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지근거리 그리스 테살로니키 첫날
그리스 3일째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아테네 시내와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후 4시쯤 시외버스로 출발해서,
밤 11시 가까이 되어 테살로니키에 도착했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 버스, 기차, 배가 있었는데,
촌스러운 나는,
같은 나라에 있는 도시들을 이동하며
비행기를 타는 건 잘 안해봐서
선택지에서 일찌감치 제외시켰고,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 있을 수 있는 게
시외버스여서 그걸 택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유럽 저가항공 중에는
버스나 기차보다 더 싸게 나오는 것도 있으니,
그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각자 자신의 상황과 성향에 가장 잘 맞는 수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규모나 중요도에 있어
아테네에 이어 그리스 두번째 도시다.
"테살로니키"라는 도시의 명칭은
"테살로스의 승리"라는 의미며,
테살로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자매 다.
즉, BC 4C 알렉산더 대왕시대 즈음해서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며,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자신을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이라고 여긴다.
또한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역사에서 오랫동안
"마케도니아"라고 불렸던 지역에 속하는데,
1990년대 초반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북쪽의 이웃나라가 국명을
"마케도니아"로 정하려고 했을 때,
그리스가 크게 반발했었다.
나라 "마케도니아"가 그 이름을 국명으로 선택한건
그곳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났고
그 지역이
고대 마케도니아의 일부였기 때문이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지역 "마케도니아"는
오랫동안 그리스의 지역명이었기 때문에,
그리스가 아닌 슬라브인이 세운 나라의 국명으로 쓰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이에 여러 절충안이 나온 우여곡절 끝에
나라 "마케도니아"는 FYROM
즉 Former Yugoslav Repuplic of Macedonia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이라는 공식명칭을 얻게 되었다.
테살로니키는
현재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와 가깝지만,
예전에도 오랫동안 슬라브인들과 접촉이 있었고,
9C에 슬라브어를 위한 문자를 발명한
키릴, 메토디우스 형제의
고향도 바로 이 테살로니키다.
불가리아에선 그들의 부모가 불가리아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한데,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선
그리스인이었던 이들 형제가 여러 언어를 구사했고,
그들이 구사한 언어 중 하나인 슬라브어를 위해
문자를 발명했다고들 기록하고 있고,
불가리아인이건 그리스인이건 상관 없이
그들이 바로 이 남슬라브 국가들에서 가까운
그리스 북부 도시 테살로니키 출신이다.
그리고 신약성서의 사도 바오로가 방문해서 후에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
을 쓰기도 했던 바로 그 지역이며,
이후 AD 4C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나서는
콘스탄티노플 (현재 이스탐불) 다음 가는
비잔틴제국 제2도시로 그리스도교가 번성했다.
아테네가 아테나의 도시이자,
신화에 바탕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라면,
테살로니키는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이자
그리스도교에 바탕한 비잔틴 제국의 도시다.
아무튼 2014년 1월말 어느 날,
아테네에서 오후 늦게 출발한 버스가
약 6시간만에 도착한 테살로니키 버스터미널에는
나의 지인인 동방정교 신자 ㅎ의
그리스인 대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ㅎ는 그때 다른 도시에 있었고
다음날 테살로니키 도착 예정이었다.
나는 그냥 영어로 물어보고
버스나 택시 타고 가겠다고 했는데,
시내버스는 안내방송이 그리스어로만 나오고,
택시는 밤이라 위험할 것 같다면서
ㅎ 자신이 너무 걱정을 하고,
그리스인들은 손님을
그렇게 혼자 오게 놔두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님이 은퇴후 달리 할 일도 없으셔서
마중나가고 싶어 하신다고 하기도 하고,
처음엔 그렇게 "신세를 지는 게" 좀 불편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지금 아니면
언제 그렇게 "현지인"의 대접을 받아보겠나 싶어서
그럼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나를 마중하러 밤 10시 30분에
67세 대부님께서 버스터미널에 직접 나오셨다.
테살로니키 숙소는 유스호스텔로 잡았다.
위치도 좋고, 평가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흔치 않은 female only 방도 있고,
아테네와 달리 테살로니키는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또 겨울 비수기고 주말도 아니라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터미널에서 나를 반갑게 맞으신 대부님께서
유스호스텔까지 나를 안내하시면서 영어로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 설명도 해주시고,
나를 유스호스텔 방까지 안내해주시고
짐도 들어주시더니,
다음날 아침 11시에 유스호스텔 앞에서 만나자고,
테살로니키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ㅎ가 주라고 했다며
바나나 한 다발, 750ml 생수 두 병,
그리고 그리스 초콜릿 ion이 든
비닐 봉다리를 건네주셨다.
나는 나대로
한국에서 싸온 낱개 포장된 작은 사이즈 조미김과
(예전에 대부님이 김 좋아한단 얘기 들은 적 있다)
얼마 전 불가리아 바치콥스키 수도원에
소풍 갔을 때 샀던
"기적의 성모"상을 선물로 드렸다.
그렇게 대부님과 선물교환하며(?) 작별인사를 하고
유스호스텔 방에 들어갔는데,
비수기라 6인실에도
나빼고 0-1명만 있으리라는 내 예상과 달리,
3-4명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고,
여기저기 짐이 있어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순간적으로 '싱글룸으로 옮길까' 했는데,
우선 있어보고 불편하면 바꾸자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거기 있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깊은 잠을 잤는데,
잠에서 깨서 시계를 보니 6시 반 정도였다.
관광지가 다들 너무 일찍 열고 일찍 닫아서,
그리스 와서 계속 그 시간 쯤에 일어났더니
내 몸이 그 시간을 기억했나 보다.
하지만 그날은 그 시간에 마땅히 할 일도 없어
다시 잠을 청했는데,
그리고나서 다시 잠을 깨니 9시 반.
"룸메이트"들은 아직 한참 꿈나라고,
나는 서둘러 준비하고 아침을 먹고 돌아왔는데,
3-4명인 되는 줄 알았던 룸메이트는 2명이었고,
그들 중 금발의 아이는
늦게 일어나서 아침 먹으러 내려가고
짙은 갈색 머리는 계속 자고 있었다.
11시에 맞춰 ㅎ의 대부님을 만나러 내려갔다.
대부님은 약속장소에 기다리고 계셨고,
나를 태운 후 천천히 차를 몰면서
거리와 건물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대부님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상하게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역시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문맥!!
그렇게 동서를 관통하는
에그나티아 길(Egnatia Street)을 주욱 가서
좌회전 한 후에
해변가의 니키스 길(Nikis Avenue)을 달렸다.
비가 오고 날씨가 궂었지만
해변도로의 풍경이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다.
혹시 내가 다시 테살로니키에 가게 될 일이 있다면
그 때는 해변에 있는 좀 좋은 호텔을
숙소로 잡아야겠다.
난 테살로니키가 어떻게 생긴지 잘 몰라서
그냥 유적들과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했었다.
호스텔에서 바로 유적이 보이니,
정말 그 점에서는 최고의 장소였다.
니키스 길을 따라 가다가 테살로니키의 상징이라는
하얀 탑(White tower)에서 좌회전을 한 후
크기는 좀 작지만
모양은 남산타워 같이 생긴 곳에 갔다.
거기는 OTE 타워이며,
OTE는 그리스 전화회사이름이다.
OTE 타워는 박람회장 입구에 있었는데,
그 박람회장에서 가을마다 큰 박람회가 열린단다.
박람회장이라 커다란 지구본도 있고,
무언가 다른 걸 또 짓는지 공사가 한참이었는데,
셋째날에 갔을 땐 코끼리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원래 있었는데 계속 못 본 건지
아님 그날 갑자기 생긴건진 알 수 없다.
이건 길건너에 있는 급수대다.
OTE타워 4층에 있는 카페에서 대부님과,
흔히 사람들이 터키식이라고 하는,
그리스식 커피를 마시며
테살로니키 시내를 한 눈에 감상했다.
그 카페는 조금씩 조금씩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어서,
한 시간(?) 가량 거기 앉아 있으면
그 카페가 360도를 돌아
테살로니키 시내를 다 볼 수 있다.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부님이 눈에 보이는 풍경을 설명해주셨다.
여기는 아리스토텔레스 대학
(그리스에서 가장 큰 대학이란다),
여기는 ㅎ가 그리스어 공부하던 어학원
Institut français,
여기는 군대,
여기는 고고학박물관,
여기는 올림푸스 산...
그 올.림.푸.스. 산이요?
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비록 그날 날이 흐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다고 했던 그 산을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맞딱드리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올림푸스 산과
테살로니키 시 사이에 있는
내 눈 앞에 펼쳐진 그 바다는
그 유명한 에.게. 해란다.
간만에 ㅎ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고,
테살로니키가 키릴, 메토디우스의 고향이며,
불가리아에서 가까운 그리스 북부라는 것만 알고,
그밖에 다른 사전지식 없이 온 나에게는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날씨도 흐려 뿌옇게 보이니,
더욱더 그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4층 카페가 한 바퀴를 다 돌았을 즈음
대부님이 "이제 다 봤다"면서 나가자고 하셨다.
OTE 타워에서 나와 이제 북쪽에 있는 성으로 갔다.
거기 전망도 정말 끝내줬다.
멀리 바다와 테살로니키 시내가 어울어져 장관이다.
내가 감격해서 사진을 계속 찍고 있느니,
그 풍경을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어줄테니
카메라를 달라고 하셨다.
내가 대부님은 안 찍으시냐고 물었더니
여기 많이 와 봤다고 안 찍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제 그 성채에 들어가시려나 했는데,
그냥 그렇게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차에 올라 점심을 먹으러 갔다.
대부님 사시는 곳이 테살로니키 동쪽인데,
그 동네에 싸고 맛있는 집이 있다고 하셨다.
그 그리스식당에서 대부님이 주문하신 음식은
정말 다 맛있었다.
토마토 소스로 간을 한 새우,
치즈 요리
(치즈가 주재료고 안에 무언가 조금씩 들어갔는데,
오븐스파게티처럼 그렇게 치즈가 데워져서 나왔다),
삶은 래디시,
시금치 닮은 삶은 야채(그래서 좀 나물 같았다),
삶은 브로콜리,
신선한 양파가 나왔고,
거기에 올리브 오일을 드레싱해 먹었다.
그리고 말랑말랑 맛있는 빵 한 바구니도 있었다.
그거만으로도 이미 엄청 배가 불렀는데,
잠시 후 메인요리 구운 생선이 등장했다.
나는 원래 음식 잘 못 남기는 데다가
맛있어서 정말 많이 먹었더니,
대부님이 '더 시켜줄까?' 물으신다.
아니, 이제 됐다고 말했는데,
잠시 후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장.
그것도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어서,
혹시 와인도 마시겠냐고 물어보셨다.
대부님은 화이트 와인만 드신다길래
나도 화이트 와인 마시겠다고 했고,
운전해야 하니까 대부님이 1잔만 마시는 바람에
내가 나머지 다 마시고
정신이 살짝 알딸딸해졌다.
배는 터질 듯이 부르고
정신은 알딸딸하고,
올림푸스 산과 에게해가 옆에 있고
뭔가 많이 비현실적이다.
암튼 그렇게 친절한 현지인의 환대로
매우 잘 여행하고 있을 즈음
걱정 많은 ㅎ한테 전화가 왔고,
5시 반쯤 테살로니키에 도착하게 될 ㅎ 를
대부님과 같이 터미널로 마중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4시 반쯤 다시 만나기로 하고
대부님은 나를 내 숙소 앞에 떨구어주고 가셨다.
그렇게 대부님과 헤어진 시간이 대략 3시쯤.
1시간 반 정도 남았으니까,
약속장소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좀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테살로키니는 아래 지도와 같이 생겼는데,
아래 지도에서도 보이듯이 서쪽 지역에
해안에서 첫번재, 세번째, 네번째 길 주변에
중요한 관광지가 몰려있다.
우선 우리 숙소 옆에 보이는
갈레리우스 로툰다(Rotunda of Galerius)에 갔다
그 옆 정교회 성당(Church of St. Panteleimon)에도 들어가 보고,
그 앞에 갈레리우스 아치(Arch of Galerius)도 봤다.
갈레리우스 로툰다는 내가 머문 숙소에서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까웠는데,
로툰다와 아치 모두 4세기 갈레리우스라는
로마황제가 머무는 곳 중 하나로 건설되었다 한다.
이 중 로툰다는 갈레리우스 황제 사망 이후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16세기에 오스만 제국 지배 하에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고,
독립 이후 다시 정교회 성당이 되었다.
이게 갈레리우스 로툰다.
이게 갈레리우스 아치다.
이건 갈레리우스 아치 옆 현대적 성당이다.
갈레리우스 아치가 있는,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큰 길 중 하나인
에그나티아(Egnatia)거리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길이 있길래,
거기 가서 사진 찍고 그 안쪽 길로 조금 더 걷다가
다시 에그나티아(Egnatia)거리로 나와서
좀 더 걷다보니 터키 목욕탕이랑 광장이 나온다.
그러고보니,
아까 차타고 가면서 대부님이 다 설명해주신 거다.
이건 아마도 로툰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판텔레이몬 성당(Church of St. Panteleimon)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 8세기부터지만,
이 자리에 성당이 있던 건 3세기부터라고 한다.
테살로니키 있는 동안 3일 내내 갔었는데,
계속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가봤다.
15세기 오스만제국 지배 시기에 세워져서,
1960년대까지 사용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터키 목욕탕 북쪽으로
주택가 사이 언덕 길에
로마 포럼(Roman Forum)이 있다.
아테네의 로마 아고라보다는 좀 더 작긴 한데
그래도 작은 극장까지 있는 커다란 광장이
축구장처럼 펼쳐져 있다.
1960년대 우연히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원래 그리스식 "아고라"가 있던 곳에
로마식 "포럼"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완전히 열려 있는 공간이라
위에서 다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입장 시간이 따로 있어서
그 때는 안에 들어가서 걸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첫날 갔을 땐 입구가 잠겨 못 들어가봤는데,
아테네에서 그런 유적 많이 보고, 걷다와서 그런지,
크게 궁금하지 않아서,
그 다음에도 가보진 않았었다.
그리고 조금 더 뒤에 교회가 있길래
뭔가 해서 들어가 보니,
데메트리우스 성당(Hagios Demetrios)이라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 중 하나였다.
데모트리오스는 테살로니키의 수호성인이며,
4C에 처음 세워져 7C에 지금 모습을 갖춘
데메트리오스 성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테살로니키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들을 다 거쳤다.
물론 그것이 대체로 몰려 있긴하다.
그런데 데메트리우스 성당 들어가기 전에
ㅎ에게서 전화가 왔다.
눈이 많이 와서 늦을 것 같으니까
4시반에 터미널로 마중나오지 말라고,
대부님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리겠다고.
눈 때문에 언제 도착할 지 모르겠으니
도착하는대로 전화하겠단다.
그래서 이제 시간이 더 생겼으니
이제는 바다 쪽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거기서 내려가서
바다 쪽으로 가다가
이번에는 성 테오도라 수도원(Saint Theodora Monastery)을 발견했다.
비잔틴 건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ㅎ이 좋아하는 데란다.
나도 그곳이 맘에 들긴 했는데,
아무리봐도 수도원 치곤 너무 중심가에 있고,
또 내부장식이 너무 화려했다.
가톨릭 수도원과 동방정교 수도원은 좀 다른가보다.
그래서 거기서 사진 찍고 좀 걷다가
아리스토텔레스 광장까지 가니,
바다가 나타났다.
테살로니키의 다른 곳이 비잔틴의 느낌이 강하다면
여긴 이름에 걸맞게 고대그리스적 느낌이다.
실제로는 고대그리스와 직접적 관련 없이
20세기 초에 새로 조성된 광장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에서
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이제 막 해가 지기 시작하더니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이
좀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비가 와서 좀 더 운치 있어졌다.
하지만 비 맞으면서 좀 더 그렇게 걸으면
감기 걸리게 생겼고,
비에 맞아 사진기가 이상해졌는지
아님
야경은 원래 잘 안 찍히는 카메라인지
사진도 잘 안 찍히고 그러길래
하얀 탑(White Tower)에서 좌회전을 해서
시내 쪽으로 갔다.
그 때가 5-6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ㅎ는 오늘 못 볼 것 같고,
워낙 점심을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서 저녁은 못 먹겠고,
좀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숙소로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갈레리우스 아치 근처에 왔는데
ㅎ한테서 전화가 왔다.
테살로니키 도착했고, 지금 시내라고.
그래서 아치 앞 성당에서
드디어 몇달만에 ㅎ를 만났다.
테살로니키 시내를 조금 산책하다가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ㅎ줄려고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가지고
소피아에서 아테네를 거쳐
테살로니키까지 들고간 것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사실 거의 다 인스턴트 식품이긴 했는데,
그래도 오랫만에 보는 한국적인 것이라 그런지
아님 예상못했던 거라 그런지
ㅎ가 생각보다 많이 좋아라했다.
뭔가 뿌듯하다.
그리고 지난주 바치꼽스끼야 수도원 갔을 때 산
"기적의 성모님" 성당도 주었다.
어떻게 보면 불가리아보다
그리스가 정교의 원류긴 하지만,
소풍 때 선생님이
그 수도원이 기적의 성모로 유명하다 하셨으니,
(근데 그 선생님은 거기서 성상 안 사신 것 같다.)
내 꺼를 하나 사고,
곧 만나게 될 정교도 ㅎ와 대부님 것도
하나씩 샀었다.
그렇게 까페에서 한 9시 정도까지 이야기하다가
다음 날 오전 11시에
"비잔틴 박물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아침에 계속 자서 머리만 봤던 그 짙은 갈색 머리가
그 금발애와 둘이서 그리스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침에 유스호스텔에서 식사할 때도
다들 그리스어로 이야기하는 게 이상했는데,
왜 그리스 애들이 여기와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너무 둘이 열심히 얘기하길래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진한 갈색 머리 애가 나더러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너희들은 그리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네들은 여기 대학 학생인데,
지금 시험 기간이고
여기가 학교 근처에서 가장 숙박비가 싼 곳이라
여기서 자면서 공부하고 있단다.
아~~ 그래서 이렇게 그리스 애들이 많았구나.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그 날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정리한 후,
카페에서 찍은 ㅎ의 사진을 태그시키려
백만년 만에 facebook에 로그인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나는 조용히 사진을 올리고,
내 그리스 룸메이트들은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진한 갈색 머리애가 내쪽으로 다가오더니
커다랗고 동그란 과자를 쑤-욱 내민다.
그릭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거 하나 먹고,
만약에 맘에 들면
저기 또 있으니까 갖다 먹으라고 한다.
아, 그리스 사람은 정말 친절하구나.
물론 난 너무 배가 불러 그걸 먹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먹을려고 침대 옆에 두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
아침에 대부님부터
밤에 그 그리스 룸메이트까지
정말 그리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손님한테 친절한 것 같다.
가식적인 웃음을 얼굴을 계속 담고 있는
겉 친절이 아니라,
특별한 이해관계 없이도
특별한 목적 없어도
가식적이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베푸는 그런 친절 말이다.
사실 대부님은 굳이 나를 그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테살로니키 구경시키고 설명하고 할 필요 없고,
그 그리스 대학생들은
굳이 그 과자를 내게 건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안해도 되는 걸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그래서 그 친절을 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거나 불편하기보다
매우 자연스럽고 만족스럽다.
그래서 영어에는
Greek hospitality라는 표현까지 따로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