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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n 06. 2017

휴식을 위한 코타키나발루 여행

 정말 딱 휴가가 절실한 타이밍이 있다. 스트레스로 잠을 설치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못 참겠다 싶은 그런 순간. 마침 TV 속 윤 식당에서는 바다가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섬이 등장했고, 나도 그런 곳에 가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주 급하게 현충일까지 껴서 겨우 4일로 맞춘 휴가기에, 가깝되 표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얻어걸린 코타키나발루. 내겐 이름조차 생소한 그곳. 동남아인 것 같기는 한데 어딨는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정했다. 왜냐, 급히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할 수 있을만한 가격의 비행기표가 있었고, 리조트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절실했고, 빨리 떠나고 싶었다. 자유롭고 게으름 부리고, 고독하게 지내기에 딱일 것 같은 곳. 코타키나발루에서 특별한 계획도 없고, 그냥 가서 늘어지게 게으름만 부리다 올 심산이었다.

목적은 생각 없이 있기, (지금껏 대부분의 여행에서 그래 왔지만 여기선 다르게) 돈 조금 아끼겠다고 힘들게 발품 팔며 다니지 않기, 계획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며 보내기!


 그런데 역시 여행지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이름이 자꾸 헷갈렸다. 회사 동료들에게 쿠알라룸푸르 간다고 실컷 이야기했는데, 뭔가 이상해서 다시 생각해봤더니 코타키나발루네.. 비행기는 코타키나발루로 가고, 숙소는 쿠알라룸푸르로 예약할 뻔. 코타키나발루 가서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다.


 항공은 진에어, 쿠알라룸푸르행은 보통 저녁 7시쯤 출발하여 현지에 밤 11시쯤 도착한다. 비행시간은 5시간가량, 쿠알라룸푸르 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돌아오는 비행편도 밤 11시 넘어서 출발하여 한국에는 이른 아침에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혼자 가서 외로울까 봐 동생이 브라운을 챙겨줬다

 저녁 비행기라, 회사에는 오후 반차를 냈고. 이래저래 처리해야 하는 일 마무리하고 보니 광화문에서 오후 4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역 4시 반 공항철도 급행을 타기 위해 날아갔다. 머릿속에는 급행 놓치면 몇 시 공항철도를 탈 수 있을까, 진에어 탑승수속은 출발 50분 전까지는 받아줄까 등등 계산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우려를 싹 씻어 내리듯, 4시 반 급행 탑승에 성공! 그것도 심지어 약간 여유롭게! 거의 퀵실버가 된 기분이었다. 비행기에 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 휴양지로 가는구나! 하고.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내리면 아주 간단하게 입국심사를 한다. 심지어 여기는 기내에서 신고서 쓰는 것도 없었다. 여러 블로그에서 읽은 대로 게이트 나가자마자 선불 유심부터 구매. 나는 한국으로 통화까지 되는 30링깃짜리 유심을 샀지만, 데이터 되는 25링깃짜리만 샀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한국에 전화해서 뭐한담. 암튼 선불 유심을 사면 나의 말레이시아 현지 번호도 생기고. 그래서 그랩 택시 잡아 탈 때 기사와 통화도 가능해서 편하긴 했던 것 같다.


 유심 가게를 지나면 공항 택시를 잡아주는 안내소가 있다. 여기선 택시를 Teksi라 쓰던가. 나의 첫 숙소는 시내에 자리한 하얏트 레전시, 공항 택시 영수증에는 30링깃이 찍혀 나왔다. 공항 택시는 목적지를 말하면 안내소에서 요금을 미리 찍어주므로, 바가지 쓴다거나 할 우려는 없다.(목적지가 같다면 내 요금과 당신 요금이 동일하다는 것!) 다만 요금 체계 자체가 애초에 비싸게 잡혀있다. 그랩 택시 타고 다니다 보니 감이 온다, 30링깃이라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택시라고 해도 비싸다.

객실에서 보이던 뷰, 음 상가인가
조식 식당 풍경. 볶음요리, 딤섬, 인도식 카레 등등 메뉴가 다양했다
역시 나는 계란, 햄, 감자, 치즈

 하얏트 리전시는 5성급 호텔답게 객실이 넓었고, 인테리어가 모던했다. 조식도 종류가 다양하고 시설이 고급졌다. 도착하며 쌓인 피로를 싹 풀어주는 느낌. 그렇지, 이거지, 이러려고 휴가 온 거지! 하고, 기대에 딱 부합하는 수준이다.

넘나 폭신폭신했던 침대
참 맘에 들었던 객실!

 휴가지에 오면 눈이 참 빨리 떠지더라. 너무 덥기 전에 수영장에 가 볼 생각이었다. 하얏트의 수영장은 아담하다. 아침에 가서 그런가 사람도 별로 없었고. 바에서 수박주스 하나 시켜놓고, 물장구 첨벙첨벙하며 기분 내기에 좋았다. 나는 수영도 못하면서, 왜 튜브를 안 챙겨 온 건지. 허허,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와서, 수영장에서 타월은 빌려주니 그거 덮고 누워 음악만 들어도 좋았다.

 

 간단한 샤워시설도 있고. (사방이 뚫려있으니 그냥 수영복 입은 채로 락스 냄새만 날려주는 정도로 씻을 수 있다.) 탈의실도 있었다. 나는 호텔 수영장에 올 때면 항상 수영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냥 비키니 입고 그 위에 티셔츠와 반바지 입고. 수영장 가면 벗어버리고 위에 래시가드와 비치타월로 무장하는 게 내가 찾은 그나마 합리적인 방법!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려나.. 암튼, 나는 여기서 크게 바라는 게 없었으니, 수영장이 작다고 해서 실망할 일도 없었다는 말씀!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캐리어를 호텔에 맡기고, 정처 없이 시내 구경을 나섰다.

  덥고 습하지만, 못 견딜 날씨는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안 더웠던 듯하다. 한낮을 피해 그늘에 있으면 바람도 불고 그럭저럭 쾌적하다. 한국의 한여름 수준을 견뎌내다 보니 이런 내성이 생겼나 싶기도 하다.

아담한 수영장
수리아 사바 앞 조형물, 뉴욕인가...
수리아 사바 현지 느낌 물씬

 음악 들으면서 걷고 있자니, 신이 났다. 대충 눈앞에 보이는 수리아 사바라는 쇼핑몰이 있어서 들어가 봤더니, 역시 동남아답게 쇼핑몰은 에어컨 쌩쌩이다. 아주 대단한 브랜드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지에 Padini라는 의류/신발/가방을 파는 큰 매장이 있는데 디자인이 귀엽고 가격도 저렴해서 신나게 구경했다. H&M 같은 느낌이다. 동생이 늘 갖고 싶어 했던 스타일의 귀여운 토트백이 보이길래 하나 샀다. 76링깃. 한국돈으로 하면 2만 원 정도 하는 거니, 저렴하긴 하다.

동생 주려고 산 귀여운 토트백
쇼핑몰 안에서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공연도 하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는데, 저기 마사지 샵이 보였다. Jari jari SPA? 음, 이름이 자리자리인가.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가격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냉큼 들어가 봤다. 내가 선택한 것은 60분짜리 손바닥으로 하는 전신 마사지. 173 링깃. 들어가면 따뜻한 생강차를 조금 내주고, 5분 정도 족욕을 시켜준다. 그리고 마사지사가 이끄는 대로 독방에 들어가면 나의 마사지 공간이 등장! 실오라기 하나 없이 싹 탈의하고, 자그마한 일회용 팬티만 입고 살롱을 덮은 채 엎드려 누워있자니 잠시 당혹감이 올라오지만, 마사지사의 숙련된 솜씨에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너무 강한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소프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었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정도의 지압을 해줘서 좋았다. 전에 방콕에서 마사지받았을 때는 약하게 해달라고 했는데도 어찌나 손 힘이 좋으시던지, 커헉 큽 윽윽하는 단말마 비명만 몇 번을 질렀더랬다. 여기서는 편안하다 보니 몸도 축 늘어지고, 몇 주 간 쌓인 긴장이 녹아내리는 느낌. 60분이 금방 지나간다, 아로마 오일을 쓰는 마시지라서 끝나면 몸을 닦아낼 스팀타월을 준다. 슥삭슥삭 하고 있자니, 여기 참 괜찮구먼 하는 생각이 들면서 후한 팁이 지갑에서 새어나간다. 이렇게나 몸과 정신을 힐링시켜주신 분이니 이 정도는 드려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걷다 보니 새우가 먹고 싶어 졌다.

 새우, 새우.. 가만있자 여기 웰컴 시푸드인가 버터 새우가 유명한 곳이 있다고 들었었는데, 갑자기 거기 가고 싶어 졌다! 미리 한국에서 받아온 그랩 어플을 켰다. 그랩 택시 선택,  나의 위치를 찍고 목적지를 지정하면 근처에 있는 그랩 택시 기사들에게 알람이 가고 그중 나의 거래건을 콜한 기사가 있으면 알림이 온다. 기사 이름과 차 번호, 그리고 요금까지 미리 나오니 바가지 쓸 일도, 기사와 흥정할 수고로움도 없으니 매우 편리! 메신저 및 전화 기능이 있어서 내가 있는 위치가 애매하다 싶으면 기사가 확인 요청도 온다. 여행 기간 동안 참 잘 쓰고 다녔고, 요금도 웬만한 시내 이동들은 10링깃을 넘지 않았다.  

수산물센터의 입구
싱싱한 수산물들

 웰컴 시푸드는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유명한 곳이라, 택시 기사에게 웰컴 시푸드라고 말하면 대번에 알아듣는다. 도착해보니 수족관 내 새우며, 생선이며, 랍스터며, 시선을 사로잡는 수산물들이 가득. 나는 기본적으로 생선들을 무서워하지만, 새우는 좋아하기에 애써 물고기들을 못 본척하며 주문에 들어갔다.

- 버터 새우 저거 주세요

- 응, 몇 마리 줄까요?

- (마리까지 정해줘야 하는 건가..?) 음.. 6마리??

- 뭐라고? 6마리나???

 놀라길래 약간 주눅 들어서 아니 그럼.. 4.. 4마리만 일단 줘봐... 타이거 새우로... 하니 사이즈를 묻는다. 음... 일단 작은 걸로 먹어보자 싶어, 호기롭게 작은 사이즈 타이거 새우 4마리로 버터 새우를 만들어주세요! 더불어 타이거 맥주도 한 병!

내가 시킨 건 Wet butter tiger shrimp

 뭐 그 큰걸 한 병 너 혼자 먹겠다고? 하며 또 놀라는 터라, 아 정말 뭐 이리 놀라는 게 많은가, 여자 혼자 와서 먹는 거 처음 보나 싶어, 응 달라고! 맥주! 달라고! 확실히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 그래서인지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현지인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사테를 파는 가게에서도 술은 팔지 않는 슬픈 일이 비일비재하다. 암튼 그들 눈에는 혼자 온 손님도 신기할 텐데, 내가 타이거 새우 목을 따가며 맥주를 마셔대니 놀라서 박수 쳐줄 법도 했다. 버터 새우는 소스가 정말 맛있었는데, 4마리 시키길 잘한 것 같다, 사실 배도 별로 안 고팠고, 3마리 넘어가니 약간 질리는 맛? 어쨌든 맥주랑 먹으니 궁합이 참 잘 맞았다.

 새우까지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그랩을 잡아 타고 이마고 몰로 이동했다. 이마고 몰은 코타키나발루 쇼핑몰 중 가장 최신식이고, 규모도 크며, 시설이 좋다. 지하에 마트가 있다고 해서 올드타운 커피나 사러 갈까 싶어서 향했던 곳.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세포라도 있고, 작기는 하지만 빅토리아 시크릿도 있고, 배스 앤 바디웍스도 있네? 일단 시간이 늦어 그냥 커피랑 밤에 마실 맥주 두 캔, 육포를 사들고 들어갔다. 비첸향도 있었으나, 다른 걸로 먹어 보고 싶어서, 처음 보는 브랜드의 육포를 샀는데 비첸향과 맛이 비슷했다.

여기서 육포를 샀다

 두 번째 숙소는 수트라하버 리조트 마젤란. 바다를 끼고 있어 석양 보기에 최고라는 숙소였다. 멀리 나가 돌아다니기 싫고 리조트 내에서 웬만한걸 다 해결하고 싶었던, 나의 목적성에 가장 부합하는 곳! 다만 무슨 문제에선지 인터파크에서 예약해 간 나의 예약정보가 이 리조트 전산에서는 확인이 되지 않아, 작은 트러블을 치르고 여차저차 객실을 배정받았다.

열대 느낌 물씬 나는 리조트의 로비

 처음 본 인상은, 에게? 하얏트 객실이 워낙 좋았어서 그런지, 이 곳의 오래되어 보이고 좁은 객실에 약간 실망했더랬다. 그래도, 뭐 여긴 리조트니까 산책이나 다니지 뭐, 하며 쿨하게 딥슬립 했다는 게 함정! 다음날 아침에는 아주 오랜만에, 꿀잠을 자고 알람이 울리기 전 저절로 눈이 떠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창문가로는 새소리가 들리고, 초록이 눈앞에 가득한. 코타키나발루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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