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아는 스플리트의 또다른 아름다움
스플리트는 무엇보다도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구시가로
유명한 관광지지만,
난 스플리트에서
가까이 붙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가장 좋았다.
나 자신도 관광객이면서,
그리고 평범하게 그냥
다른 사람들 다들 좋다는 인기 관광지 간 거면서,
왜 그렇게 또 관광객 북적대는 곳은 꺼려지는지,
관광객 대접받는 건 왜 싫은지 잘모르겠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과 구시가는
그 자체로는 좋지만,
그곳에선 “관광지”에 방문한 “외지인”이었는데,
현지인들도 즐겨찾는 자연 속에 있는 순간,
어디 가나 눈에 띄는 그 “관광객”의 옷을 벗고
자연 속에서 그들과 섞여
그냥 하나의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다가 그 편안한 자연이
또 아름답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2018년 1월말 두브로브니크 가는 길에
스플리트에 긴 1박2일 있으면서 두번,
두브로브니크 갔다오는 길에
짧은 1박 2일 있으면서 한번,
이렇게 세번 마리안 산에 올랐고,
남쪽 바닷가도 시간 날 때마다
밤낮으로 길게 혹은 짧게 거닐었다.
아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스플리트는 길쭉한 곶(Cape)이라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다.
그 바다로 둘러쌓인 삼면이 대부분이니,
스플리트 어디가나
바다가 근처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지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것처럼,
서쪽 끝에는 산이 있어
산을 뒤로 하고 바닷가를 걸을 수도 있고,
바다를 보면서 산에 난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골목골목을 걷는 거
물론 좋지만,
그리고 그 앞의 리바(Riva)를 걷는 것도 좋지만,
거기서 좀만 벗어나면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좀 더 한적하고 더 바다의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난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
우선 관광지도에 표시된 곳 중심으로 훑어보고,
그리고는 시간이 되면
영역 바깥까지 가보는 편이라,
스플리트에서도 구시가를 둘러보고,
그 바깥으로 가보기로 했다.
구시가에서 멀어질수록
풍경 속 구시가의 크기가 작아지고
점점 바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멀리 동쪽 항구도 보인다.
스플리트 동쪽엔 항구가 있고
거기서 육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그 바로 앞에 버스터미널도 있다.
(동영상 1 아드리아 해)
밤에 보면 뭐 이런 풍경이다.
다른 대부분의 서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크로아티아 도시들도
24시간 영업하는 데가 거의없어서
밤엔 조용한 편이고,
가로등도 별로 환하게 켜두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야경 촬영을 시도하면
어두워서 항상 실패하는데,
스플리트는 밤에도 꽤 조명이 밝은 편이었다.
스플리트 동남쪽 바닷가가 항구,
남쪽 바닷가가 중심가라면
서남쪽 바닷가엔 해수욕장이 있고,
또 곳곳에 요트가 정박해있다.
크로아티아어 수업 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스플리트는 유명 운동 선수들을
다수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내가 마리안 산을 걸을 때도
코치와 함께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는 선수들을
여럿 봤다.
그러고보면 마리안 산은 운동선수들이
트레이닝하기도 딱 좋은 공간이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너무 높지도 않고,
정상 조금 아랫부분은 평평하고,
정상까진 계단으로 연결되니까,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을 모두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런 스포츠 도시 스플리트는
서쪽 해변 바닷가엔 길 위에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이름을 이렇게 쭉 새겨두었다.
그리고 어학코스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스포츠의 메카 스플리트엔
스포츠 명예의 전당 같은 곳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평범한 해변을 걷다가
심상치 않은 문을 발견했다.
열려 있길래 조심스레 걸어들어갔다.
이곳은 아래 지도에서 우측 하단에
18번의 번호가 붙은
수스티판(Sustipan) 공원이다.
크로아티아어의 접두사 su 는
영어의 co처럼 “함께”라는 의미고,
Stipan은 아마도 “스테판”을 달마티아식으로
부르는 명칭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표준어에서 우유가 “믈례코”라면,
달마티아지방에선 “믈리코”라고 부르는 식으로
달마티아 사람들은
“에”나 “예”를 “이” 로 발음한다.)
그리고 그 예상에 어긋나지 않게도
그 안에 11세기 중세시대에 지어졌다는,
자그마한
성 스테판 성당(Bazilika sv. Stjepana)이
자리잡고 있다.
이 성당과 그 주변이 수도원이었는데,
지금은 공원으로 탈바꿈한거다.
성당 옆 바다쪽으로는 큰 십자가가 서 있는데,
그 때는 그냥
‘교회 앞에 큰 십자가가 있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근데 지금 찾아보니,
원래 이곳은 스플리트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란다.
처음엔 크로아티아 왕들의 무덤이었다가
19세기에 공동묘지가 되었고,
20세기 중반 유고슬라비아 공산정권에서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동묘지 이전을 강행한 바람에
지금 묘지의 흔적은 없다.
한가운데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파빌리온이
그 묘지의 일부로 남은 유일한 유적이란다.
수스티판 공원은 공원 자체가
불룩 튀어나온 곶(cape)이라
삼면이 바다다.
동쪽으로는 스플리트 구시가와
정박한 요트의 크고 작은 수직선들이 보이고,
남쪽엔 그냥 깊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그 끝에는 아찔한 절벽이 바다와 만나고 있다.
(동영상 2:수스티판 흔한 바다)
(동영상 3: 수스티판 흔한 절벽)
서쪽과 북쪽엔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가 펼쳐지는데,
서쪽 절벽 너머로는
바다 바로 옆에 자리잡은 커다란 풀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해수욕장으로 보이는 해변이
여러 개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스플리트 해수욕장에 대한 정보가 있다.
스플리트 서북쪽에 있는
(위 지도 빨강색 8번, 아래 지도의 하늘색 1번 근처) 베네(Bene)는 큰돌 해변(a stone beach)이고,
스플리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버스로 갈 수 있단다.
수스티판 서쪽에 위치한 즈본차츠(Zvončac)는
(위지도 1번 근처, 아래지도 빨강 7,8번 근처)
자갈 해수욕장(a pebble beach)으로
구시가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고,
역시 버스로 갈 수 있다.
12번버스가 “즈본차츠”와 “베네” 가는 노선이란다.
좀 더 서쪽에 위치한 예쥐나츠(Ježinac)
(위지도 2번 근처, 아래 지도 빨강6번 근처)는
자갈 해수욕장,
좀 더 서쪽에 위치한 카슈니(Kasjuni) (위 지도 11번 근처, 아래 지도의 노랑 2번 근처)는 큰돌 해변이다.
난 1월에 가서 해수욕을 할 수도 없었지만,
혼자 가서 해수욕하는 거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해변은 가지 않고,
그냥 좀 산책하다 마리안 산으로 올라갔는데,
만약 해수욕을 좋아한다면
여름에 스플리트에서 해수욕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아는 터키애는
스플리트 어땠냐는 질문에
자기는 해변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스플리트 해변이 아마
며칠동안 그냥 해변에만 있어도 될 정도로
좋나보다.
마리안 산은 스플리트 구시가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 뒷산 같은 곳이다.
즉, 올라가기 어렵지 않은 데다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같은 높이의 길이 계속되어서
“등산”이 아닌 “산책”을 가능하게 하는 지형이다.
계단이 많긴한데
뭐 그렇게 오르기 어려운 곳은 아니다.
스플리트 가는 버스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마리안 산의 입장을 유료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주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었단다.
아니 동네 뒷산 같은 곳을 유료화하는 발상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걸까?
크로아티아, 특히 달마티아 지역은
매우 아름답고 좋은데,
어딜 가든 돈이 들고 물가가 너무 세다.
관광명소든, 숙박이든, 먹거리든, 기념품이든
관광객들에게 비싸게 파는 게
언뜻 보면 큰 돈벌이가 되고,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것 같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돈은 버는 사람만 벌게 되어 있고,
그렇게 오른 물가 때문에
보통의 현지인들은 생활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야 짧게 머물다 돌아와서
다시 절약 모드로 돌아오면 된다지만,
그들은 평생을 거기서 살아야할텐데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그레브 사는 크로아티아인들도
크로아티아가 다른 유럽에 비해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얘기 많이 한다.
자그레브는 달마티아보다 물가가 높지도 않고,
또 평균 월급도 더 많이 받는데 말이다.
높은 물가 때문에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 나라에 있는
두브로브니크 같은 유명관광지를 선뜻 가지 못한다.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두브로브니크라는 크로아티아 도시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도시가 되었다.
월급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닌데,
그에 비해 크로아티아 물가는 너무 비싸다.
크로아티아어 선생님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크로아티아인들은 거의 다 은행 빚을 지고 있단다.
자그레브 대학에서 발행하는 학교 신문에도
마이너스 통장 만드는 법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만큼 보편화되거다.
한국이야 집값이 비싸서 그렇다고 하지만,
여기는 집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
아무래도 월급에 비해
턱없이 비싼 생활비 때문에 그런가보다.
관광지로 돈버는 동네들이 다들 좀 그런 것 같다.
관광객 많아서 물가는 높지만,
현지인들은 딱히 부유하지 않은 뭐 그런.
나중에 다른 포스트에 쓰겠지만,
노르웨이 베르겐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아무튼 그래서 현재 마리안 산은 무료입장이고,
아무 때나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구시가 서쪽에서 좀 더 나오면
마리안 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아래 지도 오른쪽 주황색 5번 부분이다.
구시가에서 서쪽 바닷가쪽으로 걷다가 보면
심상치 않은 허옇고 매끈한 계단이 나오고
그 옆에 마리안(Marjan) 이라는 표지가 등장한다.
Društvo Marjan(마리안 협회)라고 쓰인
기념비도 보인다.
그 이후 한참을 계속 계단을 걸어올라가야 한다.
일부러 산책을 위해 만든 계단인 것 같진 않고,
마리안 산 아랫쪽은 자연스럽게 생성된 주택가라
그냥 흔한 동네처럼 계단으로 연결되고,
“여기 살면 진짜 좋겠다”싶은
경치 바로 옆에
저택이 아닌 그냥 평범해보이는 집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가
스플레트에서 가장 부자동네는 아니고,
좀 더 서쪽에 해변가 근처
메예(Meje)라는 동네가 부자 동네란다.
여기는 구시가가 잘보이는 전망인데,
아마 거기는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겠거니 싶다.
그렇게 5-10분 정도 걸어 올라가서
숨이 찰 데로 찰 쯤 되면 마침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시가 전망이 등장한다.
둥근 난간의 전망대(Vidilica)가 있는데,
그곳에서 구시가도 찍고,
구시가 배경으로 셀카도 열심히들 찍는다.
1월 비수기에도 셀카 찍기 위해
잠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분위기였느니,
여름 성수기에 가면
줄서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난 여길 3번을 갔는데도,
그 전망대만 오면
이상하게도 마법에 걸린 듯 카메라를 들게 됐다.
구시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교회 첨탑에도
전망대가 있는데,
그 첨탑이 여기서 한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그 교회 첨탑보다
여기가 더 전망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난 구시가의 첨탑을
‘나중에 올라가야지” 하면서 지나쳤다가
마리안 산에 올라보고,
결국 거기는 가지 않았다.
도시 전망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공간이다.
(동영상 4: 마리안 전망대)
야경은 이렇다.
그 전망대까지가 스플리트 여행 안내 브로셔에
나온 곳이다.
이제 관광객은 그 옆 전망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내려가거나,
좀 더 올라가보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난 후자를 선택했다.
이렇게 생긴 통로를 지나 걸어올라가면 된다.
멋진 전망은 한동안 계속된다.
가다보면 오래된 교회가 나온다.
첫번째 지도 16번, 두번째 지도 빨강 1번의
성 니콜라스 성당(Crkva sv. Nikole)이다.
13세기 초에 지어졌단다.
두번 길게, 한 번 짧게
마리안 산에 오르는 동안,
여러 길로 가봤는데,
이 성당을 지나 첫번째 갈림길에서
위로 올라가거나
가던 길을 계속가거나 선택에 따라
루트가 달라진다.
위로 올가가는 길을 선택하면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 처음이 아니라 중간에
큰 봉우리(Veliki vrh) 에 오르는 길을
알리는 표지가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178미터, 314계단이다.
즉 계단이 314개 이상인건데,
계단이 가파르거나 하지는 않아서
천천히 걸어올라 가볼만하다.
계단 끝에 크로아티아 국기가 보이고,
그 위에 또 전망대가 나온다.
(첫번째 지도 13번이다)
스플리트 사람들은 여기를
텔레그린(Telegrin)이라고 부르는데,
나폴레옹이 일리리야 지방을 지배할 때
이곳에 전신국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전망 자체는 여기보다 아래 전망대가 더 좋다.
“좋은 전망”이 목적이라면
여기까지 오를 필요는 없어보인다.
단, 이곳에 오르면 좀 더 가슴이 확 트이고,
바람은 더 시원하고,
구시가 뿐 아니라
스플리트 도시 전체 그리고
더 멀리까지 바다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정상에 오른 작은 성취감 같은 것도 맛볼 수 있다.
전망대 옆에 커다란 십자가도 서 있는데,
그 옆에 표지엔 십자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십자가에 :올라가지 말라고 써 있다.
거기서 동쪽으로 내려오면,
작은 야외 무대가 있고,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그 뒤로 동물원(ZoološkinVrt)이 있다.
(첫지도 15번)
그보다 좀 더 동쪽에는
기상관측대가 있다.
그 앞엔 급수대도 있다.
이제 거기서 걸어 내려오면
첫번째 전망대 옆 카페가 보인다.
카페 북쪽에 담이 쳐진 공원 같은 공간이 보이는데,
거긴 유대인 묘지다.
(첫지도 17번, 둘째지도 빨강 13번)
16세기에 만들어진,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묘지란다.
내가 갔을 땐 잠겨 있길래
그냥 두리번거리다 말았는데,
보통 잠겨 있고,
옆 까페에 이야기하면 열쇠를 준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 까페도 히브리어가 쓰여있는 것이,
사연을 가진 심상치 않은 카페인 것 같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위로 올라가지 않고
가던 길로 그냥 계속 걸어가면,
바다를 옆에 낀 산책길이 계속된다.
가끔씩 바닷가 건물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냥 대체로 나무랑 바다밖에 없다.
그냥 그렇게 걷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내가 갔을 땐 두번 다
비도 좀 오고 그래서 그런지,
아님 원래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가다 한 두명 씩 지나갔다.
처음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사진 찍고 있던 내 옆을 지나갔던 어떤 할아버지가
벤치에 앉아서 물그러미 바다를 보고 있는 걸 보고,
난 여행도 너무 바삐,
휴식도 너무 치열하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걷다 서다 하면서 가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매우 바쁜 걸음으로 계속 걷고 있던거다.
그 할아버지에게서 “마리안 걷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걷다가 멈췄다가, 또 걷다가 하면서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바다를 보면서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걸었는데,
그게 참 좋았다.
물론 그 습관이라는 게 버리기 쉽지 않아서,
곧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걷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동영상5: 마리안 산책로 1)
(동영상 6: 마리안산책로 2)
그렇게 30분-1시간 가다보면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우회전 해서,
아래 사진의 왼쪽으로 가면,
좀전에 얘기한
그 산정상에 오르는 좀 더 완만한 길이 나오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
이제 평온한 산책은 끝나고,
구시가에서 끝내고 온 줄 알았던
관광이 다시 시작된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건
15세기 말에 세워진
베들레헴 성모성당(Crkvica Gospe od Betlema)이다.
(위지도 12, 아래 지도 빨강 5번)
여기는 전망이 좋은 건 말고는
달리 특별한 걸 못 찾았는데,
좀 더 내려가면 보다 특별한 교회 건축이 등장한다.
성 예레미야 성당(Crkva sv. Jere)
(위지도 3번, 아래지도 빨강 2번)은
15세기 후반에 세워졌는데,
성당 자체는 평범하지만,
그 옆 벽 안에 성당 건물이 또 있다.
이런 길을 따라 들어가면
성당 안뜰이 나오고 작은 성당이 보인다.
성당 안뜰엔 오래된 우물도 있다.
지금은 뚜껑이 굳게 닫혀있다.
그리고 그 위로
바위벽 안의 성당 건물이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바위벽 안에
이런 걸 만들었는지 너무 신기하다.
이 성당 안뜰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어서
그 길로 내려가면
바다랑 좀 더 가까와진다.
거기서 좀 더 서쪽으로 걸어가면 눈에 잘 안뜨게
또다른 바윗속 교회건물이 등장한다.
잘 보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
(위 지도 9번)
은신처(Ermitaža)라고 불리는 걸 보면,
아마도 이곳에서 수도자들이 은신을 한 것 같은데,
좀 더 서쪽에 있는 이곳은
올라가는 통로도 없다.
아랫쪽에 계단이 있긴 한데,
거긴 그냥 산책자들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어서
위로 연결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보면 거기를 암벽등반하는 사진이 있던데,
그 옛날 수도자들이 암벽등반을 했단 말인가?
아님 뒤쪽에 길이 있나?
아님 예전엔 지형이 지금과 달랐을까?
너무 궁금해서 한참을 쳐다봤는데,
결국 이곳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은신처임에
틀림 없어보인다.
바위벽속 은신처까지 가니 저 멀리
기역자 모양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으로 계산해보니,
캬슈니(Kašjuni) 해변이다.
거기서 좀 더 걸어내려가면
스플리트 서쪽 끝에 도달하고
두어개의 성당을 더 만날 것 같았는데,
난 그냥 거기까지만 가는 걸로 하고,
다시 돌아나와서
버스터미널이 있는 구시가로 향했다.
5월에 우연히 만난 스플리트 출신에게
스플리트 갔을 때 마리안 산이 젤 좋았다고 했더니,
그녀의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자기도 스플리트에서 젤 좋아하는 곳이
“마리안 언덕”이라고 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다.
아마 내가 스플리트에 살았어도 자주 갔을거다.
스플리트 다녀 온 유럽 친구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면
다들 열정 없이 그냥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관광지 느낌이 강했다고 덧붙이곤 한다.
아마 그 평가를 합쳐서 계산하면
“그냥 그랬다”가 될 것 같다.
내가 “마리안 언덕”도 갔냐고 물으면
(높다란 발칸산맥을 지척에 두고 있어서,
크로아티아인들은 웬만한 건 “산”이라고 안부른다),
다들 안 갔단다.
스플리트 가기 전에 “마리안 가라”고 일러준
이탈리아 친구도
내 얘기 들을 땐 꼭 갈 것처럼 대꾸하더니,
다녀와서는
“거기까진 못 갔다”면서,
근데 거기 갔다온 자기 친구가
좋다 했다고 그런다.
예전엔 한국인들만 예쁜 풍경 찍고
관광지만 가볍게 둘러보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다른 유럽 애들도 대부분 그렇다.
그게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관광패턴인가보다 싶다.
얼마전에 여기서 읽은 기사에 보니,
자그레브 관광 외국인 1위가 한국인이라는데,
(워낙 한국관광객이 많기도 하지만,
다른 유럽애들은 자그레브 안 들르고
직접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 가서 그런 거 같다)
마리안 언덕에서는 한국인들 거의 못 봤다.
별 거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걸어 내려오고 있던 여자분 두분 봤다.
하긴 너무 기대하고 가면
또 별루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스플리트에 좀 여유있게 가게 된다면,
그리고 체력이 된다면
천천히 걸었다 멈췄다 하면서,
벤치에 앉아서 바다도 보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마리안 산을 걸어보기 바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봤을 때와는 다른 결의,
조화로운 바다와 산의 “자연 궁전”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걸,
그리고 관광객으로 미어지는
인공적 황제의 궁전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몸과 마음의 평안을
자연의 초록과 파랑 안에서
경험할 수 있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