, 프로테스탄트교회 및
보다 작은 종파들로 갈라지기 전의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들도 있고,
약 500년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물론 지금은 다 없어지고 하나밖에 안 남긴 했지만
이슬람 사원도 있다.
그리고 다른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유대교 회당도 있다.
이번 포스트에선
이렇게 어딘지 모르게
다른 많은 유럽 도시들과 구별되는
소피아의 종교 건축을 둘러보겠다..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4세기 초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 색 네모로 표시한 곳이
성 게오르기 성당인데,
(붉은 색 밑줄은 이번 포스트에 우리가 살펴볼 곳,
하늘색은 다른 포스트에서 둘러봤거나 둘러볼 곳)
지도를 통해 볼 때
소피아 시내 중에서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 게오르기 성당은
울피아 세르디카(Ulpia Serdica)의 유적 옆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당시 로마제국의 유적이다.
처음 용도는
세례당(баптистерий, baptistery)이었고,
본격적으로 성당으로 사용된 건
6세기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러 중요사항들을 결정했던
343년 세르디카 공의회(Serdica’s Councel)가
바로 이 곳에서 열렸을 정도로,
본격적으로 성당으로 사용되기 이전부터
소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건축이었다.
성당 동쪽엔 로마시대 유적이,
서쪽엔 출입구가 있는데,
내가 갔을 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침 8시, 9시, 오후 5시에
예배가 있다고 하니,
시간을 잘 맞추면 입장할 수 있을 거다.
예배는
9세기부터 슬라브인들이 문어로 사용했던,
"슬라브인들의 라틴어"인
교회슬라브어(Church Slavonic)로 진행된다 한다.
(소피아 성 게오르기 성당 영문 홈페이지)
아래 사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성당문이 나온다.
이 성당은 건축적으로 3세기 후반-4세기 초반,
즉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즈음의
초기 로마 그리스도교 교회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비록 군데군데 훼손되긴 했어도
둥근 기둥과 둥근 지붕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붉은 벽돌을 사용한 것도
당시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신앙 생활을 하는 불가리아인들에겐
그런 건축적인 측면보다는
성당 안의 프레스코 때문에 유명한 곳이다.
10, 12, 13, 14세기 성당 내부에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프레스코를 겹겹이 그렸는데,
많은 불가리아의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프레스코가 흰 회반죽으로 지워지고,
그 위에 기하학적 꽃무늬가 덧그려졌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감춰졌던 프레스코는
20세기에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성당 동쪽에는
가장 새로운 순교자 성 게오르기
(Св.Мъченик Георги Най-нови)의
자그마한 무덤이 있다.
16세기 초반 사람인 그는 25세가 되던 해
터키인들로부터 이슬람교 개종을 강요 받고,
갖은 고문을 받으며, 회유 당했지만,
끝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켜낸
불가리아 정교회 성인이다.
4세기에 건설된 성 게오르기 성당은
아마도
다른 동방정교 수호성인 성 게오르기,
즉 나쁜 용을 물리쳤다는
그 전설의 게오르기에게 바치는 거겠지만,
이름이 같은
이 젊은 순교자 게오르기의 무덤도
그 옆에 소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덤이 너무 작고 낮아서
유심히 잘 봐야 보인다.
성 게오르기 성당에서 서쪽으로 가면,
소피아의 가장 중심가 사거리 한 귀퉁이에
둥근 지붕의
성 네델랴 성당(Църква „Света Неделя“,
St. Nedelya Church)이 나타난다.
불가리아 정교회를 대표하는
불가리아 대주교구(Софийската митрополия,
Bulgarian Patriarchate) 성당인
이 성당 이름에서 네델랴(Неделя)는
불가리아어로 "일요일"이라는 의미다.
성 네델라 성당은 과거에
"주님 성당(Господня църква)"
"예수그리스도 성당(Църква "Иисус Христос")"
으로 불리기도 했다는데,
이 성당이 이렇게
여러 이름을 가지게 된 건,
이 성당이 기리는 성 네델랴(Свете Неделя)가
3세기 동방정교 성인인
그리스 출신 성 키리아키(Αγία Κυριακή)의
불가리아식 명칭이기 때문이다.
"키이아키"는
그리스어로 "일요일"이라는 의미인데,
다른 여러 유럽어처럼
(cf.스페인어 Domingo, 프랑스어 Dimanche)
"주님"이란 뜻의 그리스어 κύριος[키리오스]에서
'주님의 날, 즉 "일요일"이라는 의미의
Κυριακή[키리아키]가 파생되었다.
13세기 세르비아의 왕인 스테판 밀류틴
(Стефан Урош II Милутин)의 유물이
15세기에 이 성당에 보관되면서,
19-20세기까지
"성스러운 왕 성당(Църква "Свети Крал")"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하며,
아직도 이 성당 내부엔 그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그 기반은 돌로, 위의 몸통은 나무로 만든
건축양식 때문에,
10세기경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5세기, 16세기 문헌에도
이 성당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건
19C 대대적 리모델링과 확장 공사를 거친 이후이다.
그래서 오래된 성당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다.
소피아 체류 중 어느 날
"성 네델랴" 성당을 둘러보고,
성당 서쪽 편으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10대 후반-20대 초반 되는 여자3명이
횡단보도에서 내 뒤에 섰다.
밝은 대낮이고,
평범하게 생긴 여자애들이라
특별히 경계하지 않았는데,
자꾸 내 배낭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그래서 오른쪽 뒤를 봤는데,
그냥 여자애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침 그 때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어
나는 길을 건넜는데,
내 뒤에 서 있는 여자애 셋은 길을 건너지 않고
내 오른쪽 뒤에 서 있던 여자애가
"아니(Ne)"라고 말하니까,
셋이서 다른 데로 갔다.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길을 건너고 보니,
배낭 지퍼가 열려 있었고,
돈을 넣어둔 작은 가방이
배낭의 열린 지퍼 쪽으로 바짝 당겨져 있었다.
다행히 작은 가방의 지퍼는 닫혀 있었고,
돈도 여권도 그대로였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지만,
소매치기를 시도했던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 네델랴 성당 근처는
소매치기가 출몰하는 곳이란다.
특히 여름에 심하단다.
여름철 관광시즌
소피아를 방문한 외부인들이 주로
이국적이고 중요한 건물이 많은
이 근처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여기가 유독 그런 범죄의 타겟이 되는 거다.
나는 운 좋게
별로 기술이 좋지 않은 초짜 소매치기를 만나,
아무 손해를 보지 않았지만,
그 이후엔 이 근처에 가면 초긴장을 했고,
조금 서서 기다려야 하는 횡단보도보다는
멈춰 기다리지 않고 곧장 건널 수 있는
그 옆 지하도를 이용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론 한번도 소매치기를 만난 적이 없다.
성 네델랴 성당 남쪽에는
소피아 대학 신학대학부(Богословски факултет)가 보인다.
20세기 초 비엔나 출신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100년 된 이 건물은
한눈에 뭔가 특이해 보인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20세기 건축 같으면서,
기다란 창문과 기둥, 입구의 아치는
현대 이전의 유럽 건축 느낌이 나고,
(건축은 잘 모르지만,
세부장식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신고전주의 양식이 아닐까 싶다.)
또 기하학적 모자이크는
어딘지 모르게 터키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전통 불가리아 장식이란다.
보통 유럽이나 러시아의 건물들은
외벽의 장식을
입체, 반입체의 구체적 형상의 조각으로 하지,
형형색색의 추상적 무늬로 칠하지 않는 걸
생각해보면,
문양이 불가리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저렇게 외벽에 새겨 넣은 건
왠지 500년간 지배했던 터키의 영향인 것만 같다.
아무튼 뭔가 복잡하게 섞여 있는,
그러면서 유독
알록달록 불가리아 전통 장식이 도드라진
흥미로운 건물이다.
성 네델랴 성당 북쪽으로 길을 건너면,
쭘(ЦУМ) 백화점 아래, 지하철 입구에
아주 아주 작은 크기의
성 페트카 성당 (Church of St Petka of the Saddlers, Църква „Света Петка Самарджийска“)이 나타난다.
꽤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는
성 페트카 성당의 이름이 기원하는,
정교회 성인 페트카는 11세기 사람이고,
1956년에 이곳에서
6세기로 추정되는 로마시대 무덤이 발견됐지만,
이 성당을 언급한 문헌은
16세기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즉, 건물터 자체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성당은 11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건설된 것 같다.
이 성당은 벽은 두께가 1미터라고 하는데,
이 자그마한 성당의 벽이
어떻게 1미터나 될 수 있는지 무척 신기하다.
매표소나 뭐 이런 것도 안 보이고,
성당 밖에 예배시간도 안 적힌 걸 보면
아마 내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나 보다.
일설에 따르면,
19세기 오스만제국의 지배에 저항했던
불가리아 민족 영웅
레프스키(Vasil Levski, Васил Левски)가
이 곳에 묻혔다고 한다.
이런 속설은
1950년대 이 곳에서 사람의 뼈가 발굴되면서
진실로 굳어지는 것 같았으나,
당시 불가리아 고고학자들이
그것이 레프스키의 유골이 아니라 밝히면서,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게 레프스키의 유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이 주류인 것 같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오래된 믿음을 바꾸지 못했고,
2012년 소피아 시에서는
이 성당 뒤쪽에 이런 표지석을 덧붙였다.
В олтара на тази църква според народната памет и редица научни данни родолюбиви българи са погребали през 1873 г. Апостола на свободата Васил Левски Йеродякон Игнатий".
사람들의 기억과 과학적 데이터에 따르면, 애국적인 불가리아인들이 1873년에 자유의 사도인 바실 레프스키를 이 성당의 제단에 묻었다. Herodiakon 이그나투스
이 성 페트카 성당에서 멀지 않는 곳에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 한가운데
성 소피아 동상(Статуя на Света София, Statue of Sveta Sofia)이 서 있다.
1950년대부터 이 곳에 레닌 동상이 있었는데,
그걸 없앤 자리에
2000년 성 소피아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소피아가 쓰고 있는 황금 왕관은 "권력",
화환은 "명예",
올빼미는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피아가 비잔틴 공주였다고 하니,
황금 왕관은 쌩뚱맞은 설정이 아니다.
그리스어로 '소피아'가 "지혜"니,
올빼미도 자연스러운데,
"명예"를 상징하는 화환은
왜 거기 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도시 "소피아"의 이름이 있게 한
성 소피아 성당(Църква „Света София“, St. Sofia Church)은
성 소피아 동상 동쪽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성 소피아 성당은
성 게오르기 성당에 이어
소피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이다.
이 성당이 서 있는 자리는
2세기엔 극장,
4세기까진 로마식 공동묘지(necropolis)였다가,
4세기 이후 성당이 들어서게 되는데,
침입자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고,
소피아 공주의 전설에 등장하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에
현재의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고대 말기, 중세 초기의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14세기 이 성당의 이름을 따
외부인들이 이 도시를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시기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 때 성당 내부 프레스코가 거의 다 손상됐고,
19세기 지진으로 건물이 많이 파손됐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 복원됐다.
나는 수세기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해서
매우 낡았을 줄 알았는데,
겉모습은 매우 깔끔해서
세월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성당 내부는 외부보다는 좀 더 낡고,
파손된 기둥이나 서까래도 그대로 노출됐는데,
그래도 몇 백년 전 건물 치고는
매우 상태가 양호했다.
그리고 규모가 꽤 크고,
분위기는 매우 경건하다.
성당 입구에는 여러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이런 거 없어도 원래 난
박물관이나 성당 내부 사진은 잘 안 찍지만,
3번째 좌측 그림이
동영상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촬영금지인 것 같아
더욱더 내부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어기는 동양인들이 좀 있는지,
내가 성당에 입장했을 때
성당 안에 있는 관계자들이
매우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성당 바깥에는 공터 같은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 한가운데는
용을 물리쳤다는 정교회 성인
성 게오르기의 조각이 서 있었다.
크기가 지나치게 크지 않고,
표면이 닳지 않은 것이
세워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성 소피아 성당 동쪽에는
무명용사 기념비
(Паметник на Незнайния воин, Monument of the Unknown Soldier)가 서 있다.
이것은 1981년,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는데,
다른 무명용사 기념비와 마찬가지로
꺼지지 않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그 뒤 작은 벽에는
불가리아 작가 이반 바조프(Иван Вазов)의
시가 적혀 있다.
БЪЛГАРИЙО, ЗА ТЕБЕ ТЕ УМРЯХА,
ЕДНА БЕ ТИ ДОСТОЙНА ЗАРАД ТЯХ
И ТЕ ЗА ТЕБ ДОСТОЙНИ, МАЙКО, БЯХА!
불가리아여, 당신을 위해 그들이 죽었습니다.
단지 당신만이 그걸 받을 자격이 있었고,
그들은 당신을 가질 자격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불가리아여!
그리고 입구 쪽엔
불가리아의 상징인 사자가 한 마리 앉아 있다.
난 이 사자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앞에 가면 괜히 기분이 차분해지고
엄숙해졌었다.
이 사자 건너편엔
불가리아 정교회 시노드
(Holy Synod of the Bulgarian Orthodox Church, Българска патриаршия - Свети Синод)가 있다.
성 소피아 성당 동쪽에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Храм „Свети Александър Невски“, Alexander Nevsky Cathedral)이 있다.
1912년에 지어졌으니,
지금까지 둘러 본 성당들과 달리,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지 않다.
하지만 불가리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 중 하나로,
그 규모가 압도적이라
소피아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검색창에 "소피아"나 "불가리아"를 입력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진도
이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이다.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스웨덴과 독일의 침입을 막아낸
13세기 러시아의 영웅으로
16세기에 동방정교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그의 이름을 딴 넵스키 대로는
그 도시 중심의 가장 주요한 번화가이기도 하다.
1877-1878년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로
500년 간의 오스만의 지배에서 벗어난 불가리아가
당시 사망한 러시아군인들을 추모하며
이 성당을 짓게 되었고,
건설을 시작한 게 1882년인데,
완성된 건 1912년이다.
30년이 걸린거다.
신 비잔틴 양식의 성당인데,
매우 거대하고 화려하다.
하지만 역사가 짧으니,
그 규모에 비해선 이야깃거리가 없다.
이 근처엔 항상 관광객이 많은데,
그들이 기념사진 찍는 걸 보면
괜히 나도 찍고 싶어져서
이 앞에선 유독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건물이 없어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이
사진이 좀 잘 나오기도 한다.
여기서 셀카도 많이 찍었는데,
이상하게 셀카는 별로 잘 나온 게 없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성당 내부가 기억 안 나는 것이
아마도 안엔 안 들어갔거나,
혹은 들어가긴 했는데
그냥 큰 것 말고 다른 특징은 없었나 보다.
아무튼 이건 서쪽에서 본 모습.
이건 남쪽에서 본 모습
이건 동쪽이다.
얼마나 큰 지,
멀리서 찍어도 길이 꽉 찬다.
밤에도 이 성당 근처는 유난히 밝다.
이건 북쪽이다.
성 소피아 성당과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해방자 황제 대로(бул. "Цар Освободител")"앞에
러시아 성당(Russian Church, Руска църква)
이 나타난다.
"러시아 성당"의 원래 이름은
"기적의 성 니콜라이 성당"인데,
"불가리아 정교회"가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이기 때문에,
흔히 "러시아 성당"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달리,
동방정교는 종교 조직이 나라에 속해 있어서,
러시아 정교, 불가리아 정교, 그리스 정교가 다르고,
소피아엔 니콜라이 성인의 이름을 딴
"불가리아 정교회" 성당이 몇 개 더 있다.
불가리아가 러시아 제국의 도움으로
500여년 간의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이슬람 사원을 헐고,
1907년 정교회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1914년에 완성되었다.
당시 이곳은 러시아 대사관 사람들과
소피아 거주 러시아인들을 위한 정교성당이었고,
당시 러시아 제국의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의 이름과 같은
정교회 성인의 이름을 따
성 니콜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7세기 모스크바 성당의 스타일로
러시아 건축가가 지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에서 본 성당들처럼
여기저기 금색으로 번쩍번쩍거리고,
쿠폴(купол)이라고 하는 동그란 지붕이
다른 소피아 성당들과 달리
크기가 좀 더 작고,
양파를 닮았다.
1917년 이후에는
공산혁명을 피해 러시아에서 빠져 나온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위한
해외 러시아 정교회(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 заграницей)로 사용되기도 했다.
1946년 불가리아가 공산화되자,
1947년부터
당시 불가리아의 우방이었던 공산 소련 관할 하의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소피아의 "러시아 성당"은
언덕의 경사면에 자리를 잡고 있고,
입구에서 한참 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예배하는 공간이 나온다.
예배당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러시아인들 같았다.
이건 전면.
이건 성당 뒤쪽.
이건 측면이다.
이 근처에 소피아 필하모니가 있어서
밤에 이 성당 근처를 많이 지나다녔는데,
여긴 밤에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만큼 밝지 않다.
사실 소피아에선
밤에도 밝은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이
오히려 좀 예외적 경우이긴 하다.
성 니콜라이의 이름을 가진 성당이
소피아에 몇 개 더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높은 현대식 빌딩 숲 사이에 자리잡은,
아주 작은
성 니콜라이 성당(Църква Свети Николай Мирликийски, Saint Nicholas Mirlikiyski Church)이다.
난 이 성당이 너무 작고
또 주변 건물들 사이에 너무 묻혀 있어서,
처음엔 진짜 성당이 맞는지 의심했었다.
마침 문이 열려 있어서 안에 들어갔었는데,
내부도 정말 작았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에 성당이 세워진 건 13세기지만,
그 이전 4세기 초에 이 곳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머물렀던
로마시대의 궁전이 자리잡고 있었고,
지금 남아 있는 이 성당 건물의 벽 중 오래된 건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원래 매우 규모가 큰 대성당이었고,
오스만제국 때만 해도
다른 니콜라이 성당과 구별하기 위해
대 니콜라이 성당(„Св. Никола Големи“)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의 공습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1950년대 일부만 복원하여
지금은 아주 작은 교회가 되었다.
불가리아인들 사이에서 이 성당은
성화로 유명한데,
폭격으로 건물이 완전히 파괴된 상황에서도
니콜라이 성화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불가리아인들은 이 성당을
"기적의 성 니콜라이 성당
(Свети Николай Мирликийски Чудотворец)"
이라 부르기도 하며,
성 니콜라이의 축일인 12월 6일이 되면,
사람들이 이 작은 성당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성 세드미치슬레니치 성당(Църква Свети Седмочисленици, Saints Sedmochislenitsi Church)
은 소피아 시내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해있다.
세드미치슬레니치(Седмичисленици)는
키릴문자의 시초가 된 글라골문자를 만든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
그리고 그의 제자 5명을 일컫는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선 별로 안 기리는
매우 불가리아적인 성인들을
이름에 넣은 것도 특이하지만,
그보다는 이 성당의 전력 때문에 특별한 곳이다.
소피아의 오래된 성당들은
약 500년 간의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던
역사를 공유하는데,
이 성당은 특이하게도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을
모스크바 붉은 광장 위에 굼(ГУМ) 백화점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포메란체프(Alexander Pomerantsev, Александр Никанорович Померанцев)
의 제안으로,
1901-1902년부터
정교회 성당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다.
리모델링하면서
불가리아 전통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는데,
그래서 외관이 매우 독특하다.
혹시 안에 들어가면
이슬람 사원의 느낌을 찾아낼 수 있을까 했는데,
내가 한번도 이슬람 사원의 내부를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주 말끔하게
이슬람 사원의 요소를 제거했는지,
그런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그냥 흔한 정교회 성당이었다.
불가리아가 오스만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수많은 이슬람 사원을 허물어서,
현재 소피아에 남아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Banya Bashi Mosque)라 불리는
이 소피아 내 유일한 이슬람사원은
소피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했기 때문에
이번 포스트에선 위치만 표시하겠다.
이 "바냐 바쉬 모스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대교 회당도 있다.
소피아 시나고그(Sofia Synagogue, Софийска синагога) 라 불리는
이 유대교 회당은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둘러본
"중앙 소피아 마켓 홀"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1909년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지어,
비엔나에 있는 유대교 회당과 매우 닮았다는
"소피아 시나고그"는
유럽 전체에서 3번째,
남유럽만 따지면 가장 큰 유대교 회당이다.
1,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지만
보통은 50-60명 정도의 신자만 사용하는데,
유대인들이 거의 다 이스라엘로 떠나
소피아 내에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란다.
난 주변에 사람도 아무도 없고,
커다란 건물에 달린 두꺼운 문도 닫혀 있고,
안내문도 없어서,
여기를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몰라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그냥 사진만 찍고 나왔는데,
일반인의 입장도 가능하고,
안에는 유대인 역사 박물관도 있단다.
Youtube에 내부 동영상이 있다.
그리고 이건 공식 영문 홈페이지다.
바냐 바쉬 모스크와 소피아 시나고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역시나 소피아 가장 중심부에
성 요셉 가톨릭 성당(Катедрала Свети Йосиф,
가톨릭 성당은 이 외에도 꽤 여러 개가 있는데,
가장 큰 건 성 요셉 가톨릭 성당이고,
소피아뿐 아니라,
불가리아를 통틀어 가장 큰 가톨릭성당이라 한다.
이 성당은 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2차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2006년에서야 다시 건설됐다.
200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불가리아를 방문했을 때
초석을 놓았다 하니,
그 계획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가톨릭 신자가 소수다 보니,
꽤 늦게 실행된 거다.
지은 지 10년밖에 안 되는 성 요셉 성당은
그냥 한국의 교회랑 닮았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서유럽 가톨릭 성당의 건축이 주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아우라,
어떤 묵직함이나 고급스러움도 없다.
불가리아어뿐 아니라
영어, 라틴어, 폴란드어 등
시간대에 따라 여러 언어의 미사를 하는
이 매우 국제적인 성당은,
미사 분위기는 매우 경건하면서,
사람들은 밝고 명랑하고,
물론 100%를 다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신부님이 불가리아어로 강론할 때
발음도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서
기분 좋게 듣곤 했다.
이 성당 바로 옆에는
울피아 세르디카 서문 근처 로마유적도 있다.
성당 앞에는
성당의 초석을 놓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서 있는데,
폴란드에서 만난 그의 동상들과 사뭇 다르고,
어딘지 모르게 불가리아인을 닮았다.
사진에서 멀리 성 소피아 동상과
불가리아 국회 건물도 보인다.
새삼 소피아 중심인 게 실감난다.
여기는 안뜰인데,
개인적으로
바깥쪽에서 보는 성당보다
여기서 보는 성당이 더 좋았다.
여기서 뒤를 돌면
로마시대의 유적이 눈에 들어온다.
주님 승천 성당(Църква"Възнесение Господне")은 불가리아 시내에 있는 성당도 아니고
특별한 소피아 관광지도 아닌데,
나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소피아에 도착한 첫날,
뭐 딱히 급하게 할 일도 없으니
그냥 시내 구경이나 하러 가야겠다 싶어
시내 쪽으로 가다가,
루마니아 대사관 건너편에 특이한 건물을 발견했다.
생긴 건 정교회 성당인데,
아무런 표지판도 없고,
문이 하나 보이긴 하는데,
막상 들어갈 용기는 안 나고 해서,
그냥 그 주위를 한 바퀴 빙 돌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발견한 어떤 여자분이
안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나에게 손짓하며 들어오라고 했다.
그 손짓에도 아주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니,
문을 열고 성당 밖으로 나와서까지
나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그렇게 머뭇머뭇 들어간 그 곳은
아주 작은 성당이었다.
내가 사진 찍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그래도 된다고 하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옆에서 청소하던
10대 후반-20대의 예쁜 여자를 가리키며,
'쟤가 한국 영화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는 주고받지 않았다.
그냥 한국 사람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이 성당의 자랑거리라며,
어떤 작은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영어로 그녀가 "예수님의 일부분"이라고 하며,
자기 영어가 짧아서 설명 잘 못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불가리아어로 써 있는 걸 보니
"십자가의 일부"다.
그게 종교적으로 너무 대단한 물건인지라,
이렇게 작은 성당에
이런 게 있을 리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가 혹시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계속 의심했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맞다.
그 진위에 대한 논란은 충분히 있을 수 있겠으나,
불가리아 정교회에 따르면,
불가리아의 13개 정교회 성당에
십자가의 일부가 보관되어 있고,
2010년에 세워진 이 성당에도
2011년 그 중 하나가 전달되었다.
와! 이렇게 의미 있는 걸
여기서 이렇게 우연히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작은 성당을 구경하고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는데,
처음 날 성당 안으로 초대한 그 여자분이
선물이라며 나에게 무슨 장식품을 주었다.
아마 크리스마스 때 다는 장식품이지 않은가 싶다.
사실 난 그냥 거기 들어오게 하고,
사진 찍게 해주고,
설명도 해주고,
뭐 그걸로 충분히 감동이었는데,
그렇게 선물까지 주니,
이제 내가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나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하게
온몸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며 인사했더니,
다음에 또 오라고 했다.
그렇게 마법과 같은 사건으로 시작한
6주간의 소피아 체류는
이와 비슷한 따뜻한 호의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기분 좋게 잘 지내고,
불가리아 방문 목적도 나름 달성하고,
한국에 돌아오는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여기에 들르러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내가 너무 늦게 간 거다.
그래서 결국 다시 가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내 방에는
그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려있고,
다음에 소피아에 가게 되면
이 성당에 다시 꼭 가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이렇게 불가리아는
사진만 봐서는 절대 모르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매력이 많은데,
피상적으로 짧게 겉만 보고
기념 사진만 찍고 오는
그런 여행에선 알거나 느낄 수 없는
숨겨진 오랜 역사와 남다른 이야기,
다양한 문화의 공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별다른 꿍꿍이 없는 순수한 호의,
훈훈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래도 그게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하기엔
나의 언어가 너무 미천하고,
그런 소피아를 시각화하기 위해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
사진을 내걸 수 밖에 없는 게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