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던 일드는 대학생 시절의 노다메 칸타빌레였다. 이후 한참이 지나 좋아하는 소설의 드라마화 소식에 찾아보게 된 한자와 나오키로 일드의 매력에 다시 빠졌고, 최근 몇 개월 동안은 일본어 공부에 재미를 붙여 일드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넷플릭스와 왓챠를 구독하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콘텐츠 중 괜찮은 작품들이 많고, 왓챠는 유명한 해외 작품들의 독점 공개나 일본 드라마, 중국 드라마가 많은데 이렇듯 각자의 장점이 달라 계속 같이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오늘은 지난번 일드 추천에 이어 두 번째 일드 추천 게시물이다.
*나의 취향 :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19금 콘텐츠 못 봄, 비위가 약함, 권선징악적인 서사 좋아하고 애매하고 아련하게 열린 결말로 끝나는 엔딩 불호. 드라마나 영화 볼 때 음악과 배우에 대한 영향도 많이 받는 편!
최근에 일본 친구들에게 드라마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작품 중 하나. 일본의 절세 미녀로 손꼽히는 '이시하라 사토미' 배우가 주인공인데다, 드라마 OST는 내가 좋아하는 '요네즈 켄시'의 'Lemon'. 너무나 흥미로울 것 같았지만 시청을 망설였던 이유는 이 드라마는 법의학에 관한, 즉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부검하며 그 사람의 사인(死因)을 밝혀내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일드를 밥 먹으며 보는데 비위가 약한 나로서는, 이 주제가 좀 부담스러워서 첫 회를 플레이했다가 중간에 이탈했었다. 그러다 주말 오후에 심심해서 이어보기 시작했는데, 빙고! 안 봤으면 후회했을 일드다.
UDI(Unnatural Death Investigation) 연구소에서는 매일 사인이 불분명하거나 의심스러운 시신들이 들어온다. 주인공들은(법의학 부검의, 임상병리사) 이 시신들을 살펴보고 이들이 왜 죽음에 이르렀을지 고민하면서 죽어서는 억울함이 없도록 정확한 사인을 판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단 주인공들의 연기에 과장이나 지나친 코믹 요소나 오버하는 분위기가 없었는데, 이시하라 사토미를 '교열걸' 드라마로 먼저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교열걸 속에서의 '코노 에츠코'와 상반된, 착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소명의식이 분명한 '미코토' 연기가 정말 좋았다. 초반 '나카도' 역의 '이우라 아라타' 배우가 너무 혼자 튀고 까칠하길래 좀 거슬렸었는데, 이야기 전체 흐름을 읽고 나니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자연스럽게 납득.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서부터, 익사, 감전사, 자살 등 여러 가지 사망 원인들이 나오고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별로 독립적으로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나카도의 사연이 에피소드 전체에 걸쳐 조금씩 펼쳐진다. 이런 두 가지 독립된 구조가 나중엔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 드라마를 더욱 입체감 있게 만들고, 계속 긴장감을 부여한다. 왜 일본 친구들이 이 드라마를 자신 있게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ost도 드라마의 이야기와 분위기에 찰떡같이 붙어,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린다. 가수 요네즈 켄시의 경력에 있어서 크게 한 획을 그은 곡이자, 드라마의 주인공들 누구에 대입해도 맞아떨어지는 가사. 'ゆめならばどれほどよかったでしょう。(꿈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미코토가, 나카도가, 그리고 죽은 이들이 읊조렸을 법한 가사에 눈물이 왈칵한다.
- 주제가 법의학이다 보니 시신이 계속 등장하고, 주인공들이 이를 해부하고 조사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사를 하는데 비위 약한 나로서는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 범인 서사보다는 사망한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이야기라 좋다. 에피소드 후반부 감정이 터져버리는 시점에 흘러나오는 ost도 훌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설레는 그 말, '정시 퇴근'.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인지라, 이 드라마는 제목에서부터 끌렸다. 가벼운 로맨스 드라마인가 싶었지만, 보면 볼수록 현실 고증 잘 된 리얼리티라는 생각.
웹 제작회사에서 일하는 '히가시야마 유이'(요시타카 유리코 배우)는 주변에서 야근을 해도 개의치 않고 본인의 업무가 끝나면 6시 퇴근을 한다. 정시 퇴근 후 단골 중국요리점으로 달려가 맥주 한 잔에 샤오롱바오를 먹는 것이 그녀 인생의 낙. 그 중국요리점은 6시 10분까지 맥주를 반값에 판다. 아, 이건 못 참지, 하고 뛰어가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이 드라마는 의뢰처가 원하는 방향으로 홈페이지나 캠페인을 제안하고 입찰되면 비용을 받고 실행하는, 웹 제작회사 배경으로 2019년 드라마인 만큼 회사에서(특히 IT 회사에서) 이슈가 될 만한 소재들을 다룬다. 버릇없는 신입사원과 답답한 꼰대의 갈등이라든지, 번아웃 증후군, 육아휴직, 워킹맘, 직장 내 성희롱, 워커홀릭 등. 직장인이라면 사실 비슷하게 겪어봤을, 그런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주인공이 일하는 부서에 주인공의 전남친이 상사로 부임해버리는 다소 판타지(?)스러운 소재를 결합함으로써 궁금해서 보고 싶어지는 드라마를 완성한다. 오피스 드라마 중에서도 기분 좋을 정도로 현실적인,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빠져들어 보게 되는 작품.
- 현실적인 에피소드들 중에서 현남친 캐릭터는 유독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건 나만 그런 걸까. 히가시야마씨의 남친 타쿠미씨 성격, 유니콘 아닌가요? 근데 나중에 왜 그렇게 되나요.
+ 모든 직장인들이 '90년 대생이 온다'만 보지 말고 이 드라마도 봤으면 좋겠다.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내가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유이와 시즈카타게, 미타니. 성격도 상황도 전혀 다른 이 세 동료의 케미가 좋았다.
제목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가장 첫 번째. 내가 좋아하는 '이시하라 사토미' 배우가 나온다는 것과 '교열'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구나 하는 생각이 두 번째. 가볍게 시작했다가 빠져서 흐뭇하게 끝난, 좋은 오락형 드라마다.
주인공 '코노 에츠코'(이시하라 사토미 배우)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패션지의 편집부에 들어가고 싶어 해당 패션지를 출판하는 회사에 몇 년째 지원하고, 해당 출판사는 에츠코를 패션지 편집부가 아닌, 문예부 교열부에 채용한다. 교열부에서 일하다 패션지 편집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소리에 낚인 에츠코는 교열부에서 난생처음 원고 교열을 하게 되고, 특유의 꼼꼼하면서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대범한 성격으로 모든 이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일을 잘 처리해나간다.
교열이라고 하면 오탈자 수정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드라마에서 풀어내는 교열의 세계는 그것보다 훨씬 깊고 다채로웠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물론, 내용이 사실과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고증하고, 작가가 전에 쓴 작품과 이어지는 내용이라면 그 연결에 이상한 점은 없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작가가 콘텐츠를 창조해냈다면 그걸 세상에 내보일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은 교열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에피소드별로 다양한 작가와 작품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교열부는 조용히 작품의 뒷바라지나 하라는 식의 무례한 사람들의 인식을 부수는 에츠코의 모습에서 통쾌함이 느껴진다.
- 세상에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워라밸은 개나 준 건가요. 그리고 저렇게 야무진 에츠코가 사랑 앞에서는 왜 그렇게 소심해지는 건데?!
+대사가 저렇게 빠른데, 귀에 착착 꽂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시하라 사토미 배우의 힘. 에츠코의 패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 처음부터 과한 에너지의 에츠코와 조용하고 성실한 교열부원들이 처음에는 부딪히다가 점점 조화되는 것을 보는 것도 뿌듯하다. 드라마라 전부를 드러내지는 못했겠지만, 교열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새로웠다.
'MIU404'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야노 고' 배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워낙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상처받은 배역의 무거운 작품들을 많이 한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을만한 작품을 찾다 발견한 드라마. 최고의 이혼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드라마는 커플/부부를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다.
예민하고 모든 게 깔끔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뒤끝 있는 '하마사키 미츠오'(에이타 배우)와 덤벙거리고 정리 따위 귀찮아하는 '호시노 유카'(오노 마치코 배우)는 척 보기에도 상극 같아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부부다. 하지만 비단 부부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무던히 가다가도 사소한 문제로 금이 가 쩍 하고 갈라지는 법. 이 부부는 어떻게든 살아내다가 사소한 이유 하나를 계기로 이혼하고 각자 살아가기로 하지만, 함께 얽혀있는 다른 인간관계들과 서로에 대한 미묘한 감정으로 계속 방황한다.
주인공은 미츠오와 유카 부부인듯한데, '우에하라 료'(아야노 고 배우)와 '콘도 아카리'(마키 요코 배우) 커플도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이 넷이 얽히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과거 연인 관계였던 미츠오와 아카리. 이혼 이후 유카에게는 한참 어린 연하남이 사랑을 고백하고, 료는 대책 없는 바람둥이라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연애, 결혼에 대해 서로 다른 네 남녀의 생각과 행동이 나의 예상과 한참 다르게 펼쳐지며 '허이구'하는 헛웃음이 나온 게 여러 차례. 코미디같이 웃긴 장면들이 다수 나오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본다.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진심. 그게 없으면 모든 관계들은 망가진다.
- 미츠오는 찌질하고, 유카는 지저분하고, 아카리는 우유부단하고, 료는 짜증 나. 엔딩에 나오는 뜬금없는 춤은 뭐람!
+미츠오는 귀엽고, 유카는 다정하고, 아카리는 강단 있고, 료는 솔직하다. 엔딩에 나오는 춤 매회 끝까지 봤다.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를 보면서 '오오와다 상무'역으로 나왔던 '카가와 테루유기' 배우가 나온다는 것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법정물이라는 소재에 끌려서 시청하게 된 작품. 아라시 팬들에게는 '마츠모토 준' 배우 주연작으로 이미 꽤 유명한 듯싶다.
일본의 형사 재판의 유죄 판결률은 99.9%라고 한다. 일단 검사로부터 한 번 기소되면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봐야 하는 상황에서, 무죄의 확률 0.1%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다. 범죄 현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애매한 증거로 범인이라고 낙인을 찍고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사건을 꿰뚫는 사실을 왜곡 없이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이 주인공 미야마(마츠모토 준 배우)가 지향하는 본인의 사명이다. 미야마가 진실을 밝히는 것에 집착하게 된 서사도 깔끔하고, 각 에피소드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추리도 뾰족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감이 예리하고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외골수인(그리고 아재개그 중독인) 미야마, 돈 밝히는 속물 같지만 실력과 연륜이 상당한 사다(카가와 테루유키 배우), 몇 년째 사법시험이 도전하지만 좀처럼 붙지 못하는 몸종같은(?) 짠한 캐릭터 아카시(카타기리 진 배우), 레슬링 광팬 변호사 타치바나(에이쿠라 나나 배우)가 어우러져 가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시즌 2도 재미있게 봤는데, 시즌 1 배우들 중에서 타치바나가 빠지고 다른 배우로(키무라 후미노 배우) 교체되어서 다소 아쉬웠다.
- 저만 미야마 아재개그 이해 못하는 거 아니죠? 그리고 가끔 보이는 과한 연출, 예를 들면 미야마가 생각에 깊이 빠지면 초능력자가 되는 건지 노란 광선이 미야마를 감싼다.
+의외로 빵 터지는 미야마와 사다 선생의 케미, 버릇없는 슈퍼루키와 의외로 허술한 선배 변호사의 티격태격 조합은 뻔하지만 볼 때마다 재미있다. 속도감 있는 전개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