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지근거리 그리스 테살로니키 셋째날
테살로니키 마지막 날이자,
그리스 마지막 날.
이제 다시 불가리아 소피아로 돌아가야한다.
테살로니키에서 소피아행 버스는
하루 두 대로
하나는 낮에, 다른 하나는 밤에 있었는데,
난 낮 3시 반에 소피아행 버스를 탔다.
검색해보니,
2018년 현재는 선택지가 좀 더 많아졌는데,
그래도 테살로니키 출발시간이
아침 일찍, 밤 늦게, 그리고 낮
이렇게 크게 3개라
지금이라도 역시 난 낮버스를 선택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테살로니키 마지막 날은 짧을 거라,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했는데,
그 전날 엄청 돌아다닌데다가
저녁에 와인도 좀 마신 상태라
좀 더 깊게 잠을 자서
알람 소리에 겨우 비몽사몽 잠이 깼다.
전날은 ㅎ 과 함께 비잔틴 문화박물관을 봤었는데,
이 날은 나 혼자 고고학박물관을 보고
2시간쯤 후 ㅎ를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일찍 체크아웃하고
9시 10분-15분쯤 숙소에서 나와,
비잔틴 문화 박물관 바로 옆에 자리잡은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of Thessaloniki)에 들어갔다.
2018년 현재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 개장시간은
9:00-16:00,
입장료는 4유로다.
(테살로니키 고고학박물관 홈페이지)
난 그 전날 비잔틴 문화박물관 갔을 때 구입한
그 패키지 표를 내고
가방을 맡기고 전시를 보기 시작했는데,
집중해서 천천히 보다가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메인전시가 아닌 기획전을 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20-30분째 제대로 관람을 시작도 못한거다.
서둘러 메인 전시 쪽으로 갔는데,
ㅎ와 약속한 시간은
1시간 10분-20분 정도 남은 것 같고,
그동안 이걸 다 볼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면서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어놔서
ㅎ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는 상태.
그러니 혹시 다 못보더라도
무조건 약속시간 맞춰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시간에 집중했는데,
다행히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은 규모도 크지 않고,
전시물도 많지 않고,
전시설명도 길지 않다.
그래서 약속 시간 전에 무사히 관람을 마쳤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반적인 전시 내용은
아테네의 고고학박물관이 더 훌륭하고,
더 풍부하고, 더 재미있었는데,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은
테살로니키에 특화되서
그것도 나름 의미 있고 흥미로왔다.
그리스에 와서 고고학 유물은
유적지에서건, 거리에서건, 박물관에서건
여기저기서 많이 봐서
점점 덜 감동적이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데선 보기 힘든 것들이라,
그리스에 왔으면 다른 무엇보다도
고고학박물관은 가봐야 하는 것 같다.
그리스에 와서 아테네 고고학박물관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테살로니키 고고학박물관까지
일주일에 비슷한 걸 두세번이나 본데다가,
이 때는 박물관에서 얼마나 열심히 읽고 봤던지,
이제 건축을 보면 이오니아 양식인지,
도리아 양식인지, 코린트 양식인지
좀 구별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기둥의 나뭇잎 모양 장식을 보면
코린트 양식이네 했었는데,
고대 그리스 도시이기 보다는 비잔틴 도시인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 전시물 중에는
보다 후기 양식인 코린트 양식이
유난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엔
고대그리스 이전과
고대그리스 이전의
고고학적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여긴 테살로니키 고고학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테살로니키 시청인데,
2013년이
슬라브어를 위한 글라골문자 발명
1150주년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그러고보니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가 문자를 발명한 게
863년이었다.
이 건물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공간이었고,
1층 로비에서 현대미술 같은 걸
전시했던 걸로 기억한다.
멀지 않은 곳에 분수도 하나 있는데,
그리스 도시지만
비잔틴 도시인 테살로니키에는
흔히 보기 힘든,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던,
고대그리스적인 분위기의 동상도 있다.
근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각의 디테일은 현대적이다.
테살로니키 고고학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11시 30분 쯤 ㅎ와 만났다.
이제 이날 고고학박물관 이후의 일정엔
특별한 관광지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ㅎ의 그리스인 대부님 댁에 가서
점심식사 하는 것과 소피아행 버스를 타러 가는 것.
그 사이사이 시간엔 그냥
천천히 에게해변을 걷다가
대부님 댁으로 걸어가면서
테살로니키 바다와 거리를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걸어가는 길에 키릴-메토디우스 성당이 있으니
거기도 잠깐 들었다 가기로했다.
고고학박물관에서 그 성당까지는
걸어서 30분정도 걸리는데,
그 해변 길이 참 좋다.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고,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긴 한데,
바다 자체도 잔잔하고 고요한데다가
그 주변풍경도
요란스럽거나 소란스럽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깔끔하다.
파란 바다, 그리고
그 바다와 맞닿은 푸른 하늘이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변가엔 특별한
공공시설이나 상업 시절이 없고
그냥 산책로만 있다.
그 전날 밤 그리스 음악 들으러 가기 전에
나 혼자 좀 걸었는데
그 밤바다도 좋았고,
이날 그냥 흐린 날씨의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도 좋았다.
테살로니키가 마케도니아 지역에 속한 만큼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동상도 서 있다.
우산 모양의 장식
The Zongolopoulos Umbrellas도 서 있는데,
1997년 테살로니키가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기념으로 설치한 그리스 조각가의 작품이다.
주변에 특별히 다른 구조물이 없어
눈에 띄기도 하거니와
작품 자체도 근사하고,
또 에게해변이랑 어울려서
사람들의 중요한 포토존이 된다.
그렇게 바닷가 길을 걸으며,
성 키릴, 메토디우스 성당(Church of Saints Cyril and Methodius)으로 향했다.
슬라브어를 위한 문자인 글라골문자를 만든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바로 이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인데,
그들이 슬라브어를 위한 새 문자를 만들어
그리스도교 포교에 힘쓴 점을 인정받아
성인으로 추대되어,
이곳에 그들의 이름을 가진 성당이 있는거다.
마케도니아에 가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불가리아에선
물론 키릴, 메토디우스 성당이 없는 건 아니지만,
키릴, 메토디우스만을 따로 기리기 보다는,
현재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에서 쓰는
키릴문자를 만든 그의 제자 5명까지 합쳐
7명을 성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러시아에선 키릴, 메토디우스를 별로 크게
성인이나 위인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고,
글라골문자도 키릴문자도 쓰지 않는
서슬라브 폴란드와 체코에서도
딱히 그들을 기리는 것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슬라브국가는 아니지만
그리스 테살로니키는 그들의 고향이라
이렇게 그들의 이름을 가진 성당이 있고,
슬라브어 연구자로서 흥미를 느껴
내가 거길 가보고 싶다고 했다.
키릴-메토디우스 성당 앞에는
기념 동상이 서 있는데,
동상도 그렇고
성당도 그렇고
아주 예쁘다.
물론 모든 옛날 사건이 그렇듯,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만든 게 키릴문자라는
학설도 소수의견으로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 널리 인정받는 이론은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만든 건 글라골문자고,
키릴문자는 그들의 제자들이 나중에 만든거라,
이 기념 동상의 키릴문자는 잘못된 거긴 하다.
하지만 이건 학술적인 기념비가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니
그건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이런 문화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일을 한
이들의 행적을 기리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둥근 지붕의 전형적인 정교회 성당인데
기둥은 색깔도 모양도 재질도
그리스 신전을 닮았다.
코린트 양식의 변형같다.
집이건 종교적 건축이건
자기식으로 지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식 고딕교회를 흉내낸
한국의 종교 건축들도
어쩔 수 없이 한국적인데,
둥근 지붕을 가진 그리스 정교회 건축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리스스러움이 묻어난다.
성당 안에 들어가서 내가 두리번 거리니
ㅎ이 '여기서는 사진 찍어도 된다'고 말했다.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문자를 만든 이야기가
성화로 그려져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예배 끝나고 사람들 먹으라고 입구에 놔둔 빵도
집어먹어봤다.
러시아에선 정교회 예배를 구경한 적이 있긴 한데
이런 빵 바구니는 미처 확인 못했고,
불가리아에선 예배를 직접 본 적이 없어
예배 끝나고 빵을 담아두는지 아예 못봤는데,
아마 불가리아나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도
한 구석에 영성체 마친 빵을 놔둘거다.
정교회에서는 빵을 이렇게 담아둔다는 얘길
언젠가 책에서 읽은 작 있다.
그래서 처음 보게된 풍경에 놀라진 않았는데,
“진짜 빵”이 담긴 걸 직접 보니 신기했다.
가톨릭의 빵이 좀 더 상징적이라면
동방정교의 빵은 실제적이다.
그둘의 외적인 차이는
빵에 들어가는 누룩의 유무인 것 같은데,
누룩이 없는 가톨릭의 빵은
종교의식에서만 빵이 될 수 있는데 반해,
누룩이 들어간 동방정교의 빵은
의식이 끝난 이후에도 빵으로 기능한다.
성당에서 나와 길을 가는데,
ㅎ가 흥미로운 걸 보여줬다.
동양적인 건축이 보여서 뭔가 했더니,
한국전 기념비(Korean War Memorial)다.
6.25전쟁에서 유명을 달리한
그리스 병사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찾아보니 건축가가 Maria Spirideli라고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한국적인 느낌이 있으면서
또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이다.
아무튼 그냥 글씨만 써 있거나
구체적인 병사의 모습을 묘사한 1차원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동상이 서 있는 게 아니라
예술작품인 게 특이했고,
그 디테일이 정교해서 아름다웠다.
그렇게 해변을 걷다가,
그리스 밖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골목, 상점, 집, 그리고 사람도 구경하고,
치열한 삶의 냄새도 멀리서 새삼 낯설게 느끼면서,
그냥 흔한 그리스 골목을 걸어 올라갔다.
사실 아테네도 그렇고, 테살로니키도 그렇고,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공간 말고,
그냥 그리스인들이 사는 일상적 공간도 흥미롭고
또 우리에게는 이국적으로 다가와서 새롭다.
그리스처럼 볼 게 많은 여행지에 가면
"관광지"만 구경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냥 겨우 그것만 보고 오게 되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도시 자체,
그 도시의 진짜 얼굴은
"더 적게" 보고 오게 되는 것 같다.
Greek Hospitality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그리스인들은 손님을 환대하지만,
관광객으로 그리스에 가서
그런 그리스식 환대를 경험하긴 어렵다.
미소와 나긋나긋한 말씨를 동반한
겉친절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겐
오히려 불친절한 사람들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뭐 그런 사람들 깊숙이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냥 관광지만 조금 벗어나면,
관광지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뭔가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테살로니키도
그리스 도시, 비잔틴 도시 말고
그냥 21세기 유럽의
혹은 그냥 지구의 그냥 도시
테살로니키로도 재밌는 구석이 많다.
평범한 테살로니키 동쪽 지역의 거리를 쭉 따라
걸어 올라가서
대부님 댁에 도착했다.
아마 1시쯤이었을거다.
대부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점심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메뉴는 그리스식 샐러드와 페타 치즈,
토마토 새우 파스타,
그리고 와인 한잔.
워낙 맛도 있었지만,
그렇게 준비하신 정성이 느껴져서
배불러도 일부러 더 많이 먹었다.
잠시후 한국의 약과를 닮은
그리스 전통(?) 디저트까지 내오셨다.
밥 먹는 중간에 토마토 파스타와
잼을 직접 만드신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부분에서 갑자기 대부님이
나에게 잼 하나 주시겠다면서,
복숭아 잼과 무슨 베리 쨈을 들고 나오시더니
둘 중에 어느 것을 가져갈 지 선택하라신다.
내가 선택을 좀 더 지체하면
그 두 개 다 주실 기세이시길래,
복숭아 잼을 달라고 했고,
결국 나는 그것까지 챙겨왔다.
ㅎ가 그러는데,
대부님이
이렇게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게 6년만이시란다.
2년 전 대모님이 돌아가셨고,
그 전에는 계속 편찮으셔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으셨단다.
큰 일 겪으시고 나서
대부님에게 뭔가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내가 마침 그 때 테살로니키를 방문했던거다.
그리스인답게 손님맞이를 즐기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개인사 때문에
멀리서 방문한 내게 더 잘 해주신 것 같다.
3시 반에 버스를 타려면
2시 반에는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둘러 나왔는데,
대부님이 지하에 있는 자기 아지트도 보여주셨다.
상장이랑 트로피 받은 것도 자랑하시고,
또 부주끼도 보여주시면서.
암튼 그렇게 출발해서 늦지 않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테살로니키 버스터미널은 천장의 동그란 구멍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데,
그 모양이 고대 마케도니아 상징인
Vergina Sun을 닮았다.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샀는데,
무슨 일인지 정확힌 모르지만,
그날 특별히 할인해주는 날이라서,
아마 원래 26유로였을
소피아행 버스표가 단돈 13유로란다.
아테네-테살로니키가 6시간인데 39유로였으니,
5-6시간 가며 국경까지 건너는 국제 노선
테살로니키-소피아가 26유로여도 사실 싼거다.
그런데 거기서 또 반값 할인인거다.
항상 이것저것 많이 저지르고 해보는 스타일이라,
운이 좋기보다는
예상대로, 계획되로 안 되서
삽질을 더 많이 하는 나는
익숙치 않은 이런 행운에 살짝 겁이나서,
나도 모르게,
올해 운을 그리스에서 다 쓰고 가나보다고 했다.
그걸 옆에서 들은 ㅎ가
올해 좋은 운이 이제 막 그리스에서 시작된 걸거라며,
그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줬다.
난 정말 그리스에서 아테네에서도 그렇고
테살로니키에서도 그렇고 계속 운이 좋았는데,
이 때는 아직 못 느꼈지만,
나중에 지내고 보니
불가리아에서도 계속 운이 좋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운 좋게 시작한 한 해는
특별히 나쁜 일 없이 무사히 흘러갔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특별히 운이 좋았던 기억은 없는데,
어쩌면 불가리아와 그리스에서처럼
그런 작은일 하나하나에서 기쁨을 찾고,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나중에 둘다 맞기도 하고,
둘다 틀리기도 한 두 개의 예언을
우리가 하고 있을 때,
대부님께서 그러셨다.
13유로 가지고는 거기서 택시타고
당신 집에도 못 간다고.
택시뿐 아니라
한끼 식사 제대로 먹으려면 13유로는 넘게 들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리스에서 내가 누렸던 행운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ㅎ이랑 대부님이 만들어주신 것 같다.
아테네 여행 할 때마다
계속 걱정해주고
정보 주고,
테살로니키에서도 계속 함께 해준 ㅎ도 그렇고,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손님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심을 담아
마음속에서부터 환대해주신
그리스인 대부님도 그렇고,
두 사람 덕분에 그리스 여행에서
좋은 기운과 행운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대부님께서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하셔서,
나의 가장 고령의 페북 친구가 되셨다.
그리스 다녀와서 3주 정도 불가리아에 더 있었는데,
내가 페북에 사진 올릴 때마다 댓글 달고
좋아요도 눌러주시고 가끔씩 안부도 물어보셨다.
요새도 가끔씩 ㅎ 통해서 대부님의 안부인사를
전해 받고,
1달전쯤에도 안부인사를 전해 들었다.
대부님의 진심 어린 “그리스식 환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거다.
내가 타고갈 버스는
테살로니키-소피아 직행버스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의 다른 지방을 지나
테살로니키에 도착해서
소피아를 거쳐
불가리아 북동쪽의 바르나까지 가는 버스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렀다 오다보니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짐을 싣고
승객들이 타고 10-15분 후에 버스가 출발했고,
ㅎ와 대부님께 창밖으로 인사를 했는데,
다른 버스에 가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즈음
버스가 갑자기 섰다.
어떤 20대 초중반의 여자가
그리스어로
아직 안 탄 사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확인 안하고 가는 버스나,
버스 다시 출발하는 줄도 모르고
어디 가 있는 승객이나
뭔가 너무 웃긴 상황이었다.
그래서 버스는 기다렸고,
5-10분 후에 남자 한 명, 여자 한명이 달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버스가 진짜로 출발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달렸을 즈음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에 버스가 도착했다.
거기서 여권 검사하는 사람이 차에 탔는데,
나만 유럽연합 시민이 아니었는지
내 여권만 들고 내렸다.
비자도 필요 없고 문제 될 거 없다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 공권력이 나에게만 미치니
괜히 불안했다.
그래서 괜히 길게 느껴진 몇분이 흐르고
예상대로 잠시 후 여권을 돌려받고
버스가 출발하나 보다 했더니,
면세점 앞에 세워준다.
물건도 사고,
화장실도 갔다오고 하란다.
난 딱히 사고 싶은 물건도 없어서
그냥 화장실만 갔다가 일찍 탔는데,
이번에도 아까 그 여자애들 2명이
늦게까지 안 왔다.
아무튼 이번엔 그들을 무사히 태우고
버스가 국경지역을 출발했다.
그리고 버스는 계속 달려서
밤 9시쯤 소피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릴 때쯤
"버스가 소피아에 도착했으며,
바르나 방향으로 간다"는 안내방송이
불가리아어로 나왔는데,
또 "그 여자애"가
외국인 억양이 잔뜩 들어간 발음으로
불가리아어를 하면서,
"소피아로 왔는데, 바르나 방향으로 가면 어떡하냐?"
뭐 그런 얘기를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했다.
다른 승객들은 그냥 웃기만 하는데,
어쩜 뭔가 내가 잘못 들은 거고,
다른 상황이 더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피아 안 거치고 바르나 가는 줄 알았는데
거치는 거라서 화가 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왜 거기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화를 내지?
그리스 사람인지
뭔가 다른 나라 사람인지 모르지만,
그리스나 불가리아에서 흔히 만나기 어려운
희한한 스타일이라,
짜증나기에 앞서 좀 놀라웠다.
그녀와 친구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채,
소피아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그리스는 계속 봄날씨였는데,
소피아에 도착하니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그리고 버스를 내리니 밤공기도 꽤 차갑다.
그래도 뭔가 익숙한 풍경,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자들이 보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말소리가 들리니
'집'에 온 것 같은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들었다.
루마니아 대사관 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거기서 트램으로 갈아탔는데,
밤이라 그런지 좀 배차 간격이 길어서
10시가 다 되서 집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ㅎ에게 전화하고,
마침 설날이라 집에도 전화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최근 며칠이
마치 기분 좋은 꿈처럼 느껴졌다.
나는 3주 불가리아에서 지내다
불가리아어 수업 방학 1주일간 그리스 갔다가
다시 3주동안 불가리아에서 지냈는데,
그리스를 다녀온 이후
후반부엔
나의 불가리아어도 부쩍 늘고,
나의 불가리아 생활도 훨씬 안정적이어졌다.
만약 그리스 5박 6일이 꿈이었다면,
꽤 좋은 길몽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