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집콕하는 나날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말마다 TV를 보거나 책을 끼고 지내는 것도 지쳐갈 즈음,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츠에 대한 욕망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넷플릭스에 더해 왓챠까지 정기 구독을 시작했다. 다음 에피소드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걸 잘 못해서 한국 TV 드라마 본방을 보지 않는 내게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는 넷플릭스와 왓챠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훨씬 효율적이다. 나처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집콕족들을 위해 오늘은 내가 특히 재미있게 본 콘텐츠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넷플릭스를 구독한 지는 2년이 다 되어가는 듯하다. 한때 열심히 보고 또 잘 안 보게 되는 시기가 있었는데(내가 원하는 콘텐츠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콘텐츠 비중이 높다), 그렇다고 해지하기엔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 계속 구독해오고 있다. 넷플릭스 팬은 워낙 많으니 추천작들도 넘쳐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가지 추려보았다.
*나의 콘텐츠 취향 :
해피엔딩, 로맨틱 코미디, 시원한 액션류, 뮤지컬 영화, 힐링물 선호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콘텐츠 못 봄, 우울한 내용은 피하는 편. 그래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콘텐츠는 애초에 접근을 잘 안 함, 15세 관람가 수준이 딱 맞는 편임
1. 프렌즈 (2003년, 시즌 10개, 회당 20분가량, 15세 관람가)
내가 넷플릭스를 끊지 못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대학생 때도 정말 좋아하는 시트콤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자기 전에 매일 한 회씩 보고 있다. 프렌즈의 6명 주인공(모니카, 레이첼, 피비, 챈들러, 로스, 조이) 모두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나의 최애캐는 챈들러다. 여자 앞에서 숙맥이고, 좀 한심하고 불쌍해 보이면서도 의리 있고, 착하고 가끔은 어른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정이 간다. 사실 챈들러뿐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도 모두 개성 강하고 매력이 있으며 이들 간의 케미도 대단하다. 하도 여러 번 보다 보니 이 6명은 TV 쇼 속 인물들이지만 마치 내 친구같이 느껴지는 친근감이 생겼다.
미국 NBC의 장수 TV 쇼로 시즌 10까지 진행했고 시즌당 에피소드가 25개 남짓하다. 마지막 시즌만 17회까지다(극 중 모니카 역의 커트니 콕스가 시즌 10 초반에 임신하게 되어 시즌 10은 다른 시즌처럼 길게 제작할 수 없었다고 한다). 프렌즈의 모든 시즌이 끝나자 마치 한 시대가 끝난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상 영어라 오픽 같은 영어 말하기 시험 준비하며 보기에도 좋다. 개인적으로 짧고 캐주얼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라 스트레스 받았을 때나 자기 전에 하나씩 보면 치유를 받는 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있다. 시즌 3~시즌 7까지의 시기가 쇼 자체의 인기도 높았고 가장 재미있던 시기였던 것 같다.
+ 장수 인기 TV 쇼라 그런지 카메오 리스트도 화려하다. 브래드 피트(무려 레이첼 역의 제니퍼 애니스톤과 연애하던 젊은 시절의 바로 그 브래드 피트), 폴 러드(지금은 앤트맨으로 유명), 조지 클루니(시즌 1 17회에서 등장!), 브룩 쉴즈, 줄리아 로버츠, 벤 스틸러, 로빈 윌리엄스, 숀 펜, 알렉 볼드윈, 다코다 패닝, 리즈 위더스푼, 브루스 윌리스, 존 파브로 등! 보다 보면 반가운 얼굴이 자주 보일 것!
- 2003년 시작된 TV 쇼 특유의 촌스러운 웃음 처리 효과가 시청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2. 지정생존자 (2019년, 시즌 3개, 회당 45분가량, 15세 관람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넷플릭스에 빠지게끔 만든 미국 정치 드라마. 국회의사당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미국 대통령과 핵심 정치인들이 모두 사망한 상태에서, 지정 생존자로 지목되어 국회의사당에 가지 않았던 톰 커크먼이 대통령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정치-스릴러 드라마다. 처음 어설프고 유약해 보였던 톰이 점점 강인해지고 정치인으로 거듭나면서도 선한 본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었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은 덤이다. 지정 생존자의 주요 인물로 대통령인 톰 커크먼, 타고난 FBI 요원 한나 웰스(그 가녀린 몸에서 어찌 그런 파워가 나오는지.. 정말 액션 전사다!), 변호사 출신으로 남편에게 도움이 될 조언을 자주 해주는 영부인 알렉스 커크먼, 정치적 판단과 실행력이 빠른 야심가 애런 쇼어, 톰의 특별자문으로서 톰이 장관이었을 때부터 그를 보좌해 온 에밀리 로즈, 대통령 대변인이자 인도계 유색인종인 세스 라이트가 있다(시즌 1 기준).
매 에피소드마다 사건이 터지고 그걸 수습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톰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긴장감과 몰입감이 좋아 시즌 1 다 보는 건 순식간이다. 시즌 1과 2는 미국 ABC에서 편성해 방송되었으나, 시즌 3는 넷플릭스가 투자해 제작했다. 시즌 2가 생각만큼 인기를 얻지 못해 ABC가 손을 뗀 것을 넷플릭스가 이어서 만들어 나간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시즌 1이 전개가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어 넘사벽 수준으로 재밌다. 우리나라에서도 '60일 지정 생존자'라는 타이틀로 리메이크, 우리나라에 맞게 조금 각색해서 방송했다고 하는데, 보질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다.
+ 긴장감 있는 정치 액션물을 찾는다면 지정 생존자 시즌 1이 제격!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대통령도 신선하지만, 섹시한 애런 쇼어, 예쁘고 강단 있는 에밀리 로즈, 똑똑하지만 개그감도 돋보이는 세스라이트 이 세 참모들의 티키타카가 일품이다.
- 시즌 3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흘러가고, 쓸데없는 러브라인을 급조해서 넣은 느낌이 있다. 얼마나 뜬금없었는지.
3.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 (2018년, 1시간 45분, 15세 관람가)
밝고 기분 좋은 가벼운 영화. 뉴욕에서 상사들에게 개인 생활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부림 당하던 비서 둘이 본인들 숨통을 트이기 위해 각자의 상사를 사랑에 빠지게 하려는, 큐피드 작전에 대한 영화다. 소재 자체는 뻔하지만, 상사 역의 키어스틴(루시 리우 배우)과 릭(타이 딕스 배우)의 연기가 너무 얄미우면서 성격파탄자 같아서 실감 난다. 무엇보다 비서인 하퍼와 찰리 역할을 맡은 조이 도이치와 글렌 파월의 케미가 정말 좋았다.
특히 조이 도이치는 외모도 목소리도 정말 귀여워서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는데(말도 진짜 빠르다), 조이 도이치가 소화한 또 다른 넷플릭스 드라마 '더 폴리티션'의 인피티니 역할에서도 보이듯 이런 류의 새처럼 지저귀는(?) 밝고 사랑스런 역할이 정말 잘 어울리는 듯하다. 이 영화도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가끔 다시 보는데, 볼 때마다 재밌다. 배우들 대사에서도 요즘 문물(?)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촌스러운 느낌이 없다. 맥주 한 병 갖다 놓고 감자칩이랑 먹으며 보기 좋은 영화.
+ 별생각 없이 가볍게,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트렌디한 오락성 영화로 추천한다.
-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딱 진짜 그렇게 됐다.
4. 굿 플레이스 (2020년, 시즌 4개, 회당 20분가량, 청불)
사람이 죽으면 사후 세계에서 그 사람의 현생 삶을 바탕으로 굿 플레이스 혹은 배드 플레이스로 보낸다는 설정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상상력이 넘쳐나며 어떻게 이런 생각/설정을 할 수 있지 하고 감탄하며 쭉 봤다. 주연배우 크리스틴 벨(극 중 이름 엘레너)은 우리에게 겨울 왕국 안나 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배우. 엘레너의 표정연기, 오지랖, 막 나가는 생각까지 독보적이고 시원시원한 캐릭터다. 엘레너와 함께 굿플레이스에 입성한 주인공들은 늘씬하고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하는 사교계 명사 타하니, 조용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수도승 지안유, 윤리학 교수로서 강박증이 있는 치디. 이 공통점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친구가 되고 이야기가 펼쳐져 나간다.
에피소드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잘 가꾸어진 타하니의 외모와 패션은 정말 천국 사교계 끝판왕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타하니 역할의 자밀라 자밀 배우는 타하니와는 정 반대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라는 사회 운동에 앞장서는 배우다. 굿플레이스에서는 이 넷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사실 굿플레이스 설계자로 나오는 마이클과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 모양의 인공지능 컴퓨터(?) 재닛이야말로 MOM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의 반전과 디스코재닛의 등장은 정말 흥미로웠다! 시즌 1이 가장 재밌었고 그 다음 시즌으로 넘어갈 수록 세계관은 커지지만 약간 루즈해져서 이탈할 뻔했다. 하지만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버려서 '얘가 어떻게 되는지는 봐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보다 보니 끝을 보게 된 케이스.
+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력, 다양성이 존중되는 듯한 주인공 스쿼드, 크리스틴 벨의 매력이 다했다.
- 죽음과 관련된 내용, 거친 언어 사용(엘레너가 입이 험하다) 등으로 청불 등급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시즌 4로 갈수록 약간 내용이 늘어진다.
5. 방랑의 미식가 (2017년, 시즌 1개, 회당 20분가량, 12세 관람가)
방랑의 미식가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 먹는 이야기가 주가 된다. '음식을 먹는다'라는 측면에서 이미 유명한 일드 '고독한 미식가'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방랑의 미식가는 회사에 은퇴한 60세 소심한 샐러리맨이 사실 에도 시대 떠돌이 무사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 불의의 순간을 마주하거나 배짱이 필요한 순간에 떠돌이 무사처럼 당당히 행동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는 스토리라인이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가스미 다케시(다케나카 나오토 배우)를 어디서 많아 봤다 했더니 일드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독일 거장 지휘자 슈트레제만으로 요사한 분장을 하고 나왔던 배우였다!
은퇴하면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동네를 어기적 거리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서는 가스미는 조카와 식사한다든지, 아내와 결혼기념일로 외식한다든지, 건강검진 결과가 잘 나와서 기분 내러 선술집을 간다든지 하는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하는 분들에게 좋은 드라마일 듯싶다. 등장하는 음식도 일본 료칸의 전갱이 구이를 곁들인 아침식사, 이탈리아 점심 코스 요리, 꼬마 시절 시장에서 먹었던 크로켓,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하이라이스 등 다양하다. 대단한 플롯은 없지만 다케시가 갈등을 겪을 때(큰 갈등이 아니라는 것이 핵심), 내가 나서서 해결하고 싶다고 상상하면서 막상 현실에서는 소심한 쭈구리인채 있는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머리를 긁적이는 연기가 너무 잘 어울려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밥 먹으면서 보기에 좋은 일본 드라마로 추천한다
+ 소소한 일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왜 나도 힐링이 되는 건지.
- 시즌 2 기다리는데, 안 나옴. 크게 히트친 콘텐츠는 아닌 것 같아서 앞으로도 안 나올 듯싶다.
6. 인턴 (2015년, 2시간 1분, 12세 관람가)
내가 생각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이미지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다. 그 인상을 만들어준 영화가 바로 이 '인턴'. 핏(FIT)이 잘 맞는 옷을 고를 수 있도록 여러 기능을 제공하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 스타트업 'About The Fit'의 CEO 줄스가 회사에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기로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하지만 줄스는 워낙 바빠서 본인이 시니어 인턴 뽑기로 했다는 사실조차 까먹음). 평생을 전화번호부 책 제작 회사 부사장으로 일하고 은퇴했던 벤 휘태커가 70이 다 된 나이에 패션 스타트업 회사의 CEO 비서로 일하게 된다는 설정 자체도 참 신선했고, 무엇보다 '좋은 어른', '상담하고 싶은 어른'으로서 벤을 잘 묘사한 것 같아 좋았다.
이 영화는 따뜻하고 다정하며 조금은 현실적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 CEO로서 투자자의 눈치 보랴, 사업 관리하랴 스트레스가 심한 줄스는 처음에는 본인에게 다가오려는 벤이 부담스러워 멀리하려 하지만 벤의 성실함과 어떤 도움이든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게 된 후 태도를 바꾼다. 젊은이와 어르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멋진 팀워크랄까. 나에게도 이런 인생 선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줄스가 겪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벤은 현명하고 다정한 조언을 건낸다.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라면 모든 젊은이들이 멘토 삼아 따르고 의지하려 하지 않을까(아이리시맨의 로버트 드 니로 말고요...). 이 영화에는 특별한 악역이 없다. 저마다 어떻게든 노력하는 인물들만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게 식상하지 않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보길 추천하는 영화다.
+ 로버트 드 니로의 순한 눈빛 한 번에 현실 스트레스가 녹는다, 우리 할아버지 보고 싶네.
- 잔잔하니 소소하다, 드라마틱 한 갈등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