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나라 이동, 사슴 공원, 동대사
(2022년 11월 26일 여행)
이 날은 나라로 이동해서 당일치기 나라 구경을 하는 날. 한국에서 언어교환 어플로 사귄 친구가 마침 나라에 살고 있어서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 되었다.
나라로 이동하기 전에 아침을 해결하고자 들어갔던 카페. 사실 아침에 호텔에서 어제 사온 편의점 간식거리를 먹어서 배가 그리 고프지는 않았지만 나라로 먼 이동을 해야 하니까 뭔가 먹어둬야겠다 싶었다. 니시키 시장 쪽에 뭐 없을까 하고 9시 즈음 도착했는데 시장은 9시 반부터 조금씩 문을 연다. 대충 시장 분위기만 구경하다가 구글링 해서 찾은 곳이 칸노 커피.
꽤나 유명한 곳인 듯싶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였고, 아침에 갔는데도 1층에는 빈자리가 2인석 하나밖에 없었다. 커피와 브런치가 유명한 집인 듯한데, 11시까지는 조식 메뉴를 판다. 나는 700엔 세트의 토스트를 시켰는데, 빵이 바삭하게 잘 구워진 데다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이라 아침에 먹기 부담이 없었다. 삶은 달걀과 미니 샐러드가 따라 나온다. 삶은 달걀을 깨기 위해 노력했으나 카페에서 달걀을 깨는 애처로운 소리를 내기가 민망했고, 무엇보다 배가 별로 별로 안 고파서 달걀은 쿨하게 포기… 함께 시킨 오렌지 주스는 과육이 씹히는 진한 맛이었다. 커피가 유명한 곳이라니,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들러도 좋을 듯. 오늘 갈 곳들을 정리하면서 나라로 이동하는 루트를 점검했다.
https://goo.gl/maps/yAos9PQ4Y4nd7MGB8
나는 교토의 기온 시조 역에서 게이한 본선을 타고 단바바시역에 내려서, 긴테쓰 특급으로 갈아타고 긴테쓰 나라에 내리는 루트를 선택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헷갈리는 것이 바로 전철을 운행하는 회사가 여러 곳이라는 것(국영도 있고 민간회사도 있다). 우리나라 서울은 교통카드 한 장 가지고 1호선~9호선에, 경인선이나 공항철도 등도 탈 수 있고, 환승도 편리하게 연결되어있는데 일본은 그렇지가 않다. 위 내가 정한 루트에서 게이한 본선 타고 가다가 단바바시 역에 내려서 몇 걸음 걸으면 긴테쓰 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데(마치 환승처럼), 긴테쓰선 타는 곳의 이름은 긴테쓰단바바시란다. 같은 단바바시인데? 이것은 마치 시청 역을 1호선 시청역, 2호선 시청역 별도 명칭으로 관리하는 것 같은 느낌. 한국인으로서 좀 어색했다. 이렇게 관리하다 보니 교통 패스권도 국영철도(JR) 라인만 된다거나, 특정 사철 라인만 되는 등 제약이 생긴다. 관광객으로서는 영 헷갈리는 시스템.
하지만 여행자의 친구, ‘구글맵’만 있으면 어디서 어떤 라인을 타야 하는지, 몇 분 후에 오는지, 몇 번 플랫폼에서 타야 하는지 등을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구글맵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구글맵만 믿고 ‘교토에서 나라 가기 참 쉽구먼!’ 했다가 큰 코를 다치게 되는데.. 나는 교통패스를 별도로 끊지 않고 이코카 카드로 다녔고, 나라까지도 이코카 카드만 찍고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긴테쓰단바바시역에서는 긴테쓰 특급열차를 타고 나라로 가야 하는데, 특급열차는 별도의 티켓이 필요하다는 것.. 그걸 몰랐던 나는 긴테쓰 특급에 그냥 탔는데, 모두 지정석인 거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객차 사이칸에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긴테쓰 특급 열차는 별도 티겟을 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무원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추가 비용을 내면 된다는 내용을 보고, 역무원이 오길래 내 사정을 설명했다. 단바바시역에서 탔는데 특급선은 티켓을 별도로 사야 하는 줄 몰랐다며. 최대한 악의 없는 불쌍한 표정으로 ㅋㅋㅋ 그리고 현장에서 520엔을 현금으로 결제해서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케이스가 드문 것은 아닌 듯했다. 역무원도 별문제 없이 빠르게 처리해주셨고. 하지만 나처럼 초행길에 당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긴테쓰 나라역에서 긴테쓰 특급을 타고 교토로 돌아올 때도 긴테쓰 나라역에서 지정석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역 내 티겟 구매 기계가 있고 역무원분이 발권해주고 계셔서 올 때는 쉽게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사실 나라는 고등학교 때 친구와 와 본 적이 있다. 워낙 옛날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사슴들이 막 뛰노는 풍경에 놀라고, 전병을 들고 있는 나에게 달려드는 모습에 두 번 놀랐었는데. 그 사슴들이 그리웠단 말이지. 긴테쓰 나라역에 내려서 동대사로 가는 길은 걸어서 20분 정도로 그다지 멀지 않다. 가는 길에 사슴이들을 볼 수 있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시 차원에서 사슴을 잘 관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킨테쓰 나라역에서 친구를 만나서 같이 갔는데 동대사 가기도 전에 뛰어다니는 사슴들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길에서 파는 전병을 사서 사슴들에게 줬는데 웬걸, 시큰둥한 애들이 많았다. 내 기억 속 사슴은 전병에 환장했었는데, 얘들아 그동안 전병을 너무 많이 먹었던 거니.. (하지만 이런 플래그를 세워선 안됐다.. 나중에 동대사에서 호되게 당함 ㅋㅋㅋㅋ)
나에게 나라는 ‘사슴의 도시’이자 ‘도모토 쯔요시’의 도시다. 교토의 이웃 도시이자 교토보다 더 박자가 느리고 뭔가 여유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곳. 그리고 나라 사람인 친구는 부산 출신인 나와 기가 잘 맞았다. ‘혼마야~’, ‘~야넹’ 하는 사투리도 너무 귀엽고.
간사이의 유명한 도시라고 한다면 역시 오사카, 교토, 나라 정도일 텐데. 그 세 도시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교토’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일본 내에서도 특히 강한데, 아무래도 과거 천년 수도였던 자존심 때문인지 체면을 중시하고 겉모습과 속내가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교토 사람이 ‘귀 댁의 자녀가 피아노를 참 잘 치네요' 하고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칭찬이 아니라는 것. 피아노 소리 시끄러우니까 자제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단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대화법이다. 그에 비해 나라 친구는 일단 전형적인 ‘간사이 사람’의 색깔이 참 진했다. 웃음기 많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솔직하고. 예를 들어 사슴들을 보면서 했던 대화는 이렇다.
- 나 : 나라 사람들은 사슴을 그렇게 좋아해?
- 친구 : 아니, 다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동대사에서 멀리 살아서 사슴 보기도 쉽지 않고. (하지만 그녀의 스마트폰 대기화면은 사슴 사진이었음)
- 나 : 너 스마트폰에 그거 사슴 사진 아니야? ㅋㅋㅋㅋㅋ
- 친구 : 응 ㅋㅋㅋㅋㅋㅋ 나… 사실 사슴 너무 보고 싶었어! 어제 사슴 본다고 설레서 잠을 못 잤어 ㅋㅋㅋㅋ 전병 100개 줄 거다!!! (그녀의 멋쩍은 표정은 덤)
사슴을 처음 봤을 때는 우와 신기해 싶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여기저기 사슴이라ㅋㅋㅋ 그리고 아무래도 사슴이 깨끗하지 않을 것 같고 예민한 동물인 것 같아 나는 쓰다듬을 엄두가 나지 않던데, 친구는 아주 키우는 강아지 만지듯이 사슴을 우쭈쭈 쓰담 쓰담하고 있었다. 과연, 이것이 사슴의 도시, 나라 사람의 멘탈이구나 싶었다. 한 마리 집에 데려가는 줄.
그리고 나라의 마스코트로 유명한 것이 바로 '센토'군. 사람의 모습인데 사슴뿔이 있고 이마에는 부처님 같은 점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뭔가 기묘하게 생겼다고 생각해서 대체 나라시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마스코트를 만들었지? 싶었는데, 먼가 깊은 뜻이 있으려니 싶기도 하고. 센토군은 정체가 뭘까, 좀 매니악한 비주얼인 것 같다 했더니 친구가 수줍게 본인 집에 센토군 인형이 있다고 했다 ㅋㅋㅋㅋㅋ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마스코트였구만.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가니 동대사 도착. 동대사는 일본의 호국불교의 상징이며, 일본 최대의 목조 건물인 ‘대불전’과 최대의 청동불상을 자랑한다. 과연 청동불상은 굉장히 커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우리도 이 앞에서는 조용해졌다. 동대사에는 관광객도 많고 사슴도 많다. 이것이 진정한 인간과 사슴의 조화일까. 동대사도 멋지지만, 국보나 중요 문화재들이 널린 이곳에 사슴도 함께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참고로 이곳 사슴들은 길도 잘 건너고(운전자 분들이 사슴이 길을 걷고 있으면 자연스레 멈춰서 기다려 주신다). 공손하게 인사를 해서 전병을 얻어먹기도 한다. 사회생활 만렙이다. 심지어 친구는 사슴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는 것도 봤다고. 대체 나라 사슴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동대사 안의 마지막 가을 단풍을 보면서 유유자적 여유롭게 걷다 보니 이월당이 나왔다. 일본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절에서 소원을 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 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왠지 나라에서는 해보고 싶어졌다. 세전함에 동전을 던지고 종을 울리고 소원을 빈다.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라의 전경을 내려다봤는데 낮고 안정적인 스카이 라인이 나라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해 정말 좋았다. 여기서 며칠 머물 수 있으면 정신이 차분해지고 좋을 것 같은데. 친구가 나라는 차가 없으면 정말 다니기 불편하다고 했다. 버스나 전철이 잘 없다고. 하긴, 나도 관광객이다 보니 당일치기로 전철 타고 역에서 갈 수 있는 동대사 정도만 방문했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라에서 숙박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느릿하게 여행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동대사를 내려가는데, 이 쪽에서는 좀 적극적인 사슴들이 사람들에게 전병을 달라고 조르고 있길래 친구랑 같이 사슴에게 전병을 줘보기로 했다. 아장아장 걷는, 눈이 맑고 엉덩이 털만 하얘서 뒷모습도 귀여운 사슴을 보면 나 같은 동물 좋아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털리고 마는 것이다. 근데 역시 이곳은 핫스팟이라 그런지, 나라 공원에 있던 유유자적한 사슴과 다르게 아주 적극적이었다. 전병을 사서 손에 쥐는 순간 우르르 몰려온다. 하나씩 줄려고 하면 성격 급한 애들은 빨리 달라고 주둥이로 내 엉덩이를 콕콕 찌르거나, 카디건을 입으로 물고 잡아당긴다. 이 정도면 사슴이 아니라 전병을 뺏으러 온 야쿠자 수준이다. 친구도 나도 순식간에 전병을 다 뺏기고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역시, 내 기억 속 사슴들처럼 파이팅이 넘치는구먼.
https://goo.gl/maps/Bus4J9rAGLefM7fL7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오코노미야키를 먹기로 하고, 상점가인 산조 거리로 향했다. 구글로 검색해서 처음 고른 집은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해서 포기. 두 번째로 고른 집은 ‘카메야’라는 곳으로 여기서 약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모치 치즈 오코노미야키와 돼지고기 야키소바, 오렌지주스와 말차를 시켰다. 오코노미야키에 떡이 들어간 식감이 좋았고 맛도 있었다. 야키소바는 좋아하는 얇은 면으로. 이것도 맛있을 수밖에 없지. 간은 역시 내 기준에서는 약간 짠 듯한 느낌이다(나는 음식을 좀 싱겁게 먹는 편이라 웬만한 일본 음식은 다 좀 짜다 ㅋㅋㅋ) 근데 오렌지 주스가 아침에 먹은 오렌지를 직접 갈아 만든 느낌이 아니라 오렌지 가루 주스? 약간 불량 식품 맛이 났다는 거ㅋㅋㅋ 어렸을 때 학교 앞에서 먹었던 맛이 생각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좋아한다고 했더니 친구가 근처에 고구마튀김을 얹은 소프트 아이스 가게가 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 이름은 ‘오이모와카이모’. 구글 맵에는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카메야 근처의 좁은 골목에 있었다.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고 고구마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최고의 디저트. 아이스크림 위에 입자가 있는 소금을 올려주는데 그래서 단맛이 더 강조되었다. 양이 꽤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겨버림.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맛이다.
짧은 나라 여행을 마치고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교토로 돌아왔다. 여행 가기 전에 나라를 갈지 말지, 간다면 당일치기할지 숙박을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역시 가까이서 사슴을 보고 싶어서 나라행을 택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볼 거 많이 없다고들 해서 당일치기를 선택했던 건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나라에 며칠 머물러 보고 싶다. 이월당 근처에 앉아서 멍 때리다가 나라 전경을 스케치해본다거나. 조용한 골목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어본다거나. 내 친구와 도모토 쯔요시 같은 사람이 가득한 곳이라면, 특별한 화려함이 없어도 너무도 평화롭고 개성 있으면서 사랑스러운 도시라는 확신이 든다.
https://goo.gl/maps/WhgnwdoVrbaMB9sR6
교토로 돌아오니 배가 출출해져서 야식으로 먹으려고 니시키 시장을 구경하다가 타코야키를 샀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뭔가 했더니 타코야키였던 것! 나도 생각 없이 줄을 섰는데 내 앞에 서 있던 분이 저기 티켓 기계에서 계산하고 티켓을 받고 나서 줄을 서면 된다고 했다. 몰랐으면 계속 서있기만 했을 뻔..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파를 얹은 타코야키를 주문, 기계에서 표를 받아 직원분께 드렸다.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네기 붓카케(파 얹은) 6알에 260엔.
타코야키 위에 파를 잔뜩 올리고, 마요네즈는 따로 주신다. 사자마자 바로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지만, 앉아서 천천히 먹고 싶어서 숙소에 가져와서 우유랑 같이 먹었다. 조금 식어도 괜찮았다. 반죽이 부드럽고 촉촉함. 좋아하는 파가 잔뜩 올라간 것도 좋았다. 근데 타코야키인데 타코가 안 들어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래도 맛있었으니 됐다며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https://goo.gl/maps/1uTAm7mUjQq8Hy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