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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06. 2023

농구... 좋아하세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약한 스포 있습니다]


 내 첫사랑은 서태웅(루카와 카에데)이었다. 중학생 때 만화방 앞에 붙어있던 서태웅 포스터를 멍하니 보고 서 있느라고 버스를 놓친 적이 있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성향을 타고나서, 스포츠 만화나 축구, 야구에 열광하며 자라온 내게, 만화 슬램덩크 속 에이스이자 냉미남이었던 서태웅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태웅 ㅠㅠ


 어렸을 때는 TV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으로 슬램덩크를 봤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회사원이 된 이후에도 동생과 이따금 만화방에 가면 나는 늘 슬램덩크를 봤다. 문제아 군단이 농구 하나로 개과천선하는, 매우 교훈적이기까지 한 이 단순한 플롯에 눈물을 흘리며 이건 청소년 필독서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정말 좋아했다.


 슬램덩크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 선생님이 주도하여 만든 ‘The First Slam Dunk(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22년 12월에 일본에서 개봉했다. 11월 말에 일본 여행을 했었는데, 그때 오사카에서 곧 슬램덩크 영화가 개봉한다는 홍보 포스터를 보고, 여행을 좀만 더 늦게 올걸 하고 후회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한국 개봉을 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일본에서는 11월 개봉해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즈메의 문단속’을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어제 퇴근하자마자 후다닥 롯데시네마로 달려가서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자막판을 보고 왔다.


오사카의 난바 파크스에서 발견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카에데 ㅠㅠㅠㅠㅠ

https://www.youtube.com/watch?v=3dCLVGswP6A

30초 예고편




원작에 덧붙인 주인공들의 서사


 이번 영화는 예고편만 봐도 느낄 수 있듯 ‘송태섭’ 서사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송태섭의 출신지라든지, 가정환경이라든지, 왜 농구에 빠지게 되었는지, 정대만과의 연결고리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최애는 서태웅, 차애가 정대만이라서 송태섭 캐릭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영화 흐름 상 내 최애, 차애의 비중이 적어졌음에도 송태섭의 개인사(?)를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우리 태웅이 비중이 왜 이렇게 적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원작자께서 친히 그리 만드셨다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저, 지고 싶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에 송태섭의 행보에 대해서 나오는데, 다소 열린 결말이었던 만화책에 비해 명확하게 딱 길을 잡아주어서 ‘아, 역시 이 녀석은 확실히 행복할 것 같다!’는 안심감이 들어서 좋았다.


아 진짜 너무 좋아!!




극대화된 음악과 음향의 효과


 소리를 참 잘 썼다고 생각한다. 오프닝에 주인공 다섯이 걸어 나오면서 음악이 둥둥둥 깔리는데 작화 효과까지 더해져서 진짜 압도적이다. 아 이건 반칙이지 싶었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EEWVJ4RZ4Xg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오프닝테마, 오프닝부터 압도해 버림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Radwimps 음악이 스토리에 힘을 더한 것처럼, 슬램덩크에서도 적재적소에 임팩트 있는 사운드를 심어서 두근거림을 극대화한다. 농구 코트 씬에 락을 더해서 박진감과 통쾌함을 높였고, 어떤 씬에서는 소리를 다 죽여서 오히려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특히 후반에 송태섭이 돌파하며 주제곡 터지는 그 순간은 정말.. 내 마음도 같이 터졌다ㅠㅠ

 

 조용한 순간은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숨을 참은 듯 했다. 나도 숨을 멈추고 스크린을 바라보았고. 승부의 행방이 갈리는, 그 고요한 순간에 들리는 것은 심장 뛰는 소리뿐. 몰입감을 한층 높여주는 멋진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서 주제곡(第ゼロ感) 찾아서 듣는데 또 막 벅차오른다, 한동안 계속 들을 듯.


https://www.youtube.com/watch?v=EsJGbHJyXYc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엔딩 테마




넘쳐나는 명장면, 명대사


 원작이 슬램덩크다. ‘포기하면 거기서 시합 종료다’, ‘왼손은 거들 뿐’, ‘내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을 말해봐’, ‘농구.. 좋아하세요?’,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죠? 국가대표 때였나요?…. 전 지금입니다’, ‘멍청이’ 등등. 말해 무엇하리 슬램덩크인데.


 약간 3D의 느낌이 나는 작화였다. 좀 신기했다. 정대만의 3점 슛 폼이나, 강백호의 안 감독님 턱살 드리블, 그리고 전설의 강백호 서태웅 하이파이브 등 만화로 봤을 때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더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나는 자막버전으로 봤는데, 일본에서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성우가 원작과 다른 성우진으로 바뀌어서 논란이 컸다고 하던데(원작 하셨던 분들은 나이가 다들 많이 드셨을 테니), 개인적으로 딱히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한글 더빙판을 보고 자랐으니.


전설의 레전드


 그리고 특히 서태웅 얼굴.. 루카와 카에데, 그런 재능에 그 얼굴은 반칙이다. 만화책으로 볼 때는 잘 못 느꼈는데 북산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쌍꺼풀이 있더라. 하지만 서태웅은 무쌍에 언더래쉬가 눈에 띄게 속눈썹이 길었다. 거기다가 날렵한 턱선까지. 만화책으로도 그렇게 앓았는데 영화 보니까 이것 참, 2D 덕질까지 해야 하나 하고 절망함.


제멋대로인 게 뭐 어때서


전 중학 MVP인 게 뭐 어때서
문제아인 게 뭐 어때서



풋내기인 게 뭐 어때서
고릴라인 게 뭐 어때서


 물론 아쉬웠던 점들도 있었다. 산왕전 경기 장면과 주인공들의 과거가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이런 연출이 경기만 나왔으면 좀 늘어졌을 수도 있는 흐름에 변조를 주긴 하지만 약간 정신 사나운 느낌. 산왕전의 긴박함에 집중한다기보다는 송태섭의 과거 비중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기존에 슬램덩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그리 친절한 연출은 아닐 것 같다. 만화책에서 보였던 유머코드들이 삭제된 것도 특징. 그리고 만화책을 봤을 때는 나의 상상력이 들어가서 산왕에게 밀릴 때도 북산은 악착같이 계속 뛰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영상으로 보니 멍하니 선 채 속절없이 털리는 모습이 그대로 나와서 약간 맘 아팠달까. 하지만 원작자 이노우에 선생님이 만든 거라 반박을 할 수가 없음! 산왕은 그야말로 강자였으니까. 언더독의 반란처럼 확 타오른 북산(+주인공 버프)이지만 전통의 강호를 그리 쉽게 이길 순 없었을거다. 


 그러나 그 아쉬운 점들을 다 덮는 ‘슬램덩크’라는 이름. 나는 평일 저녁에 관람했는데, 작은 관이긴 했지만 빈자리가 없었고 주변에 다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인생 선배들이 앉아 있었다. 관람객 분포 보니까 3040이 많던데, 역시 어렸을 때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몰려서 그런 듯하다. 다들 차분히 앉아서 울멍울멍한 눈을 하고 보는데, 동질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는 산왕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몇 번을 봐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음이 벅찬 것은 왜일까.


 막판에 짧은 쿠키영상이 하나 나오는데 그거 볼 때까지 다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감동이었다. 이번 영화가 ‘The First Slam Dunk’니까 The Second, The Third도 기대하고 싶다.. 이노우에 선생님, 어떻게 안될까요?


너무 좋아서 포토티켓도 만들었다



*1월 26일부터 2월 7일까지 더현대서울에서 슬램덩크와 에이카가 콜라보한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고 한다. 달려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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