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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14. 2022

교토 근교에서 단풍 즐기기

오하라, 호센인, 하치만보리

(2022년 11월 25일 여행)


오전에 기모노를 입고 아라시야마 단풍 구경을 한 뒤 청수사를 가려고 했는데, 지금 사람이 너무 많을 거라고 하고 모처럼 차가 있는 여행이라 교토 근교 구경을 하기로 했다. 가이드님이 청수사는 가능하다면 아침 일찍 가는 게 사람이 적어서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일요일 아침에 갔었는데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이어지는 여행기로 계속 쓸 예정.




솥밥과 야채 절임, 식당 '도우이'


식당의 입구, 근교라 그런지 공간이 널찍해서 좋았다


그렇게 정한 목적지는 오하라. 아라시야마에서 차로 한 40분 넘게 걸리는 곳이라고 한다. 아라시야마의 음식점들에 사람이 다 너무 많아서 점심도 오하라 가는 도중에 있는 가게에서 먹기로 했다. 가이드님 말로는 솥으로 밥을 지어서 밥이 참 맛있고, 야채 절임이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참고로 오하라는 과거에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있을 때 여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예전부터 야채 절임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게 아주 맛이 좋아서 유명해졌고, 지금도 교토에서 오하라 산 야채 절임이 많이 팔린다고 한다. 우리가 들른 식당 이름은 도우이(土井). 이 식당에서도 자체적으로 절임을 만드는데 브랜드도 따로 있고 니시키 시장에도 납품한다고.


절임 하나하나가 너무 짜지 않고 간이 딱 좋았다, 야채 절임은 셀프로 무한리필 가능
치킨 가라아게 정식, 든든히 먹은 한 끼
폭신폭신 맛있었던 다시마키


정식류를 파는데, 치킨 가라아게 정식이 있길래 주문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다시마키(계란말이)도 시킴. 절임은 셀프로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도 단무지 같은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뭐 특별할 거 있겠나 했는데 이 식당에서 여러 가지 신선한 야채로 만든 짭조름하고 약간 시큼한 절임류들은 확실히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가라아게 살코기도 두툼했고 육즙이 있어서 맛있었다. 다시마키는 역시 폭신폭신한 느낌. 솥으로 밥을 짓는다고 하더니, 흰쌀밥일 뿐인데도 밥 자체가 맛있어서 밥만 먹어도 단 맛이 났다. 여기에 절임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일 듯. 후식으로 유자 푸딩도 주셔서 그걸로 입가심까지 하니 배가 든든했다.


우메보시와 죽순 절임, 저 우메보시는 정신이 번쩍 드는 맛이었다 ㅋㅋㅋ


 가게에 야채 절임을 포장으로 팔고 있는데, 나는 우메보시를 정말 좋아해서 우메보시와 죽순 절임을 샀다. 우메보시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 있어서 한국까지 들고 갈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가게에서 비닐로 잘 포장해주셨고 위탁수하물로 부쳐서 한국까지 온전히 잘 가지고 옴. 참고로 우메보시는 한국 와서 바로 먹었는데 매실의 크기가 크고 실했지만 정말 정통으로(?) 만들어서 흑초에 절였는지 신맛의 펀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우메보시일 듯! 치킨 가라아게 정식 1700엔, 다시마키 800엔, 우메보시 550엔, 죽순 절임 640엔.




오하라 호센인


별사탕처럼 소복하게 쌓인 오하라의 단풍잎들
호센인으로 가는 길, 정말 아름답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도착한 곳은 오하라. 산지라서 단풍이 정말로 아름다웠는데, 교토 시내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사람은 확실히 적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음. 가이드분이 호센인이라는 곳의 액자 정원이 참 멋지다고 해서 거기로 향했다. 입장료는 인당 400엔이었던가.. 아무튼 입장료가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입장하면 일본 특유의 꾸며진 정원이 보이는데 나무와 작은 호수가 어우러진 그 풍경은 넋 놓고 앉아 계속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호센인의 정원, 물과 나무의 조화가 인상 깊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포인트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유리나 문풍지 없이 시원하게 뚫린 벽으로 바라보는 정원. 골조만 있어서 그 틀로 보면 마치 외부 풍경이 액자에 걸린 그림 같다. 그래서 애칭이 ‘액자정원’인 듯. 입장해서 액자 정원에 앉으면 말차 한 잔과 과자를 준다. 입장료에 포함되어있는 듯하다. 가만히 앉아 딱 봐도 연식이 오래된 듯한 소나무를 바라보니 그냥 평화로워졌다. 내가 갔을 때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6명 정도 있었는데 다들 말이 없고, 말을 해도 소곤소곤해서 조용해서 더 좋았다. 날씨도 굉장히 맑아서 햇살이 내비치는데 정말 내면의 평화를 느낌.


가만히 앉아서 무념무상
정원의 소나무, 한 폭의 그림 같다
호센인에서 주신 과자와 말차
사람이 없어서 더 좋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넋 놓고 있던 나에게 가이드분이 말씀하시길, 이곳 천장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있단다. 그냥 평범한 나무 천장 같은데 싶었는데. 옛날에 후시이 전쟁에서 패배한 장수의 부하들이 할복했는데, 그 장소의 바닥을 뜯어 이곳 호센인의 천장으로 썼다고 한다(血天). 그 소릴 듣고 천장을 올려다보니 뭔가 핏빛으로 눌려진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내용은 액자로도 적혀서 걸려있었다. 어쩐지, 일본인 관광객들이 다들 고개를 쭉 빼고 천장을 유심히 보더라니. 왜 그런 무시무시한 걸 가져왔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을 덮어주면 수라장에서 죽었지만 편안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전쟁 결사반대로, 전쟁광들로 인해 전장으로 끌려가 원치 않는 싸움을 하며 죽어가는 병사들은 안타깝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천장을 보면서는 뭔가 생각이 많아졌다.


공간은 작지만 품을 들여 가꾼듯하다
저 잔잔한 물가에 띄워진 단풍잎도 그림 같다
액자 정원 쪽에 있는 저 대나무 두 개는 뭘까 싶었는데, 귀를 대나무 구멍 가까이 대고 들으면 정말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액자 정원의 한쪽에는 대나무 자루가 두 개 꽂혀 있었다. 저게 뭘까 싶었는데, 가이드분이 저기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란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가 난다고. 궁금해서 후다닥 달려가 대나무 구멍으로 귀를 댔더니 아주 잔잔한 물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맑고 청명한 소리가 났다. 대체 어디서 무엇 때문에 이 소리가 나는지는 미스터리. 다만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였다. 가을의 호센인은 단풍, 낙엽과 함께 정말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데 이곳의 봄 풍경도 궁금해졌다.




오미하치만, 하치만보리


 호센인을 보고 향한 곳은 시가현의 오미하치만시. 그야말로 차가 있어서 가능한 루트. 가는 길에는 비와호의 테두리를 달리게 되는데, 정말 내륙에 있는 호수라 믿기 힘들 정도로 크다. 바다처럼 느껴졌다. 차가 좀 막혀서 호센인에서 차로 거의 1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했다.


바다 같이 끝없이 펼쳐진 비와호
가옥의 모습도 해자도 일본 시대극 드라마에서 본 듯 한!
나룻배가 운치 있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귀여운 댕댕이


 이곳은 작은 마을인데, 일본 옛 느낌이 나는 건물들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해자가 멋진 곳이다. 이 해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누나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츠쿠가 만들었다고 한다. (오미하치만시는 그의 영지 중 하나였다) 많은 시대극이나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각한 예스러운 일본의 모습은 다 여기에 있었다. 일본의 시대극 덕후들이 몰리는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님은 다른 교토의 관광지 대비 이곳이 한산하기도 하고 풍경이 운치 있어 사진 찍기 좋다고 추천하셨다. 과연, 길을 걸어가는데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니 청춘 드라마 한 편이 머릿속에 뚝딱 만들어졌다.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
소나무 조경이 멋졌던 집, 이 마을은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매력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교토는 아니지만 시간과 교통이 된다면 한 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나도 시간이 더 많았다면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이것저것 구경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이미 해 질 무렵 방문해서 마을 산책 정도만 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이곳의 ‘클럽 하리에’라는 곳은 바움쿠헨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음에 오게 되면 사 먹어 볼 것!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한 하치만보리에서 즐기는 뱃놀이가 최고라고 하니 그것도 탐난다.




저녁 간식


 점심을 늦게 먹었더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간단히 요기할 거리를 찾다가 가와라마치의 타카시마야 백화점을 들렀다. 지하 식품관에 호라이가 있길래 빙고! 호라이 교자를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기로!


좋아하는 것만 잔뜩 모았다!

 

 그리고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편의점! 숙소 근처 패밀리 마트에 들러서 푸딩, 롤케이크, 소라마메(잠두콩) 과자, 쟈가리코와 우유를 사서 들어왔다. 호라이는 역시 맛있지만 짜고 기름져서 맥주를 부르는 맛!! 져지 우유 푸딩은 아주 부드러웠고, 저 초록색 미이노 소라마메 과자는 처음 먹어봤는데 적당한 소금간만 되어있었는데도 너무 맛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들어간 롤케이크는 말할 것도 없음. 일본 편의점 간식은 언제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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