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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0. 2022

순애 서스펜스 드라마 추천(N을 위하여, 최애)

 일본 드라마들을 보다 보면 묘하게 느낌이 닮았거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당신 차례입니다'와 '진범인 플래그'가 그렇고, '언내추럴'과 'MIU404'이 그랬다. 신기해서 찾아보면 제작진이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개발자가 게임에 남겨둔 이스터에그를 찾아내면 묘한 쾌감이 드는 것처럼, 지금 보는 드라마에서 과거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의 흔적이 보이면 괜히 뿌듯하다.

 

'당신 차례입니다'와 '진범인 플래그' 주변인물 전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서스펜스 드라마


 얼마 전에 'N을 위하여'라는 드라마를 봤다. 그 드라마는 '미나토 가나에'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나는 드라마보다 소설을 먼저 접했는데 흡입력이 대단해서 앉은 그 자리에서 다 읽어치웠었다. 드라마화되었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생각이 나서 찾아봤다. '에이쿠라 나나', '카쿠 켄토' 등 내가 좋아하는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데다, 탄탄한 소설 원작에 약간의 각색을 더해 인물들 행동에 설득력을 더하고 조금 더 친절한 서사를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들이 말한 이 드라마의 장르는 '순애 미스터리'였다.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 드라마는 등장인물들 간의 사랑의 감정에서 촉발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어 이거 어디서 본 설정 같은데?'하고 생각했더니, 금방 떠올랐다. '21년 4분기 일드로 재밌게 봤었던 '최애'랑 딱 장르가 겹친다.


 제작진이 설명한 드라마 '최애'의 장르는 '순애 서스펜스'. 아니나 다를까, 'N을 위하여' 제작진들이 모여 만든 드라마라고 한다. 어쩐지 뭔가 비슷하다 했다. 순수한 사랑과 미스테리한 사건의 조합. 과거와 현재의 시점이 교차되어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이며, 주인공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를 던지고 희생하는 사랑을 한다는 것, 주인공들끼리만 공유하는 사건의 진상이 있다는 것,  주인공 시점으로 보면 분명 나름의 해피엔딩인데 미묘하게 먹먹한 슬픈 감정이 남는다는 것. 개인적으로 처절하고 안타까운 분위기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 두 작품은 재미있게 봤고 인상 깊었기에 기록으로 남겨본다. 둘 다 추리하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이기에 최대한 스포일러성 정보는 자제해서.




1. N을 위하여


*방영 일자 : 2014년 4분기(10부작)

*주요 출연

에이쿠라 나나 - 스기시타 노조미 역

쿠보타 마사타카 - 나루세 신지 역

카쿠 켄토 - 안도 노조미 역

코이데 케이스케 - 니시자키 마사토 역

토쿠이 요시미 - 노구치 타카히로 역

코니시 마나미 - 노구치 나오코 역

'N을 위하여' 인물 관계도(2004년 시점 기준)

 주인공 '스기시타 노조미'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점과 도쿄로 건너와 사건이 벌어졌던 2004년 12월 24일 시점, 사건이 일어나고 10년 뒤인 2014년 시점이 교차되어 나온다. 그녀와 '나루세 신지'는 고등학교 동창. '안도 노조미'와 '니시자키 마사토'는 그녀가 도쿄에 정착하게 된 낡은 아파트, '들장미장'의 이웃 주민이다.

 

고교 시절의 스기시타와 나루세

 

 주요 인물 4명의 관계성은 이렇다. 스기시타와 나루세는 고교 시절 고향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같아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아마도) 서로 좋아했지만, 고교 졸업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동창회를 기점으로 다시 연결이 되는 사이. 스기시타가 고향을 탈출해 도쿄에 와서 만나게 된 대기업 사원인 안도는 성공하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인물로 본인처럼 '위로 나아가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 스기시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인물. 니시자키는 어린 시절 어떤 사건을 겪어 트라우마가 있는 작가 지망생으로 이웃에 산다는 이유로 스기시타, 안도와 자주 어울린다.

 

스기시타 고교 시절을 보면 어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언뜻 여자 1명과 남자 3명의 젊은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청춘 연애물의 분위기가 나지만, 스기시타와 니시자키의 경우 어린 시절이 불우했기 때문에 거기서 자아내는 캐릭터의 어두움이 있다. 이들이 안도의 회사 상사인 노구치와 그의 아내 나오코와 엮이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드라마 공식 이미지
소설 내용 중 일부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사랑은 '죄를 공유하는 것'이다. 극 중 스기시타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죄를 짊어지는 것. 그것이 'N을 위하여'에 등장한 인물들이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보면 이니셜에 'N'이 들어간다. 드라마 제목 자체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 저마다의 가장 소중한 N을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조금씩 계획과 어긋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주인공들은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건을 몰래 수습하기로 한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2004년 시점에,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대신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깊이가 느껴져, 오히려 서글퍼졌다. 젊은이들의 연애 감정과 미스터리한 사건 전개를 미묘하게 잘 섞은 작품.


들장미장의 하숙생들. 안도, 스기시타, 니시자키


 ‘99.9 형사 전문 변호사' 시즌 1에서 인상 깊었던 '에이쿠라 나나' 배우를 다시 보게 된 작품이다. 그녀가 연기하는 불안에 흔들리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비밀을 안고 가는 '스기시타 노조미'는 안쓰러운 동시에 아주 강한 사람 같아 보였다. 소설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스기시타 노조미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좋았던 캐릭터. 그리고 일본 예능 '샤베쿠리 007'에 레귤러로 나와 입담을 과시했던 개그맨 '토쿠이 요시미'가 이 작품에서는 다소 섬뜩한 느낌의 엘리트 회사원으로 나온 것도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에이쿠라 나나와 카쿠 켄토 배우가 이 드라마에서 만나 2016년에 결혼을 했다는 사실. 드라마에서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애썼던 주인공들이 실제로 결혼을 했다니, 뭔가 팬으로서 이 드라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뿌듯하기도 하다.

 

이렇게 촬영장에서 알콩달콩하더니
실제로 결혼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아이 낳고 알콩달콩 잘 사는 듯!
최근에 둘이서 이렇게 멋들어진 가족 화보까지 찍었다!




2. 최애


*방영 일자 : 2021년 4분기(10부작)

*주요 출연

요시타카 유리코 - 사나다 리오 역

마츠시타 코헤이 - 미야자키 다이키 역

이우라 아라타 - 카세 켄이치로 역

오이카와 미츠히로 - 고토 신스케 역

'최애' 인물관계도(현재 시점 기준)


 '최애' 역시 'N을 위하여'와 마찬가지로 과거 사건과 현재가 교차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극을 이끄는 중심은 주인공 '사나다 리오'다. 2006년에 기후현에서 아버지, 동생과 함께 살고 있던 리오는 대학 약학부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시라야마대학 남자 육상부 기숙사장으로 리오도 기숙사에서 지내며 육상부 일을 돕고 있었다. 그것이 리오와 시라야마대학 육상부 에이스 '다이키'의 연결고리로, 다이키는 리오를 좋아해서 그녀의 입시가 끝나면 고백하려고 했었다. 어느 날 리오의 아버지가 기숙사를 비웠을 때 기숙사에서는 대학생들의 질 나쁜 파티가 벌어졌고, 기숙사에 있었던 리오와 그녀의 남동생 ‘유우’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과거 시점의 리오와 다이키
현재 시점의 리오와 다이키

 

 이후 시간이 흘러 리오의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리오는 어릴 적 아빠와 이혼하고 '사나다 홀딩스'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고, 그녀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갈 후계자가 된다. 리오는 약학을 전공했던 이력을 살려 동생 유우가 앓고 있는 희귀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개발하기 위해 매진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오랜 기간 사나다가의 심복으로 일해온 사나다 홀딩스의 사내 변호사  '카세'가 뒷받침한다. 육상부였던 다이키는 이 시점에는 형사가 되어있다.


 사실 이 드라마는 'N을 위하여'보다 등장인물의 관계가 단순해서인지, 주인공들의 감정의 흐름도 더 심플하게 느껴졌다. 다이키와 카세가 사나다 리오를 좋아한다. 사실, 카세는 더 넓은 의미로 리오 뿐 아니라 사나다 집안 전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보인다. 2006년 남자 육상부 기숙사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형사로서 리오에게 접근하는 다이키, 사나다 홀딩스 사내 변호사로서 리오에게 어떤 과거가 있었든 리오를 보호하고자 하는 카세. 두 남자가 대치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여주는데 둘의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리오도 카세에게 많이 의지한다

 

 특히 극 후반부로 갈 수록 리오를 사건의 주요 참고인 중 한 명으로 두고 조사해 나가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고뇌하는 다이키와 비밀스러운 과거 사건을 품에 숨기고 다이키와 거리를 두려 하지만 그래도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리오의 모습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안타까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극 중에서 둘은 기후현 출신으로 평소에는 표준어를 쓰다가 둘만 있을 때는 기후현 사투리를 쓰는데, 그러면 한 순간에 두 사람을 서로 마음이 있었던 시절로 데려가는 것 같아서 더 애절해졌달까. 인터넷 상에서도 방영 초기에는 사건에 대한 언급이 많았는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과거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회차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드러나도록 구성해서 과연 누가 범인이었을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하고 호기심 들끓게 한 연출도 발군. 작가진이 배우들에게 조차도 과거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아서, 배우들은 '혹시 범인이 나인가?'하는 의구심을 안고 촬영에 임했다는 후문이 있다.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리오, 사내에서 그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카세

 

 각자의 '최애'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기에 이 드라마의 제목은 '최애'인 듯하다. '최애'라는 단어는 워낙 많이 쓰이기 때문에 드라마 제목 고유명사로서 사용하기엔 부적절했을 텐데('최애'라고 검색하면 워낙 많은 게시글들이 걸리니), 제작진은 굳이 그 단어를 타이틀로 썼다. 그 단어만큼 이 드라마 주제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가 없다고 판단한 듯.


카세는 사나다 집안과 리오를 지키는 변호사로서 형사인 다이키가 리오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해'다.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법을 어기지 않아야 한다는 준법성,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이(말 그대로 최애)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엉키면서 선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괴로워하다 결국은 스스로를 내던진다. 나는 폭풍우 한가운데 서있을지언정,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나날들만 주고싶은 마음이랄까.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에도 초점을 맞추면서 점점 고조되는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이 잘 됐다. 사건의 흐름에 맞추어 상자가 열리는 듯한 연출, 적재적소에 사용된 음악도 인상 깊었다. 특히 주제가인 '우타다 히카루'의 '君に夢中(너에게 빠져서)'를 들을 때마다 리오와 다이키, 카세 각자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저릿했다.


과거 알고 지냈던 인연과 감정 때문에 형사-사건참고인의 관계가 흔들린다

 

 기존에 톡톡 튀는 모습을 주로 보여줬던 '요시타카 유리코' 배우가 어른스럽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을 보여준 점도 신선했다. 드라마 '언내추럴'에서 주변 신경 안 쓰고 마이웨이만 고집하던 '나카도'역의 '이우라 아라타' 배우가 이번엔 이성적이고 똑똑한 변호사 '카세'로서 누군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근데 나카도도 결국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인생을 건 사람이었으니 카세와 비슷한 것 같기도) '마츠시타 코헤이' 배우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가수이자 배우인 그는 일본에서 2019년 아침드라마 '스칼렛'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MIU 404' 2화에 나와서 보여준 역할이 인상 깊었다. 한 회 출연이었을 뿐이지만 어떤 일이 있었든 범인이 아니라고 믿어주고 싶은 눈빛과 얼굴을 가졌구나 생각했었는데, '최애'에서는  첫사랑과 재회해 느낀 감정과 형사로서의 이성이 자아내는 갈등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MIU404' 2화에 등장했던 마츠시타 코헤이



 

여운이 오래가는 드라마 두 편이었다. 마냥 가볍게 즐긴다기보다는 매 회 챙겨 보면서 다음 화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근거리며 궁금해지는. 그리고 흔한 연애 드라마와 다르게 사랑을 ‘죄를 공유하는 것', '자해'로 해석해서 보여주는 부분이 특별했다고 느낀다. 물론 주인공들의 사랑과 더불어, 과거에 발생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서스펜스적인 연출이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느껴지는 자극도 한몫하는 것 같다.


 ‘N을 위하여'는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83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최애'는 동일 시상식의 110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상에는 봄 산들바람에 꽃잎 흩날리듯 상쾌하고 다정한 사랑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때로는 모든 것을 숨기고 혼자 안고 가는 사랑도 있는 거니까. 이 제작진들이 만드는 또 다른 '순애 서스펜스' 드라마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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